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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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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20. 21:41 말씀 안으로/제물

A.J. 히긴스

번제에 수반되는 의식을 살펴보았으므로 이제 우리와의 관련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림에 의해 우리에게 가르치고 계시다는 것을 유의하십시오: 우리가 “모형"이라고 부르는 것.

 

나의 받아들임

당신이 “최고의 순간”으로 부를 수 있는 그 순간에 헌신적 사랑이 가장 강하고 사랑이 자유롭게 흐르던 때를 발견한 적이 있습니까? 결점이나 실패, 아니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각”에 대해 스스로 자책했습니까? 이것이 사실이 아닌 경우에 당신은 보기 드문 그리스도인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마음, 생각, 혼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것은 가치 있는 목표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얼마나 비참하게 우리가 실패하는지 증명합니다. 우리의 육신에 의해 구부러지고 흠이 나기 때문에 우리의 가장 좋은 것은 너무나 연약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절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우리 스스로 죄책감을 덜기 위해 투쟁을 기독교적 신앙에 넘겨주고 물러섭니까? 왜 계속해서 실패를 생각나게 합니까? 번제는 이것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바로잡습니다.

 

이전 기록에 언급했던 바와 같이 한나가 사무엘을 주님께 드리기 위해 성전에 데려왔을 때, 그녀는 세 마리의 수소를 번제로 드렸습니다(삼상 1:24-28). 그녀는 가장 순수한 동기와 최고의 헌신으로 최선을 다하는 동안 번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번제는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열납되어 ... 속죄가 될 것이라”(레 1:4). 예배자는 제물의 온전한 완전함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분의 사역의 올바른 인식

그 다음에 의식의 세부사항이 희생물의 완전함을 어떻게 나타내는지 주목하십시오. 제물의 일부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제사장이 먼저 그것의 “가죽을 벗기는” 것에 대해 들었습니다. 제사장은 무엇이 “표면” 아래 무엇이 있는지 알기 위하여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최근 읽기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얼마큼 “침노”한 적이 있습니까?

 

희생물들을 구하는 데 드는 비용과 증가하는 획득의 어려워지는 것을 보면 도움이 됩니다. 걸어가서 어린양을 구하는 것 보다 비둘기를 가져오는 것이 더 어려울 것입니다. 한 동물의 무리가 다른 동물보다 열등하다는 어떤 생각은 없습니다. 각각은 드러낼 그리스도의 독특한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송아지에서 볼 수 있는 힘, 어린양에서 볼 수 있는 순종, 염소의 당당한 걸음걸이, 그리고 비둘기에서 보이는 섬세함은 모두 그리스도에게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덕과 아름다움의 총합입니다.

 

머리와 기름은 제단에 함께 놓였습니다. 머리는 우리에게 지성(知性)을 생각나게 합니다. 기름은 기력의 근원입니다(우리는 현재 사회적 조건이 아니고 성경적 용어를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열심이 지식에 의해 통제되는 것을 봅니다(요 2:17). 그분은 항상 아버지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19의 말씀은 놀랍고 가장 강력한 신성의 증거 중 하나입니다. 아버지께서 하지 않으시는 일을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정확하게 동일한 방법으로 그것을 하셨습니다!

 

다리와 내장은 물로 씻었습니다. 그분의 행하심이나 내적 동기와 애정에는 불순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님과의 분리는 없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그의 입의 말과 그의 마음의 묵상이 열납되기를 갈망했습니다(시 19:14). 그분은 내적인 것과 외적으로 일치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의 경우 언제나 그러했습니다. 숨겨진 의도가 없었습니다. 그분의 모든 활동은 완전한 애정과 동기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으셨고(요일 3:5) 또한 그분은 “죄를 짓지 아니하셨습니다”(벧전 2:22).

 

그분이 갈보리의 제단에 다가가셨을 때, 수소 안에서 그분의 능력이 하나님께 주어진 것을 봅니다; 어린양 안에서는 그분의 뜻을 하나님께 복종하고 또 헌신하신 것을 봅니다. 우리가 염소를 생각할 때 그분의 걸음은 흠이 없으셨습니다. 비둘기와 산비둘기는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애정과 섬세함을 우리들에게 상기시킵니다. 특히 요한복음은 아버지께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셨던 분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분은 온전히 헌신된 힘, 전적으로 봉헌된 뜻(생각), 사랑이 가득한 감정(마음), 그리고 예배의 영(성령)으로 오셨습니다. 이 희생물에는 흠이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하나님께 예배자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모두 봉헌하시고 드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자신을 위해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행위가 얼마나 위대한지 그분의 희생으로 인해 얼마나 주목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자각이 없습니다. 지극히 이타적이고 온전히 헌신하신 그분의 희생은 안식의 향기처럼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사랑하는 자 안에서 받아들여졌습니다”(엡 1:6).

 

그분을 위한 흠모

예배 없이는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도덕적인 사람들은 그분의 성품과 그의 가르침을 감탄하며 인정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니고데모처럼 사역을 감탄하고 또 그들이 위대한 예언자라고 여겼던 사람의 말과 같이 바라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신자는 예배합니다.

 

그분을 더 잘 알기 위한 갈망 없이는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분의 인격에 대한 신선한 광채는 마음을 만족시킬뿐만 아니라 아직 누려야 할 바다가 있고 점령되기를 기다리고 광활한 대륙이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합니다.

 

그분처럼 되지 않고는 그분에게 시선을 집중시킬 수 없습니다. 레위기 7:8에 고아를 위한 구절을 상기하십시오. 화목제와 속건제의 규정 속에서, 우리는 예배하는 제사장이 희생물의 가죽을 제단에 남겼다는 것을 배웁니다. 희생물의 아름다움은 그의 것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소명과 함께 우리가 성령님의 사역에 굴복함으로 그분의 도덕적 특징 중의 일부를 우리 안에 재현합니다.

 

제물들을 연구하기 위한 다른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이것들은 그것들 자체로 매력적이고 감동스러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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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