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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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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27. 19:59 횃불/1997년

이사야서에 나타난 그리스도

 

28장 하나님의 은혜의 변형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5512,13).

 

하나님의 풍성한 용서의 부요함에 대해 아무리 상상력이 적은 자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적으로 여기에 진술되어 있다. 포로 생활에서 용서받았고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그들의 불의가 사하여졌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들의 조상의 고토를 회복해야만 한다.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그들이 회복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귀환은 하나의 긴 승리의 행진이 될 것이었다. 자연도 그 귀환에 대해 즐거이 외칠 것이며 산들과 작은 산들이 노래하며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인구의 감소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는 그 토양이 척박해진 것이었다. 거대한 대지가 황무하게 버려졌다. 경사지에 개간된 계단식 경작지는 돌봄을 받지 못해 돌 무더기가 되었다. 가득찬 옥수수가 바람결에 부딪히고 탐스런 열매들이 가·을 햇살에 무르익었던 그곳이 황무지가 되어 슬픈 예언을 이룬 결과가 되었다.

좋은 밭을 위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를 위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형극과 찔레가 내 백성의 땅에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32:12,13).

그러나 이제 그러한 상황이 역전될 것이다. 문자적으로 그리고 비유적으로 이전 죄와 타락에 대한 결과와 정반대의 일이 성취될 것이다.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영영한 표징! 이 예언 옥에 감춰져 있는 영원한 관심과 중요성이 그 신성한 교훈 속에 나타나 있다. 그것을 다른 성경의 빛 속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3:17,18).

그 군병들이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27:29)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고후 12:7,8)

우리의 생각은 삶의 가시와 질려로 인한 고통이 마침내 은혜로 화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1. 인생의 가시들과 질려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심은 것을 거둔다. 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무언가를 심고 때로 우리의 태만으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 우리는 우리의 기회들을 사용하는데 실패한다. 그러므로 그 수확물들이 과거의 염려들을 덮어버리고, 엉겅퀴가 구름 속에 자라나 있어 미래를 위협한다.

좋지 못한 건강이 그 중에 하나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통해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생애 가운데 거의 병을 모르고 건강하게 지내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생애 초기에 질병이 찾아와 그들의 힘을 갉아먹고 서서히 인생의 성채를 위협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조상들의 무절제한 삶의 결과로 심은 그 쓴 열매의 수확을 거두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소화불량, , 척수를 통해 서서히 진행되는 마비현상, 신경쇠약과 침체 등 이러한 많은 질병들이 우리 육체가 물려받은 유전이다. 그것들은 실로 가시들이다. 바울의 가시는 아마도 안염(ophthalmia)이었을 것이다.

나쁜 자녀들은 또 다른 가시이다. 다윗은 그의 가정이 하나님과 밤께 온전히 거하지 못했을 때, 바로 그러한 의미를 상기했을 것이다. 마치 가시처럼 불경건한 자녀들이 생겨났다.

그의 가정에서 압살롬과 아도니야 등이 바로 그러한 가시일 것이다. 다윗은 완고하고 방탕하며 낭비벽이 심한 자녀들로 인해 쓰라림을 져는 많은 부모들의 경험을 묘사했다 딸들이 불행한 결혼을 하고 아들들이 그들의 정열을 함부로 발산할 때, 그것은 가장 요한 가정들일지라도 불행케 할 수 있는 가시와 질려들이다.

악으로 향하는 강한 성향이나 경향성도 가시로 분류될 수 있다. 시기 혹은 질투하는 경향성, 칭찬과 아첨을 과도히 사랑하는 것, 불순, 방종, 탐욕에 이끌리는 습관, 성미 급하고 냉담한 성질, 그리고 동료 제자들의 모든 확신을 무디게 하고 무반응으로 대함으로 의심에 빠지게 하는 이 모든 것이 옥토를 잡초로 황폐케 하는 가시와 질려들이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마음이 맞지 않는 동료들과 강제로 함께해야 하는 것 또한 일종의 가시이다. 우리는 밤낮으로 하나님을 사랑치 않고 사람을 아무렇게 대하는 이들과 쓰라린 멍에를 져야만 한다. 원수가 날마다 위협하고 검이 뼈를 찌를 때 그리고 비난이 육체를 쇠잔케 하며, 우리 삶의 길목에 여러 함정이 놓여 있을 때,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일종의 잔인한 가시임을 알게 된다. 숙곳 사람들이 기드온의 손에 징계를 받았던 것이 바로 그에 상응한 일이다. “기드온이 그 성읍 장로들을 잡고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8:16)

뒤엉킨 숲 속에 찌르는 가시 울타리처럼 어려움들은 우리의 전진을 방해하는 일종의 가시로 취급될 수 있다. 상업에 있어서 경쟁은 사업하는 많은 사람의 길목에 놓인 일종의 가시이다. 당황과 걱정, 성가심 그리고 짜증 등은 거의 우리를 견딜 수 없게 한다 그로 인해 부드러운 육체는 비참하게 찢기고 심장은 비밀히 피를 쏟고 영혼 속에 희망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선하시고 지혜로우신 하나님이 어찌하여 그러한 일들을 허용하시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각자의 인생은 그같은 것을 경험한다. 사단의 사자들은 그같은 가시들을 우리 육체에서 제거해 주고 영혼이 자유케 되도록 주님께 구하도록 여러 번 우리는 재촉한다. 또한 우리는 만일 그로부터 자유케 되면 우리가 더 고상하고 유용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논쟁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다. 나는 그 가시를 없애 줄 수 없다. 그것이 도리어 나를 충성되이 섬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은혜를 주겠다라고 말씀하신다.

 

2. 가시들을 통한 충성

그리스도의 이마에 있었던 그 저주의 표시가 충성의 징표가 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 교훈은 명백하다. 즉 그분은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셨으며 억누르는 상황을 통해 충성을 산출하는 비밀을 발견하셨다.

땅에 내려진 태고의 저주의 말씀 속에 이에 대한 희미한 암시가 있다. “땅은 너로 인하여(너를 위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3:17,18). 이 말씀은 물질 세계에 주어진 이러한 고통 속에 숨은 의도가 있다는 것 외에 무엇을 뜻하겠는가? 이 구절에서 땅이 의미하는 것은 그리 분명하지 않다. 아담의 죄는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세계를 어둡게 하는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부터 아마도 그들은 그들의 성장에 호감이 되지 못하는 그런 조건으로부터 더 낫고 생산적인 그들의 씨를 멀리 퍼뜨리게 되었을 것이다. 어떠한 비참한 상황에 떨어진다 해도 하나님의 목적은 전체적으로 자비한 것임에 틀림없다. 땅이 너를 위하여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땅의 그 같은 완고함과 경향성이 마침내 가장 좋은 최고의 축복을 그대에게 가져올 것을 의미한다.

분명히 이같은 사실이 입증되어 왔다. 인간은 어디에서 그의 가장 고상한 발전을 성취했는가? 풍성한 수확을 얻기 위해 경작이 가장 필요한 땅이 어디인가? 만일 자연이 인간의 필요와 위안에 필요한 것을 그저 쉽게 풍성히 공급하기만 하면 인간은 무기력하고 게으르며 관능과 안일무사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토양이 척박하고 기후가 좋지 않고 생존키 어렵고 가시가 존재하며 정원 혹은 벌판을 침입하는 위협이 있을 때, 그것은 척박한 땅에서 곡식을 획득하기 위해 인간은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그의 영광스러운 두뇌의 힘을 온전히 사용 개발하게 될 것이다. 갈기 힘들고 인색한 자연을 통해, 그 자연과의 어둡고 긴 인간의 투쟁을 통해 그리고 수고와 슬픔을 초래하는 땅을 통해 그 비굴하고 죄많고 못된 성격의 야곱들을 이스라엘들이 되게 하며 하나님의 왕자들로 관씌우게 한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이마에 씌워진 가시 면류관 속에 담긴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것은 인간이 생애가운데 오직 재앙과 손실을 예고하는 이러한 요소들을 만나고 견디고 극복함을 통해서만 그의 참된 충성됨을 성취할 수 있음을 가르친다. 엄격한 훈련 속에서 그대를 복종케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전체적으로 자비로운 것이다. 하나님은 그대에게 그러한 가시들 가운데 처하도록 하심으로 황무지를 낙원으로 바꿀 기회를 그대에게 제공하신다. 그러한 변화가운데 행함으로 그대는 갑자기 한층 고상해지고 변모된 그대 자신을 어느 날 발견케 될 것이다. 그대 이가의 가시들은 생겨서 다스려지고 정복되어 마침내 그대에게 씌워진 하나의 면류관이 되게 되며 그대는 그대의 약함 속에서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이는 슬픔과 고통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얼마나 놀라운 가능성인가!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삶을 다루시고자 하나님이 그들에게 허락하신 고통스런 악들에 애해 그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조급하게 반항하는지 모른다. 바울처럼 그들은 항상 그로부터 벗어나기를 간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무나 선하시기에 이러한 눈먼 간구들을 응답해 주시지 않으신다. 그 가시들은 여전히 남아있고 그것들이 그들을 감싼다. 다른 선택의 길이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정하신 것을 우리 자신이 인내하며 굴복함에 따라 우리는 그분의 합당하고 선하신 계획을 깨닫게 되며, 그 가시가 바로 우리의 훈장임을 발견케 된다. 우리는 또한 그것이 우리의 누추하고 어리석은 행위를 벗겨내고 우리의 성품을 온전케 하며, 왕의 신분으로 출생된 것 뿐만 아니라 그같은 자격을 획득하게 하는 과정임을 알게 된다.

 

3. 은혜의 변화들

잣 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고후 12:9)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두운 일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주신다. 우리가 징벌로 생각했던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로 화한다. 멸망시키는 자의 칼이 아니라 수술하는 의사의 칼임을 깨닫는다. 마치 사망을 당하는 것 같은 일이 보다 성숙한 인생을 성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불사르기 위해 위협하던 불이 다만 우리가 행할 바른 길을 비춰주는 불꽃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그분이 그분의 이름을 선포하고 그분의 뜻을 나타내고 그분의 섭리 가운데 우리를 취하시는 동안 산 위에서 하나님 곁에 서 있도록 허락 받는다. 그같은 질병은 제거되지 않으면 치명적이 될 그 해독을 제거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만일 굴복하게 되면 치명적이 될 그 어두운 유혹으로부터 건져지기 위해 그같은 사고 당함은 자녀에게 불가피한 것이었다. 너무나 사치한 삶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녀들에게 임한 그같은 물질적인 손실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 이유를 보이실 때 그 가시들은 화석류로 바뀐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과 손해를 더 많은 은혜를 주실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신다. 어떤 무거운 짐으로 고통 하는 영혼을 도울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그 짐을 제거하거나 혹은 그짐은 감당할만한 힘을 공급해 주는 것이다. 바로 후자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대하시는 방법이다. 만일 우리가 지혜로웠다면, 우리는 그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그 짐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간구할 것이자. , 그렇다면 그 시련은 얼마나 더 귀할 것인가! 얼마나 많은 고통 당하는 자들이 그 고통을 인해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누렸던가! 바로 그와 같은 인식하에서 가시는 무화과 나무로 질려는 화석류로 변화한다.

 

(3) 하나님의 은혜는 실제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 속에 있는 불합리하고 악한 성향을 바꾼다. 부드러움이 온유함으로 겁많음이 온화함으로 충동적인 것이 열심으로 인색함이 검소함으로 빈약함이 관대함으로 잔인함이 다른 이를 위한 관심으로 짜증남이 다른 이를 위한 고려로, 성가심과 열정이 오래 참음으로 바뀌게 된다. 하나님은 개혁주의로 인해 로마 카톨릭을 무너뜨리기보다는 도리어 복음 전도자들로 채우셨다. 마찬가지로 그분은 우리를 그분께로 이끌 때 우리의 자연적인 성품을 파괴시키지는 않는다. 그분은 단지 악을 제거하시고 선을 발전시키신다. 악한 거주자는 새로운 성령님께 자리를 내어 준다. 죄가 사망을 지배하던 곳에서 이제는 은혜가 영생을 다스린다. 열정과 기질의 가시 대신에 무화과 나무가 나며 질려 대신에 화석류가 난다. 그분은 우리 육체에서 돌같은 마음을 제하신다.

 

(4) 남편의 삶에 짐승같은 잔인함 대신 부드러움과 사려깊은 돌봄이 있을 때 그 아내는 얼마나 기뻐하겠는가. 그 아들 어거스틴이 더 이상 정욕의 노예가 아니요 그리스도로 옷입고 굴복되어 올바른 정신을 회복한 그가 예수님의 발 밑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어머니 모니카 여사는 얼마나 기쁨이 가득했겠는가!

한때 식인종의 춤과 사단 숭배에 사로잡혀 있는 지역 사람들이 그들의 야만성을 벗고 문명화되며 그 가운데 기독교가 번창하는 것을 볼 때 그같은 그리스도의 능력은 얼마나 놀라운가.

 

(5) 제자들이 그 사역을 행했을 때 그것은 제해졌다. 위대한 농부인 그분은 섬세하게 그 곡식을 알아보신다. 가시와 질려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가졌지만 그대는 낙심치 말아야 한다. 겸손히 복종함을 통해 제자의 삶 속에 있는 가시와 질려들이 제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때 가시 대신에 무화과가 질려 대신에 화석류가 날 것이다. 그것들은 이미 그 보내어진 목적이 성취되었다.

이러한 빛나는 예언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의 회복 가운데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만일 거룩한 약속에 대한 보다 완벽한 믿음이 있다면, 그들은 더 한층 그 일이 성취됨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빛나는 말씀들은 이스라엘이 그 흩어진 모든 나라에서 고토로 돌아올 그 날에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사도는 우리에게 그들의 회심이 새로운 시대의 시작임을 알려주었다. 그때 피조물은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런 자유에 들어갈 것이다. 그때 산들은 노래하며 나무들은 화음을 맞추어 소리할 것이다. 그 때 지상에서는 오랜 저주가 제거될 것이며 하나님의 일의 커다란 인수의 그 해로운 영향력이 영원히 끝날 것이다. 그 때 지구는 처음 창조된 날처럼 미소를 띠며 노래 부를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여호와의 이름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 영영한 표징이 될 것이다. 또한 모든 악과 자의적인 것을 극복하는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이 우주를 통해 영원히 반복하여 이야기될 것이다. <>

 

(1997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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