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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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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Sweetnam

그분의 십자가의 수난 전날에, 주 예수님과 그분의 사도들은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밤은 어두웠고, 사악한 세력들이 활동 중이었습니다. 불과 몇 시간 후면 구주는 체포되실 것이며, 사형집행의 장소로 이끌려 심문을 받고, 유죄판결을 받으며, 몹시 고통스러운 죽음 즉 거절과 치욕의 죽음을 겪으실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모인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가장 충격적이고 힘든 시간과 날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주 예수님은 그들을 안심시키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요 14:1).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러한 말은 최악의 미사여구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말씀하셨던 분은 주님이었으며 그 다음 순간에 그분의 안심시킴에 대한 의미의 그 자원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사람들, 기도, 보혜사, 그분의 임재와 평안, 준비된 장소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펼치셨던 대부분은 익숙한 진리의 새로운 측면을 소개하셨지만 그분이 제자들에게 하셨던 약속은 독특하고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내가 가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라고 그분은 선언하셨습니다.

 

이러한 약속의 말씀으로 구주께서는 그분께 곧 닥쳐올 그분 자신에 의한 개인적인 돌아오심의 큰 소망을 소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어느 날 그분의 능력과 영광으로 나타나셔서 원수들을 정복하고 그분의 왕국을 세우실 것을 잘 알고 있었겠지만 이 돌아오심은 그 즉시성과 목적에서 독특하고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휴거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용어는 성경에서 찾을 수 없지만, 그것은 사건의 본질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우리는 기쁨의 전달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지만, 라틴어 단어로 그것의 어근은 “가로채기”의 의미이며, 원래 침략군이 갑자기 덮쳐 사람과 재물을 가로채 가는 행동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그분의 백성을 대적의 영토에서 옮기기 위한 주님의 다시 오심이 얼마나 갑작스럽고 신속한지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약속에서 강조되는 것은 이것이 갑작스러움입니다. 그분이 설명하는 그 돌아오심은 임박하다는 것이며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분은 휴거가 일어나기 전에 단 한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며 즉 그분의 떠나심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늘로 올라 가신 그 순간부터, 그분의 돌아오심을 위한 모든 전제 조건은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돌아오심의 임박함은 본문의 어법에 의해 확인됩니다. “내가 다시 올 것이다”로 번역된 동사구는 현재 시제이며 “나는 다시 오고 있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미래의 어떤 먼 시점에 그분의 다시 오심의 약속으로 그분 자신을 조장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그들이 지나간 가장 어둡고 매우 힘든 날들조차도 언제라도 그분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들을 자신에게로 다정하게 받아들일 목적을 가지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 소망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남아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돌아오심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으며, 이 빛나는 소망은 우리 삶의 모든 측면을 통해 그 변화의 빛을 비춰야 합니다.

 

요한복음 14:2에서 주님이 드러내셨던 휴거의 진리는 바울의 서신에서 발전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서에 기록한 서신에서 그가 휴거의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데살로니가인들은 이미 죽은 신자들이 휴거를 놓쳤다고 염려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소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않도록 확신을 위해 썼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이 “주의 말씀으로” 받았던 휴거 과정을 설명함으로, 그는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결코 잠자는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15절)고 강조합니다. 그는 우리가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휴거의 가장 상세한 설명을 제공함으로 이것을 증명합니다.

 

바울이 설명하는 사건들은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같은 극적인 사건입니다. 이 하늘의 부르심은 지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들리지도 않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의 귀에 들릴 것입니다. 먼저 죽은 자들이 일어나고 그 후 살아있는 자들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기 위해” 올라갈 것입니다.

영적인 영역에서도 이 영광스러운 사건의 영향력은 엄청날 것입니다. 구주께서는 사탄의 영향력 아래 있는 땅에 밀어닥쳐 승리할 것이며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엡 2:2) 사탄을 무력하게 함으로 그리스도는 그분이 사랑하셨고 사탄이 미워했던 사람들의 대열을 지휘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모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낼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공유하도록 변화될 것입니다. 이러한 공중에서 은혜는 정점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갈보리에서 자신의 회복할 수 없는 패배의 쓴 맛을 다시 맛보게 될 것입니다.

사건의 드라마에도 불구하고, 구속(救贖)된 자들의 마음에서 가장 큰 감동은 친밀감입니다. 그분께서 직접 오셔서 자신 것을 찾으십니다.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모으려는 시기가 왔을 때, 그분은 “그가 자기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의 선택받은 자들을...모을”(막 13:27)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교회의 휴거를 위해, 그분의 신부의 부르심을 위해, 어떤 사절로도 흡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 자신께서” 우리를 위해 오십니다.

 

데살로니가인들은 휴거의 과정에 대해 혼란스러워 했지만 그분 자신을 위한 그리스도의 돌아오심의 진리는 그들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휴거의 핵심적인 중요성은 데살로니가전서 1:10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일꾼과 파수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참 하나님을 섬기며”,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10절)리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이 이것을 상세하게 진술함은 데살로니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본질에 대해 의심했기 때문이 아니라 휴거와 관련된 보존을 강조하기 위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오실 하나님 아들은 “다가올 진노로부터 우리를 건져 내실”(10절, 다비)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이 그리스도를 신뢰했기 때문에 그들이 결코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가 놀랍습니다. 오히려 그는 예수님이 환난에서 그들의 구주이심을 상기시키고, 칠 년 기간 하나님의 진노가 고통의 격변으로 땅에 쏟아질 것입니다. 그 끔찍한 날들에 교회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에 이르도록 정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도록 정하셨느니라”(살전 5:9). 에녹처럼 우리도 심판이 내리기 전에 낚아채어져 다가올 진노로부터 보존될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휴거를 말할 때, 그가 강조한 것은 사건의 능력입니다. 그는 그들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신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을 설명합니다. 하나를 의심하는 것은 다른 한 편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의 모본과 증거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능력은 죽은 자를 위할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자에게도 영향을 끼칩니다. 사도는 초기 시대에 숨겨졌던 비밀을 전개하고 있으며 그 신비는 휴거의 진리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 15:51-52). 어떤 강력한 하나님의 영향력인 부활의 능력은 그 순간에 있을 것입니다 -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나팔 소리에, 순식간에” 모든 결점과 죽음의 어두운 지배의 모든 자취는 말소될 것이며, 우리는 우리의 구주의 영광을 함께 나눌 것입니다.

 

휴거는 귀중한 진리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귀중하고 그리스도께도 귀중하고 그분께서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을 그 순간까지가 아니라 그분이 계신 그곳에서 우리가 그분과 함께 있을 수 있고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요 17:24). 이것은 또한 실제적인 진리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해 오시는 그 소망, 그리고 그분이 언제라도 오실 수 있다는 의식이 우리의 우선 순위, 우리의 가치, 그리고 우리의 행동을 형성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매일을 그분을 위해 드려야 하는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가도록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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