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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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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20. 21:39 말씀 안으로/제물

A. J. 히긴스

속건제는 레위기 5:14부터 6:14을 통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속건제의 율법은 레위기 7:1-7에서 나와 있습니다.

 

그 이유

사람이 범법함을 저지를 수 있었던 어떤 두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죄(5:14-19) 또는 이웃에게 행한 일의 결과(여전히 주를 향하여 죄이지만(6:2)가 있습니다. 따라서 율법의 두 부분, 즉 하나님과 자신의 이웃을 모두 위반한 것입니다.

 

범법에는 “거룩한 것들”에 대한 실패를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주의 계명에 대한 범법함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5:17). 이것은 위임의 죄들뿐만 아니라 빠트린 죄들을 포함할 것입니다.

 

곧바로 속죄제와 속건제 사이의 차이에 관한 질문이 제기됩니다. 죄의 행위에 대한 인식은 각각에 대한 필요성을 촉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속죄제에서는 그것이 내 죄에 대한 인식과 죄 많은 본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속건제에서 강조하는 것은 “그가 끼친 해(害)”(5:16)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속건제는 내 죄의 결과에 대한 제물로서 하나님 앞에서 나와 나의 필요한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특별히 6장에서 볼 것입니다.

 

숫양

속죄제에서 분명한 차이점은 속건제의 경우에 희생물의 등급이 한 가지뿐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것들 또는 그분의 율법에 거슬러 범법함, 또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거슬러 범법한 것이든, 각각의 경우에 숫양을 가져왔습니다. 범법함은 내가 하나님과 사람에게 그것들을 당연히 치러야 할 것을 제공하는데 실패한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범법하고 내가 했어야 할 일을 “넘어갔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표준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숫양은 헌신과 연결됩니다. 우리는 창세기 22장과 출애굽기 29장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속건제로 드려진 모든 숫양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완전히 하나님의 뜻과 즐거움을 행하도록 성별되는 것에서 부족함이 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는 몇 가지 방법으로 자아를 만족시켰고 그 결과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숫양처럼 하나님께 헌신하시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마땅히 치러야 할 것을 드리는데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신 그분은 거룩한 것들 안에서나 인간적인 것들 안에서 죄를 짓지 않으셨습니다.

 

관계

이 제물은 하나님께서 관계에 참으로 관심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그분은 그분 자신과 가지는 관계를 바라시며 우리가 서로 올바른 관계를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죄는 이 모든 것을 손상시키고 올바른 관계를 방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관계를 회복하는 사업을 하십니다. 따라서 그분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부터 시작하십니다. 봉헌의 숫양으로 준비된 희생물은 우리가 하나님께 화해되도록 우리에게 올바른 관계를 위한 방법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시편 69:4의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되돌려주었나이다”라는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주 예수님은 우리 세상에 죄가 들어오는데 관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깨끗하고 복된 관계가 죄라는 끔찍한 실체로 인해 손상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멀리 옮기지” 않으셨지만 그분은 그것을 회복하셨습니다. 그분 덕택에 우리는 “그분의 아들의 죽음에 의해 하나님과 화목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자들 사이의 관계에도 큰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분은 삼위일체 본성 안에서 영원한 관계 안에 거하십니다. 사람은 관계를 즐기도록 지어졌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들어온 우리는 의로움과 사랑에 기초하여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레위기 6장에서 이러한 관계가 깨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부정직, 표리부동, 사기, 속임수 등 형제에 대한 범법은 영적인 관계를 방해합니다. 마태복음 5:23-24; 18:1–35에는 “내 형제를 얻는 것”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투명하고 정직하게 거래해야 깨트려진 것을 바로잡고 교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배상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엡 3:20) 행하십니다. 한편으로, 다섯째 부분을 추가한 것은 죄로 인해 이득을 얻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웃의 잃은 무언가를 발견하고도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발견되었을 경우에 최악의 상황은 그에게 그 물건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에게 있는 동안 계속 그것을 사용했을 것이고, 아마도 그 사람은 당신이 그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다만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섯째 부분을 추가함으로 사람이 범법함에는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을 인식할 것입니다. 그는 죄를 사소하게 여겨서 아마 이익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또한 다섯째 부분의 추가에서 더 중요한 무언가가 초래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은 무죄함을 잃었지만 두번째 “유혹과 타락”을 넘어 우리는 구원받았고 성별되었으며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안전하며 하나님과 가까워진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아담보다 아주 오랜 기간 앞서 있습니다.

 

그러나 범죄했던 사람에게 다섯째 부분은 어떻게 될까요? 그것이 우리의 이웃에 대한 죄의 큰 대가를 상기시켜주는 동시에, 죄를 지은 사람은 단순히 그의 재산을 돌려주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줍니다. 신자들 사이의 올바른 관계의 결과로, 그는 이제 그의 형제를 찾았습니다. 그는 “그의 형제를 얻었고”(마 18:15), 형제를 대하는 열리고, 정직하며 의로운 태도를 통해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용서받은 형제 즉 범법한 형제는 기꺼이 용서하고 관계를 회복하려는 그의 형제에 대해 신선한 감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제물은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인정받는 것(레 1장과 번제)에서부터 형제와의 회복을 누리는 것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습니다. 삶의 모든 측면은 제단에 있던 것에 의해 응답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의 모든 측면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갈보리로 가셨던 구주 안에 그 답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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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