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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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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윌리암스

예언의 부분들

이 단락은 각각 세 절씩 다섯 부분으로 구성된 15개 구절을 포함합니다. 그것들은 노래 중에 다섯 연으로 볼 수 있으며 각 연은 세 개의 줄로 되어 있습니다. 각 연에 한 사람씩 말하는 자들 다섯이 있습니다. 유사점은 레위기의 다섯 가지 제물과 모세오경으로 알려져 있는 우리 성경의 처음 다섯 권의 책으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부분

이사야 52:13-15

창세기에서처럼, 우리는 여기에서 나중에 전개할 모든 것의 모판을 발견합니다. 13절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평가를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그분은 “신중하게 다루거나” “현명하게 행동”할 것입니다. 이것은 참된 종으로 세상에 오신 아들입니다. 3중적인 방법으로 우리는 아버지의 승인을 봅니다. 그분은 고귀하고, 찬양과 아주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 말씀들은 그분의 부활, 승천, 그분의 높은 위엄의 오른편에 앉으심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든 정사와 권능과 강력과 … 훨씬 위에 두시고”(엡 1:21). 그것은 그분의 높임의 시작, 계속 및 절정입니다.

 

14절에서는 두 산 사이에 골짜기가 있습니다. 영광의 두 산 사이에 있는 슬픔의 골짜기입니다. 그것은 “심지어 십자가에 죽기 위하여” 영광으로부터 오신 그분에 관해 말하는 것 외에도 영광으로 다시 돌아가심을 말합니다. 15절은 14절과 정반대입니다. 그것은 그분의 고난을 따르는 영광입니다. 나아가서 그분의 삶과 십자가의 상세한 설명은 장 안에서 전개될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개요가 있습니다. 14절과 15절을 시작하는 두 개의 작은 단어 “만큼 – 그렇게”는 대조를 소개합니다: “만큼 … 그렇게 많은 민족들.”

 

누가복음 24장에서 두 명의 낙담한 제자가 “우리는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할 분이시라고 믿었노라”고 말했던 것을 읽습니다. “깜짝 놀라는” 소수의 신실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으로 떠나가셨던 그들의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갈보리의 수난 때문에, 단지 많은 개인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많은 열방들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열방들과 왕들은 아직 갈보리 수난의 사람이 만주의 주와 만왕의 왕인 것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모든 무릎이 꿇을 것이며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이 창세기 부분에는 일찍이 그리스도의 그림이었던 또 다른 사람을 상기시키는 것이 있습니다. 요셉은 그의 아버지 야곱에게 참된 종이었습니다. 그는 채색 옷에 의해 나타낸 것과 같이 그의 아버지에게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 헤브론에서 나갔습니다. 시기와 미움으로 그는 굴욕을 당하고 그의 형제들에 의해 팔렸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구덩이와 감옥을 뒤로하고 요셉은 이집트에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는 “세상의 구원자”였습니다. 그 기근의 때에 주변 민족들은 강제로 이집트와 요셉에게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형제들의 깜짝 놀람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거절했었던 사람이 지금 그 앞에 절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의 입은 막혔습니다(창세기 45:3). 요셉은 슬픔과 고난의 길을 통해 그의 아버지의 집의 사랑으로부터 이집트의 높은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우리의 주 예수님은 갈보리의 고난을 위해 영광의 궁전을 떠나셨지만 지금 그분은 “높은 위엄의 오른편에” 계십니다(히 1:3). 그분에 관해서도 “하나님은 그 일이 선이 되도록 바꾸셨다”라고 또한 말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부분

이사야 53:1-3

1-3절은 다른 장면으로 바뀝니다. 여기에서는 “슬픔의 사람이요…멸시를 당하고 거부되었으며”처럼 그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2절 전반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건조하고, 메마른, 빈 영적인 광야에서 여호와의 앞에서 “연한 초목과 뿌리 같은” 그분을 봅니다. 모든 주변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영적으로 죽은, “회칠한 무덤들” 이었습니다. 이사야는 그분을 “이새의 뿌리”로 보았고 요한은 “다윗의 뿌리”로 그분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여기 세상에서 걸으셨을 때 왕좌에 다윗의 자손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벨론에 의한 오랜 포로 이후에 다윗의 자손이   없었습니다. 유대 왕은 헤롯대왕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에돔인(이두메)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아랍인이었습니다. 그는 에서의 자손이었으며 다윗의 자손이 아닙니다. 헤롯 왕은 기원전 40년에 마르크스 안토니오에 의해 힘을 얻었고 로마 원로원의 결의에 의해서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진정한 메시아가 영광에서 돌아올 때까지 왕좌에는 다윗의 자손은 없을 것입니다. 참된 다윗의 자손은 어느 날 심판의 인을 떼실 것이고 그분은 어느 날 왕좌를 취하실 것입니다.

 

2절 하반에는 이스라엘 앞에서 “모양도 없고 우아함도 없으며 ... 아름다움이 없는” 그분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그분의 자연적인 외모가 반영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그분을 평가를 반영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기록했습니다. 민족의 지도자들은 이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그들의 약속된 메시아 다윗의 자손 왕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구주의 필요성을 보지 못했고 또한 그분을 주권자로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인 모세를 봅니다. 그는 역시 하나님의 종이었고 또한 그들의 구원자였습니다. 그는 시나이 사막의 공허함을 통해 이집트의 슬픔과 종살이로부터 그들을 인도하여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그가 죽임을 당하기 직전에 당시의 지도자들에게 모세를 향한 이전의 태도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누가 너를 치리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을 오랫동안 거절한 기록이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9장의 비유에서 자신을 향한 이스라엘의 태도를 묘사하셨습니다. 그들의 말은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를 통치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나이다”였습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