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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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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14. 10:35 횃불/1997년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2)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8:5)

 

집사

어떤 교회에서는 집사란 직분이 성직자(minister)를 돕는 평신도들의 부류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적으로 볼 때 진정한 성직자라면 다름 아닌 집사(deacon)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는 자입니다. 우리 주님은 누가복음 22:27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여기서 섬기는 자란 문자 그대로 집사의 일을 감당하는 자란 뜻입니다. 로마서 15:8은 주님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minister 혹은 deacon)가 되셨다라고 증거합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들이나 관원들도 섬기는 자로 나타납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dencon)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13:4). 장로와 감독들을 임명했던 디모데도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일꾼(deacon)으로 소개합니다(딤전 4:6). 집사의 직분에 관한 성경적 개념은 주님을 위해 섬기는 가능한 한 모든 영역을 포괄합니다. 스데반과 빌립은 구제와 공궤를 감당하는 집사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역자들이었습니다( 78). 바울과 아볼로는 사역자라 불리웁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minister 혹은 deacon)들이니라”(고전 3:5).

자매들 역시 집사의 직분을 감당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8:3). 뵈뵈는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deaconess)으로 소개됩니다. 반면에 여자들은 공적인 섬김이나 증거사역의 위치를 취해서는 안된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딤전 2:12). 하지만 여자들에게도 광범위한 섬김의 영역이 주어져 있습니다. ‘도르가는 속옷과 겉옷을 손수 만들어 과부들을 섬겼습니다( 9:39).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녀의 집을 개방하여 기도 모임을 도왔습니다. 그 결과 천사를 통하여 감옥에서 놓임을 받은 베드로가 도망하여 그녀의 집을 찾아옴으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12:717). 자주 장사 루디아는 하나님께로 개종한 후 바울과 실라를 그녀의 집에 초대하여 섬김으로 말미암아 빌립보 성에 교회가 세워지는 계기가 됩니다( 16:14,15, 1:5). 브리스길라는 그녀의 남편과 함께 집사 직분을 수행했으며 또한 아볼로를 집으로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가르쳤습니다. 당시 아볼로는 구변이 좋고 성경에 능하였으나 요한의 세례만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레데 섬에서 디도는 나이든 자매들에게 권고합니다.  늙은 여자로는 이와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참소치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2:35). 이와같이 성경의 가르침에 미루어 경건한 여자들도 그들의 정해진 위치와 영역내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동역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

신약을 통하여 믿는 자들의 제사장직에 관하여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출애굽기(19:5,6)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는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하지만 백성들의 범죄와 불신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약속된 축복을 모세의 죽음과 함께 잃어버린 바 됩니다.

주님의 죽으심으로부터 그분이 다시 영광 중에 오시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양이나 생축의 희생에 근거하지 않은 새로운 제사장직의 규율과 질서를 정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0:11,12가 잘 말해 주듯이 예전 것은 모형으로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온전하고 흠없는 제물되심을 나타냅니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만족을 얻으신 하나님과 보좌에 좌정하신 대제사장 및 찢어진 휘장을 대하면서 우리는 지성소로 나아갈 권리를 지닌 자들임을 압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4,5).

이스라엘 열조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God Almighty)으로 소개합니다. 또한 율법 아래 있는 이스라엘 민족들을 향하여는 여호와’(Jehouah)로 계시합니다. 그렇지만 이제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을 통하여 지성소로 나아가는 성도들은 그분을 우리의 아버지’(Our Father)라고 부릅니다. 참된 경배자들은 이제 신령과 진정으로 아버지께 예배드립니다( 4:23),

이런 제사직의 섬김 가운데로 믿는 자들은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도록 인도되며( 12:1) 또한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3:15)라고 기록된 말씀을 준행합니다.

사람에 대하여는, 주님께서도 그러하셨듯이 믿는 자들도 서로를 섬깁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13:16). 우리는 또한 물질을 드림으로 주님의 일을 도울 수 있는 측량하지 못할 특권을 지닙니다. 이런 제사직의 섬김을 가리켜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4:18). 이는 그리스도의 제물되심에 관한 에베소서 5:2 말씀의 가르침과 동일합니다. 우리는 이 제물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제사직의 섬김을 얼마나 귀히 여기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만찬

매 주일의 첫 날 떡을 떼기 위해 성도들이 함께 모이는 일에 대해 숙고해 봅시다. 만찬 예배는 유월절 이후 죽음을 목전에 두신 주님에 의해 제정됩니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6:2628). 이런 주님의 요구에 부응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은 한 주간의 첫 날에 모이는 일이 관례였습니다( 2:42, 20:7, 고전 11:2326)

성도들의 모임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상징어로 몸이란 단어를 들 수 있는데 이는 많은 지체들의 연합을 나타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7). 본 성경 말씀은 일인 중심의 성직이나 섬김 체제에 관한 생각을 버리게 합니다. 독주에 의한 분리 대신에 다양함 가운데 연합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주의 상과, 여기에 참예하기 위한 도덕적 요건에 대하여 접합니다. “너희가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21). ‘주의 상 11장에서 주의 만찬으로 표현되며 이 예식을 거행하기 전 자기 성찰이 요구됩니다. 그리고 13장에서는 위대한 사람의 지배와 능력이 분출됩니다. 마지막으로 14장은 26절부터 40절까지 13회에 걸쳐 ····하라 또는 할지니라는 계명의 형태로 은사의 사용과 절제에 관한 교훈이 주어 집니다.

 

침례

주님이 부활하신 후 그의 제자들에게 또 한가지의 규율을 명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침례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8:19).

만찬이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 간에 친교를 나타낸다면 믿는 자들에게 베푸는 침례는 주님과의 연합을 나타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6:3,4). 저 상징적 무덤으로부터 벗어나 이제는 믿는 자들이 의와 거룩함에 이르는 지체들로 드려지도록 권고받습니다. 전에는 죄의 종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와 동일한 해방(벗어남)에 관한 진리가 골로새서 2장에서도 발견되는데 여기서는 오직 교리적 내용과 관련, 잘못된 철학과 유대주의 및 천사숭배에 관하여 논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20), 그렇다면 또한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12)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에서 믿는 자들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4:46).

여기서 침례는 그리스도께서 구주되심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성도들의 하나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하나임을 기억합니다.

당신의 이름을 사랑하는 모든 성도와 함께

보좌에 앉으신 당신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소망, 우리의 구주이시여.”

 

주님이 내리신 명령대로 침례는 영혼의 구원을 받은 자에게 베풀어지며 모든 거듭난 자들의 특권인 주의 만찬 예식의 선행절차입니다. 사도의 가르침과 교제 안에 견고히 머무릅시다( 2:41,42, 28:19,20). (계속)

 

(1997 5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