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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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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9. 14:23 횃불/1991년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3)

그리스도의 선재(先在)하심

- 존 스텁스

. 히브리서에서

이 놀라운 서신서를 조심스럽게 대할 때 신자는 시간이 시작되기 이전, 곧 영원 전부터 존재한 관계인, 성부와 육신을 입기 이전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분명히 암시해 주는, 그리스도에 관한 진술들을 발견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여기서는 그분의 영원하신 위()의 영광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몇 가지 언급만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을 계시하신 분( 1:3)

본 히브리서는 선재 상태에 계신 그분께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는 칭호를 부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위()에 대한 우리의 깨달음을 크게 증가시켜줍니다. 이 광채라는 말은 오직 여기에서만 발견됩니다. 그것은 시간을 초월한 술어로서 태양과 그 광채를 연상시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는 태양의 광채가 태양만큼 오래되었으며 그 광채가 없이는 태양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도 이처럼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십니다. 기자는 아드님을 찬양하는 중에 먼저 지고한 영광 중에 계신 그분의 드높은 신분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직 그분은 땅을 밟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그 본체의 형상이란 표현이 단지 육신을 입은 분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모습만을 가리킨다고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견해를 자신 있게 물리 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용된 분사구문(Who being -)으로 보아 본문은 시간과 관계없이 그 본질적인 속성을 취하고 계신 주 예수님의 어떠하심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왜 그리스도께서 이같이 제시 되었는지 그 이유를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영원히 관계돼 있는 까닭에 하나님의 참된 해석자가 되기에 심히 합당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분( 1:10~12)

기자는 4절에서 14절까지 그리스도와 천사를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천사는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혹은 영들)으로 삼으시느니라”(7). 따라서 그들은 피조물의 특징을 지닙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셨을 뿐만 아니라 천사들보다도 먼저 계셨습니다. 여기서 만물이 언급된 이유는 창조주인 그리스도와 피조물인 천사 사이의 현저 한 대조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시편102편에서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25)라는 놀라운 고백을 대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모든 만물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 귀속되는바 이는 그분이 만물과 별도로, 만물보다 먼저 계셨음을 입증해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첫 피조물이라는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 3:14)과 같은 구절들을 인용하는데, 여기서 언급된 근본”(beginning)이란 말은 처음으로 창조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단순히 기원(origin) 내지 근원(source)을 뜻합니다. 히브리서 1장과 관련해 볼 때 창조주인 동시에 피조물이라는 것은 매우 납득하기 어려운 개념의 혼합이 될 것입니다. 1 10~12절에서 그리스도를 창조주로 묘사한 것은 분명 그리스도의 선재하심을 뜻합니다

 

영원하신 아드님( 5: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는 그리스도의 선재하심에 대한 암시를 보게 됩니다. 만일 주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영원한 관계를 공유하시지 않았다면 지극한 순종하심으로 주어진 겸손의 길을 가시는 동안에 그 아들 되심의 속성이 파손될 것입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란 말은 비록 그분이 이 독특하고 영원한 관계 속에 계시긴 했지만 그와 현저히 대조되게도 지상에서 복종의 길을 가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우리 주님의 역사가 출생시에 시작되셨다면 이 구절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며 우리는 그분의 역사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빼버리는 셈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선재하심은 단지 그분이 인간이 되시기 이전에 존재하셨다는 뜻만이 아니라, 거짓 교사들이 주장하는 대로 그분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심중(the mind) 속에 계셨다는 뜻이 결코 아니며(왜냐하면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존재가 절대적이고, 영원하고, 그리고 인격적인 선재하심이라는 뜻을 내포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재하심 그 자체가 반드시 영원성과 신성을 함의하지는 않지만, 히브리서에 나오는 이러한 참조 구절들과 관련하여 볼 때 그것은 그 외에 다른 어떤 의미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신 분( 10’7~9)

····내가 왔나이다····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40:8)라고 한 메시야의 고백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선재하심의 사실이 뒷받침되고 있음을 봅니다. 이 구절은, 사실, 시간 속으로 들어오시기 이전의 주님의 모습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입니다. 게다가 주님은 히브리서 10 5절에서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하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첫 사람 아담 사이의 구별을 드러내 주는 놀라운 진리를 보게 됩니다. 창세기 2 7절에서 보는 대로 아담의 몸은 그가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콧구멍으로 생기를 불어넣으사 이에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아담의 존재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이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0장을 통해 육신을 입기 이전 상태의 그리스도께서 그 몸에 앞서 존재하셨다는 사실을 보는 것은 얼마나 보배로운지요! 따라서 우리는, 아담은 몸 이후에 존재한 반면 그리스도는 몸 이전에 존재하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크나큰 대조는 그리스도의 인격적인 선재하심을 입증해 주며, 우리는 그러한 분 앞에 경모와 찬양의 심정으로 부복하게 됩니다.

 

그분의 백성의 고난에 동참하신 분( 11:26)

본문에는 육신을 입은 그리스도가 아직 오시지 않은 때에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 오시려면 약 1500년이 지나야 하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런 때문에 어떻게 모세가 그리스도의 능욕을 생각할 수 있었으며, 또한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능욕은 무엇을 뜻하는지요? 모든 이스라엘의 능욕은 그리스도의 능욕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당시에 이스라엘과, 그들이 당하는 모든 곤경에 함께 하셨습니다. 그분 역시 고난 당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바울이 고린도후서 1 5절에서 신자들이 당하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설명한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이 사실은 이사야 63 9절의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라는 말씀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합니다. 아마 이 구절에서 언급된 자기 앞의 사자는 그리스도 자신일 것입니다. 히브리서 11 26절의 병행구절은 고린도전서 10 4절의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는 구절일 것입니다. 바인(Vine)은 말하기를, “반석을 신령한 것으로,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것으로 묘사한 것은 그리스도의 선재하심을 명백히 증거해 준다고 했습니다. 요컨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이란 구절은 주님의 인격적인 선재하심을 입증해 줍니다.

끝으로 우리는 이 귀중한 주제에 대한 이상의 언급들이 해석이 아닌 단순한 깨달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의 증거는 본질적으로 머리가 아닌 마음에 부합되게 마련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1991 9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