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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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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의 계략 (2)

존 베인

세속적으로 예배를 더럽힘

지난 달 우리는 마귀의 계략들을 살펴보며 시작했다. 마귀의 세 가지 의도는 사악함으로 가치 있는 것을 더럽히고, 세속적으로 예배를 더럽히며, 고의적으로 일을 더럽히려고 시도했다. 이번 달에 우리는 세속적인 예배에 있었던 영향력을 검토한다.

 

두 번째 공격은 (누가복음에 기록된 순서대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파렴치하다. 그것은 그가 다른 두 가지에서와 같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인 경우”를 가지고 사탄은 이 공격에 머리말을 붙이지 않았다는 것은 흥미롭다. 분명히 그러한 소개에 따라오는 것은 부정함일 것이다. 이 시험에서 사탄은 그리스도에게 예배의 더럽힘을 제공하고 그가 유혹하는 것으로 세상을 사용한다. 마태복음의 구절에 사용되는 “세상”에 대한 단어는 마가복음 8:36에서 사용된 동일한 것이다,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으면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이 문제에서 제공하고 있는 것의 구주의 명백한 지식을 감안할 때, 시험은 결코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노골적이고, 거칠고, 무거운 편이다. 궁금할 수도 있는 한가지 이유로 구주께서는 시편 2:12에서 인용하지 않고 지적하신 것은 세상이 그의 주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주목했던 것처럼 이러한 시험은 실재 있었다. 사단은 그가 제공 할 수 없는 것을 제공하지 않는다. 에베소서 2:2은 세상을 지배하실 그분을 확인하며 -동일한 단어- 공중에 권세 잡은 자로, 이것은 일시적이고, 빼앗긴 주권일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지금도 그분의 것이다.

 

다시 구주의 반응은 신명기(6:12-13)에서 있으며 그것의 문맥에서는 일반적으로 출애굽기와 연관된다. “너는 조심하여 너를 이집트 땅 속박의 집에서 데리고 나오신 주를 잊지 말고 주 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을 섬기고 그분의 이름으로 맹세할지니라.” 출애굽기와 연관된 초기 사건은 사람들이 예배하러 광야로 사흘 여행을 갈 수 있도록 하나님 대신에 모세에 의한 요청이었다. 그것은 사단이 싫어하는 무언가이며 더럽히려고 그가 최선을 다할 것이다. 원래 바로는 호전적이고 인간 폐물이고, 노골적이지만 재앙이 시작되면 그의 전술은 타협으로 무기력하게 바뀐다. 그가 첫번째로 제시하는 것으로 보이는 순서는,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라”( 8:25); 그 다음에 “너희가 광야에서 주 너희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려니와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8:28); 그리고 다음에 “내가 너희와 너희의 어린것들을 보낼 때에 주가 너희와 함께할지니라”( 10:10 ESV),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것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10:24).

 

적용은 분명하다. 나는 “사흘 여행”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전체 주간을 나타내었던 것을 가르쳐지고 있는 나의 청년기를 기억한다. 만일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목요일, 금요일에 주님의 날을 향해 여행하고 있으며, 토요일에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모이는 주님의 날, 일요일에 도착할 것이다. 우리는 그 다음 월요일에 비유적으로 다시 여행, 단지 주기를 새로이 시작하기 위해 다시 출발하는 화요일과 수요일. 그와 같이 주님에 대한 완전한 마음의 헌신은 그분에게 소중한 것처럼 내가 그것을 깨닫는 것은 드물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이 바로의 타협을 만드는 것을 찾을 가능성이 더 높다. 나는 그 땅에 남아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는가?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 나는 그것이 실재 필요하고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얻는 것인가?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나의 확신을 “짊어 지우기”를 해야 하는가? 나는 예배하러 가는 동안 나는 세상에서 그것들을 떠날 수 없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임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재정적으로 헌신적이고,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인가?

 

아이들의 문제는 한가지 큰 지혜가 필요하다. 모세는 분명하게 언급을 했다: “우리가 가되 우리의 젊은이와 늙은이와 아들딸과 양 떼와 소 떼와 함께 가겠나이다.” 아이들은 일찍이 그들 자신들을 위해 결정을 내릴 것이며, 머지 않아 시간이 빨리 날아감으로 노년이 온다. 이것은 더 이상 당신의 결정이 없는 날의 경우 아이로부터 아이에게 다양할 것이지만, 언제 또는 만일 그 때가 오는 경우 슬기로워라. 지나치게 요구하는 부모의 엄격함에 반항하고 있을 때 복음 집회에 오도록 그들에게 요청하며 한 젊은이를 위해 사랑의 배려를 나타내며 기도하는 부모는 반항과 존경의 차이를 만들 수도 있다. 당신은 문이 꽝하며 닫히기를 원하지 않으며 아들이나 딸을 잃은 뒤에 결코 다시 집에 와서 결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지혜를 필요로 한다!

 

예배는 하나님께 귀중한 것이며 그러므로 사단의 표적이다. 구주에 대한 극심한 그의 뻔뻔스러운 제시는, 세속적인 예배를 위해 우리에게 경고할 것이다. 선택은 좀처럼 그러한 두드러진 대조로 우리에게 제공되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바로의 “합리적인” 타협으로 제공된다. 그것이 무지해서는 안될 원수의 계략이다.

 

http://www.truthandtiding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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