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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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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9. 21:54 횃불/1999년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

김 종 속(선한사마리아원)

제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눈물을 터뜨리고 묻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술 한 모금 마시지 못하던 저의 어머니가 거의 2년 동안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음주하시는데 집안 살림은 엉망이었고 아버지의 초췌한 모습은 눈뜨고 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동생들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정직하게 제자리를 지켜주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저였습니다.

엄마는 긴 터널 끝에 입원하셨고 저는 이 세상에서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아니 죽으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죽을 용기조차 없는 제 모습이 더 싫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빈정거림, 손가락질도 저에게는 감당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저의 귀가 시간은 점점 늦어졌고, 어머니에게 반항이라도 하듯 저 역시 토해가면서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살을 도려내는 듯한 추위 속에서 하안 눈 위에 대자로 누워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며 엉엉 울었던 날들이 얼마나 길었던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엄마가 새벽교회에 열심히 참석하시며 만나던 하나님은 죽었나 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우리 집안을 이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때부터 저는 또 다른 신을 찾기 위해 몸부림 쳤습니다.

그러다가 친구와 어울려 철학관으로 토정비결을 보러 갔다가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사주풀이에 흥미를 느끼고 틈나는 대로 서점에 들러 철학에 관한 모든 것들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어머니는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전보다 더욱 신앙생활에 열심이셨습니다. 그러나 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후에 저는 또 다른 인연으로 두 모자가 사는 무속인과 함께 생활했고, 계룡산정상까지 몇 번을 올라가 산제도 지내고 산신을 모시는 당상 위에 청수도 올리면서 온갖 잡스런 행위에 묻혀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위해 밤낮 눈물을 흘리시며 기도하셨지만 저는 그러한 모습조차 보기 싫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변한 제 모습으로 어머니 가슴에 못질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무속인과 생활하면서 소위 목사의 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혼사길이 막힌다고 점치러 오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죽긴 죽었나 보네라고 생각하면서 저의 마음은 더욱 강퍅해져 어머니가 부르짖는 기도소리는 허공을 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가를 제 자신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만큼 술을 마시고, 한밤중에 무면허로 운전하다 곤두박질하여 부상 당하면서도 사람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는 생각이 저를 압도적으로 지배했습니다.

그러 한 생활이 지속되는 시간 속에서 97 9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친구 한 명이 용인에 있는 선한 사마리아원에 가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내던 제가 그동안 아이들의 눈망울을 잊고 지냈던 것입니다.

며칠 후에 천안 전화국에 들러 경기도 전화번호부를 뒤적이고 불교재단인 송암동산보육원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은 더 이상의 시끄러운 세상에서 탈피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습니다. 그 곳 시설은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출입문에는 미륵동상이 세워져 있었고 보육사들은 승복을 입고 다녔습니다.

97 10 17날 입산하기로 하고 저는 대천에 있는 친구 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입사 예정일 하루 전 이른 새벽에 선한 사마리아원에 갔던 친구가 귀찮을 정도로 호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웬일인가 싶어 전화를 걸었더니 선생님 한 분이 급한 사정으로 그만 두셨다면서 저보고 오라는 것입니다. 저는 친구에게 제 사정 얘기도 하고 특히 기독교와 관계되는 시설은 절대 안 간다고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친구는 놓칠세라 더 안달이었습니다

저는 결국 발길을 그 곳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입사한지 두 달 반 만에 강퍅한 제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던 동기가 되었던 것은 97 12 1-4일까지 유평교회에서 있었던 복음집회 때였습니다.

저는 한마디로 죽을 맛이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어디 있다고 저 난리들이야.’ 어쨌거나 학생들을 인솔해서 억지로라도 참석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그 날도 시작하는 시각까지 지루하고 머리만 아팠습니다. 온갖 잡념 속에서 시간을 채우고 있는데 강사 형제님께서 마침 무당에 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귀가 솔깃해져서 잠잠히 듣고 있었습니다.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끄시던 형제님께서 왜들 귀신이 장난치는 것은 그렇게 잘도 믿어가면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못 믿느냐고 했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제 뒷통수를 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 멍해지는 것을 느끼기도 전에 눈물은 이미 제 볼을 타고 흘렀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제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다니, 단 한 번도 저에게 일러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꼭 찾고 싶었습니다.

이사야서 55 6,7절 말씀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저는 진한 감동으로 주님 앞에 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가장 근본적인 죄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비록 생활은 그랬어도 제 나름대로 선한 양심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했으니까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저의 이러한 어리석은 착각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3:10)고 말씀하셨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3). 그리고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9:27)라고 하셨습니다. 최종적으로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저의 추악한 모습이 낱낱이 공개된 것은 머리에 가시면류관과 옆구리의 창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수치스럽고 떨림으로 힘들어 했지만 인간에 대한 주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12:8).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9).

이 귀한 말씀으로 다시 한번 저의 믿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어두움 속에서 숱하게 방황하던 저에게 빛으로 인도하시고 이 죄인을 당신의 사랑으로 친히 불러주시니 하늘에 산 소망 또한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참 고마우신 주여! 저의 간증과 변화된 삶을 통하여 많은 불신자들이 당신의 십자가를 더욱 알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이 영광을 지극히 높으신 당신의 보좌 앞에 향기로 보냅니다.

기뻐 받아주시옵소서.

 

(1999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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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