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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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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24. 11:44 말씀 안으로/지도력

A. J. 히긴즈

어떤 사람들의 삶은 역사의 무대에서 유성처럼 번쩍이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들은 잠시 동안 독특하게 일어나서 민족, 군대, 또는 위기의 순간에 백성들을 이끌도록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약간 다른 시대나 다른 문화에서 살았다면 아마 명성이나 인정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상황과 비전이 그들을 적정한 순간에 최전선에 서게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다한 후 똑 같이 빠르게 집단 의식과 시간의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사무엘은 그러한 모든 것과는 대조를 이룹니다. 그는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일관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지도력의 힘, 그 내재적 권위는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을 위해 오랜 삶 동안 신실하고 확고한 성실로 그의 삶에서 나온 존경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과거에도 변함없는 그의 일관성

어린 아이 때에 그의 어머니에 손에 이끌려 성소에 데려가졌던(삼상 2장), 그는하루 종일 대중의 바라보는 가득한 시선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앞에 성소에 종사했던 사람들의 비추어 그의 삶에 수반하여 더욱 증가된 시험은 스테레스가 가중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주님의 이름에 큰 불명예를 가져왔습니다. 제사장의 생활로 인해 사람들은 드려야 할 “헌물을 멸시”했습니다(삼상 2:17). 모든 시선은 사무엘을 주시했고, 모든 비평가들은 판단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모든 냉소주의자들은 성소 관할에서 또 다른 레위의 이기적인 섬김의 소식을 전파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현재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관성

그러나 그는 과거를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민족의 무관심과 민족 상황도 똑같이 큰 도전이었습니다. 장로들은 분별력이 부족했고 민족의 영적인 상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지도력은 손상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총체적인 실패였습니다. 어떤 회개도 없이 패배를 알았습니다. 그 해결책은 전장으로 법궤를 가져감으로 성취할 수 있는 약간의 “행운”일 뿐이었습니다. 악한 엘리의 아들들이 법궤를 들고 전장에 나간 것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삼상 4장)? 이스라엘의 군대에게 제공할 감정적 고조만 필요로 했을 것입니다.

 

에벤에셀에서 굴욕적인 패배는 법궤를 빼앗김으로 한층 더 쓰라림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좇아 슬퍼하는 이스라엘의 아무 말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회개 모임을 개최하거나 금식의 날을 지켰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법궤가 일곱 달 후에 그 땅으로 되돌아왔을 때, 이스라엘은 평소와 같이 밀 추수는 한창이고 모두가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교훈을 다시 배우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5만 명의 죽음은 민족이 하나님의 임재가 요구한 것을 교훈 받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할 것입니다(6:19). 법궤를 탈취당했을 때는 단지 3만명이 죽었습니다(4:10). 하나님은 이 큰 학살을 통해 그들에게 그분의 임재의 가치를 깨달아야 할 필요성을 각인시키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좇아 통곡하는” 집단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기까지는 20년이 더 지나야 했습니다(삼상 7:2). 아마도 사무엘의 조용한 섬김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알고자 하는 민족의 갈망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사무엘은 섬김을 계속했습니다. 그의 삶은 많은 사람들이 지루한 일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들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벧엘, 길갈, 미스바, 라마. 순회는 결코 변하지 않았고 사무엘도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신뢰할 수 있고 한결같았던 그는 민족의 인격을 훼손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남은 여생을 생각했다면 민족의 압박이 없는 조용한 지도력을 즐길 수 있을 것이지만 예기치 않은 민족의 요청에 의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를 위해 왕을 세워”(삼상 8:5). 그들의 요구는 신적인 지도력의 거부였으며 또한 사무엘과 그의 지도력에 대한 거부이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많았던 선지자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유감? 비통함? 사무엘은 “주의 귀에 그것들을(그들의 말) 다시 고하매”(21절). 전임자 모세와 마찬가지로 사무엘은 요구된 지도력은 모두가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은혜는 그가 백성들에게 분노하거나 좌절처럼 반응하지 않도록 지켜주었습니다. 그의 태도는 너그러웠고 그의 말에는 깊은 관심과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너희를 위해 기도하기를 쉼으로 내가 결단코 주께 죄를 짓지 아니하며 선하고 옳은 길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니”(삼상 12:23).

 

크고 작은 제반 문제들에서 그의 일관성

그는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서고 그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누군가를 속인 사례가 있었나요? 누군가 그에게 뇌물을 주어서 판단을 흐리게 한 적이 있었나요? 백성들을 희생시켜 자신을 부유하게 했나요? 그는 늙고 머리가 희끗희끗했습니다(삼상 12:2). 그들은 그의 청년시절부터 그를 보았습니다. 평생 동안 대중의 공적인 십자선에 있었던 이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숨겨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뇌물같은 작은 것이었거나 황소와 같은 큰 것이라는 여부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이용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한 올바른 판단에 눈이 멀게 되는 여부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도전은 그는 공정했다는 민족의 인정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평생 동안 그 어떤 것도 그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위해 의롭게 재판했습니다. 그의 개인적인 생활과 행정적인 생활에 관한 문제에서 그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투명성은 그를 상징하는 최고의 칭찬이었습니다.

 

그의 지도력 스타일은 모세나 느헤미야와 매우 달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시에 하나님의 인도자였습니다. 엘리와 장로들에 의한 지도력의 실패한 지도력과 곧 뒤따를 사울의 실패한 지도력과는 대조적으로 사무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을 반영하며, 나라에 안정을 더해주고 또한 다윗 왕을 위해 준비시키는 특성을 구체화했습니다. 모든 지도력의 목표는 바로 이 점, 즉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복종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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