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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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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9. 9. 12:19 횃불/2001년

영원한 구원(25)

H. P. 바커

영원한 구원을 반대하는 자들이 흔히 인용하는 성경말씀들(11)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2:17~19).

이 말씀에 관하여 레만스트라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바울의 말을 알기 쉽게 풀이하면 이렇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영접한 이후에도(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고, 신분상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고, 상태적으로 의롭게 되려 하고 있다) 여전히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이라면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조장하고 율법을 버리도록 만든 자가 아니겠는가? 또한 그리스도의 약속도 거짓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와 같은 이론은 버려야 한다. 그와 같은 이론은 전적으로 불합리한 것이다: 바울은 자기의 생명을 바쳐서 이방인들에게 유대인들의 형식적인 의식은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싸웠다. 그런데 이제 와서 바울이 헐었던 것을 다시 복구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곧 어리석은 일이 되고 나아가 바울이 스스로 자기를 범법자로 만드는 일이 되는 것이다( 2:18). 바울은 그와 같은 행동을 결코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제 율법에 의하여 정죄되고 처형당하므로 율법을 향하여 죽은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율법을 향하여서는 죽은 자였기 때문에 이제는 율법의 권위 아래 있는 자가 아닌 것이다. 바울은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 살 수가 있었다’(19).”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12:14).

이 말씀에서 거룩함이라는 말은 다른 몇몇 곳에서 성결”(성화)이라는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함이라는 말은 성결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있는 신자에게는 그리스도의 거룩함(성결)이 그 신자의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고전 1:30). 윌리암 R. 니웰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다 성결한 자다. 우리는 이 사실을 고린도전서 1:2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그러나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라는 말은 고린도 신자들의 체험을 가리킨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린도전서 3:1~3에서 고린도 신자들이 육신에 속한 자들이며 어린아이들이라는 사실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린도 신자들은 아담 안에 있는 자들이 아니고 둘째 사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고린도후서 5:17에 나타난 말씀대로 새로운 피조물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히브리서 10:10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지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우리는 이미 거룩함”(성결)을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4 말씀에서 우리는 거룩함을 좇으라는 당부를 받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성령님께 순종함으로 이미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보증된 사실을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실현하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12:15).

진실로 믿는 자는 누구든지 다 은혜로 말미암아단번에 구원을 받았으므로 그 때나 오늘이나 항상 구원받은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계속되는 은혜의 역사를 따라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살아가는 일을 배우게 됩니다( 2:11,12).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이 죄를 짓는다거나 또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죄에 빠지도록 하므로, 은혜의 가르침을 계속적으로 받지 못하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에서 구원을 놓친다는 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1:21~23).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나타난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라는 말이 구원에 대한 조건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만일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에서는 어떤 확실한 것을 가리키는데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만일이라는 말은 어떤 조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틀림없이 그런 줄로 믿는다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의 말씀은 미래에 관한 사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현재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진실성을 증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구원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그런 위협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3:6)

어떤 사람들은 여기 이 말씀이 우리가 만약 견고히 잡지않으면 구원을 놓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가르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고 말한 그의 집이라는 말이 미래형이 아니고 현재형으로 되어 있는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견고히 잡는다는 그 자체가 그(예수님)의 집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동시에 우리의 구원의 진실성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3:14)

이 말씀은 히브리서 3:6과 흡사합니다. 이 말씀도 역시 우리의 구원의 진실성을 증명합니다. 여기에서도 역시 미래형이 아닌 현재형(현재시제)으로 되어 있는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참예한 자가 되리라”(헬라어에서 여기 되리라라는 동사는 직설법 완료형 능동태 입니다. )

우스트는 이 말을 번역할 때 헬라어의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살렸습니다. 즉 과거에 완료된 어떤 행동이 현재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우리는 현재 구원을 받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5:19,20)

여기 이 말씀에 관해 H. A. 아이언사이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죄 가운데 빠진 자란 그 앞의 15절 말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진리의 길에서 떠나 타락한 신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렇게 타락한 신자를 꾸준히 좇아가서 다시 돌아서게 하므로 주님께 순종하도록 하는 일은 한 영혼을 죽음(사망)에서 구원하는 일이며 허다한 죄를 덮어주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사망(죽음)이란 육체적인 죽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다스리는 행위 가운데 최종적인 행위에 해당된다. 그리고 허다한 죄를 덮어준다는 것은 관용을 베푸는 일로써 이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도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물론 내 자신의 죄를 스스로 덮는다는 말이 아니다. 죄 가운데 빠졌던 형제의 죄를 덮어준다는 말이다. 죄 가운데 빠진 신자로 하여금 자신의 타락을 깨닫고 회개하도록 이끌어줌으로 그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고 더욱 깊은 죄 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 이리하여 죄 가운데 빠졌던 신자는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의 손길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그의 분노를 증거하시기 위하여 신자의 수명을 단축시키기까지 하시는 일도 있는데 이와 같은 무서운 징계의 손길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일서 5:16,17도 보면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거스르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저들의 수명을 단축시켜서 일찍 본향으로 송환되는 일이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벧후 1:10).

사실상 이 말씀은 너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라는 말입니다. “택하심이란 하나님의 행위를 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창세 전에 택하셨습니다( 1:4).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택함을 받았으므로 구원은 확실히 우리 것이 된 것입니다. 만약 택함을 받은 자가 구원을 놓치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다면 그를 택하신 하나님은 실수를 저지른 분이 될 것입니다.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이라는 말은 앞의 구절들, 즉 베드로후서 1:8,9에서 이런 것이라고 언급한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이라는 말은 베드로후서 1:3~7에서 열거된 사항들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는 말은 구원과 관계되는 말이 아니고 열매맺는 일과 관계되는 말입니다. 실족지 아니하리라는 말은 열매맺지 못하는 일이 없느니라는 말입니다(벧후 1:8). <다음 호에 계속>

 

(2001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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