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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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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11. 18:38 횃불/ 2000년

영원한 구원(13)

H. P. 바커

영원한 보증은 방종한 삶을 살게 하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신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가르치는 것은 방종한 삶을 살게 만드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만약 신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미 받았다고 가르친다면 그 때부터 신자들은 삶이야 어떻게 하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반대입니다.

L.S. 차퍼(L. S. Chafer)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보증을 깨닫는 것보다 성결한 삶을 북돋아주는 것은 없다. “

영원한 구원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방종한 생활을 하게하여 죄를 짓도록 한다는 주장은 신자가 받는 놀라운 계시와 그 계시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한 생각입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내적으로 임하는 신령한 새 성품을 사실상 무시한 생각입니다. 또 그것은 생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새로운 기질과 성향을 무시한 생각입니다. 또 그것은 너희 속에서 역사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부여하시는 능력을 무시한 생각입니다. 또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을 양육하시기 위하여 세워놓으신 하나님의 계획에 관한 모든 계시를 무시하고 도전하는 악한 생각입니다.

M. R 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만약,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죄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은혜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진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5:13)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에 대하여 죽었고( 7:4: 2:19).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자유가 죄를 짓게 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자유는 우리로 하여금 사랑 안에 있게 하고 서로 섬기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2:11,12).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도록 양육하는 것은 정죄를 받는다는 위협이나 율법이 아닙니다. 또 그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나 거룩하심도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도록 양육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은 곧 값을 받지 않고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며 우리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우i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10)

여기에서 은혜와 행위의 순서를 주의깊게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선한 행위로 구원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 말씀 바로 앞에서( 2:8,9)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구절에서 선한 행위를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가운데 하나가 구원받은 자들로 하여금 선한 행위를 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위대한 진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사실이며, 이 새로운 피조물은 새로운 성품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그가 구원을 받기 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죄 가운데서 즐거움을 찾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구원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협 때문에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은 그 결과로써 선한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즉 그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결과로 선한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느니라”(요일 3:9,10),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은 전적으로 죄를 지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분별은 요한일서 1:8,10 말씀에 전적으로 위배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계속적으로 죄를 지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신자는 어찌하여 죄를 계속해서 짓지 않습니까? 그것은 그가 구원을 놓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하기 때문입니다(죄로 말미암아서 하나님의 씨가 신자 안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신자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씨로 말미암아 신자가 계속하여 죄를 짓지 못한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누구든지 계속적으로 죄를 범하는 사람은, 다시 말하면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계속하여 죄를 짓지 못하는 것은 구원받은 데서 오는 결과인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구원을 얻는데 필요한 조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지 아니 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만약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죄를 범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또 예수님이 신자를 계속하여 보호하여 주시고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구원을 놓치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6:12-15)

죄와 불의를 행하지 말라는 여기의 호소는 구원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협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되었다는 사실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죄가 그리스도인을 지배하지 못하는 이유가 구원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15절 말씀에서 바울은 오늘날 신자의 영원한 보증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흔히 제기하는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이것은 우리가 흔히 들은 질문입니다. 바울은 영원한 구원을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이와 같이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그럴 수 없느니라고 스스로 답하고 있습니다.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말하는데 있어서 성경이 거한다는 말을 사용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교제한다는 의미에서 사용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사람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대로 행하게 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의 소유가 된 의로운 생활을 전개하는데서 나타나는 결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6:14),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6:5)

내가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또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A. J. 고든의 말에서 우리는 이 진리의 뜻을 분명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육신은 성령을 거스려 싸운다. 그리고 육신은 양심의 평화를 파괴한다. 또 이 육신은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세워놓은 모든 언약을 파괴한다. 그런데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이 원수, 즉 육신은 죽음이라는 타격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몸을 살인자들에게 내어 주실 때 이 육신에 못을 박았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은 정과 욕을 가진 그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나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은 육신은 그 잃어버린 지배력을 다시 행사하려고 발버둥치고 있기 때문에 육신이 무덤에 묻히기 전까지는 우리가 이 육신의 세력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이미 구원받은 자로 간주하여 주신다. 우리는 육신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성령에 속한 사람이다. 죄에 물든 우리 옛 사람은 심판에 의하여 육신이 사형선고를 받고 그대로 처형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오류가 없는 성령의 진리를 좇아 나타난 말씀에서 이 육신의 죽음을 가리킨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다음 호에 계속>

 

(2000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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