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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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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31. 15:19 횃불/1998년

말씀의 올바른 해석(22)

 

최종적인 열쇠-그리스도

 

모든 성경의 최종적인 열쇠는 그리스도 자신이다. 주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는 도중 자신에 관한 것을 성경에서 밝혀주심으로( 24:27) 두 제자의 마음을 뜨겁게 해 주셨다. 모든 것은 그분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 과정, 목석은 결국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안식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그분은 구약의 여러 모형 속에 숨겨져 있고 수백 개의 예언의 주제였으며 성경의 핵심 인물이시다.

과거에 나는 시골 골동품 가게에서 미합중국의 헌법책 한 권을 본 적이 있다. 그 책은 어떤 미술가가 필기체로 쓴 것인데 단어의 간격이 매우 이상했다. 어떤 단어는 함께 모여있어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고 어떤 단어는 떨어져 있거나 간격이 매우 멀었다. 약간 떨어져서 보기 전에는 그렇게 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떨어져서 볼 때, 그 미술가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그 헌법의 모여있는 글씨 부분은 그늘진 부분이 되고 떨어진 단어는 밝은 부분을 이루어, 헌법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죠지 워싱톤의 초상화가 되고 있었다. 매우 효과적인 작품이었다.

성령께서도 성경을 이렇게 쓰셨다.

예를 들어 우주의 해와 수많은 별들의 창조에 대해 또 별들을 만드시고라는 몇 마디로 끝내시고, 성막에 대해서는 약 50()에 걸쳐 설명하신다. 1,500년간의 역사가 창세기 4:1624, 즉 아홉절 속에 들어 있으나, 메시아 계보도 아닌 요셉의 이야기를 하는데 창세기의 사분의 일이 사용된다. 거대한 세계 제국의 흥망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으셨으나, 아브라함, 야곱, 모세와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사랑을 품으시고 말씀하신다. 역사의 여러 페이지를 당당히 활보했던 위대한 세계적 인물은 나오지도 않거나 혹은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될 때만 대수롭지 않게 언급될 뿐이지만, 제사 규칙에 대해서는 여러 장()에 걸쳐 아주 세부적인 것까지, 심지어는 똑같은 것을 반복해서 기록하셨다. 여기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페이지에 하나님의 아들의 자세한 초상화를 그리고 계신 것이다. 우리도 성경을 읽을 때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는 자세한 부분에 눈을 크게 뜨고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분은 창세기에서는 창조자로, 여인의 후손으로, 야곱에게서 나을 별로, 유다의 사자로 나온다. 아벨의 어린 양 이야기, 노아의 방주, 모리아산에서 일어난 사건, 요셉의 이야기에서도 그분을 볼 수 있다. 출애굽기에서는 유월절 양으로, 성막의 모든 부분, 영광의 구름, 만나, 매맞은 반석에서 그분을 볼 수 있다. 레위기에서는 제사, 대제사장, 문둥병자를 정결케 하는 의식, 속죄일의 염소, 매년 마다의 절기에서 그분을 본다.  민수기에서는 붉은 송아지, 장대에 달린 구리뱀, 발람의 예언, 도피성에서 그분을 본다. 신명기에서 그분은 모세같은 선지자이며, 여호수아에서는 우리 구원의 대장이고, 사사기에서는 자기 백성을 구해 주시는 분이며, 룻기에서는 기업을 물려주는 친족이며, 사무엘에서는 언약궤이자, 배척당하나 결국은 왕좌에 오르실 왕이다. 열왕기와 역대기에서 그분은 위엄과 영광의 솔로몬으로 다스리고 계시고, 에스라에서는 서기관이며, 느헤미야에서는 성문이고, 에스더에서는 구원을 예비해 놓으신 분이다.

또한 시편의 대부분에서 그분을 볼 수 있다.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이고, 시편 2편의 아들이며, 시편 23편의 목자이고, 22, 69편의 고난받는 구세주, 24편의 영광의 왕, 시편 8편의 온전한 사람, 시편 45편의 왕이다. 시편의 대부분은 예언적 함축성을 담고 있으며 많은 시편은 명백히 메시아의 예언이다. 잠언에서 그분은 육체로 오신 지혜이고, 세상적 지혜의 슬픈 책인 전도서에서는 성()을 구했으나 잊혀진 지혜로운 사람이다. 아가(雅歌)에서 그분은 술람미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리고 세상의 모든 아첨을 이긴 목자이다.

이사야 53장에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이고 63장에서 포도주 틀을 밟는 분이며, 이사야의 각 연()마다 나오는 수백 개의 소망과 갈망의 대상인 영광스러운 메시아다. 예레미야에서 그분은 고난을 받으시는 분이며 우리의 의()인 하나님이며 예레미야애가에서는 다시 슬픔의 사람이다. 에스

겔에서 그분은 보좌에 앉아 계시고 다니엘에서는 무너뜨리는 분, 손으로 다듬지 않은 돌이다.

호세아에서 그분은 용서하고 오래 참는 남편, 다윗보다 크신 왕이며, 요엘에서는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 주시는 분, 아모스에서는 제단에 서서 이스라엘 집을 체로 걸러 결국은 천년왕국의 축복 속으로 데려가시는 분이다. 오바댜에서는 무서운 주의 날에 안내하시고 시온산에 서 계신다. 요나에서 그분은 죽으심, 장사, 부활을 미리 보여 주시고, 미가에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모든 인류에게 천년의 축복을 가져오실 분이며 또한 위대한 목자이고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다. 나훔에서 그분은 산들이 흔들리기 전에 위대한 복수자며 자기 백성을 굳게 붙들고 피난처가 되신다. 하박국에서 그분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며, 자기 백성의 힘과 찬양이다. 스바냐에서 그분은 왕국의 축복을 가져오며, 학개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설하며 열방을 흔들고 하나님의 택하신 분이다. 스가랴에서 그분은 계시하시고 위대한 대제사장이며 하나님의 영을 사람에게 부어주시고 모퉁이의 머릿돌이다. 그분은 위대한 심판자이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며, 노예의 값으로 팔리고, 예루살렘의 더러움을 씻는 샘을 열어 주시고 나뭇가지이며 오실 왕 중의 왕이다. 말라기에서 그분의 오심을 앞선 자가 선포하며, 그분은 의로운 태양이다.

마태복음에서 그분은 유대인의 왕이며 마가복음에서는 여호와의 종이고 누가복음에서는 사람의 아들이며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사도행전에서 그분은 교회의 머리이고 로마서에서는 우리의 의()이며 고린도서에서는 부활의 첫 열매이고 갈라디아서에서는 율법의 마침이며 에베소서에서는 교회의 모든 것, 건물의 초석, 몸의 머리, 우리 마음의 신랑이다. 빌립보서에서 그분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며 골로새서에서는 우주의 창조자, 보존하시는 분, 소유주, 만물보다 뛰어나신 분이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그분의 교회를 위해 다시 오실 분, 데살로니가후서에서는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분이며 디모데전서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며 디모데후서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이다. 빌레몬서에서는 우리의 빛을 갚으시는 분이시다.

히브리서에서 그분은 모든 모형의 원형이다: 아들, 제사장, 제물, 상속자, 아론이나 멜기세덱보다 위대하며, 모세나 여호수아보다 위대하며, 천사보다 위대하며, 하나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이다. 야고보서에서 그분은 만군의 하나님, 치유하시는 분이며 베드로전서에서 우리의 유업이시고 우리 영혼의 목자이시며 그 이름을 위해 복음이 전파되는 분이며, 유다서에서는 보존하시는 분, 유일하신 하나님, 유일하며 현명하신 하나님, 우리의 구주, 영광스러운 위엄에 계신 분이다. 요한서신서에서는 우리의 교제에 있어 빛과 생명과 기초이며 우리의 대언자이시다. 요한계시록에서 그분은 곧 오실 왕, 지금도 만물을 능력의 말씀으로 붙들고 계시는 분, 시간과 공간의 모든 요소와 힘을 모두 쥐고 계신 분, 만물을 자기 뜻에 복종시키는 분이다.

우리는 그분을 예언 속에서 만난다.  성경의 첫 예언이 그분에 관한 것이고 그분의 오심을 말하고 있다. 성경의 마지막 예언도 그분에 관해, 그분의 다시 오심에 관해 말한다. 선지자들은 그분의 동정녀 탄생, 다윗 왕가의 혈통, 유다 지파, 베들레헴을 말했다. 그분에 앞서서 올 사람, 그분의 죄 없는 삶, 30냥에 배반당해 팔리울 것, 십자가의 죽으심, 부자의 묘에 장사됨, 부활, 능력과 영광으로 다시 오실 것을 말했다.

우리는 그분을 묘사(picture) 속에서 만날 수 있다. 많은 구약의 이야기에서 그분은 모형이고 그림자였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중요한 예이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결단하고 방주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에게 완전히 그리고 값없이 구원을 베푸셨다. 요구되는 것은 믿음의 걸음 뿐이었다. 방주는 다가올 진노에서 피할 도피처였다. 폭풍의 맹공과 진노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방주였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을 받아들인 사람은 안전했다. 심판의 물은 단 한방울도 그들에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방주가 그들을 심판 저 건너편의 세계의 해변으로 안전하게 데려갔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다음 찬송가처럼 그리스도를 그린 것이다.

 

폭풍우의 무서운 소리가 들리네.

, 그리스도여,

그것을 당신이 맞으셨나이다.

당신의 열린 가슴은 나의 피난처요

폭풍을 마주치는 나의 용기입니다.

 

유월절과 여러 종류의 제사들, 다윗의 생애에 나오는 이야기들, , 수많은 다른 구약의 역사들이 모두 그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그분을 인격 속에서 만난다. 복음서를 읽으며 그분의 오심, 성품, 생애, 십자가를 생각해 본다. 육체로 오신 하나님, 하나님보다 못한 적이 없으셨으나 항상 사람 - 하나님이 항상 원하셨던 그런 사람, 즉 하나님이 거하시는 사람 - 이셨던 분, 그분의 기적을 보고 그분의 비유를 듣고 그분의 선하심에 놀라며, 그분의 사랑에 전율한다. 그분은 선지자, 제사장, 왕이셨다.

우리는 그분을 비유 속에서 만난다.  비유 이야기마다 그분은 자신을 말씀하셨다 잃어버린 양의 이야기에서는 선한 목자이고, 양과 염소 비유에서는 임금이고, 열 처녀 비유에서는 신랑이며, 씨뿌리는 비유에서는 씨를 뿌리는 분이며,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 보물을 찾아 밭에 숨겨두신 분, 포도원 농부에게 보내진 아들, 여리고로 가는 길의 선한 사마리아인, 왕위를 받으러 먼 나라로 떠난 왕이시다.

우리는 그분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의 설교에서. 세례 요한의 설교에서, 사도 바울의 설교에서, 그분 자신의 설교에서 만난다. 그분은 참 포도나무요, , , 생명이며, 세상의 빛, 하늘로부터 오신 떡이다. 구원받기 위해 주신 유일하신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 도살장으로 가는 양, 에디오피아 내시가 그토록 알고자 했던 분, 아테네의 알지 못하는 신’()이다. 또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만나주신 하늘의 하나님이며 빌립보의 간수가 믿었던 하나님이다.

우리는 그분을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1:1)인 계시록의 전능 속에서 만난다. 그분은 촛대 사이에 서 계셨으며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을 취하시려 영원의 불빛(spotlight)으로 걸어 들어가셨다. 하늘의 별들이 떨어진 길을 커다란 흰 말을 타고 가시며, 므깃도에서 사람들과 만나시는 분이며, 크고 횐 보좌에 앉아 마지막 심판을 하시는 분이며, 임마누엘의 땅에 영광이 되시는 어린 양이며,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며, 광명한 새벽별이다.

하나님의 도서관으로 들어가 보면,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실 것이다. 그렇게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찾아보라. 넓고, 잘 닦인 세상의 고속도로에서 내려와 사람이 별로 없는 진리의 좁은 길을 걸으며 그분을 만나는 것은 모든 경험 가운데 가장 축복된 경험일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1998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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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