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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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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 Harvey

사도행전 2장: 시작

성경에서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만큼 억눌린 기대감으로 가득 찬 날도 드물 것입니다. 약속된 성령의 선물이 신자들에게 영구적인 내주와 권능을 부여하기 위해 주어졌고 교회는 태어났으며 은혜의 날의 경륜이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방언을 말하는 영적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공급과 권능이 분명히 나타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사도행전 2:12에 “그들이 모두 심히 놀라 의심하며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하더라”는 질문과 반응이 기록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역사의 흐름을 변경했던 엄청난 날이었습니다. 방언의 관습을 살펴보되 사도행전 2장의 사건들에 한정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외국어로 말하는 능력은 영적인 은사이며 모든 영적인 은사들처럼 오순절부터 휴거 때까지 모든 신자로 구성된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이러한 영적 은사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단순히 그것들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은사들의 기능과 목적에 대해 중요한 원칙을 가르치며 오늘날에 그것들의 사용과 존재에 대해 조명합니다. 은사는 교회의 성장과 완성을 위한 특정 단계를 위해 주어졌으며 특히 그 단계에 적합하다는 것을 배웁니다(엡 4:12). 예를 들어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기초에 관한 역할입니다(엡 2:20). 나중에 교리에 관한 몸이 주어졌고(유 3), 그리고 성경의 규범에 관한 계시는 완성된 후에는 이러한 기초적인 은사들에 대한 필요성이 사라졌습니다(고전 13:8-10). 각각의 은사들도 마찬가지이며 신자들로서 우리의 은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는 날에 절정에 달할 것입니다(엡 4:13). 그러나 우리는 복음전도자들 그리고 목자들과 교사들이 세우는 모임에 대한 은사의 현재와 지속적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은사는 그 목적이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 2장에 주어진 은사는 무엇이었며, 오순절 날에 그 목적과 효과는 무엇이었으며 그 목적은 현재 실현되었을까요?

 

사도행전 2장의 종종 오해되는 은사는 방언의 은사로서 이전에 해당 언어를 공부했거나 배우지 않고도 기존의 외국어로 말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입니다. 사도행전 2장 6,8,11절에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황홀한 표현, 횡설수설, 또는 하늘의 언어가 아니라 오히려 인지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라는 것을 확인시켜줍니다. 성경에서 번역된 단어 “방언” 또는 “언어”(glw'ssa(글롯사)diavlekto"(디알렉토스)(단어들은 신약에 동의어적으로 사용되고 있음)는 우리가 가진 육체적인 기관이나 알려진 언어를 말할 때 그것을 사용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은사주의 운동에 일부 선의의 사람들은 황홀함에 나오는 소리를 경험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경험이나 순수함이나 그들의 감정의 강도는 시험의 대상이 아닙니다. 진리에 대한 유일한 시험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실제의 질문은 “내 경험이 실제였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내 경험이 성경적이었는가?”입니다. 심지어 그와 같이 성령님의 주어짐에 수반하는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표적(불의 혀처럼 갈라진 것들과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력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나더니)의 강력한 증거와 더불어 여전히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목격했던 방문객들을 위해 그 근거를 성경을 통해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행 2:16)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성경은 사도행전 2장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첫번째 교훈은 방언의 은사는 잘 알려진 언어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현대 은사주의 운동에 의해 주어진 적합하지 않은 다른 모든 경험적 주장을 성경적으로 배제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교훈은 성경은 항상 경험보다 우선하며 경험은 성경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하며 그 반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에 방언​​의 은사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성령님은 볼 수 있고 들릴 수 있는 표적들을 수반하지 않고는 주어질 수 없었을까요? 베드로가 서서 설교할 때, 그는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복음을 전파할 때마다 그러한 경우처럼 모든 사람이 알고 이해하는 언어로 명확하고 단순하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베드로의 메시지 앞에 방언으로 말하는 은사를 통한 외국어 소개가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으로 새로운 일, 즉 은혜시대의 경륜이 시작되고 신자들 안에 성령님의 내주하시는 표적을 보내셨으며, 그로 인해 그 확증의 놀라운 표적을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2:4은 사도들이 복음을 제시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표적들과 이적들과 다양한 기적들과 성령님의 선물들로 그들에 대하여 증언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날이 도래했습니다. 바울은 이사야 28장을 인용하여 고린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다른 언어들과 다른 입술들을 가진 사람들을 써서 이 백성에게 말하리라 그러므로 타언어들은 믿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 아니요,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로되”(고전 14:21-22).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이 외국어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 유대인들에게 “이 백성”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입니다. 유대인 귀에는 자신들의 땅에서 외국어를 하는 소리가 임박한 포로생활에 대한 심판의 확실한 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날에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외국어로 말하는 그들의 동포들의 말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그것은 믿지 않는 민족에 대한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벌하신다는 표적과 메시지였습니다; 뒤이어 계속되는 명백한 복음의 메시지에 몇몇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은 얼마나 고무적인가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 베드로와 나머지 사도들에게 이르되 사람들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까?”(행 2:37).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회개와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보여준 3,000여 명의 혼이 주님 나라로 들어오고 주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시는 모습에 우리는 경외심을 느낍니다. 참으로 주님은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증해 주셨습니다(막 16:20). 오늘날 완성된 성경을 손에 쥐고, 구원받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으로 연합하고, 은혜의 경륜이 잘 진행되어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른 지금, 우리는 방언의 목적이 성취되어 교회의 기초에서 그 자리를 차지했지만 더 이상 기능할 필요가 없어졌음을 되돌아보고 감사합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