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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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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24. 14:21 횃불/ 2000년

환난 중에도 즐거워함

윌리암 켈리 지음 / 이종수 옮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5:3).

 

사도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모든 믿는 차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1:16).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우리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믿음으로 얻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며, 이러한 특권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러한 복이 전적으로 무가치한 우리에게, 그러나 믿는 우리에게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이르기까지 펼쳐져 있다.

성령께서 이에 더하실 복이 있을까?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상고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을 설명하고자 하신다.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축복하신 기쁨으로 충만하다. 하나님은 사람을 축복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온 마음을 따라 사람을 의롭다 하시며 축복하실 수 있으시다.

당신은 그러한 하나님, 그리고 그러한 구주를 지금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선하심이 당신을 회개로 이끌고 있는가? 아니면 다만 당신의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쌓고 있지는 않는가?

사람의 죄, 바로 당신의 죄가 사랑으로 보내심을 받아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하였고, 그 극점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이 패역한 세상을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혜로 이 극악무도한 죄에 응답하셨고, 이제 자기 아들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십자가 사역을 통해 원수 된 자들에게 증거하시되, 믿는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바로 당신임을 아는가! 하나님은 당신이 잃어버린 바 된 자라고 선언하시고,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당신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시는 것( 2:8)이 당신 눈에는 작게 보이는가? 아아!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말씀을 들으라. 하나님은 그것을 복음(비록 그 자체로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지만, 경건치 아니한 자를 정죄해야만 하는 율법과 대조를 이루는)이라 부르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대사들로 부르셔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나님과 화목할 것을 증거하도록 명하셨다.

사람은 스스로는 결코 빛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다. 이같이 큰 구원을 더 이상 등한히 여기지 말라. 행여라도 그러한 일이 여러분에게 임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성령님은 결코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이나 말을 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성령님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두신 믿음을 주시기 위해 애쓰신다. 이는 누구라도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믿는 자라면 만물이 다 여러분의 것임을 알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다”(고전 3:22,23).

그러므로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또 우리가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구속(redemption)으로 말미암아 영광에 이르게 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 같은 이 세상을 통과하는 것이다. 때때로 믿는 자도 자기 지혜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때로는 극심한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지라도,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해 주신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신다. 이는 성령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고 말한 다음, 이어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라고 덧붙인 후에 이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삶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애굽에서 어린양의 피를 통해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고, 더 이상 세상의 노예로 있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가 인도함 받은 것은 고난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위에 계시고 우리가 만물이 그에게 복종한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고 해서 투덜거릴 필요가 있는가?

지금 그리스도는 영광과 존귀로 관 쓰셨고, 사단은 여전히 이 세상의 신이며 임금으로서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의대적이며, 믿는 이들의 충성에 비례해서 대적하고 있다.

로마서 5 3절에서 5절에 보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훈련을 통한 연단과정이 우리 영혼의 유익을 위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연단과정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후에 뒤따르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회피하고자 하는 옛 성품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종치 않는 자녀들을 다루시는 법을 알고 계신다. 따라서 꼭 하나님은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며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신다. 그러나 징계가 하나님의 최종 목적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되, 마치 아브라함에게 하셨듯이 하고자 하신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라”( 1:12).

따라서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벧전 1:5-7)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로마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 영혼의 현재적 열매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이루는 줄 앎이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된 것을 의심하게 되면 이러한 연단과정은 방해를 받게 되고, 따라서 우리는 평안을 잃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영적 순례의 길을 출발하게 되면, 우리는 구속의 빛을 통해 우리가 현재 받는 고난을 바로 이해하게 되고,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4:5) 하나님,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된다. 실로 예수님은 우리 범죄함을 인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다. 따라서 우리가 받는 환난을 하나님의 자애로운 손길 가운데 맡기고 견디면 우리 삶에 오래 참음과 인내라는 열매가 맺히게 된다.

또한 인내는 연단을 (이룬다),” 이 단계에서 우리가 고난 안에 담긴 모든 것을 다 경험한 것이 아니다. 그 하나하나가 로마서 5 12절부터 8장에 이르기까지 펼쳐져 있다. 여기 인내는 하나님이 뜻하신 바를 이루게 한다. 우리가 인내하지 못하는 한 하나님의 뜻 밖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인내소망을 이루게 한다. 우리 심령(spirit)의 고요함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 증거를 통해서 우리는 혹은 우리의 눈은 습관적으로 위를 바라보게 되고, 따라서 세상과 현재의 고난을 넉넉히 이기게 된다. 따라서 하나의 진리로 받아들여진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은 더욱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우리의 위로가 되고, 실제적인 격려가 된다. 그러므로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소망 그 자체가 가진 하늘 광채와 복된 이유로 인해서, 곧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담대히 말하는 바는 우리 은혜로우신 하나님도 믿는 자에게 이보다 더 큰 기쁨을 주실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복되신 주님도 육신에 계실 때에 성령님을 받으셨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 죄가 하나도 없으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드리고자 하셨다. 하나님의 성령이 주님이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자 하실 때, 주님의 인격의 완전함의 표식과 증거로써 주님 위에 내리셨고 머무셨다. 인자이신 주님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치신 것이다. 우리도 성령님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을 통해 우리는 이미 물로 깨끗이 씻김을 받은 아론의 아들들에게 피를 뿌린 후에 기름을 발랐던 것을 보게 된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피 없는 기름부음을 받았고( 8:12), 그 후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모두 피를 발랐다(23,24,30). 이 과정이 참 형상이 아니라 하나의 아름다운 예표이다(shadow). 그리스도가 참이요 실제이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구속의 역사를 통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면 그리스도의 오실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게 되는 것에 놀랄 필요가 무엇인가? 이러한 소망이 부끄럽지 아니한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쏟아 부은 바 되었기 때문이다.

 

2000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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