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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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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10,19장에서 성령님을 받은 세 개의 구별되는 집단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세 차례 경우에 방언을 말하는 것은 특정한 집단의 각 개인이 성령님을 받았다는 물리적 나타남이나 “표적”이었습니다. 2장(이전 기사에서 다뤄짐)에는 1장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모였던 사도들이 그분의 승천 전에 주님의 가르침에서 나타내었던 대로 성령님을 받았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유대인 신자들은 놀라워했습니다, “이방인들 위에도 성령님을 선물로 부어 주시는 것으로 인해 다 심히 놀라니”(행 10:45). 사도행전 19:2에서 바울은 요한의 침례만을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 결과로서 성령님을 받고 방언을 말한 것은 “처음의 유대인들”, “처음의 이방인들” 그리고 “요한의 침례만 아는 무리”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2:38에서 베드로는 사도들이 방언으로 말했던 것을 그들이 들었을 때 모였던 유대인들에게(행 2:5) 그들도 회개하고 침례를 받으면 “성령님의 은사를 받았”을 것이라고 약속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나중에, 우리는 3천 명의 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침례를 받았다는 것을 읽지만 그들이 방언을 말했다는 것을 읽지 못합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성령님을 받았을 때 그들이 다른 방언으로 말했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령님을 받은 증거로 방언으로 말해야 한다는 생각을 무효화되는 것입니다(행 8:16-17).

 

이 세가지 사례에서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이 결코 적극적으로 그분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님은 신자들이 순종함으로 기다릴 때 “충만케”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0:44에서 “성령님께서 말씀을 들은 모든 사람 위에 임하시매”, 동시에 19장에서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할 때 새 신자들이 성령님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개인이 적극적으로 성령님을 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로부터 어떤 요청 없이도 그분은 그들 위에 “충만했”거나 “임재”하셨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이방인들이 성령님을 받음

베드로가 그의 메시지의 정점에 이르러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죄들의 사함을 선언했습니다(10:43). 이전 오순절 날에 그는 죄 사함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결말지었지만,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를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이 때 베드로는 성령님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는 전체 일행이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님께서 말씀을 들은 모든 사람 위에 임하시매”(10:44)라고 했기 때문에 기회가 없었거나, 아마 베드로는 이방인들이 성령님 받기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와 그의 유대인 동료들과 동료 신자들의 놀라움은 새로이 회심한 이방인들이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행 10:46)을 시작한 변화였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와 다른 유대인 신자들이 하나님을 높이며 말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이 방언과 더불어 말하는 것을 이해한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이방인들이 방언을 말하는 의미는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령님을 받았으니”(행 10:47)라는 표적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 방언을 말했던 이러한 사건은 이방인들의 회심의 확실함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그들을 동등하다는 표시로서 앞으로의 사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사도행전 11장에서 베드로가 유대 지방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에게 10장의 사건을 말한 것처럼 그는 이방인들이 그들의 변화를 인증하도록 성령님을 받았을 때 이 위대한 사건에 대해 말하곤 했습니다(행 11:15-18). 그 결과 그의 청중이 그분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영광을 돌렸습니다.

 

나중에 사도행전 15장에서 이방인들의 할례를 받을 필요성에 대한 의견의 차이가 일어났을 때,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이방인들도 동등하다는 증거로서 10장의 사건을 언급하며 선언합니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 차별도 두지 아니하셨느니라”(행 15:8-9).

 

사도행전 19장: 요한의 침례만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성령님을 받음

사도행전 19장에서 방언을 말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집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 흥미롭고 독특한 무리이며 단지 요한의 침례로​​ 침례를 받았던 “어떤 제자들”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A.M.S. 구딩의 의견처럼, “십자가 이전을 경험한 무리들이 십자가 후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에 관한 그들의 이해하는 깊이를 알아보려고 바울은 “너희가 믿었을 때 성령님을 받았는가?”라고 묻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자들이 두 번째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을 때 성령님을 받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들은 아직 성령님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19:2),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19:4). 따라서 바울은 “자기(침례 요한) 뒤에 오실 분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하였느니라”는 것을 상세히 설명했으며 그들이 결과적으로 믿었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안수함으로 “성령님께서 그들 위에 임하시므로 그들이 타언어들로 말하고 대언하니라” 믿는 자들이 안수로 성령님을 받은 것이 처음(행 8:17)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방언 말하는 것과 함께 예언을 동반했었던 오직 세 가지 중 유일한 경우입니다. 이것은 방언과 함께 말하는 것이 사도행전에서 마지막으로 언급되었습니다.

 

결론

사도행전에 기록된 방언을 말하는 신자들의 세 가지 사례는 서로 다른 세 무리의 신자들이 성령님의 주어짐을 나타내는 표적이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신자들의 말을 들었던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을 말했는지를 이해했습니다.

사도행전의 많은 믿는 자들이 방언을 말하지 않고 성령님을 받았기 때문에 방언 말하는 것은 성령님을 받은 증거로 필수적인 것이 아닙니다(행 2:38; 8:17).

이 세 가지 경우와 사도행전 8장을 제외하고 믿음으로 성령님을 받는 것은 대화를 통한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행 2:38; 19:2).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