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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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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12. 17:37 횃불/2001년

하나님의 교회 - 분리

프랭클린 퍼거슨

죄로부터의 구별

구속과 마찬가지로 성별 역시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중요하고도 위대한 주제입니다. 모든 세대에 걸쳐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징계가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더러운 것으로부터 거룩한 것을 구별시켜 건져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5:19). 이런 징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둠의 일 가운데 계속적으로 참여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죄로부터의 분리를 요구합니다. 이사야 6:1~5을 보면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고 그 앞에 점도 없고 영광스러운 천사들이 그 날개로 얼굴과 발을 가리우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그 광경을 보고, 그 더럽혀지지 않은 거룩함 앞에서 자기 자신의 상태를 보고 절망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사람들 가운데서 선지자의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광경은 그로 하여금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라고 고백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옛날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계시입니다.

요한일서 1:5~10을 보면 우리는 바로 우리 시대를 향한 중요한 메시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선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라고 기록되어 있고, 더 나아가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다른 빛 가운데 행하는 이들과)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이 신성한 교제가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그분이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빛 가운데 행하는이들에게 제한되어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이 교제에 대해서 말하면서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분명 이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않는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3:32)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의합하지 아니하면, 동일하지 아니하면 어찌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행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분명한 의무

우리의 의무에 관해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생각할 때, 디모데후서 2 19절부터 26절에서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그리고 악한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며 청년의 정욕을 피하는 것 등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그릇이 되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죄로부터의 구별됨이 없기 때문에

죄로부터 구별되지 않았기에 옛 세상은 홍수로 멸망하였습니다. 소돔과 그의 자매된 도시들도 하늘로부터 내린 불로 소멸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도 그들의 기업을 잃고 전 세계로 흩어짐을 당했습니다. 가나안, 모압, 암몬, 에돔, 시리아, 그 외에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이 않은 곳으로 산산이 흩어진 것입니다. 또한 바벨른, 메대-바사, 그리스, 그리고 로마와 같은 세계제국들도 멸망하였고 단지 역사 이야기의 한 소재로 전락했습니다.

현존하는 수많은 나라들은 아마겟돈에서 맞이할 최후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는데, 이것도 죄로 인한 것입니다. 그리고 명목상의 교회들도 배교하게 되어 불로 소멸될 것입니다( 18:8). 모든 악한 자들은 백보좌 앞에서 쫓겨나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즉 죄와 하나님의 영원한 분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0:14,15, 9:43~50).

왜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야만 합니까? 그것은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3:19).

 

세상으로부터의 구별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해 있습니다”(요일 5:19). 사단은 이 세상의 신입니다(고후 4:4). 세상은 그 신에 의해서 통제되고 인도됩니다( 2:2). 세상은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습니다( 8:6~8).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다같이 생명의 주를 죽이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3:15, 고전 2:8).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잃어버린 바 된 세상에 대하여 무한한 사랑과 동정을 베푸십니다. 즉 용서와 구원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때문입니다(벧후 3:9). 그러나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고후 6:2) 이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의 날”( 61:2)이 따라옵니다.

만약에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께서 하신 것같이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위치에 선다면, 세상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을 미워할 것입니다( 17:14~18).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 거대한 세상이라는 체계를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것들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요일 2:15~17).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대항하고 있으며, 따라서 결국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 안에 거하는 육신의 모든 정욕을 자극한다.

그것이 세련된 것이든지 그렇지 못한 것이든지 그것은 육신의 정욕입니다. 세상의 유행과 즐거움과 스포츠와 오락과 소일거리가 무제한으로 공급됩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오늘날은 컴퓨터까지)을 통해서 바로 우리 안방까지 이 땅에 살고 있는 위대한 사람들의 연설이 들려옵니다. 이 세상의 뉴스가 들리고 각종 스포츠와 격투기 레슬링에 관한 소식이 들립니다. 사업에 관한 이야기들, 복권 당첨에 관한 소식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열리는 음악회 이야기, 설교들과 우스개 이야기들, 아침 명상과 저녁 코미디, 올바른 말과 지저분한 속어들이 라디오나 텔레비전으로부터 쏟아져 나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성도와 죄인, 거룩한 자들과 속된 자들, 교수와 사업가들, 주인과 종, 노인들과 젊은이들, 남자와 여자들, 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모든 것이 공급됩니다.

영화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세상의 오락물은 사회 모든 계층의 사람들의 정욕을 충족시킵니다. 술은 수천 수만명의 인생을 망가뜨립니다. 이것이 바로 소돔의 모습입니다. 이 안에 사는 사람들은 고모라의 남녀들인 것입니다. 극장 안에 가득 들어찬 사람들은, 남자들이 여자들과 단정치 못한 짓을 하는, 빠르고 조잡한 장면들을 봅니다. 그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더럽습니다. 그들은 전혀 얼굴을 붉히지 않고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습니다. 영화가 전부 이런 종류뿐인가요?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결코 그렇게 더러운 영화만 만들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교육적이고 아름답고 교훈적인 것들도 영화 속에 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컵의 바닥에는 영혼을 파괴하는 찌끼가 가라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수많은 희생자들은 지옥 깊숙한 곳에 있습니다.

이것들만 이야기해도 족합니다. 이에 대해서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세상은 극과 극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곧 세상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멸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야 합니다.

 

세상으로부터의 진정한 구별은

세상으로부터의 진정한 구별은 은둔 생활이나 수도원 생활과 같이 스스로를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결코 그렇게 살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종류와 모든 상태의 사람들과 자유롭게 만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그들의 구원을 위함이셨습니다. 주님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신(구별된)” 분이셨습니다( 7:26). 주님은 본래 악한 방법, 죄악된 즐거움, 제상적인 계획과 책략등과 상관이 없으셨습니다. 주님은 이 적대적인 세상 안에 몸담고 있었지만, 아버지에 대해서 증거하시는 하늘에 속한 나그네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벧전 2:21).

 

종교로부터의 분리

교회의 배도는 급속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때 그 절정에 달할 것입니다. 모든 교파들이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극에 달하기 전에 주님께서 주님의 참된 신부인 교회를 친히 영접하시기 위해서 공중에 임하실것입니다(살전 4:13~18). “거듭나지 않은수많은 종교인들은 뒤에 남게 될 것입니다. 성 경은 배도, 즉 진리의 말씀의 기초를 고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행위에는 치료할 방법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6:4~8). “현대주의라는 누룩으로 부풀어버린 종교 체계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가능한 것은 오직 그 체계를 떠나는 것입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18:4).

거기서 나온다는 것은 뭔가 새로운 것을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질서와 계획 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

히브리서 13:10~16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고( 3:2),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규례들을 가지고 있었던( 9:1) 유대인들은 그를 없이하라. 십자가에 못 박으라!”라고 외치면서 그들의 메시아를 거절했습니다. 그들의 예배와, 그와 관련된 예식이 행해지던 성전은 이제 황폐하게 된 상태입니다( 23:38).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배척했고 그분의 가르침도 그들에게 전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그들의 성밖으로, 갈보리 언덕으로 인도하여, 거기서 치욕과 수치의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구약에서는 죄를 위한 제물은 영문 밖에서 불살랐습니다( 6:30, 16:27). 예수님 역시 영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배도의 도성 안에서는

배도의 도성 안에서는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성대하게 행해졌고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셨습니까? 영문 밖에서 배척 당하여,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 성전이, 거기에서 행해지는 예배가 여전히 하나님께 받으실 만한 것이겠습니까?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유대인들이 배척했듯이, 오늘날의 기독교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주님의 신성과 동정녀 잉태와, 그분의 보혈의 구속력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주님을 배척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면서 화려한 건축물 안에서 예배 의식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받으시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참된 예배자는 종교의 화려함에 둥을 돌리고 (주님)의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야합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능욕이며, 십자가는 수치와 부끄러움입니다. 바로 지금이 주님의 참된 제자들이 거절당하고 멸시당한 하나님의 아들을 본받을 때인 것입니다.

 

분리에로의 부르심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7).

이 말씀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분명한 의무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가 주님의 명령대로, 우리 자신을 이 모든 것으로부터 구별하되 바리새인과 같은 마음에서 하지 않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행했다면, 우리가 떠난 이 모든 것으로 다시 돌아가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영감있는 사도의 표현을 빌자면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2:18).

생명이 없는 종교와 그 조직에서 떠나는 것이 우리의 유용성을 감소시키겠습니까? 아닙니다. 순종하는 이에게 복된 용기가 주어지는 법입니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3:8). <신간, “하나님의 교회에서 발췌>

 

(2001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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