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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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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20. 21:38 말씀 안으로/제물

Jim McColl, Australia

자세히 보면

구약성경에 문자 그대로 묘사된 내용

음료제물(전제)은 성소에서 주님 앞에 부어졌습니다(민 28:7). 그것은 번제와 소제와 함께 일반적으로 드려졌습니다. 다음에서 다양하게 볼 수 있습니다:

a) 매일 일년 된 어린양을 소제와 함께 드리는 아침과 저녁 제사(출 29:40-41; 민 28:7);
b) 첫 열매 단을 흔들 때 부어드리는 것(레 23:13);
c) 오순절 절기(레 23:18);
d) 나실인이 자신의 서원을 마칠 때 드리는 제물들 중에(민 6:15-17).

 

번제로 드려질 때 드리는 포도주의 양은 제물의 가치에 비례하여 달라졌습니다. 포도주의 반 힌(3.5리터)은 수소와 함께 부었고, 숫양과 함께는 3분의 1힌, 그리고 어린양과 함께는 4분의 1힌을 부었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기쁨이 제물의 가치의 평가와 값에 비례하여 직접 바꾸는 것을 암시합니다. 항상 포도주의 양은 동반되는 소제와 함께 드려진 기름의 양에 일치합니다. 유사하게, 신약성경에는 “성령 안에 있는 기쁨”을 말합니다(살전 1:16).

 

일반적으로 구주 안에서 정의

전형적으로 전제는 요담에 따르면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삿 9:13) 것을 말합니다. 번제의 어린양은 그것의 소제와 전제와 함께 그분의 아버지의 뜻에 대해 주 예수님의 완전한 순복하는 것을 예시했습니다. 전제는 아침과 저녁의 희생물과 함께 드려졌습니다. 전형적으로 이것들은 주 예수님의 인성과 사역 안에 있는 연속적인 기쁨과 즐거움이었습니다. 번제와 소제들과 함께 드리는 전제는 그리스도의 완전하심과 영광에 대한 예배자의 기쁨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신자는 주 예수님의 무한한 가치와 탁월하심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귀중한 제물 안에서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을 어느 정도 파악할 때 깊은 영적인 기쁨이 혼을 가득 채웁니다.

 

레위의 제도와 관련하여 어린양을 예표하는 것에 대한 제물의 기쁨을 나타냄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제물을 기쁨의 기준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제는 번제에서 예표하는 충분한 기쁨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그것을 충분히 평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매일 아침과 저녁에 번제와 관련하여 얼마나 많은 포도주를 부어야 하는지를 율법에 규정하셨습니다.

 

다섯 가지의 주요 제물들은 주 예수님의 죽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매일 번제와 함께 소제가 드려졌다는 사실을 관찰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의 죽음의 가치와 자신을 바치신 분의 무한한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기쁨에 참여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분의 삶과 죽음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죽으셨던 분의 위대함을 그리고 그분께서 무엇을 하셨는지의 광대함을 배웁니다. 온전한 그리스도께서 예배자 앞에 있어야 전제가 제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제물의 크기와 가치(수소, 숫양, 어린양-반, 3,4분의 1힌, 각각)에 따라 바치는 포도주의 양이 달라지는 것처럼 마음의 기쁨도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제물의 가치와 소중함에 대한 감사에 정비례로 달라집니다. 항상 포도주의 양은 소제를 동반했던 것의 기름의 양과 함께 일치합니다. 주 예수님 안에 참된 기쁨은 항상 성령의 임재와 능력에 대해 비례합니다. 그분은 또한 성령의 인도와 완벽한 일치에서 행동하셨으며,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그분 안에 있는 기쁨의 충만을 느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자 안에 계신 성령님은 주 예수님 안에서 참된 기쁨의 근원을 찾을 수 있는 역량을 제공하기 위하여 역사하십니다.

 

성도들에게 나타난 영적모습

전제의 기독교적 예표는 사도 바울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1에서 그는 “내가 …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고 썼습니다. 바울이 로마 성도들 앞에 세웠던 온전한 번제로서 영적 자기 희생의 이상은 빌립보 모임에 의해 실현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놀라운 비유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켰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영적 성취에 대한 기쁨으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번제)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헌주 또는 전제로 붓는)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 2:17). 이것은 완전한 기쁨과 감사의 표현인 동시에 희생물의 절정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인들의 섬김과 희생을 번제인 큰 제물로, 자신의 삶과 섬김을 부어드린 전제인 작은 제물로 여겼습니다.

 

바울의 삶의 마지막에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이미 전제로서 부어드리고 있기 때문에)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경주)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포상)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6-8).

 

우리도 동료 신자들의 헌신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높은 의미에서 해방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에 대한 신자의 기쁨에 대해 항상 제시해야 합니다. 그분의 완전한 희생물이셨던 것과 그분 안에서만 우리는 완전한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 

 

-  제물 연재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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