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이안 W. 깁슨

서론에서 요한복음 12:23-33에서 주님께서 그분 자신과 아버지, 세상, 마귀와 모든 인간에 관련하여 그분의 죽음의 의미를 설명하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영광 받음

그분 자신과 관련하여 그분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세 개의 특정한 가리킴에 주목하십시오:

23절 - 그분의 마음은 영광 받으실 때를 기대하며 기뻐하십니다.

24절 - 그분의 마음은 복된 보상을 기대하며 더욱 기뻐하십니다.

27절 - 그분의 혼은 엄청난 고통을 직감하며 괴로워하십니다.

그분의 마음이 사람의 아들로서 영화롭게 되는 것을 기대하며 기뻐하시는 것을 먼저 생각해보십시오: 23절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을 때가 왔도다.”

 

사람의 아들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 신성한 위격이 죽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큰 신비입니다. 그것은 그분의 성육신을 필요로 했습니다. 히브리서 2:9은 그분이 죽음의 고난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천사들보다 낮추어 사람이 되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고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2:23에서 주님은 인성과 관련하여 그분의 칭호를 “사람의 아들”로 그분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그분은 사람의 대표자로서 사람의 아들이고, 사람의 아들로서 그분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다른 “때들”

우리는 주님께서 23절에서 “때가 왔도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도처에 “때” “내 때” 또는 “그분의 때”라고 언급하신 것은 다양하게 많으며 그것은 각 구절에 문맥에 따라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2:4 – 갈릴리 가나의 혼례식에서 주님은 지상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이것은 그분의 명백한 영광, 그분의 왕국의 영광의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화는 것은 다가올 천년 왕국의 기쁨의 그림이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7:30 - 유대인들은 “이에 그들이 그분을 잡고자 하나 … 그분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 이것은 그분이 죽음에 넘겨지기 위해 사람들에 의해 잡혀갈 때, 단순히 그분이 체포되는 때입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8:20에서 “이는 그분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는 말씀과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요한복음 13:1 – “예수님께서 자기 때가 이르러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야 할 줄 아시고.” 이 구절은 그분이 이 세상을 떠나 하늘에 게신 아버지께 돌아가시기 위해 출발하는 때라는 문맥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 16:32 - “보라, … 때가 오나니 참으로 이제 왔도다.” 또 다시 문맥은 절 안에서 제시되었습니다, “너희가 흩어지되 각각 자기 길로 흩어지고.” 이것은 그분의 제자들이 흩어지고 그분을 홀로 남겨두며 그분을 저버리는 때입니다.

 

요한 17:1 -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버지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의 아들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도록 하옵소서.” 이것은 아버지의 아들로서 그분의 영광을 찬송하는 때입니다(12:23에 사람의 아들로 그분의 영광을 찬송하는 때와 대조적입니다). 이 판단은 17:1에 볼 때 갈보리에서 그분의 죽음이나 죄 또는 사탄에 대한 그분의 대처하심이 아닙니다. 17장에서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통과하는 영 안에서 아버지에게 돌아가실 지점에 있습니다. 이것은 곧 하늘에서 그분의 임박한 높아지심과 아버지의 아들로서 아버지에 의해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때입니다.

 

요한 12:23 – 그러면 12:23에 있는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을 때가 왔도다”라는 주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마지막으로 그분의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맥락에서 고려되어야 하며 그분의 임박한 죽음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24절). 여기에서 보이는 “때”는 십자가에서 그분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로서 그분의 영광을 돌리는 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27절에서 보이는 동일한 때가 될 것입니다, “지금 내 혼이 괴로우니 내가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이때로부터 나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런 까닭으로 이때까지 왔나이다.” 또 다시 이것은 갈보리에 그분의 죽음을 말하지만 27절에서 그분이 속죄를 위한 제물로 견디실 극심한 고통을 강조하는 때입니다.

 

그분의 희생적인 영광의 때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희생은 사람의 아들로서 그분의 영광을 돌리는 때가 될 것입니다. 13장에서 유다가 그분을 배반하러 나갈 때,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도다”(31절). 따라서 갈보리에서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끔찍한 수치와 고통을 당하는 장면에서도, 주님은 순종적으로 죽음에 복종시키시고 그분께서 성취하신 희생의 완전성을 통해 사람의 아들로서 개인적으로 찬송 받으셨다고 믿습니다.

 

갈보리에서 사람의 아들로 그분의 영광을 돌리는 때는 그분의 수치와 고난의 기간에 그분께서 견디셨던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늘에서 아버지의 아들로서 그분의 높여짐과 영광 돌리는 때(17:1)는 그분의 삶의 섬김에 대한 아버지의 응답이며, 그분이 자신의 아버지께 나타내셨던 헌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아들로 오시는 날에 한층 더 영화롭게 될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분은 그분을 거부했던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그분의 천년 왕국을 세우고, 그리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통치하실 것입니다(단 7:13-14, 마 25:31, 요 1:51를 보라). 그러나 명백하게 영광 돌리는 그분의 미래 때는 십자가에서 사람의 아들로서 희생적인 영광 돌리는 그분의 때를 기반으로 합니다. 갈보리에서 그분의 희생으로 우리의 주님께서는 세상을 얻으셨고 또 하늘에서 “누가 그 책을 펴며 그것의 봉인들을 떼기에 합당하냐?”(계 5:2) 묻게 될 질문의 때에, 이 우주의 소유권을 포함해서, 갈보리의 어린양 만이 합당한 분이 될 것입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