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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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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고전 6:9-10)

 

전도서 11 4-6절을 보면 성도들에게 격려가 되는 좋은 말씀이 있습니다.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함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이 말씀에서 풍세를 살펴보는 자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게으르고 어리석은 농부의 핑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일하기가 싫으므로 구실을 찾는 것입니다. 자기 환경과 처지만 생각하고 탓하는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그는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혹 우리 중에 나는 배운 것이 적고, 부족하고, 가난하고, 흠이 많고, 또 나는 병들고 나약한 사람이니 나와 같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낙심하여 주저앉아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근면한 농부의 생각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말도 못됩니다. 우리의 책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에게 있어서 그 씨가 싹이 나 자라서 열매를 맺기까지 그의 책임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는 씨를 뿌릴 수는 있어도 그것으로 싹이 나게 하거나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권고하는 것은 너는 아침에도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이 못함이니라입니다. 그리고 씨를 뿌리면 그것이 당장에 싹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씨를 뿌렸는데도 싹이 당장에 나오지 않는다고 염려하는 성도가 있다면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분에게는 전도서 11 1절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았을 때 그가 당장에 구원받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 주일학교에서 말씀을 들은 적이 있던가 혹은 자라면서 친구들에게 전도를 받은 적이 있던가 혹은 직장이나 가정에서, 혹은 이웃에서, 혹은 노방에서, 혹은 전도지나 방송같은 것을 통해서 이미 그 마음속에 씨가 뿌려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며 사랑을 베푼 사람들이 그 주변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영혼이 구원받기까지는 많은 사람의 수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기억할 것은 사도 바울께서 말씀하신 대로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고전3:7)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가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려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야고보서 1 17절에도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라고 말씀하심을 기억합시다.

어떤 겸손한 종이 그렇게 합당한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어느날 집회에서 어느 성도가 그 분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다음날 찾아와서 말하기를 어제 말씀이 좋아서 축복을 많이 받게 되어 감사합니다고 했습니다. 그 때 그 하나님의 종은 어제 제가 전한 말씀 중에 좋은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제게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다

여러분, 씨를 뿌리는 자가 또 한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편 12~ 5,6절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

이 말씀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란 말씀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참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주님의 일을 참되게 할 때에 거기에는 남이 모르는 많은 눈물이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적당히 타협해 가면서 하는 데는 눈물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기쁨으로 거둔다고 하였고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가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주님의 일에 눈물을 흘리는 진실된 일꾼들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순교를 앞두고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한 유언의 말씀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해 갇힌 자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8).

무릇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양의 성품과 돼지의 성품

난해구절인 고린도전서 6 9,10절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언뜻 생각해 보면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음란이나 우상숭배, 또는 간음, 탐색, 남색, 도적, 탐람, 술취하거나 후욕하거나 토색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게 되는, 결국 멸망받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쉬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런 말씀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거듭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거듭난 사람은 으로( 10:27), 그렇지 않은 사람은 돼지”(벧후 2:22)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양과 돼지는 성품에 있어서 서로 다릅니다. 양은 항상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으나 돼지는 그 반대입니다. 돼지는 더러운 것을 개의치 않습니다. 양은 한눈을 팔다가 더러운 웅덩이에 빠질 수 있어도 거기서 헤어 나오려고 애씁니다. 이는 그의 성품이 더러운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돼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돼지는 더러운 곳에 코를 대고 쑤시며 또 더러운 곳을 찾아 그곳에 누워 뒹구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그 겉모양을 보지 않더라도 두 동물을 행동과 성품만으로도 쉽게 식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거듭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스스로 거듭났다고 자처하는 사람이 본문의 말씀 가운데에 열거된 죄악 중에 습관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거듭나지 않은 증거입니다. 그것은 요한일서 2 4절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거듭난 사람은 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 온전케 되었나니...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거듭난 신자라도 주님을 잘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교만해지거나 나태해져서 다윗과 같이 무서운 죄에 빠지거나, 베드로와 같이 죽음이 무서워서 주님을 후욕하며 부인하는 최악의 경우에 이르는 일이 혹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얻은 구원을 잃고 멸망받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윗과 베드로가 지금 다 하늘나라에 가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는 믿지 않는 자

그러면 이제 본문 말씀의 전후 문맥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6 1절을 보면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불의한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고 4절에서는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 그리고 6절에서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9절에서 또다시 불의한 자라고 부르면서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강한 어조로 묻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기 말씀한 불의한 자는 불신자를 통칭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을 가리켜 성도라고 부르고 있거나 의인이라고 부르고 있어도 불의한 자라고는 부르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11절에 증거되고 있지 않습니까!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었느니라.”

5 1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가리켜 교중 사람들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켜서는 외인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믿는 자들을 성도라 부르고 믿지 않는 자들을 불의한 자라고 구별하여 부르고 있습니다.

만일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가운데 자신이 거듭났다고 자처하면서도 본문에 열거된 어느 죄악 중에서 습관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이 본문의 경고의 말씀을 명심하여 받으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미혹을 받지 말라는 말씀으로 당신을 깨우치고 있음을 명심하시고 다시 읽어보십시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 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아직도 예수님을 알지 못해 그러한 죄악 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죄악을 버리고 사랑의 하나님께로 속히 돌아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