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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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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31. 15:21 횃불/1998년

레위기의 다섯 제사(최종)

 

6. 속 건 제

※ 참고 구절 : 레위기 5 14절∼67, 7 17, 시편 69

이제부터 상고하고자 하는 속건제는 십자가의 업적 중 가장 근본적인 면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제사는 죄인이 자기의 범죄함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하여야 법적 심판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간절한 물음에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죄는 하늘의 권능에 대적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권좌에 대항하여 범죄한 것으로 하나님의 의로움이 이에 대하여 보상을 요구하거나, 하나님 면전에서 영원히 쫓겨나는 신세가 됩니다. 범죄는 남에게 해를 주는 것이며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다윗은 그의 부하 군인 우리야와 그의 아내 밧세바에게 가장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온 이스라엘에게 죄를 지은 것입니다. 시편 51편의 그의 자백의 기도를 보면, 번뇌에 찬 마음의 그 깊은 곳에서부터 울부짖는 모습을 봅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자기 행위의 악함을 예민하게 깨달은 그는 황소나 염소의 피로는 결코 죄가 씻겨질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서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속건제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이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의 십자가입니다.

 

레위기 5 14절부터 6 7절까지에는 속건제를 드리는 이유와 그 성격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그릇 범과하였거든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너의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수양을 떼 중에서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려서 성물에 대한 범과를 갈되 그것에 오분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수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5:15,16).

이것은 하나님께 범죄한 경우에 드려지는 속건제입니다. 속죄제의 경우로 본다면 이는 알지 못하여 지은 죄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모르고 짓는 것으로 간주하신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물이 되심을 끝내 거절하는 죄는 제외됩니다. 이 행위는 고의적 범죄에 해당되며 영원히 남는 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의 성물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범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해마다 드리는 수확물의 양을 적게 계산해, 제사장 앞에 규례로 정한 양보다 자기도 모르게 적게 가져 올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제시된 말씀대로 성물에 대한 범과를 갚되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가져와야 했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하듯, 하나님은 사람의 범과에 대하여 꼭 받으실 대가보다 실제로 더 받으십니다. 이는 십자가의 업적을 통하여 확실히 밝혀진 바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로 인하여 잃어진 영광보다는 십자가로 인하여 받은 영광이 더 큽니다. 우리의 범죄 때문에 그리스도는 속건제물이 되어 우리의 죄과를 보상하시되 5분의 1을 더 첨가하셨습니다. 갈보리에서 이루신 일은 무한한 가치가 있어 구속함을 받아 그 안에 거하는 자들의 실제 죄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의 모든 죄과를 갚고도 훨씬 남습니다.

속건제물로 드리는 흠 없는 수양은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로 표현하신 거룩한 분을 말합니다. 여기 양떼의 왕자가 있으니 그분은 죄사함을 이루기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신 분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53:5).

 

레위기 5 171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하여도 허물이라. 벌을 당할 것이니 그는 너의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 없는 수양을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부지중에 그릇 범한 허물을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이는 속건제니 그가 실로 여호와 앞에 범과함이리라.”

여기 매우 중요한 진리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판단의 기준이 우리의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금령 중 어느 것이나 부지중에 그릇 범하였을지라도 죄가 되며, 알지 못하였어도 죄과를 갖게 됩니다. 사람이 빛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허물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빛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허물하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율법을 무시하거나 알지 못하면 죄를 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지옥에 있는 부자에게 명했듯, 이스라엘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받았으면서도, 성경책은 집안에 방치해 둔 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조차 귀찮아 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함으로 그분의 뜻을 알지 못한 자들은 장차 올 심판의 날에 정죄될 것입니다.

존 번연의 불후의 명작, 「천로역정」에 무은총’(craceless)이라는 사람이 어느 날 자기 등에 무거운 짐이 얹혀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죄인의 양심에 가서 닿아 자기에게 죄가 있음을 깨닫고 구속의 은혜를 구하게 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우리의 죄짐이 무겁게 느껴질수록 속건제의 날이 가까왔음을 말합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이 십자가에서 이룩한 구속의 유익함을 호소하는 하나님께 나아가면 우리 죄과는 모두 완전히 도말됩니다.

레위기 6 26절에는 속건제의 다른 면이 나옵니다. 이웃에 대한 죄가 바로 그것인데 이 경우도 하나님께 대한 범죄에 해당됩니다. 말씀에 일렀듯이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기때문에 이웃에 범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하되 곧 남의 물건을 맡거나 전당잡거나 강도질하거나 늑봉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남의 잃은 물건을 얻고도 산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에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 그 빼앗은 것이나 늑봉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얻은 유실물이나 무릇 그 거짓 맹세한 물건을 돌려보내되 곧 그 본물에 오분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그는 또 그 속건제를 여호와께 가져올지니 곧 너의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 없는 수양을 속건제물을 위하여 제사장에게로 끌어 올 것이요.”

이 말씀에도 앞서 언급한 동일한 원칙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속건제로 인하여 이득을 보기도 합니다. 해를 입은 자는 처음보다 사정이 더 나아집니다. 범죄자가 죄를 자백한 후 하나님 앞에 속건제물을 가져올 때 해를 입은 자에게는 본래의 물건에 5분의 1을 더하여 보상합니다.

6장 서두에 나오는 말씀처럼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남의 잃은 물건을 얻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그것을 몰래 가지거나, 그 외 다른 방법으로 남에게 잘못을 저지르거나, 속여 빼앗은 경우는 거짓으로 취한 모든 것에 5분의 1을 더하여 되돌려주지 앉으면 하나님은 어떤 속건제도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분노도 그분을 찬양하는데 쓰이도록 지으셨습니다. 또한 분노를 남기는 것도 금하셨습니다. 회의론자는 냉소하며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의롭고 전능하신 분이 왜 죄가 이 세상에서 머리를 치켜들고 나와 땅과 하늘을 더럽히도록 놔두셨습니까?”

그러나 십자가의 공로가 이를 모두 답변합니다. 단순히 피조물과 창조자의 관계보다는 하나님과 구원을 얻은 죄인과의 관계가 훨씬 돈독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속건제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총이 더욱 풍요로워졌으며,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를 전혀 알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7절의 말씀은 대단히 귀중합니다.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

이 말씀이 불쌍하고 문제에 빠진, 고뇌하는 영혼 속에 들어갈까요? 당신이 죄를 지을 때, 때때로 과연 용서하실까 하는 번민은 없었습니까? 말씀을 깨달을지니, 속건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모든 죄는 용서받습니다. 당신 마음을 그리스도께 의지하고 그분에게만 구원을 요청하십시오. 당신이 지은 모든 죄는 영원히 씻겨지고, 당신은 하나님 앞에 전혀 그러한 일이 없었던 자로 인정받습니다.

수년 전 시카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깁시 로드니 스미스(Gipsy Rodney Smith) 전도자가 말씀을 전파하고 있었는데 집회가 끝나갈 무렵 한 건장한 남자가 울면서 의자 사이의 통로로 나왔습니다. 그는 흐느끼면서 자기의 지은죄와, 그 부끄러움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스미스 설교자에게 간절히 도움을 구하며 소리쳤습니다.

, 선생님 내 죄는 용서받기에는 너무 크답니다. “

섬광처럼 재빨리 설교자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당신의 모든 죄보다 더 큽니다. “

사랑받는 찬송 작가이며 음악가인 타우너(Tomu) 박사가 이 말을 들었습니다. 타우너는 그날 밤 집에 돌아오면서 이 말씀에 대한 어떤 구상이 떠올라 다음의 후렴구를 지었습니다.

주의 은혜 크신 은혜

주의 은혜 우리의 죄를 다 씻었네.”

 

이 내용에 대한 악상이 다시 떠오르면서 집에 도착하자 대강 음률을 메모해 놓았습니다. 다음 날 이것을 쥬리아 존스톤(Julia Johnston)에게 주었는데, 그녀는 많은 보배로운 찬송가를 지은 분으로, 이 후렴구를 타이틀로 하여 1910년에 그 유명한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그 첫 소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우리의 죄를 속하시려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어린 양 보혈을 흘렸네.”

 

그 후 여러 해가 지나면서 이 노래는 우리의 모든 죄보다 더 넘치는 큰 은총의 이야기를 담고 번뇌하는 수많은 영혼에게 전파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속건제의 메시지입니다

 

속건제의 규례

  레위기 7 17절에서는 속건제의 규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속죄제의 규례와 같이 이는 지극히 거룩하니라는 말씀이 다시 한 번 나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축복인 구원자 그리스도의 인성이 죄로 인하여 더러워진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우리 속에 자리잡는 것을 용납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고후 5:21),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벧전 2:22), “그에게는 죄가 없으니라”(요일 3:5)라고 기록된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님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 7:26)입니다. 하나님이 이 점을 얼마나 세심하게 지키고 계시는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의한 재판을 받으시던 바로 그날 아침과,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까지도 이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총독 빌라도가 재판자리에 앉았을 때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27:19)고 전했으며, 빌라도 자신도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24:14),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18:38)라고 선포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렸던 한 강도도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 23:41)고 했습니다. 로마 백부장은 그 어두움의 시간동안 되어진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23:47)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이 의로운 자가 불의한 우리를 위해 고난당한 것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해서였습니다.

속건제물은 제단에서 잡아 그 피는 제단 주위에 뿌립니다. 희생제물의 일부는 하나님 앞에 우리 죄의 판결을 받았다는 표시로 불사릅니다. 나머지 부분은 속죄제의 경우와 같이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먹습니다.

속건제나 속죄제는 일례니 그 제육은 속하는 제사장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7:7).

오늘날은 믿는 모든 자가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속건제를 먹고 사는 것이 제사장의 신성한 특권입니다. 제사장이 속건제를 먹듯,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을 읽으며 우리 주 그리스도의 구속이 우리의 죄를 없이 하고 거룩한 하나님 앞에 우리를 받으실 만한 자가 되게 한 것을 재삼 상고합니다.

시편 69편은 이 레위기에서의 지시 말씀과 가장 적절하게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속건제에 대한 노래로서 예수님이 십자가로 가시는 일과 사람들에게 버림 받으신 것, 우리 죄값에 대한 심판을 짊어지신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내가 취치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4)라는 말씀과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9)는 말씀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자기 것이라고 고백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0절과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십자가의 고초와 그 영혼이 떠나가실 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속건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묵상하면서 시편 기자와 함께 우리는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31)고 고백합니다. 옛것의 희생 제물로는 완성(성취)하지 못한 일(실제로 죄를 없이 하는 일)이 우리 주 그리스도로 인하여 완성되었습니다. 단 한번의 제사로, 다시 반복할 것 없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의 나무에 달리심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 완성된 일에 우리가 더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우리가 더하거나 감할 수도 없는 완전한 성취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만족을 얻으셨고 믿는 죄인도 그러했습니다.

젊은이가 수도원 문앞에 와서 그의 죄를 없이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 물었을 때, 나이 많은 수도승은 당신이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소라고 대답한 이야기가 이 속건제의 진리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노력한다면 이는 어리석음과 무지가 합산된 소치입니다.

 

내가 행한 것으로 구원얻지 못하고

이 육신 힘껏 애써도 죄 씻지 못하네.

나 혼자 힘으로 하나님 보지 못하고

내 모든 탄식 눈물도

내 짐 벗지 못하네.

주님 공로만이 내 짐을 벗기며

주님이 흘린 피로만 나 평화 얻네.”

 

지금까지 우리는 다섯 가지 제사 의식과 그 상징적 의미를 상고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깊이 있게 상고한 것은 아닙니다. 보다 주의깊게 상고해 볼만한 내용들도 있습니다. 저는 다만 옛 희생제물이 상징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그 업적에 관련된 놀라운 진리들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좀더 알 수 있다면, 하나님께 그처럼 영광스럽고 우리 영생의 축복의 초석이 되신 그분의 놀라운 업적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1998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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