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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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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18. 07:12 성경연구

원어의 표현들 -

첫째, 히브리 구약에서 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영어로는 ’(sin), ‘불법’(iniquity), ‘부정’ (wickedness), ‘나쁜’(evil)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이 단어를 무의식적으로 쓰는 경향이 있다. 구약의 히브리어에는 죄를 나타내는 단어가 12개 있다. 이 단어를 성령께서는 매우 꼼꼼하게 구분해서 사용하신다. 각 단어는 죄의 특별한 측면을 표현하고 있다. 이 단어들과 그 용법을 잘 이해하면 하나님이 인간의 잘못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며,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알게 된다. 그럼 이 단어들을 살펴보고 하나님의 영이 이 단어들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보자.

 

1. 하타(af;j;);

하타’(af;j;)는 구약에서 죄를 가리 킬 때 일반적으로 쓰는 단어이다. ‘하타의 뜻은 과녁을 빗나가다이다. 이 단어는 약간 다르긴 하나 의미심장하게도 베냐민 지파의 군사를 가리킬 때 쓰였다. 성령께서는 이 사람들을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 20:16)라 말씀하셨다. 틀림에 사용된 단어가 하타이다. 즉 죄는 과녁을 맞추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이 과녁을 세워 놓으셨다. 이 과녁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 하신다. “이것이 나의 도덕적 수준이다.  너희의 목표는 이 수준이다. “ ‘하타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뜻은 과녁을 맞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단어는 비록 그와 같을 때가 종종 있긴 하지만, 고의적인 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단어는 창세기 4:7에서 가인과 관련해서 처음으로 나온다. 가인은 하나님께 드릴만 하다고 생각한 것, 즉 자기 손으로 일해 얻은 것, 오랫동안 열심히 수고해서 얻은 것을 가지고 나아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가인의 죄 용서에 부족했기 때문이다. 가인은 심히 분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하고 말씀하셨다. 가인의 종교는 죄였다. 표적을 맞추지 못한 것이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도 같은 경우이다. 열왕기상하에 20번 이상이나 반복 되어 나오는 구절은 그들이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했다이다. 처음으로 나오는 곳은 열왕기상 14:16이다. 여로보암의 죄라고 할 때 죄가 하타이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로 과녁을 빗나가게 했다. 여로보암은 거짓된 종교체계를 세웠고 백성들로 과녁을 빗나가게 했다. 그리고 과녁에서 빗나가는 것은 죄였다. 

 

2. 아삼(!v'a)

이 단어는 위반하다는 뜻이다. 즉 몰랐거나 실수로 죄를 범했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예물을 드리는 것과 관련해 자주 사용되고 있다( 5:5,6). ‘아삼’(!v'a)의 뜻은 사람이 부지중에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음을 의미한다. 비록 그가 몰랐을지라도 그는 죄를 범한 것이다. 법적으로는 몰랐다고 해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죄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돌이켜야 한다.

우리는 숫자에 너무 관심이 많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려 했을 때, 그는 하나님의 법이 인구조사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상관하지 않고 교만하게도 자기 뜻대로 행했다. 늘 자기의 유익을 구했던 기회주의자였던 요압이 이 경우에 있어서만은 옳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배나 더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시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로 죄(아삼)가 있게 하시나이까?”(대상 21:3).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선전과 자부심의 문제로 계수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러나 다윗은 인구조사를 강행했고 그 결과 끔찍한 재앙이 돌아왔다. 자신의 잘못을 자백할 때 다윗은 하타라는 단어를 썼다. “내가···· 큰 죄(하타)를 범하였나이다”(대상 21:8). 그는 과녁을 벗어난 것이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그는 값비싼 댓가를 치뤘다. 그 댓가의 내용은 나머지 이야기에 나와있다.

우리는 죄에 대한 개념이 희미하다.  우리가 그렇게 해야 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표준에 대해 죄를 범한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시지 않는다. 부지중에 지은 죄 도 다른 죄처럼 하나님 보시기에는 심각하다. 그래서 이사야 53:10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그 영혼을 속건제물(asham)로 드리기에 이르면····어떤 죄는 모르고 짓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죄를 위해서도 무한한 값을 치르셨다.

 

3. 아웬(@/[)

이 단어는 불법’(不法)이라는 개념이 있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계수함으로 범한 죄를 하나님께 자백할 때 그는 과녁을 빗나간 하타외에도 아웬’(@/[)을 사용한다.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af;j)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대상 21:8). 다윗은 고집스럽게 불법을 행했음을 뜻하는 단어를 쓰고 있다.

구약에서 이 단어는 우상숭배와 관련해 쓰이고 있다. 열왕기상 12:2833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북왕국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이 자기 백성을 예루살렘과 성전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에 대적할 종교를 내세웠다. 그는 두 개의 산당을 짓고, 그 중 큰 산당을 벧엘에 세웠다. 벧엘은 히브리 역사에서 하나님을 여러번 경배했던 장소이다. 이곳에다 그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백성에게 경배 드리게 했다. 이것이 결국 올무가 되어 이 왕국은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 벧엘을 벧아웬 즉 불법의 집으로 바꾸어버렸다( 4:15).

구약에서의 일반적 용례로 보아 아웬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라기 보다는 타락한 인간 본성이 나쁜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죄를 범하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범한다. 내가 그러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 단어는 열망하다’, ‘헛되이 수고하다는 뜻의 어원에서 나왔다. 따라서 자주 헛됨의 개념을 동반한다. 사람의 생각이나 행위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무가치하고 헛되다.

 

4. 아온(@/[)

이 단어도 구약에서 자주 불법(不法)으로 번역되었다 구부러졌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타락한 인간 본성의 잘못됨, 뒤틀림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우리의 본질이 어떠한지, 우리의 본질적 죄악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상태는 이 생애 동안 우리의 성품에서 완전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다윗이 밧세바와 무서운 죄를 저지르고, 필연적으로 남편 우리야를 죽이고 나서도 수주간 그는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것처럼 고집스러운 위선으로 거만하게 가장하고 있었다. 마침내 선지자 나단이 하나님의 진노의 말씀을 가지고 그에게 왔을 때에야 다윗은 무릎을 꿇었다. 그는 시편 32편의 고통스러운 자백을 마음에서 내 쏟았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1,2)

다윗은 자기의 죄를 표현하는데 3개의 단어를 쓰고 있다.

첫 단어는 파솨’(허물)이다. 이 단어는 반역을 뜻한다. 이 단어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다윗의 죄는 하나님께 교만 하게 반역한 행위이다.

두번째로 쓴 단어는 하타’()이다.  그의 죄는 표적을 엄청나게 빗나가 버렸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에서 멀리 떨어져 버렸다.

세번째 단어가 아온’ (정죄), 즉 불법적 행위이다. 이 단어는 그의 본성이 구부러져 있음을 나타내고 그의 존재가 뿌리깊게 잘못되었음을 드러낸다 아온’(@/[)은 창세기 15:16에서 처음 나온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약속하시고, 그 땅이 그의 소유임이 분명하나, 그 땅을 실제로 소유하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을 말씀하신다. 그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라고 말씀하신다. 여기 나온 죄악이 아온이다. 아모리 족속의 구부러짐, 뒤 틀림이 아직 하나님의 인내의 잔에 넘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우상 숭배와 부도덕은 아직은 더 계속될 것이다.  또한 이 단어에는 소돔 백성의 그들의 뒤틀린 삶의 모습의 엄청난 수치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될 때, 다시 한 번 나온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아온)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19:15) 소돔의 구부러짐, 뒤틀림은 영원한 불의 진노를 맞게 된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유황불을 이 도시 위에 내리고자 하셨다. 이 동성애 도시를 설명하는데 하나님은 아온’(@/[)이라는 단어를 사용 하셨다.

이 단어는 또한 시므이가 자기 죄를 다윗에게 고백할 때 쓰였다.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갈 때, 이 악한 시므이는 자신의 마음의 구부러지고, 뒤틀린 생각을 헛된 맹세와 저주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다윗이 다시 돌아오자 시므이는 자기의 악함을 마구 드러낸데 대해 심히 두려워하여 말했다. “내 주여 원컨대 내게 죄(@/[) 주지 마옵소서 “(삼하 19:19)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이와같은 뒤틀림을 갖고 있다.

이 단어는 레위기 16:12에서 속죄의 날과 관련해 쓰였다. 그 날 염소 한 마리를 취해. 그 머리에 안수하고 모든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한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아온)와 그 범한 모든 죄(파솨)를 고하고 그 죄(하타)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다윗이 사용했던 3개의 단어를 아론도 사용한 것이다.  최초의 가장 중요한 단어가 아온이다.  처음으로 고백해야 할 죄는 인간 본성의 치유할 수 없도록 구부러진 죄이다. 

 

5. 아마르(lm;[;)

이 단어는 고통, 수고, 의 개념을 동반한다. 이 단어는 죄의 짐을 묘사한다. 죄는 고통을 가져오고 죄는 얼마나 비탄스러운지. 이 단어는 구약에서 많이 나오지는 않으며, 번역도 여러 단어로 다양하게 되어 있다. 솔로몬이 자기 생애를 낭비한 후 자신의 어리석음과 실패를 뒤돌아보며, 다시 한번 살아볼 수 있기를 소원해 보면서 그는 이 단어를 사용한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 단어를 12번 연속해서 쓴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 내가 해 아래서 나의 수고한 모든 수고(lm;[;)를 한()하였노니..:( 2:17,18) 수고란 단어는 죄와 동의어이다. 솔로몬 이 예루살렘에서 일으킨 대단위 공사, 장엄한 건축은 억압과 땀흘린 노동을 댓가로 이루어졌으며, 다 모여서 죄(lm;[;)가 되었다. 그 최종 결과가 다른 사람들에겐 아무리 장엄하고 위대해 보일지라도, 솔로몬의 비밀스러운 영혼은 이제 생애의 마지막을 앞두고 모두 합해져 죄가 되었다. 이보다 더 큰 비극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떠나버리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일한 모든 것이 모여 죄가 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더 큰 비극은 없을 것이다. 솔로몬은 이 단어를 나중에 또 사용한다.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lm;[;)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5:16). 사람들이 자기의 시간, 재능, 소중한 것을 투자해 헛된 것, 한 번 붙잡은 후에는 결코 계속 붙들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을 보고 솔로몬은 인생을 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잘못된 세상에 그토록 어리석게도 낭비한 자기 인생에 대한 그의 평가이다.

엘리바스가 불행에 빠진 늙은 욥에게 그의 두번째 이야기에서 던진 단어가 아마르이다. 엘리바스는 3인칭으로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분명 욥을 가리킨다. “그들은 악한 생각(lm;[;)을 배고 불의를 낳으며” ( 15:35). 엘리바스는 욥을 위선자로 비유한다. 엘리바스는 욥이 압제자였으며 욥 자신이 고통의 원인이며, 하나님이 지금 욥에게 주신 이 엄청난 짐을 지우게 하심은 욥이 마땅히 당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욥의 죄가 욥을 찾아내었다. 선한 사람으로 위장하고 있는 동안, 사실상 그는 위선자였다. 이제 악한 생각(lm;[;)이 자업자득이 되었다. 그의 완전함이 하늘에서 이야기되었던 욥에게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끔찍한 잘못이다. 욥이 다른 사람을 돕고 관대했으며, 필요가 있는 사람을 보살펴 주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욥처럼 이 악한 생각(lm;[;)과 무관하게 산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6. 아와르(lw<[,)

이 단어는 불의’(不義)를 뜻한다.  즉 죄의 불공정, 속임, 타고난 부정직, 옳지 못함을 나타낸다. 솔로몬은 이 단어를 잠언 29:27불의(lw<[,)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에서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면, 이 단어의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에 엄격한 재판을 요구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 “너희는 재판할 때 불의(lw<[,)를 행치 말며”( 19:15,35). 모세는 재판관이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세력있는 자라고 봐주지 말 것을, 또한 상인이 거래할 때 무게와 길이를 속이지 말 것을 말하면서 이 단어를 쓰고 있다.

 

7. 아바르(rb'[;)

이 단어의 문자적 의미는 넘어갔다이다. 즉 한계를 넘었다는 느낌을 준다.  다윗은 이 단어를 혀로 범하는 죄를 가리키는데 쓰고 있다.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rb'[;)치 아니하리이다”( 17:3). 다른 어떤 분야에서 보다 말하는데서 우리는 친절. 진실, 필요의 한계를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라고 예수님께서 준엄하게 하신 말씀은 참 두려운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 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앗시리아 군을 징계의 수단으로 사용하실 것을 의식하며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겼다고 말한다( 6:7, 8:1). 이스라엘은 너무 멀리 가버렸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진노 사이를 긋는 경계선을 넘어가 버렸다.

 

8. 라아(['ro)

이 단어는 악한해로운의 뜻이다. 즉 인생에서 선하고 바람직한 모든 것을 깨뜨렸다는 개념을 동반하고 있다.  또한 부패, 추잡, 비행을 가리키는데 자주 쓰인다. 이 단어는 시편에 자주 나온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포네로스’(Poneros)인데 (여기서 포르노라는 단어나 나왔다)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못돼먹은’(naughty)으로 가끔 번역되었는데 이는 적합하지 않다. 이 단어는 다윗의 맏형인 엘리압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온 다윗이 골리앗의 교만한 말을 듣고 이스라엘에서 아무도 감히 이 거인과 싸우려하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랬을 때,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ro)을 아노니”(삼상 17:28). 엘리압은 이 동생, 사무엘이 다음번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을 부은 다윗을 질투하고 있었다. 그는 다윗을 헐뜯었다. 

솔로몬은 동양의 시장에서 행하던 바겐세일을 설명하는데 이 단어를 재미있게 사용했다 사는 자가 물건이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ro)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 20:14). 우리는 이 장면을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상인이 권하는 상품을 살펴보면서 별로인데, 별로야라고 말하며, 고개를 흔들고 값이 비싸다고 한다 그는 값을 깎기(['ro) 위해 가능한 한 강한 단어를 사용해 주장한다. 그러나 흥정이 끝나면, 그는 태도를 싹 바꾼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광주리 안에 든 무화과로 비유가면서 악한 무화과라 말했다. 이 경우 악한’(['ro)은 이 무화과가 썩었음을 의미하며, 이는 한가운데까지 썩어버린 패역한 나라를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주고 있다

 

9. 파솨([v'P,)

이 단어는 반역, 반항을 뜻한다. 즉 법적 권위에 대항한 반역행위로 말한다.  시편의 회개하는 기도에서 여러번 다윗은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 51:1에서 내 죄과([v'P,)를 도말하소서라고 간구하며, 13절에서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v'P,)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라고 약속하고 있다.  다윗의 간음, 우리아 살해는 하나님의 법을 교만하게 깨뜨린 것이다 최근 우리는 음행을 어쩔 수 없는 것, 사회가 관대하게 허용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음행을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음행이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계속 하나님을 무시하는데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강력한 말씀으로 기록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괴로워 했으며 하나님도 이스라엘을 괴로워 하셨다고 말했다. 그리고나서 이스라엘의 냉담죄의 목록이 나오고나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v'P,, 반역)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af;j: 과녁을 못 맞춤)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43:25).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동기가 여기 놀랍게도 계시되어 있다. 우리의 반역, 하나님이 세우신 과녁에 이를 수 없는 무능력이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에 의해 없어진다. 하나님은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으로서 하나님 자신의 성품 내에 있는 어떤 깊은 필요를 채우기 위해 그리하신다.

 

10. 라솨([v;r:)

이 단어는 악함즉 우리 타락한 인간 본성의 끊임없는, 쉬임없는 행위를 가리킨다.  모든 소유를 잃고, 자녀들이 죽고, 몸에 악창이 났을 때, 욥은 자기가 태어나던 날 죽지 못했음을 한탄한다. 그랬더라면 욥은 악한([v;r:)자가 소요를 그치는”( 3:17) 곳에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사야는 그의 가장 위대한 예언 중 하나인 53장에서 라솨([v;r:)를 놀랍게 사용한다. 사람들이 주님 예수의 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예언하면서, “그 무덤이 악인([v;r:)과 함께 되었으며 “( 53:9). 여기서 악인은 복수형이다. 즉 예수님이 범죄자들과 함께 죽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유대 당국이 분개해서 계획했던 마지막 조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몸을 공동묘지에 던져버리거나 힌놈 골짜기의 소각장 불에 넣어버리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그리고 예수님을 부자와 함께 정중하게 묻히도록 조처한 아리마대 요셉을 고려에 넣지 못했다.

이 단어가 쓰인 또 다른 유명한 구절도 이사야서에 있다. “오직 악인([v;r:)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v;r:)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 셨느니라”( 17:20,21).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죄의 이같은 개념 뒤에는 안정되지 못함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악인이 무엇을 소유하던 간에, 그는 휴식과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

 

11. 마알(l['m)

이 단어는 배반, 변절의 개념이 동반되어 있다. 즉 신뢰를 깨뜨리거나 계약을 위반했을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범죄했을 때( 5:15) 사용되었다. 즉 언약을 어겼을 때 쓰인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겼을 때 받게 될 형벌을 경고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 남은 자가 너희 대적의 땅에서 자기의 죄(@/[: 뒤틀림)로 인하여 쇠잔하며···· 그들이 그 열조의 죄(@/[)와 및 그들이 나를 거스린 허물(l['m)을 자복하고····내가 내 언약을 생각하며····”( 26:3942). 다른 말로 하면 죄는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반역의 행위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약속이 폐지된다.

이 단어는 배우자에 대한 불성실 행위와 관련해서 쓰였다. “만일 어떤 사람의 아내가 실행하여 남편에게 범죄(l['m)하여····”( 5:12). 음행은 약속을 배반한 것이다.  모세는 자신의 행위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므리바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반석에게 명하여 생수를 내라고 하셨다. 그 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반석을 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석에게 명령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자제력을 잃고 반석에게 명령하는 대신 반석을 쳐버렸다( 20:7-13).

이는 너희가 신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l['m)하여”( 32:51). 이 잘못된 행위에 무슨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가? 바위는 한 번 맞았던 것이다. 또 맞아서는 안된다. 모세는 이번에는 말을 해야만 했다. 바위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주님은 단 한 번만 맞으셔야 한다.  갈보리는 역사에서 결코 반복될 수 없다. 단 한 번만 하나님은 아들을 때리실 것이다. 우리가 축복을 받기 위해 우리는 그분에게 말하기만 하면 된다.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것은 심각한 죄이며, 하나님의 진리를 거역한 행위이다. 그래서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어야 했다,

동일한 단어가 아간의 범죄와 관련해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여리고의 모든 노략물은 하나님의 것으로 바쳐져야 한다고 선언하셨다. 그것은 승리의 삶의 첫 열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간은 노략물의 일부를 훔쳤다. 그 후 이스라엘이 아이성에서 패배하고 여호수아가 그 이유를 하나님께 묻자, 하나님은 아간의 죄를 드러내셨다 이 사건을 기록하신 성령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법죄(l['m)하였으니”( 7:1)라 말씀하셨다. 아간의 범죄는 하나님의 법,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 승리한 삶을 살게 하는 신뢰와 순종의 원칙에 대한 거역이다. 아간은 이 배신에 대해 커다란 댓가를 지불해야 했다. 죄는 심각한 문제이다. 

 

12. 솨가그(hg;g;v)

이 단어는 죄를 경솔, 성급한 행위즉 속임을 당한 결과로 나타낸다. 이 단어는 고의적인 죄가 아니라, 술취해서 혹은 흥분해서 정신없이 저지른 그런 종류의 죄를 말한다. 이런 죄는 철면피한, 계획적인 극악한 죄와는 구별된다. 민수기 15:28에서 모르고 지은 죄를 설명하는데 이 단어가 쓰이고 있다. “만일 제사장은 그릇하여 그 그릇 범죄(hg;g;v)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얻은 죄를 위하여 속죄하여 그 죄를 속할지니.”

비록 성급하게 속아서 혹은 흥분해서 죄를 범했으나 그것은 죄임엔 틀림 없다.  유죄이며, 속죄해야 한다.

시편 119편에는 이 단어가 많이 나온다.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hg;g;v) 말게 하소서”(10).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에서 떠나는(shagag) 자는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21).

,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다: 12개의 단어가 모두 죄의 미묘한 차이와 다양함을 나타내고 있다.

표적을 맞추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하는 죄, 부지중에 행해버린 위반, 타락한 인간 본성의 뒤틀려 있음을 나타내는 죄, 다른 사람에게 가져다 준 고통의 관점에서 본 죄, 불공정하고 속인 행위인 죄, 하나님이 세우신 한계를 넘어버린 죄, 도덕적 부패, 선한 것을 깨뜨린 죄, 포르노와 변태같은 죄, 하나님에 대한 거역, 반역죄, 우리의 타락한 성품이 쉬지 못하고 행하는 악함, 하나님과 타인에 대한 배신 행위, 흥분, 경솔, 속아서 저지른 죄, 이 모든 것이 누적되어 있는 끔찍스러운 죄.

우리에게 구세주가 필요한 것이 결코 이상하지 않다.

이상은 죄를 의미하는 구약에 쓰인 단어들이다

 

신약도 인간의 잘못에 대해 구약 만큼이나 많고 다양한 단어를 쓰고 있다. 

하르마타노(harmatano) : 표적을 빗나감.

파랖토마(paraptoma) : 옆으로 떨어짐.

포네리아(poneria) : 도덕적 부패.

카코스(kakos) : 잘못된 욕망.

아노모스(anomos) : 법을 모욕함.

아테스모스(athesmos): 자신의 악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 사람들이 만든 규제를 고의로 어김.

아세베이아(asebeia): 하나님 혹은 거룩에 대해 존경이나 경외심이 없는 자, 경건치 않음.

아페이테이아(apeitheia) : 권함을 받지 않음, 완고함.

파라코에(parakoe): 불순종, 말을 듣지 않음.

파레코마이(parerchomai) : 부주의, 무시.

파라바이노(parabaino) : 반칙을 범하다, 선을 밟고 넘다. 

아디키아(adikia) : 불의, 불법.

파라노미아(paranomia) : 법이나 관습을 어기다.

플라나오(planao) : 다른 사람을 잘못하게 만들다. 특히 교리적인 잘못이나 종교적 특성을 속임.

아스토테오(astocheo) : 벗어남, 빗 나감(성적 도착).

헤테마(hettema) : 부족하게 달아 주다. 

좋은 성구사전이나 성경사전을 사용해 위의 단어들의 여러 용법을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구약의 12, 신약의 약 20개 단어를 사용해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손상을 입었는지, 그 끔찍한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계신다.

(죤 핍립스 의 말씀의 올바른 해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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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