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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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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 타락한 자들( 6:1-8)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면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먼저 간 조상이나 부모, 또는 먼저 간 자식, 남편, 아내, 또는 가까운 친구들의 모습이나 인품을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먼저 간 사람들이 실제로 지금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의 육체는 지금 무덤 속에 묻혀 있거나 화장되어 강물이나 공기 중에 섞여 없어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들의 영혼들이 지금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일 뿐만 아니라 조상들을 생각하며 제사를 드리는 여러분도 본의이든 아니든 그 사실을 시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제사상에 음식을 차려놓고 조상들의 영혼이 그 음식을 먹으러 온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그와 같이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그 영혼이 지금 살아 있다는 것과 또 그 영혼들이 지금 어느 처소에 가서 어떤 처지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6장에서 세상을 떠난 영혼들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에 대해 친히 말씀하신 내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꼭 기억하실 것은 이것은 비유가 아니고 실화라는 것입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나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16:19-30).

저는 히브리서의 난해구절을 묵상하는 중에 히브리서 기자가 독자들에게 여러번 경고하고 있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위와 같은 경고와 아울러 권면의 말씀을 드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이 권면의 말씀을 받아들이심으로 영원한 불행을 면하시고 하늘나라를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의 특수성

난해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히브리서 6 1-8절 말씀입니다. 그중 먼저 4-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히브리서의 특수성을 잘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의 대상은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그 하시던 말씀, 행하시던 능력을 친히 듣고 목격하고 난 다음에 유대교를 떠나서 예수님을 믿겠다고 따라나선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섞여 나온 무리들처럼, 참 거듭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끼어 있었는가 하면 또한 광야에 나온 다음에도 하나님의 진노을 더욱 더욱 격동시켜 노하시게 하여 하나님으로 맹세까지 하게 하시기를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3:11)고 한 바로 그런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끼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믿지 않은 사람들인 것은 3 11,18절이 우리에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뿐만 아니라 4 2절에 보면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치 아니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중에”, “우리”, “너희가 가리키는 대상

우리가 또 한가지 주목하게 되는 것은 히브리서 기자가 마음에 생각하고 있는 대상입니다. 즉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란 대상과 너희란 대상 그리고 너희 중에”(그들 가운데서 예외적인 사람들)라는 세 부류의 사람들을 지적하고 있는 점입니다. 특히 이들 가운데 너희 중에라는 예외적인 사람들을 지적하고 있는 사실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3 12절의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라는 말씀과, 4 1절의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는 말씀과, 12 15절의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라는 말씀입니다.

이번에는 우리라는 대상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라는 대상은 종종 가정법상의 우리로서 마치 구원받은 신자들도 멸망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것은 히브리서 기자를 포함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2 9절에서는 오직 우리가...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4 3절에서는 2절의 믿음을 화합치 않는사람들과 대조해서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고, 10 39절에서는 우리가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말씀함으로 우리라는 대상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너희에게란 낱말은 히브리서를 수신하는 거듭난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고 하여 6 4-8절의 예외적인 대상과 구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0 .25절에는 구원이 아닌 상급에 대해서 그들을 격려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구원얻지 못한 자의 묘사들

그러면 다시 히브리서에 나오는 구원얻지 못한 자들에 대한 묘사를 살펴본다면 우리는 그들 가운데 진실로 구원얻지 못한 자들이 끼어 있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2 3절에서는 이들을 가리켜서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고, 3 18절에서는 순종치 아니하던 자”, 3 19절에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 6 8절에서는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자”, 10 25절에서는 모이기를 폐하는 자”, 12 16절에서는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법상의 우리

이번에는 우리란 말이 가정법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1 8절을 보면 바울이,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의 절대 불변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 말이지 사도 바울 자신이나 천사가 다른 복음을 전할 가능성을 내포한 말씀은 아닙니다.

이와 같이 히브리서에서도 우리라고 하여 참 거듭난 신자들을 포함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버리고 멸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나타내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버리면 다른 구원의 길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이 말씀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곧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히브리서 21-4절의 경고의 말씀을 깊이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날 마지막에 그 아들로 말씀하신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