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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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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27. 19:43 횃불/1997년

말씀의 거울에 비쳐본 사역자상(3)

이 춘 원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주님의 선한 일꾼이 물질을 사랑하게 되면 탐욕에 이르게 되고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빙자하게 되는 위선에 빠지게 됩니다. 복음적인 전도인은 우선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빈부 귀천에서 초월하는 믿음의 자세를 끝까지 견지해야 합니다. 장로 내지 감독의 직분을 수임받은 자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할 것이며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섬길 것입니다(벧전 5:2).

탐욕은 세상에의 길의 첩경이요 침륜에 빠지는 함정입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며 탐욕은 세상을 사랑하는 간음입니다. 탐욕으로 인하여 불신자들은 지옥의 불길 속에서 타고 있는 붉은 맨션을 예약해 놓고 있고, 육신적인 신자들은 믿음을 버리고 세상 근심과 시험과 올무 속에 걸려 허우적거리며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듯이 더럽고 비굴한 구덩이에 빠져 있으며, 어떤 사역자들은 이 물질적인 욕심과 성적인 순간의 쾌락을 물리치지 못하고 포로가 되어 중도에서 세상과 교파로 도망간 서글픈 모습도 있습니다

남을 인도하고 가르치고 다스리는 일꾼들은 가난하게 살고자 하고, 없는 것을 편케 생각하고, 현재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도자의 자세를 잃지 말 것입니다. 청빈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고결하며, 빈 그릇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하늘의 은사를 족히 받는지요!

깨끗한 빈 그릇이 사역자의 집에 없기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에 들어갑니다. 가난한 집에는 도둑맞을 것이 없고 밤잠을 편히 잡니다. 가난한 자에게 소망이 있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며, 가난한 자의 심령에 주님께서 신령한 선물을 후히 주십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의 뜻대로 가난한 것은 큰 복입니다. 주님 안에서 가난과 없는 것을 예찬합니다. 할렐루야!

물론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궁핍한 것이 옳고 선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탐심과 탐욕과 그 범죄로 인한 실족과 비극에 비춰볼 때 죄 짓지 않고, 악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지 않고, 있는 바를 지족하게 여기고, 경건하게 사는 것이 큰 유익이고 기쁨이라는 뜻에서입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인들이 자기의 사사로운 개인 문제와 가정 문제로 인한 물질적인 시험과 올무에 걸려 쓰러지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핑계대거나 이유를 찾을 것 없이 이것은 그 일꾼 자신의 잘못입니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소명 의식이 약화되고, 주님께 대한 신뢰가 부족하고, 기도 생활의 미약과 근로하지 않은 결과일 것입니다.

사역자가 주님을 섬기는 본업 이외에 가정의 경제적인 문제로 다른 세상의 부을 갖거나 안갖거나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일꾼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있는 것이며 본인의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좌우간에 일단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경기장에 나아간 일꾼들은 말씀대로 최후에 상 주실 주님을 바라보고 앞으로 달려가야 마땅합니다. 일단 확실한 소명을 받고 직분을 맡은 이상 이것을 임의로 버리면 안됩니다.

확신을 가지고, 사역의 길에서 인내심을 잃지 않고, 충성스럽게, 겸손히 섬길 때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의 종들에게 모든 의식주와 자녀들의 모든 삶의 문제와 필요성까지도 세밀히 도와주시고 공급하십니다. 들의 꽃 한송이와 공중의 새 한마리도 모두 천부께서 기르시는데 하나님의 영과 생명을 부여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당신이 직접 불러 쓰시는 사랑하는 자녀된 일꾼들을 어찌 보살피지 아니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복음을 위하여 살고, 교회를 보양하는 종들을 하나님은 항상 지켜주시고 그들의 필요성을 때마다 적절히 공급해 주십니다.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시듯이 모든 자녀들과 일꾼들을 항상 눈동자처럼 보호하시고 지키시며 모든 삶의 필요성을 채워주십니다. 의인이 걸식하거나, 자녀가 궁핍으로 멸망하거나, 일꾼이 가난으로 인해 버림을 받는 일은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항상 어디서나 그의 양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언약과 믿음은 생명나무입니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전적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삶을 온전히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모든 의식주와 자녀 교육 문제와 교회의 신령상 제반 문제를 모두 주님께 의탁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항상 깨끗한 심령과 평안을 누리면서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공급하시는대로 사는 자족하는 삶의 자세가 고귀합니다. 보배로운 흰 돌과 흰 옷!

사역자는 금전 문제에 깨끗하고, 사랑의 빛 이외에는 빚지지 않고, 삯을 위한 발람의 길로 가지 않고, 재정적인 문제는 주님께 맡기고, 열성과 경건이 이익의 재료가 되지 않고, 받기보다 주는 생활에 힘쓰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은 위대하신 사역을 지상에서 수행하셨는데,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고 다니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전혀 은과 금을 가지고 다니지 아니하고 입에서 나오는 복음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파하고 그 능력으로 병자를 고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무의 은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고 손으로 일하여 자신과 동행들의 쓰는 것을 공급하며 남을 돕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자기의 필요보다 동료들과 가난한 성도들과 병 중에 있는 사람들과 기근과 여러 재난으로 고통 중에 있는 여러 지역 모임들의 필요성을 먼저 인식하고 이를 위하여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

사역의 성패(成敗)는 자기와의 싸움에 좌우됩니다. 자기를 이기면 사역에는 승리합니다. 특히 자기의 정욕, 이기심, 탐심에서 벗어날 때 남을 섬기는 사역의 길은 평강으로 기쁨을 누리고 별처럼 빛을 냅니다. 물욕에서 떠날 때 세상 사랑에서 떠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욕심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얼마만큼 자기를 절제하고 남을 위하여 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목적과 가치가 주어집니다.  물질은 사역의 시금석입니다. 탐심으로 인하여 시험을 당하고 그 마귀의 유혹으로 실족한 형제들이 얼마나 많은고! , 일만 악의 뿌리여 ····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가정은 모든 사회의 기본입니다. 가정 생활이 선하고 바르면 사회적인 모든 생활이 빛을 내고 질서가 잡히고 일치 융합이 되고 안녕과 평화가 깃든 살기 좋은 이상 국가를 이를 수 있습니다. 필자가 어느 회사 사장실에 들어가 보니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명구가 정면에 크게 걸려 있었습니다. 어느 가정에 가보면 가화 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가훈이 붙어 있는 집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자기 자신과 가정을 잘 돌보면 그 사회나 국가가 잘 되고 만사가 잘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량자, 깡패, 불효자, 범법자, 사기꾼, 노름꾼, 축첩자, 이혼자, 파괴자, 포악자들이 모든 사회에 지도자들로 나타날 때 나라는 제대로 운영이 될 수 없고 종국에는 파멸이 오고 맙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교회를 인도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고서야 어찌 모임을 돌볼 수가 있으리요.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들을 주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시키며 저들이 가정에서부터 깍듯이 웃어른들을 순종하는 것을 배우게 할 때 사회에 나아가서도 모범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사역자가 되고 교회의 인도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의 지도자보다 더 중요하고 위대한 일입니다. 이 막중한 사명과 고귀한 직분은 하늘로부터 주어진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사역자의 가정은 하늘의 거울에 반사된 지상에 있는 작은 교회로 선히 드러나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 깊고 뜨거운 사랑이 넘치고, 자녀들이 부모님께 순복하고 효도하며, 형제들끼리 서로 의리 있고 화목한 사역자의 가정이 교회와 이웃 가정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경건한 가정, 본이 되는 가정, 믿음의 가정, 화목한 가정, 작은 교회가 이루어진 가정이 바로 사역자의 가정입니다.

사역자의 가정에서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갖고 찬송과 감사와 기도가 끊이지 않고 이웃에게 사랑의 빛이 비칠 때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에 유익이 됩니다.

그와는 반대로 믿는 가정에서 매일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불효한 자식들의 패륜의 방종하는 작태가 보이며, 부부 사이에 계속 불화를 연출하고 있다면 결국 복음이 막히게 되고 교회에 덕과 유익을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자녀들은 내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르도록 맡기신 생명입니다 그 생명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생명 안에서 그들이 구원을 받아 영생에 이르도록 가르쳐 인도하는 것은 부모의 마땅한 책임입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고 듣고 상고하도록 가르치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지식을 넣어주고, 인격이 그리스도를 닮도록 함양시켜 주고, 그들의 삶이 선하고 바르고 이롭도록 교육시켜 주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성장하여 그분의 뜻대로 선히 쓰임받는 일꾼이 되도록 양육시켜 주는 것이 부모의 신령한 책임입니다(딤후 3:1417).

자녀들이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할 수 있도록 믿음과 말씀 안에서 영적인 양육을 시키고, 자녀들을 육신적으로 감정이 상해 삐뚜러지게 만들지 말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교양있게 자라가고 주의 진리의 말씀 안에서 훈계하고, 가르쳐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책임입니다( 6:14).

특히 사역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자녀들은 잘못하면 신앙의 불감증에 걸리기 쉽고 신앙생활 내지 교회생활에 염증을 느껴 세상으로 타락하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부모의 간구와 소망과 기대를 송두리채 무너뜨리는 비극입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제사장 엘리와 저주받은 자식들의 경우에서 보듯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불량자로 자랐고,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더 귀히 여겨 여호와께 드린 제물과 예물을 저들이 먼저 가져다 먹었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거슬려 음탕하게 악행을 저질렀고, 엘리가 너무나 늙고 비대한 연고로 영성이 어두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삼상 2:12,29, 4:18).

필자가 50여년간 뼈저리게 깊이 깨닫게 된 것은(내가 종교가의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고 또 지금은 그런 환경에서 네 자녀를 기르고 있는 경험에 비쳐볼 때) 사역자의 가정에서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믿음을 가져라, 성경을 읽어라, 반드시 집회소에 가라···· 이런 식으로 명령하고 강요하기 보다는 반항하기 쉬운 저들에게 깊은 이해와 관용 가운데서 사랑의 대화를 자주 나누고 부모가 인격적인 본을 자식들에게 보여줘 저들이 내적으로 감동하고 감화를 받아 기쁨으로 자원하여 주님을 믿고 따라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필자는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과 자녀들과 아내된 자매를 영육 간에 잘 가르쳐 양육하고 주님과 같은 사랑으로 잘 인도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정말 부족하고 연약한 점이 너무 많음을 생각할 때 주님을 일선에 나서서 섬기는 일꾼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두렵고 떨립니다. 때로는 어디론가 숨고 싶고 요나처럼 도망가고 싶은 심정도 때로는 있습니다. 자신은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러나 나의 나된 것은 자의적인 행위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주님의 은혜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믿음으로 된 것이고, 또 주님께서 은사로 주신 이 직분을 마음대로 버리고 떠난다면 사단에게 지게 되는 것이며 자신이 세상으로, 교파로, 육신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 염려되어, 너무나 자격 미달이 되는 것이 많지만 조용히 주님만을 우러러 보며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새로 구원을 받은 초신자는 감독이나 집사의 직분을 맡을 수 없습니다. 갓 구원받은 이들은 첫 열심이 있고 순수함이있지만 그렇다고 금방 교회의 직분을 맡기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이는 그가 기독교 진리를 잘 알지 못할 뿐더러 온갖 시련과 그리스도의 고난을 실제적인 삶 속에서 경험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의 깊이를 잘 모르고 경솔하게 범사에 임하고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또 자신도 쉽게 믿음에서 떠나거나 아주 교만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어리고 무지한 사람은 장로가 될 수 없으며, 복음 사역의 길에 나가기가 어렵고, 모임 안에서 성도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목자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지식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기 쉽듯이 무지한 사람 역시 교만의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천사가 교만으로 인하여 타락하고 정죄받아 사단이 된 것처럼 성도가 교만해지면 사단이 그랬듯이 자기가 첫째고 가장 높은 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기 쉽고 위에서 거만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급히 말하고, 속단하고, 고집을 부리고, 자기 뜻만 옳은 것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마귀는 원래가 비방자이고 정죄자이며 파괴자인데 갓 믿는 자가 교만의 죄에 빠지면 남을 비방하고 정죄하기 쉽고 믿음에서 떠나 교회를 어지럽게 만드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초신자들은 세찬 풍우와 엄동설한을 오랫동안 견디어온 확고한 믿음의 뿌리가 없습니다.

특히 모임을 새로 시작했을 때 같이 일할 동역자들이 심히 적음으로 누구나 구원받고 돌아오면 모임을 같이 섬겨가고 때로는 그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는 실수를 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식으로 몇 년이 지나가면 그 초신자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분명한 소명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그 지역 모임에서 장로처럼 혹은 집사처럼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장로의 은사와 직임이 아닌 사람들이 모임을 섬겨갈 때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어기게 되고 진리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게 되며 교회의 질서와 영적인 축복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 사역자들이 반석 위에 주님의 몸되신 교회를 시작할 때에는 심히 조심해야 하고(고전 3:10) 말씀의 기준에 적합한 자격을 갖추었는가를 살펴보고(딤전 3:115, 1:59) 만일 부족한 일이 보이면 바로잡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책망할 것이 없을 때(딤전 3:2,10, 1:6) 그 일을 하게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사도들이, 은혜시대 마지막 때에는 복음의 사역자들이 각 지역에 나아가 그리스도의 구원의 도리를 전하고 가르쳐 성령님의 인도하심대로 각처에 모임들을 시작하고 그 곳에 장로들을 세우는 중요한 일을 합니다.  그런데 복음의 사역자들이 장로를 그 지역에 세운다는 것은 자기 뜻대로가 아니고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위하여 진심으로 섬기고 수고하고 가르치는 모범적인 장로 형제들을 세우시고 보여주실 때에 그 지역 모임의 사역자들과 온 교회가 그것을 알아 인정하고 따라가고 존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20:28, 살전 4:12,13).

그리고 집사를 세우는 경우도 말씀의 기준에 부합된 일꾼들이 보여질 때 먼저 그 사람을 시험하여 보고 그후에 책망 할 것이 없을 때 장로 형제들이 온 교회 앞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직분을 하게 할 것입니다(딤전 3:10).

말씀대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모든 은사와 직임이 주어지고 이행되는 모임이 신령한 주님의 교회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뜻대로 모든 일이 갖추어진 모임은 진리의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결여된 육신적인 교회입니다. 사람의 방법대로 이루어진 것이 교파요 종교입니다.  진리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없는 종교 집단 속에는 사람이 만든 조직과 전통, 유전과 형식, 사상과 철학, 자기 자랑과 선전, 율법과 교만이 가득합니다. 마귀를 정죄하는 정죄가 그곳에 넘쳤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새로 입교한 자들이나, 교파에서 돌아온 자들이나, 인간적인 지식과 학벌과 물질과 명예있는 자들을 금방 쉽게 세워 장로의 일을 하게 할 때 마귀의 유혹을 받아 교만해져서 신약교회의 진리와 질서를 무시하고 사람의 방법으로 모임을 운영하게 되어 결국에는 교파를 만드는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복음은 불신 외인들에게 전파되는 메시지이며, 교회는 불신 세상에 생명의 빛을 비치는 등불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잘못하면 주관적이고 일방 통행식이며 독선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있는데 이는 기독교만이 절대적이고 완전한 진리와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불신자 특히 다른 종교인들이 기독교인들의 자세에 대마여 오해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그 지역 그 나라에 살고 있는 한, 교만하게 보일 정도로 고자세를 보일 것이 아니라 그 주위에서 쳐다보고 있는 불신자들에게 인격적으로 선량하게 나타나고 도덕적으로 선한 봉사에 보조를 취하고 사회적으로 호평을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중요합니다. 그 지역에서의 녹음 전파와 교회를 이룸에 있어서 요긴한 것입니다.

특히 복음의 사역자들이나 그 지역교회의 장로들이 불신자들에게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게 되면 복음의 문이 막히게 되고 교회 선교에 큰 지장을 초래케 됩니다. 일꾼들에게 선한 증거가 없으면 세상이 비방의 화살을 쏘고 마귀가 여러가지 올무를 놓고 쓰러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가 법을 어기거나 사회 규범을 지키지 않을 때 사정없이 낚아채는 것입니다. 감독은 교회의 인도자요 주님의 사자로서 불신 세계의 지도자들보다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타의 모범이 되고 칭찬과 존경을 받는 위치에까지 서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장로는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밖에서도 어른다워야 하고 신사답게 교양과 예절을 갖추어야 하며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나타나며, 덕성있는 인품과 선한 봉사 정신으로 인하여 칭찬을 듣는 사람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도 교회적으로나 일반 사회적으로나 간에 정말 칭찬을 받는 형제들을 택하여 주님의 일을 봉사케 하였을 때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2:47, 5:13, 6:3, 10:22, 16:2, 22:12).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장로 = 감독 = 목자된 형제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믿고 전하고 가르쳐 행하느냐에 따라서 그 지역 모임의 영적인 성장과 부흥은 좌우됩니다. 양적인 인원수나, 건물이나, 물질이나, 업적이 아니라 일꾼들의 영적인 수준에 따라서 그 지역모임의 영적인 수준이 결정됩니다.

교회는 영존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시는 집입니다. 교회는 우리 주님이 머리가 되시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 머리에 연합된 한 몸이요 각 지체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이시고 진리의 기둥이시며 반석되신 터이십니다. 교회는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고 가르쳐 인도하시는 강단입니다. 교회는 예배 드리는 제단이며 나팔소리가 계속 울리는 복음의 광장이요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가정입니다.  교회는 기도를 드리는 곳이요 성령님의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안식처요, 구도자들의 시은좌요, 죄인들의 도피처입니다.

할렐루야! 교회는 지상에 나타난 하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만세전부터의 비밀의 경륜이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진리의 말씀으로 다 드러난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신약교회는 생명과 진리와 은혜가 충만히 간직되어 있는 보고입니다. - 정말로 경건의 비밀은 놀랍고 위대합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우러러 볼 때 한없는 감탄이 솟구칩니다. 그러나 내 육신을 볼 때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 하고 탄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사역의 기준이나 그 자격은 너무나 높고 경건하고 거룩합니다. 나의 현실은 너무나 미약하고 부족하다 못해 한심스러울 지경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주님의 거룩하신 부르심에 더욱더 합당히 행하기 위하여 날마다 내 몸을 쳐 복종시키면서 믿음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겸손히 담대하게 나아가 엎드립니다.

- 이것은 제 육신이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성령님께 모두를 내어드려 전적으로 의탁합니다. 정말 나 자신은 양심상 내가 이 거룩한 사역의 일을 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뼈저리게 깨닫고 있습니다. 나의 생각과 인격과 생활이 온전치 못하고, 때로는 욕심과 교만과 불순종으로 주님의 채찍을 맞기도 하고, 은혜의 성령님으로 충만치 못하며, 자신의 목숨을 움추리며, 시험과 고뇌 중에 있을 때도 있지만···· 오오, 이런 인간에게 소명을 주시고, 복음 사역의 길에서 외치게 하시고, 또 거룩하신 주님의 교회 안에 거하게 하시며,모임들을 돌보고 치게 하셨으니, 정말 나 자신은 할 말을 잊고 오직 주님만을 우러러 봅니다. 할렐루야!

나를 부르시고 동역자들을 세우신 우리 주님께서는 일향 미쁘셔서 그 영원한 약속대로 저희들이 사역의 길을 마치고 본향에 이를 때까지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시고 겸손케 하시며 또한 온전히 이루실 줄을 확신합니다. 아멘!

 

(1997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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