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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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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요 15:1-8)

여러분은 혹시 남모르는 슬픔이나 시련, 또는 시험을 당하고있지는 않습니까? 형태는 다 다르더라도 시련을 당하고 있지않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시련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오는 시험도 있을 것이고, 또는 질병이나 교통사고, 실직으로 인해서 고생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주님의 뜻을 떠나서 잠시 방심하는 순간에 죄를 범함으로 주님의 채찍을 받고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폐일언해서 지금 여러분이 어떠한 시련을 당하고 계실지라도, 또 아무도 그것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을 깊이 이해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여러분의 시련과 연약함을 이해해 주실 뿐만 아니라 깊이 동정하며 기도까지 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와 같은 혈육을 취하시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한결같은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이십니다. 다만 그분에게는 죄가 없으셨습니다. 히브리서 2 18절에 보면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주 예수님께서는 시험받고 있는 우리를 능히 도우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4:14-16).

연약함이 많은 우리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격려의 말씀을 의지하시고 긍휼하심을 받아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8 1절에 보면 히브리서 기자는 그가 말하고 있는 전 요지가 이렇게 위대하시고 뛰어나신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여러분!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우리의 대 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그 모습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 얼굴의 광채가 여러분의 마을 속에 비치어 흠뻑 젖을 때까지 그 분을 앙망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시련의 쓴맛이 단맛으로 변할 것이고 그것을 보시는 주님께서도 만족해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8:28)는 말씀도 겸하여 묵상하는 가운데 시련의 어려움을 이기시며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 유의할 점

함께 살펴볼 난해구절은 요한복음 15 6절에서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이 말씀도 언뜻 보면 구원얻은 사람이 주님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그 구원을 잃는다고 생각하기 쉬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런 말씀은 아닙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대명사나 접속사, 또는 단수냐 복수냐 하는 것까지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3 1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거듭 거듭 약속한 그 말씀을 해설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자손이란 낱말을 복수형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단수형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우리란 대명사도 나오고 너희라는 대명사도 나오는데 이것 역시 의미하는 대상이 서로 다릅니다.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그러면 이제 요한복음 15 1절부터 상고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이 요한복음이 1장에서 12장까지와 13장에서 21장까지의 대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장에 서 12장까지는 불신하는 세상 사람들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는 데 반해, 13장에서 21장까지는 단지 예수님을 믿은 참 제자들만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 1절에서와 같이 내가 참 포도나무요라는 말씀처럼 내가 ㅇㅇㅇ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타락한 유대교, 즉 과거의 하나님의 증인의 역할을 해오던 유대교를 부정하심으로 상대적으로 하신 말씀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참 포도나무요라고 하신 것은 이제는 유대교가 참 포도나무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제까지는 유대교를 포도나무라고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유대교가 포도나무가 아니요 예수님 자신이 참 포도나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포도나무라고 하실 때 이란 말씀을 덧붙이신 것입니다.
시편 80 8절을 보면 이스라엘을 가리켜서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열방을 쫓아내시고 이를 심으셨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포도나무로 심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아니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고후 1:3)라고 말씀하고 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1:17)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참 포도나무요라고 말씀하셨을 때 열매를 맺지 못하는 유대교를 염두에 두고 계셨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이 15장은 구원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하므로 과실을 더 많이 맺는 것을 그 주제로 하고 있음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요한복음에서는 제자라고 하는 낱말이 참으로 거듭난 신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뒤를 좇아온 사람들도 포함하고 있음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6 66절이나 831절의 말씀이 그 사실을 증거 해주고 있습니다. 이상의 네가지 기본적인 사실들을 기억하면서 본문의 말씀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참 제자들을 구별하심

요한복음 15 2-4절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입장을 분명히 구분하여 말씀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예수님께서 2절 상반절에서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신다고 말씀하실 때 아마 가룟 유다와 유대교인과 같은 사람들을 염두에 두셨을 것입니다. 반면에 2절 하반절에서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제자들을 염두에 두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곧 그 다음 절에서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 10,11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에 우리는 주님께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깨끗해진 참 제자들과 그렇지 못한 가룟 유다를 구별하고 계신 것을 주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15 6절을 전후해서는 제자들을 일컬을 때 너희는”, “너희가하는 대명사를 사용하고 계시지만 이 6절의 말씀에서는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니라고 하심으로 그 대명사를 너희로부터 사람으로 조심스럽게 바꾸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고 말씀하셨지 제자들을 가리켜서 너희가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그렇게 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15:8)는 말씀이 제자들을 지적하여 그들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은 2,3절에 말씀한 대로 과실을 맺고 또 더 맺도록 이미 깨끗함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들이 할 일이란 과실을 더 맺기 위해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는 과실을 맺을 때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8).

 

나는 지금 어느 부류에?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는 그 무리, 즉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경험하고, 과실을 맺을 수 있도록 깨끗함을 받은 그 무리 중에 속해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당신은 지금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 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 장차 밖에 버리워 불에 던져 불사름을 받을 자들 중에 속해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불이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의 머리 위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이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정죄한 이 패역한 불신의 무리들로부터 예수님께로 나아온다면 구원을 받습니다. 지금은 머뭇거릴 때가 아닙니다. 어느 순간에라도 이 구원의 문이 닫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경고하여 말씀하시기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것이 능사거나 장한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여러분이 회개할 죄인인 것을 말할 뿐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0:13)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진실된 마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불러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