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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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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31. 12:10 횃불/ 2000년

정결한 그리스도인

(에베소서 5:1-7)

H. A. 아이언사이드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여하는 자 되지 말라”(5:1-7).

 

이 편지를 받은 교회가 위치하고 있던 도시는 가장 부도덕한 죄악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죄악 속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하는 것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화의 그럴듯함과 더불어 온갖 죄악이 이 땅의 도처에서 저질러져서, 모든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몸서리를 치게 하고 또 그 모든 죄악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가까이 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합니다.

사도가 무엇에 근거해서 깨끗한 삶을 요청하는지를 주목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러므로라는 말은 물론 앞에서 우리에게 말한 내용 때문입니다. 앞에서 그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통해 깨끗한 삶을 살 수가 있다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하나님과 함께 화목하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시고 그분에게 지우셨다는 것,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죄를 지시고 수치를 당했을 때 그 거룩하신 분은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을 참고 견디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로 인하여, 이제 우리는 이 놀라운 구원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본받는 자로 번역된 단어는 사실상 모방하는 자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방하는 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을 모방해야 합니까? 어떤 이는 구약의 어떤 구절을 연상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모든 문둥병 환자를····진 밖으로 내어 보내라”( 5:2)고 하셨습니다. 즉 어떤 악을 행하거나 또 전염병을 가진 모든 자를 진 밖으로 내어 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직 전염되지 않은 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뿐 아니라, 또한 그 이유가 율법에 이렇게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19:2).

율법 시대는 모든 육체적 불결이 저주받은 것으로 여겨져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처럼, 오늘날도 우리가 거룩하신 이와 교제를 나누려면 육체와 영혼의 모든 불결한 것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통하여 그분을 닮는 것, 생각을 정결케 함으로써 그분을 닮는 것, 그분의 자녀다운 깨끗한 말을 함으로써 그분을 닮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요청되는 삶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불순종하고, 가문의 이름을 더럽히고,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어떤 짓을 할 때가 있었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자녀들이 범하는 가장 작은 죄도 성령을 근심하게 만듭니다.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되려고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본받는 자로서 그분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인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물론, 이 구절은 번제에 관한 것입니다. 레위기 1장에 기록되어 있는 번제에 관한 내용에서, 단순히 범죄한 어떤 죄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마음이 감사로 충만하고 또 자신의 사람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리기를 원하기 때문에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를 드리는 자를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에도 단순히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다른 어떤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도 철저하게 그를 모욕한 이 땅에서 그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배반당하신 마지막 날 밤에 제자들이 그분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을 때, 주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14:31).

그리고 그분은 죽으러 나가셨습니다. 왜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참고 견디셨습니까? 그분의 첫 번째 목적은 아버지의 영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첫 사람과 그의 뒤를 이어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이 땅에서 절대적으로 거룩한 삶을 산 한 사람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5:30).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그분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26:39)라고 기도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우리는 듣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번제입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흠 없는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우리를 위해 향기로운 제물로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구속을 받았으므로 언제나 거룩한 말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민감한 사람은 다음 구절에서 인간의 마음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더러운 부패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용어들을 보고서는 언제나 놀라게 됩니다. 이런 용어들이 사용된 까닭은, 이 모든 것들을 통하여 우리를 구속하신 분과 우리가 지금 동행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가늠해봐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려는 것입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탐욕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여기서는 돈에 대한 욕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색욕을 말합니다. 그것은 성적 만족을 추구하는 더럽고 구역질 나는 욕망이며, 인간의 마음이 범할 수 있는 가장 수치스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이런 것들에 대한 경고가 주어질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속한 남자들과 여자들에게 있는 것과 똑같은 부패한 본성이 모든 성도들에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성품을 받았고 또 그의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내주하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옛성품의 가장 작은 행위에 대해서도 경계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한 길로 향하는 그의 첫 걸음을 깨닫지도 못하고 죄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 이런 것들은 우리 주위에 만연되어 있습니다. 현대의 문학은 이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악한 것은 자기들의 수치를 오히려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현대 작가들은 매우 솔직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죄를 사실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

그렇습니다. 그들이 그것에 대해 말하는 방법이 저속하기 이를 데 없지만 매우 솔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것들이 인간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투로 말함으로써 그것의 죄를 희석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 주님께서 자신의 재림 직전에 있으리라고 예언한 그 모습에 너무나 빨리 도달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17:26).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그러하리라”( 17:28,29).

노아의 때는 크게 부패하고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였고,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는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부도덕한 시대였는데, 지금 우리는 이와 흡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모든 문명은 인간의 마음의 성향을 조금도 변화시키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이 모든 악한 성향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으로 경계를 하고 그 다음에는 불결한 생각을 내어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불결한 생각에 빠져들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탐욕을 경계해야 합니다. 순결한 어린 소녀의 인생을 파멸로 이끄는 것보다 더 잔인하고, 더 악하고, 더 추악한 죄악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누군가가 착하고 순결한 그 소녀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놓았다면, 그것은 귀하고 귀한 딸을 곱게 키우려 하던 그 부모의 가슴을 찢어놓은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개입하여 행복한 가정을 파괴시켜 한 쪽이나 다른 쪽을 곧고 바른 삶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시도보다 더 무섭고 악한 어떤 행위가 있을까요?

그러나 이런 모든 일들이 도처에 만연되어 있습니다. 사도께서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이 바로 이것에 대해서입니다. 슬픈 사실은, 사람들이 이런 것들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4절 말씀을 주목해 보십시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여기에 나오는 모든 말들에는 주의 깊은 고려가 필요합니다. 사도는, 사람들이 유쾌한 생각을 주고받고 또 명랑하고 자연스런 유머를 발산하는 밝고 즐거운 대화에 대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순진한 웃음을 자아내는 그런 말들을 전혀 하지 않는 엄숙하고 시무룩한 사람이 되기를 우리에게 요청하지 않습니다. 너무 거룩해서 웃지 않는 사람에 대해 나는 오히려 염려가 됩니다. 밝고 활기찬 웃음은 건강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웃도록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다른 피조물과 다른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웃을 줄 아는 원숭이를 발견했습니까! 그들은 그 유인원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백성들에 대해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분의 뜻을 거스려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을 비웃으십니다. 여기서 사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경계해야 할 그 무엇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죄악들에 대해 그는 경고해 왔고 또한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5:3).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도 불결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들에 빠졌다는 얘기를 전하는 것조차도 불결합니다. 하나님의 종들로서 우리가 이런 것들을 다뤄야 한다면,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마음과 가슴에 그 영향력을 남겨 놓기 때문입니다. “누추함”, 즉 음란한 말, 음란한 일들에 대한 말을 하지 마십시오.

어리석은 말”, 실제로 이것은 불결한 것들에 대해 말하는 익살, 희롱 등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는 사람들, 추잡한 농담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뜻이 모호한 말과,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방을 홍당무가 되도록 만드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활기있고 멋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문자적으로 그것은 어리석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바보임을 드러내는 셈입니다.

희롱이라는 단어는 실제로는 상스러운 말을 뜻하는데, 다른 말로 하자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 될 어떤 희롱을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정결해야 하며, 그리스도인들은 생각에서나, 말에서나, 행동에서 복되신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 대신에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말은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말에서는 분명하게 그 뜻이 드러나지 않는 재미있는 말의 표현이 헬라어에는 있습니다. ‘기롱하는 말이라고 번역된 단어와 감사하는 말로 번역된 단어는 아주 똑같은 음절로 시작됩니다. ‘기롱하는 말이라는 희랍어는 유트라팔리아(eutrapalia)이며, “감사하는 말이라는 헬라어는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입니다. 사도가 한 단어를 다른 단어와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지를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유트라팔리아가 아니고 유카리스티아입니다. , 희롱의 말이 아니라 감사의 말이고, 부끄러운 말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한 말이며, 더러운 말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는 말입니다.

언젠가 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참석한 일이 있는데, 우리는 아주 헌신적인 어떤 신자의 아름다운 집의 손님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가 아름다운 응접실에서 교제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어떤 숙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이제 우리는 식사준비를 도우러 가겠습니다. “

그래서 거의 열 다섯 명 정도의 남자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도착한 어떤 사람이 이제 숙녀들께서 나가셨으니, 제가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말할 기회를 갖기 전에 나의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형제여,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여기에 숙녀는 한 분도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그분은 가장 결백한 숙녀보다도 더 민감한 분입니다. 당신의 얘기가 그분에게 적합한 것입니까?”

그 사람은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형제여, 그 책망을 달게 받겠습니다. 다시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신자가 여기에 기록된 어떤 것들에 굴복하게 되면,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근심하게 됩니다.

만약 여기에 나오는 그런 가르침을 우리가 거부하고 정결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되면, 우리는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도는 여기서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있는 사단의 자녀일 뿐입니다.

 

너희도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라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뜻하리라.”

왜 그는 우상숭배자들을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 연결시키고 있습니까?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숭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의 가슴을 찢어놓거나 말거나 거기엔 상관이 없습니다. 그들은 젊은이들의 삶을 파멸시키고 가정을 깨뜨리든 말든 거기에 개의치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배만 만족시킬 뿐입니다. 그는 오직 한 신을 섬기는데, 그 신은 자기 자신입니다. 이런 자가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한다면 그 얼마나 모순된 일입니까!

가슴이 다 썩어버린 수 백 명의 젊은 여성들이 나를 찾아와서 말했던 배신의 이야기들, 그들의 높은 이상이 점차 좌절당하게 된 끔찍한 이야기들,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되면, 그 배신자들이 받아야 할 가장 큰 형벌은 그들이 그런 얘기들을 언제나 들어야 하고 거기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수많은 부모들이 한 때 단란했던 그들 가정의 기쁨과 그들에게 있던 사랑에 대해 말하고 또 어떻게 그들이 죄에 빠져들게 되었으며 그들의 가슴이 찢어지게 되었고 그리고 자녀에게서 더 이상 기쁨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탄하며 우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순결한 소녀들을 배신한 그런 자들을 고해실에 앉혀서 그런 얘기를 여러 해 동안 듣게 한다면, 그것이 가장 적합한 형벌일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때때로 교회에 나갑니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교회를 구실로 삼아 악하고 죄악된 행위를 계속하지 않는 것처럼 가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여하는 자 되지 말라.”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만 그들과 교제는 나누지 말아야 하며 그들의 악한 행위를 묵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고 깨닫게 될 때까지는 자기들을 불결한 나환자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하십니다. 이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할 것이며 다른 이들의 유익을 추구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5:2).

여러분들은 만약 어떤 사람들이 이런 것들에 빠지게 되면,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죄를 깨달을 때까지, 그것을 고백할 때까지, 그리고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면서 거룩하고 참되신 하나님께 뉘우치는 마음으로 나아오며 그분의 속죄 사역을 의지할 때까지는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을 의지하면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마음에 새로운 심령과 새 삶을 주심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리고 순결과 선함을 사랑하는 자기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2000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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