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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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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31. 15:16 횃불/1998년

그리스도인의 싸움

H. A 아이언사이드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6:10~12)

 

우리는 신약의 에베소서와 구약의 여호수아서 사이의 상호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서에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구속받은 백성 이스라엘을 그리고 있으며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의 유업을 소유하게 된 신자들에 대해 살펴 보게 됩니다. 우리는 단순히 죽어 이 세상을 떠난 후에, 혹은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부르실 때 얻게 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인 하늘 유업에 대해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크고 놀라운 축복의 영역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나안을 죽은 후에 가는 천국만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요단강을 죽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면 가나안은 우리가 들어 갈 천국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진정한 싸움이 시작된 것은 그들이 그 땅에 들어간 이후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무장한 대적들이 점령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구원을 얻은 여러분과 내가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우리는 싸움을 위한 또 하나의 자리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는 악한 영들과 싸우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로서 그분 안에서 이미 우리의 것이 된 그 축복들을 향유하려 할 때, 이 소중한 것들을 우리에게서 빼앗으려는 악한 세력이 있음을 우리는 즉시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나안이 하늘에 속한 축복의 현재적인 측면을 어떻게 나타내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소유를 빼앗으려고 싸우는 가나안의 군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저속하고 세상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리려 하고 또 그리하여 그리스도와 그들과의 관계 때문에 당연히 그들의 것인 그 승리의 기쁨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우리가 본문 12절에서 보게 되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우리가 상고하는 이 말씀 바로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에 대해 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귀한 내용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불신자들이 전혀 알지 못할 그런 평화와 축복의 분위기 속에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세상에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매우 적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19세기 동안 진리가 선포됨으로 인하여, 우리가 에베소서에서 보게 되는 이 말씀에 따라 사는 가정들이(남편과 아내가 함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 서로 존경하며 가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며,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들을 양육하며, 상전과 종이, 다같이 한 때 이 땅에서 종으로 계시다가 지금은 하늘에 계시는 위대하신 상전에 대한 각자의 책임을 인식하는 가정) 여기 저기에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에서 갑자기 전혀 다른 분위기로 옮겨가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지 않습니까. 사도는 전투와 싸움에 대해 말함으로써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상전과 종에 대한 그의 교훈을 마무리 짓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인 가정의 평온함과 아늑함만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깥 세상으로 나가야 하며 삶의 터전으로 나가야 하고, 거기서 잔인한 대적들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방해하고 무너뜨리려 하고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말이나 일을 하게 하려고 애씁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싸움터로 나간 셈입니다.

사도가 에베소서를 끝맺는 시점에서, 우리가 아직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남겨져 있는 그 안식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강력으로 강건하여지고”(6:10).

이 말씀은 너희가····날마다 강건하여지고라고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장이 현재시제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지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더라도 우리가 처음 구원받았을 때보다 원수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지금 더 많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힘의 강력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과 연합되는 삶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나님과의 연합이 없으면 설교에 능력이 없고, 찬양에 감동이 없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연합이 없으면, 책상에서 사무를 보는 사람이나,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이나 쟁기를 들고 일하는 농부가 자기의 일을 제대로 할수 없게 됩니다. 복음을 들고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려고 낯선 땅으로 가는 선교사들처럼, 우리 모두는 우리 각자의 영역에 승리를 가져다 주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여기에 우리 모두에 대한 도전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대적과 맞서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능력으로는 우리의 대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가까이 하는 삶, 주님과 그분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이것은 사도가 이 편지의 다음 단락에서 우리에게 하나씩 설명해 주는 전신갑주입니다. 그러나 이 전신갑주는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적을 대적할 만한 아무 것도 우리 스스로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성령에 의해 사도가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비단 여기서 뿐 아니라 다른 성경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로마서 131114절을 읽어 보십시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고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고하지 말라.”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유혹이 다가올 때에 잔인한 적의 궤계에 아무런 무장도 없이 무방비 상태에 있는 자신을 망각한 채 이 말씀을 잊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0장에서 우리가 전신갑주를 입고 싸워야 할 그 싸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육체에 잇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고후 10:4).

그것은 육체의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체의 싸움을 싸우는 것이 아니라, 육체 안에 있는 죄와의 싸움이며 죽기까지 싸우도록 요청을 받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이 어두움의 세상을 지배하는 타락한 영들과의 싸움입니다. 물론 이 영들은 신자들 속에서 내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자들을 곁길로 빠뜨려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도록 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식으로 그들을 유혹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0:35절을 읽어 보십시오.

우리가 육체에 있어서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여기에 우리의 싸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주님을 미워하는, 그리하여 주님을 욕되게 하려는 이 악한 영들에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성령을 근심케 하는 일을 하도록 만들며 우리의 증거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권면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합니까.

만약 우리 영혼의 대적자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솔직하게 이렇게 말한다고 합시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마귀입니다. 나는 당신을 불행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또 당신의 구주를 욕되게 하려고 어떤 일을 하고자 합니다. 당신이 단지 내 말을 듣고 따르기만 한다면 나는 이 일을 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우리의 대적자가 이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매우 간단한 일입니다. 우리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엄을 것입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8:33).

그러나 그는 그렇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우리를 기만하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마귀의 궤계를 읽을 수 있습니다.  궤계라는 단어는 교활한 계략과 책략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는 노련한 존재입니다. 그는 역사 이래 수 많은 남녀를 기만하는 일을 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간교하게 각각의 영혼에게 접근하는 정확한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한 실례를 여호수아서에서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요단강을 건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그가 가나안 일곱 족속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온갖 악독과 우상숭배에 빠진 부패하고 타락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는 그들과 더불어 조약을 맺거나 혼인하지 말고 오직 그들을 철저히 멸하라는 명령이 주어졌습니다. 이 말씀은 분명했기 때문에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얼마간은 그 말씀대로 실행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다 낡은 옷을 입은 일단의 이상한 사람들이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낡은 신을 신고 있었고 곰팡이 난 빵을 담은 자루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염소가죽 부대는 헤어지고 말라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정찰병들이 그들에게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는 여러분의 장군님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 “

그들은 여호수아 앞으로 인도되었습니다.

당신들은 누구이며 어디서부터 왔는가?”

우리는 아주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우리들이 입고 있는 이 옷들을 보십시오. 이 옷들은 우리가 집을 떠날 때는 새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 길을 온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신발들도 우리가 떠나던 날 새로 산 것들입니다. 이 빵은 뜨거운 것이었으나 지금은 곰팡이가 났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명성과 당신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듣고 먼 길을 달려 왔습니다. 우리는 당신들과 더불어 조약을 맺기를 원합니다. 서로가 이웃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당신들과 더불어 화친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분이 우리와 기꺼이 맹약하기를 소원합니다. “

멀리서 왔다니, 어떻게 우리에 대해서 들었는가?”

, 그 소식은 온 땅에 다 퍼져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가나안에 들어오면서 여리고와 아이를 어떻게 멸망시켰는지 그 승리에 대해 들었습니다.  조약을 맺기를 원합니다. “

우리는 여호수아가 주님께 묻지 아니하고 그들과 조약을 맺은 것을 읽게 됩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은 기브온 족속의 궤계에 속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조약을 맺은 지 사흘이 지나서야 그들이 인근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과 자기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조약을 맺으려 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귀는 언제나 이렇게 일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타락하게 하려는 그의 으뜸되는 시도들 가운데 하나는 불신자들을 그 교회에 끌어들이는 것을 통해서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구원받지 못한 남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보게 되는 가장 꼴볼견스런 것 중의 하나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주님의 일에 함께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더불어 시시덕거리던 사람들이 몰래 교회에 들어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혼합시키려는 마귀의 궤계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물론 그런 상태에서는 어떤 축복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우리는 마귀의 궤계에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싸우지 아니하고 우리의 동료들과 다투지 아니하며 혈과 육으로 싸우지 아니하고 오직 정사와 권세들에 대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이들은 마귀의 두개골의 깃발 아래서 정렬하고 있는 타락한 천사들의 정사들입니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

누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입니까? 그들은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의 마음을 지배하려 하고,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방해하려는 거대한 악한 세력들, 악한 천사들입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의 큰 싸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이 세상의 지배자들입니까? 여러분은 강대국의 통치자들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아닙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실제적인 지배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장기판 위에 있는 장기 알들일 뿐입니다. 이 세상의 지배자들은 인류를 파괴시키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에 악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악한 영들입니다. 이 악한 존재들은 매우 유해하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고 하나님의 말씀은 증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고서는, 우리 주님으로부터 오는 힘을 날마다 공급받지 않고서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이런 적들과 맞설 수 없으며 승리를 쟁취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늘 본향에 갈 때에 우리의 싸움은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거기에 싸움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을 읽어 봅시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들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죄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12:79).

우리가 하늘에 올라갈 때, 수세기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어온 대적 마귀가 땅으로 쫓겨 내려 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읽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은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은 계속 될 것입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단과 그의 무리들은 성도들이 주 예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도록, 기도하지 못하도록, 말씀을 공부하지 못하도록, 주님의 이름을 의심하게 만드는 어떤 일들이 그들의 삶 속에 생기도록 날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처럼 신자들이 그들의 싸움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해 믿음의 삶에서 넘어지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

마지막의 표현인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를 주목해 보십시오. 사단과 그의 무리들이 이미 지옥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 정반대로 그들은 지금도 하늘에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존전에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세 가지의 하늘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새들이 날고 있는 하늘, 별들의 하늘, 마지막으로는 하늘 위에 있는 하늘, 즉 세째 하늘(하나님의 존전)입니다. 성경에서 사단과 그의 무리들은 낮은 하늘을 대표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마귀는 공중 권세를 잡은 자입니다. 그는 형제를 참소하는 자로 묘사됩니다. 우리의 싸움은 이 악한 영들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 대한 심판과 형벌로부터 벗어나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그리스도를 따름과 말씀에 순종함에 있어서는 매일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우리는 그분과의 교제를 갖기에 적합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 우리의 손에서 검을 놓지 않고, 과거의 승리에 의지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각심들 일깨워 주시기를 빕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신뢰에 대해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4:4)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1998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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