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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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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31. 12:08 횃불/ 2000년

영원한 구원(23)

H. p. 바커

영원한 구원을 반대하는 자들이 흔히 인용하는 성경 말씀들(9)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믿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전 15:1,2).

성경 어느 곳에서도 사람이 그 무엇을 굳게 지키므로 죄의 영원한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는다는 그런 말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죄의 형벌로부터의 구원은 이미 완성이 되어 있는 것이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어떤 과정이 아니라고 말씀되어졌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가 죄의 세력에서 구원받는 일에 있어서는 그의 생애에서 계속적인 과정을 밟아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2 말씀에서는 구원을 과거시제로 서술하였다가 다시 현재시제로 서술했습니다. 1절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받은 것이요라는 말은 과거시제로 표현되었습니다. 이것은 희랍어에 있어서 부정(否定) 과거형이며 직설법 능동태입니다. 이것은, 저들이 이미 죄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2절에서 바울은 다시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하므로 구원을 현재시제로 서술했습니다. 이 말은 희랍어에 있어서 현재형 직설법 수동태입니다. 이것은, 지금 현재 어떤 행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저들이 만일 바울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2) 지금 죄의 세력에서 구원을 얻는도중에 있는 것이고 은혜 안에서 자라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해 가고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당시는 오늘날 우리가 신약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우리들이 신약성경을 통하여 영적으로 자라는 것과 같이 자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보내어 말씀을 전하도록 하신 사람들의 말을 굳게 지키므로(기억하므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을 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거나 설교를 듣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의 고린도교인들은 바울이 전한 것을 굳게 지키지 아니하면”(기억하지 아니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 끝에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저들의 신앙이 진실한 것이었다면이라는 말입니다. 저들이 진실로 구원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2:13)

여기에서도 역시 구원을 현재시제로 서술하여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항으로 말했습니다. 성경이 죄의 영원한 형벌로부터의 구원을 말할 때는 언제나 이미 신자들에게 완전히 성취된 사실로 말했습니다( 2:5,8, 딤후 1:9). “구원이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총괄적으로 내포되어 있습니다. 구원이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위하여 이미 성취해 놓으신 모든 일과 또 하나님께서 현재 진행하시고 계시는 모든 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앞으로 영원히 하실 모든 일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신자들은 죄의 형벌로부터는 이미 영원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현재 일상 생황 속에서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구원은 계속적으로 받고 있는 것입니다(은혜 안에서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신자들이 죄의 세력에서 온전히 구원을 받는 날이 올 터인데 그 날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바울이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으로 성장할 것을 촉구한 말입니다. 이것은 현재시제에 속하는 구원입니다. 즉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케네츠 S. 우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하여 선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그런 의미는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유에는 두 가지다. 첫째로 여기에서 언급된 사람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하셨나니”( 3:5)라는 교훈이 성경에 분명하게 나타나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2:12의 말씀은 이미 완성된 구원을 다시 성취하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희랍어를 조사해 보면 그런 의미는 찾아볼 수 없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에 있어서 이루라는 단어는 영어로 산수문제를 풀어나간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희랍어에 있어서도 바로 이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종 목표에 도달하려고 한다든지 또는 결론에 도달하려고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2:12)는 말은 그 전후 관계를 생각한 후에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빌립보 성도들이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데 있어서 바울의 거취(去就)는 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바울이 빌립보성도들과 함께 있었을 때는 많은 교훈과 실천과 권면을 통하여 그들에게 감화를 주고 은혜 안에서 자랄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이제 바울이 그들을 떠나있게 되므로 그들은 스스로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들은 매의 노를 젓는 일을 스스로 배워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은혜 안에서 자라가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제시하였는데 이 때 바울은 마음속으로 성화(聖化)를 생각했던 것이다. 빌립보 성도들은 칭의(稱義)의 과정을 밟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장차 영화(榮華)를 영원히 누릴 사람들이었다. 바울이 여기에서 말한 구원은 그리스도를 닮아 성장해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바울은 성도들에게 은혜 안에서 자라 그리스도를 닮으므로 최종적인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권면한 것이다. 요한일서 3:2,3을 보면 성도들이 장차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이 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하므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16).

여기에서도 역시 구원을 현재시제로 서술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이 구절에 나타난 구원은 책의 형벌로부터의 구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구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자신을 삼가 바른 교훈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므로 자기 자신과 듣는 자들을 영적으로 자라도록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너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7:12).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여기 이 말씀은 유다가 구원을 받았다가 그 구원을 놓쳤다는 사실을 말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자들을 보존하고 지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지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들을 지켜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6:39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또 요한복음 18:9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함이러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들 중에는 구원을 놓치게 된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가 아닙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자녀에 속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원하신 예지(豫知) 속에서 창세 전부터 유다에 관하여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고 지적하신 바 있습니다. 주님은 자기를 팔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습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64). 그리고 또 예수님은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는 마귀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6:70,71). 유다는 진실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유다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택함 받기는 하였으나 구원받은 자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를 택하시기 전부터 그가 자기를 배신할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17:12에서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을 지키셨다는 그 말씀에서 유다는 제외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신 자들 중에는 한 사람도 구원을 놓친 사람이 없습니다. H. A. 아이언사이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어떤 사람을 예수님에게 주실 때는 언제나 역사(歷史)와 영원 속에서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렇게 예수님에게 주어진 사람은 구원을 놓치게 되는 일이 없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1:6).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일컬어 성도들의 인내라고 말하나 나는 이 사실을 구세주의 인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들은 내가 지키었나이다’( 17:12). 만약 내가 내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면 나는 지탱해 나갈 희망이 없다. 그리고 언젠가는 무슨 일이 발생하여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놓치게 하고 구원을 놓치게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내가 주님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붙잡아 주셨으며 나는 그 주님을 의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 무엇도 신자들을 주님의 손에서 빼앗아갈 수 없다. 나는 이 말씀을 통하여 큰 위로를 받고 있다. 예수님께 주어진 모든 신자들 가운데 마지막 한 사람이 안전하게 하늘나라에 도착하고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진술을 시작하실 때 예수님은 선택받은 온 교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은 내가 지키었나이다. 저희들은 하나도 구원을 놓치지 아니하였나이다: 당신은 여기에서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 줄로 안다고 할지 모르나 그 날이 오면 유다와 같이 그렇게 제외된 사람은 정말로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이 아니었음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1:25)

이 구절에 관하여 죤 R. 라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라는 말에 유의하기 바란다. 유다는 자기의 직무를 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유다가 구원을 버렸다는 암시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사림이 사도로서 예수님과 같이 다닐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는 사실은 이상하지 아니한가? 그러나 유다의 배반은 이미 구약에서 예언된 사실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1:16,20에서 이 사실을 지적했다. 그 뿐만 아니라 유다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딤후 3:5)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예수님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 많이 나타날 것을 경고하셨다. 마태복음 7:15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이가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또 마태복음 7:21,22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리고 또 유다서 4절에 다음과 같은 경고의 말씀이 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이것으로 볼 때 교회 안에도 회개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이들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유다라는 데에는 별로 놀라워할 것이 없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며 이들의 대표적 인물도 역시 가룟 유다라는 것이다. 이들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지도자들이며, 다른 사람을 기만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기를 기만하고 있는 그런 지도자들이다. “<다음 호에 계속>

 

2000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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