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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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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6. 10:14 횃불/1999년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이 미 란

먼저 간증을 쓸 수 있도록 지혜와 담대함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횃불지를 통해 여러 성도님들을 뵙게 되어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저는 성서침례교회에서 주님을 만나 구원받고 10여 년이 넘게 주님을 섬기는 중, 뜻하지 않게 일산교회의 자매님과 함께 예배에 관해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제가 1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인내하면서 저와 교제하였습니다. 제가 고집스럽고 미련한 탓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버티지 못할 말씀이 있었습니다. 예배에 관한 여러 말씀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 4:23,24).

또한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해야 된다는 말씀도 기억합니다.

결단을 내리고 전에 다니던 교회를 떠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고자 일산교회로 왔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왔습니다. 교회 식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떠나왔습니다. 그 따돌림당한 충격으로 저는 우울했고, 많은 시간 눈물을 흘려야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에 대한 미움이 슬그머니 올라왔으나 주님께서 요나의 말씀으로 저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들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제 개인의 감정을 접어두고, 아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를 미워할 권리가 없다고 하셨으며, 주님께서 그들을 참으로 사랑하시는데 벌레인 제가 어떻게 그들을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저로 하여금 기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위한 눈물의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외로운 시간이 흐를 때 주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편 42:11).

그러면서 제가 그동안 주님을 많이 외롭게 해드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과의 바른 교제가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모임에 오기 전에 몇 번 살펴보기 위해 일산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모임에 참석하면서 느낀 점은 일반 교회와 다른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평소 교회에 다니면서 제 마음에 걸리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목회자가 직업적으로 사례비를 받는 부분과, 헌금을 걷으러 돌아다니던 모습이었습니다. 목회하는 분들이 이 땅에서 그 대가를 다 받으면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헌금통이 자기 앞으로 올 때 돈이 없어서 내지 못하는 자의 심정이 과연 어떠한지 왜 저들은 모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동안 벙어리 제사장이 되어 예배드렸던 모습과는 달리 준비된 자가 예배드리러 나아오는 모습, 정말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십자가의 사역을 기억하며 주님의 인격과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아름다우심, 우리를 위해 찢겨나간 살을 기억하며 찬양하며, 그것을 광주리에 하나씩 담아서, 주님의 인격을 담아서 주님께 나아와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의 모습을 이 모임에서 볼 수가 있었습니다. 주님이 기념되는 만찬 예배였습니다.

인간의 방법으로 드린 가인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예배에 순종했던 아벨을 미워하고 또 죽이기까지 했던 가인의 모습이 곧 저의 옛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들은 구원받은 데서 그치지 않고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된다고 들었습니다.

모임에 나와서 너울을 쓰고 처음으로 주님께 예배를 드렸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잊혀지지 아니합니다. 어두침침한 터널을 막 빠져 나왔을 때의 그 상쾌함과, 안개 자욱한 산골짜기 어느 호숫가에 일고 있는 그 잔잔한 물결과도 같은 감동이 밀려옴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말씀대로 죄의 종 되었던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이끌어내사 홍해를 걸어서 나오게 하심으로 의의 길로, 아름다운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내신 일을 기억합니다. 그들이 또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께 예배드렸던 아름다운 모습도 생각납니다.

얼마 전 성서침례교회의 자매님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저 천국에서나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주님께서 이 땅에서 그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들도 정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기도했었고 이 땅에서 다시 뵐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은 흘렀고 그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5개월만에 서로 뜨겁게 껴안으면서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너무 미안했노라고, 마음이 너무 아팠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만남이 목사님 귀에 들어가도 상관치 않겠노라고 합니다. 한결같이 그 자매님들은 목회자에 대한 회의와 갈등을 가지고 있었고 그 교회를 떠나고 싶다고 합니다. 그 자매님들은 교회를 위해 많은 시간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해도 왠일인지 갈등만 더해지고 이제는 기도조차 할 수가 없노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한 자매님은 모임을 방문하여 살펴보고 가셨습니다. 아마 당분간은 계속 나오시리라고 믿습니다. 그 자매님을 주님께서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그 교회를 나오기 전 그 자매님과 예배에 관한 교제를 나누었을 때 그 자매님은 저를 바로 쳐다보지도 않으셨고, 전통 침례교회 역사만 운운하셨던 분인데 그 자매님께서 제일 먼저 모임을 살피러 오실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주님의 하시는 일은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울 뿐입니다.

어제는 다른 자매님 부부와 통화를 했었는데 지금 당장 제 얼굴을 보기를 원한다고 하십니다. 다음 주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 형제 자매님들과 계속적인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염불소리와 목탁소리, 절간의 향내음을 좋아했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대처승이셨으므로 절간의 모든 것이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산사의 고즈넉한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부르시지 않으셨다면, 누군가 저에게 복음을 들려주지 아니하였더라면 저는 아마 지금쯤 향내음 가득한 법당에서 천배를 올리면서 눈물짓는 여인의 모습으로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참 마음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주님의 십자가의 피흘리심으로, 육적으로는 어느 이름 모르는 아저씨의 피흘림으로 지금 현재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느날 저는 어머니를 향해 앞으로만 앞으로만 달리고 있었습니다. 빨간 신호등인데도 불구하고 앞만 보고 달려 나갈 때 누군가 저를 낚아 채었습니다. 그 광경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옆으로 나뒹굴었고 그 아저씨는 다리가 차에 끼여 한참을 끌려 가셨습니다. 다음날 신문에 대서특필로 저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그 신문을 보니 저의 머리 부분에 동그란 표시가 되어 있더군요. 제 나이 5살적 일입니다. 그 일로 경찰서를 얼마나 들락거렸던지 훌쩍 커버린 청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순경이 무서워서 도망다니고, 경찰과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싫어했습니다.

아버지께서 그 가족에게 보상을 해드렸지만 그렇다고 그 분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기에 제 등에는 항상 무거운 짐이 얹어져 있어서 저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어느 아름다운 여인을, 언젠가 만난 적이 있는 여인을 길에서 마주쳤습니다. 그 분이 저를 교회로 인도했고, 또 다른 여인이 저에게 복음을 들려 주었습니다. 그 교회 집회에 참석하면서 어느 외국 형제님께서 휴거에 관한 말씀을 하시던 중 복음에 관해 이야기하실 때 저는 주님의 피의 역사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님을 통해 자세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나의 죄를, 그 무거웠던 죄를 주님께서 담당하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고, 그 때 저의 등 뒤의 무거웠던 짐은 단번에 없어져버렸습니다.

법당에서 천배 아니라 억만배의 절을 올릴지라도 없어지지 않을 저의 무거웠던 짐들이 믿음으로 단번에 벗겨진 것입니다. 저는 저의 죄를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죄짐을 벗는 일, 천국 가는 길은 너무나 가까이 있었던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아래는 6월호에서 옮김)

저에게는 생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아 오를 것만 같은 그런 어머님이 계십니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날 밤이었습니다. 잠을 자다가 밖이 소란스러워서 잠에서 깼는데 아버지께서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문틈으로 밖을 내다 봤을 때, 세상 천지에 무슨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지요. 어머니는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크고 시퍼런 부엌 칼을 허공을 향해 찌르는 시늉을 하면서 무당처럼 펄쩍펄쩍 뛰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아니고 귀신이라 생각했습니다. 언니가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어서 어머니가 산 기도 다녀오신 후부터 발작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 후부터 30여년을 그렇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힘센 남자 간호사들에 의해 밧줄로 칭칭감겨 짐승처럼 질질 끌려가시던 어머니의 모습, 병원 쇠창살 사이로 불안한 듯 끌려 들어가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잊을 수가 없지요. 왜 우리 어머니는 왜 저렇게 사셔야만 할까요? 아무리 애써도 어린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병으로 무당들이 수없이 들락거렸고 굿판을 벌일 때는 온 동네 사람들이 구경꾼으로 몰렸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구석에 서서 그 굿판을 지켜 보았습니다. 어머니께서 대나무를 흔들면서 나는 대감이다라고 이상한 목소리로 지껄이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많은 재산이 낭비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여느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자식들을 참 사랑하셨습니다. 형제가 23녀인데 언니만 빼고 모두가 말썽꾸러기였습니다. 특히 오빠와 저는 온 동네를 휩쓸고 다니면서 말썽을 피웠습니다. 저는 골목대장이었고 항상 부하들을 거느리고 다녔으며, 사춘기 전까지 사고뭉치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자식들이 그럴지라도 어머니는 항상 저희들에게 눈높이를 맞춰주셨고 말씀으로만 훈계하셨습니다. 자식들에게 인내하셨고 어린아이이지만 인격체로 대해 주셨습니다. 다른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어머니의 인내하심으로 저희들은 제자리를 지키며 자기 일을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는 형제들로 자랐습니다. 어머니가 수없이 병원에 들락거려도 우리 형제들은 불평 한마디 않고 자신의 자리들을 지켜갔습니다. 정말 힘들었지만 인내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희들에게 인내하셨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또 상태가 안 좋으셔서 걱정입니다. 저의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구원받으시도록, 병이 완쾌되도록…. 이제는 연세도 많으신데 또 옛날처럼 아프시면 어떡하지요? 형제 자매님들께서 한번씩만 기도해 주셔도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기도 부탁드립니다.

어머니의 병환으로 아버지께서는 매일 약주만 드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평상시에는 계신지 안 계신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시지만 약주만 드시면 평소에 말씀하고 싶었던 것을 다 말씀하십니다. 잠이 든 자식들을 다 깨우시고 무릎을 꿇은 채 2,3시간씩 훈계의 말씀을 듣게 하셨습니다. 일주일에 몇번은 꼭 그 일을 치뤄야 했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조금 자란 후에는 용기가 생겨서 아버지께서 약주 드셨다는 정보가 입수되면 이버지를 피할 수 있는 숨을 만한 장소를 찾아 다녔습니다. 언니는 부엌으로, 저는 책상 밑으로, 막둥이는 장농 속으로 넷째는 이불 속으로 오빠는 화장실로, 이 방 저 방, 여기 저기 번갈아 가면서 숨을 곳을 찾아 다니던 중 오빠는 어느 날 골방으로 숨었는데 그 날 이후로 저의 사랑하는 오빠의 모습을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오빠가 저에게 부탁을 하나 했었습니다. 골방으로 가기 전에 호빵을 봉지째 들고 와서 쩌달라고 했을 때 저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오빠는 왜 맨날 나한테만 시키는 거야!”

이렇게 쏘아붙이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버렸습니다. 호빵 봉지를 든 오빠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평상시 오빠와 자주 다투긴 했지만 제일 사랑하는 오빠였습니다. 오빠와 아버지는 저에게 아픔과 숙제를 남기고 간 분들입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이 있습니다. 저의 친구 이야기입니다. 따스한 봄의 꽃 향기가 물씬 풍겨오는 어느 봄날, 그 날은 벗꽃이 만개하여 한껏 모양을 뽐내던 날이었습니다. 친구가 저의 품에 안겨서 인사도 없이 바삐 가버렸습니다. 잎마른병 농약을 급하게 한 병을 다 마셔버렸던 것입니다. 말릴 사이도 없이 끔찍한 일이 벌어졌고 친구를 붙들어 끌어 안으니 너무너무 무거웠습니다.

친구가 떠나기 몇 시간 전 예수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떠나시기 얼마 전 예수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때 저는 그들을 위해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주저했고 또 시간이 아직 있으니 조금 더 조금 더 하다가 일을 그르치고 말았습니다. 친구의 빛 바랜 얼굴이 막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듯하여 안타까움과 미안함에 발을 동동 굴러 보지만 너무 늦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제가 입을 벌려 복음을 전해도 그들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친구는 떠나면서 인사 대신 극심한 공포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친구의 그 빛 바랜 모습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복도 모퉁이에 친구가 서서 나를 쳐다보고, 화장실에 가면 욕조에 친구 머리만 둥둥 떠다니고, 이불을 뒤집어 써도 친구는 어느새 이불 속으로 들어와 나를 쳐다보고 있고, 밤새도록 잠을 이룰 수도 없었지만 지쳐서 잠이 들면 꿈속에까지 나타나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러기를 일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점차 건강이 회복되었습니다.

저는 일년을 고생했지만 친구는 영원토록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제가 친구에게 담대히 빨리 복음을 전했어야 했는데….

그래서 지금은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이 너무 많아 저 잃어진 영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시려오고 애통함을 금할 길 없습니다. 거듭난 자들은 누구나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몇 년 사이로 여섯 분이 제 곁을 떠나셨는데 모두 암으로 가셨습니다. 세 분은 주님을 영접하여 주님 곁으로 가셨지만 세 분은 어둠의 세계로 가셨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신 세 분 중에 두 분은 제 친구들 아버지이셨고 한 분은 제 고객이셨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가신 분은 제 아버지, 큰아버지, 외삼촌이십니다.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가신 세 분께는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아니 너무너무 죄송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제가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결혼한 불신 남편이 있습니다. 남편은 땅의 것만 바라보고 땅의 이야기만 할 때 제 마음은 얼마나 많은 공허함이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당시에는 주님을 믿노라고 고백하고 침례까지 받았는데 지금 분별해 보면 정말 참 믿는 자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많은 시련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갑작스런 사고로 오른쪽 뇌를 다쳐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그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그 때 한 분의 자매님도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상태가 양호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은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돌아가셨고 제 남편은 회복이 되어 갔습니다. 그로부터 5년이 넘게 남편 간호를 하게 되었는데 남편은 사고 이후로 점점 폭꾼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을 살벌한 분위기로 이끌어 갔습니다. 저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눈물의 세월을 오직 주님만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위로해 주지 않으셨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시편 말씀들을 참 좋아했는데 특히 시편 42 11절 말씀으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남편은 늘상 머리 속이 텅 비었다고 하는가 하면, 머리 속에 벌레가 기어 다닌다고 하고, 또 머리 속이 냉장고처럼 차다고, 머리 속에 폭탄이 들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럴 때면 자신을 억제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였고,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화가 치밀어 올라 이것 저것 집어 던져도 시원치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그러할지라도 저는 저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왔습니다. 남편에게, 시댁 식구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나의 조심스럽지 못한 행동이 덕이 아니될까 하여 매사에 조심하며 인내했습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강한 자에게 약해지고 약한 자에게 강해지는 인간의 덧없는 모습만 보였습니다.

참으로 고통스런 인생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가 평안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이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이사야 58:11).

불순종한 저의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주님께서 얼마나 눈물을 흘리셨을까를 생각하니 참 마음이 아픕니다. 주님께서 용서는 하셨지만 잘못 택한 일에 대한 책임은 제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었습니다.

세월이 조금 지난 후에 남편은 몸이 회복되면서 점차 어둔 세상 깊숙히 빠져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술과 노름으로 방탕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께서 또 병이 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직후입니다. 그 때 어머니께서 저를 쳐다보셨는데 어머니의 두 눈에서 시퍼런 광채가 섬뜩하게 흘러나왔습니다. 저는 심장이 덜컥 멎어버리는 줄만 알았습니다. 이 후부터 어머니는 저와 눈이 마주치면 저를 외면하시고 다른 곳을 보시더군요. 어머니께서 또 입원하셨습니다. 이제는 저희 형제들이 아버지 대신 직접 어머니 병수발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평생동안 어머니로 인해 얼마나 외롭고 힘겨운 삶을 사셨는지 짐작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눈물을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남편의 병 간호로, 어머니의 병 간호로 마침내 저도 육신이 망가져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병실에서 어떤 할머니께서 저의 목을 보시더니 빨리 진찰을 받아보라고 하시더군요. 그제서야 저는 제 목에 불룩하게 튀어나온 혹을 발견했습니다. 갑상선 암이었습니다. 수술을 받고 방사능 요법도 끝냈지만 평생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하는 몸이 되어버렸습니다. 수술 후 몸은 더욱 약해져 호흡곤란 증세가 왔고 심한 불면증과 피로와 또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아 벙어리가 된 채로 1년 가량 보냈습니다. 그 후 조금씩 말은 하게 되었지만 3,4년을 죽음 같은 고통을 겪으며 살았습니다.

저는 호르몬제를 끊으면 서서히 몸이 죽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호르몬이 우리 인체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 때 처음 느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 보이지 않는 호르몬의 역할을 하는 자는 과연 누구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부족한 제가 어디에 필요하신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낫게 해주셔서 지금은 참 건강합니다. 남편도 많이 건강하고 요즘은 덜 방탕하게 살아갑니다.

 

제가 여러 지역모임을 방문해 보았습니다. 꿈속에서 조차 만난 적이 없던 성도님들을 만나 뵈니 주님을 만난 듯 기뻤습니다. 여러 형제님, 자매님들께 참 감사드립니다.

만난 분들 중에 한 사람을 기억합니다. 전남 어느 모임의 성도님의 막내둥이 찬우의 모습입니다. 여섯살 난 찬우의 입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말들이 나왔을 때 저는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참 찬우 어머님 건강이 어떠하신가 궁금합니다. 주님 안에서 이렇듯 여러 성도님들을 만나 뵈니 참 감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일산교회 전 성도님들께 또한 감사드리며 주님의 이름으로 참 사랑을 고백합니다.

이 글은 저의 부끄러움들입니다. 몇 번이나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주님께 순종하며 이 글을 쓰니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우리 사랑하는 가족들이 속히 주님 품에 들어오기를 기도하며 함께 손잡고 주님 맞으려 가기를 기대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려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아가서 8:14).

주님 안에서 기뻐 날뛰는 어린 사슴과도 같이 저와 1년 동안 교제해 주신 아름다운 자매님을 또한 생각합니다. 이 시간 저와 함께 하여 이 글을 읽어주신 형제, 자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들판에서 마음껏 뛰노는 노루처럼 주님 안에서 기뻐 뛰며 화평과 기쁨을 맘껏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땅에서 뵙지 못한 분들은 저 천국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며 누가 많은 상급을 받을지 우리 서로 선한 경주를 경주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제일 꼴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평안을 빕니다.

 

(1999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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