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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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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부르심

프랭키 차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33:14).

“땅의 보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의 은혜로 인하여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 33:16).

여기서 “거하시는 자”는 하나님입니다. 요셉이 고난 가운데 있었던 것과 모세의 가시떨기가 연관됩니다. 이것은 모세의 삶과도 연관됩니다. 모세는 가시떨기 아래서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 처음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 불행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우리가 듣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번에 이어 하나님께서 두 번 부르신 것을 교제하려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3:4).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내가 여기 있다고 우리는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장면에서 모세를 두 번 부르신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것을 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깨끗케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졌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구원 이후에 우리 가운데 죄가 다시 오게 된다면, 다시 불결해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우리는 제일 먼저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 우리는 거룩함과 깨끗함을 입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야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출애굽기 3장은 세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첫 번째 부분은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입니다. 두 번째는 모세의 근심과 걱정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3 2절에서 하나님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애굽으로 가라고 명하시고 이스라엘을 구해 냅니다. 31절부터 10절까지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을 계시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싶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모세에겐 하나님의 부르심이 먼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셔서 애굽의 속박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구해내길 원하셨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창조가 있었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관 가운데 사람이 들어갑니다. 그는 요셉입니다. 창세기는 관에 들어가 있으므로 땅 가운데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요셉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남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계속적으로 소망을 말합니다. 창세기의 첫 사람 아담은 사단의 시험 가운데 들어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창세기 인물 요셉은 관 가운데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시험을 이긴 사람입니다. 그 가운데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의 처음과 마지막을 전환시키는 아주 중요한 인물입니다. 요셉은 유언에서 “하나님은 너희에게 다시 한 번 찾아오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다시 오실 때 나의 뼈를 들고 애굽을 나가야 된다”고 말합니다. 요셉의 뼈는 바로 소망의 상징입니다.

출애굽기는 그 소망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성경입니다.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태어났고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고자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힘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유월절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은 나갈 수 있습니다. 구속은 피로 인해 이루어집니다. 죽은 자는 죽은 자와 그 피를 나눕니다. 출애굽기는 우리가 나감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레위기로 가게 됩니다. 레위기는 “들어감”을 이야기합니다. 희생을 드리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다섯 가지 제사가 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입니다. 이 다섯 가지 제사는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제사입니다. 그러나 제사를 드리러 나아가는 사람은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그 중 대제사장만 지성소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회복의 관계를 누려도 오직 한 명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한 가지 단서가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래로 내려가고 출애굽기에서 우리는 나옵니다. 그리고 레위기에서 하나님 앞으로 들어갑니다.

레위기 다음에 민수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를 지나갑니다. 우리는 많은 문제들을 민수기에서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이 문제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건져내십니다. 물을 마시기 위해 모세는 바위를 치는 실수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불평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불뱀이 보내지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한 편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땅에 묻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시체를 만져 부정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들은 다시 깨끗하게 될 필요가 있습니다. 부정한 자들을 깨끗케 할 방법을 하나님이 제시하십니다. 민수기 19장에서 붉은 암송아지를 제물로 드립니다. 범인을 알 수 없는 시체를 깨끗하게 아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집이 이 땅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집은 하늘에 있습니다. 광야에서 헤매는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이 땅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더럽혀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항상 우리 주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주님의 피는 우리를 다시 한 번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모세오경의 마지막인 신명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합니다 십계명이 신명기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모세는 우리가 언제 들어가야 할지를 다시 한 번 이야기합니다. 그는 이 땅에서 계속해야 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우리를 하늘로 불러올리시기 전까지 그리스도인의 삶을 계속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격려하기 위해 교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을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믿음의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오경은 정말 중요합니다.

다시 출애굽기로 가겠습니다. 출애굽기는 구속의 책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구원자를 일으키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희망입니다. 우리는 모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야 모세야” 하고 두 번 부르셨습니다. “내가 여기있나이다(Here am I).” 모세는 말했습니다. Here am I. 이 영어 표현은 흥미롭습니다. 아브라함도 창세기 22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준비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희생을 드릴 준비가 끝난 사람이 며 경배드릴 준비가 다 되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예배의 준비가 끝난 사람입니다. 창세기 46장에서 야곱을 부르실 때 야곱도 “Here am I" 라고 답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고난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휴거 될 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세상에서 부패하고 삽니다. 그래도 휴거될 것입니다. 야곱은 애굽으로 갔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은 장막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들은 부유했지만 큰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았습니다. 장차 올 세상에 소망을 두었고 그들은 장막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순례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인 아브라함, 야곱, 모세, 사무엘, 이 네 명의 이름을 두 번 반복해서 부르실 때 그들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Here am I)”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순종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엘의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오랜 시간을 기도하는데 보냈습니다. 그래서 때로 하나님은 그에게 기도를 그만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적합했던 사울을 위해서도 사무엘은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만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새로운 이스라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기도의 삶인지 보아야 합니다. 사무엘은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기 위해 결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Here am I)”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입니다. 이사야는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이야기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의 질문은 “누구를 보낼까”입니다 이사야는 말합니다. “내가 여기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6장에서 이사야를 보내기 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전에 5장에서 이사야가 뭐라고 말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5:8).

“화 있을진저" 이 말은 11,18,20- 22절에서도 반복 됩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5).

“나에게 화로다.” 이사야의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여섯 번이나 남들에 대해 “화 있을진저”라고 말하던 그가 자기 스스로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 이사야가 하나님 앞에서 쓰일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이고자 한다면 남들을 판단하면 안됩니다. 오로지 나만 판단해야 합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고백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 야곱, 사무엘, 이사이를 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3:4).

우리는 여기서 깨끗하게 하는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3:5). 무엇이 이 땅을 거룩하게 만들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임재가 이곳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이곳은 더 이상 거룩한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명기 33장에서 모세는 떨기나무 앞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작은 떨기나무를 특별하게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여기서 떨기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십니다. 불이 붙어도 사라지지 않는 나무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이야기합니다. 히브리서에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불이 붙어도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때 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섬기는 힘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께로 오는 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에너지가 사라지지 않을 때 우리는 계속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6-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 “나의 달려갈 길을 지켰다”, “믿음을 지켰다.” 만약 하나님을 섬기고 싶다면 우리는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동기도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의 동기가 깨끗하지 않다면 그 일은 불타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싶다면 다른 성도가 섬기는 것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주된 이유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땅은 거룩한 땅입니다. 거기를 더럽히면서 섬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에 따라 서만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집회 때 복음을 말씀에 근거해서 전해야 합니다. 성경의 원칙과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의 떨기나무는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신약에서는 교회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불타서 사라지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모세는 말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지에 대해 걱정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두 가지 이유로 거절합니다. 그리고 4장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두 가지 이유를 말합니다.

첫째. “내가 누구관대.” 그는 스스로를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둘째,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3:13). 그는 하나님에 대해 뭐라고 설명할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세 번째,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섰다 하리이다”( 4:1).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을 믿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네 번째,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4:10). 모세는 자기의 능력에 관해 불신하고 하나님을 못 섬기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가 할 수 있음을 확신시키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해서 이 일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3:11).

“내가 누구관대.” “내가 여기 있나이다(here am I)” 하던 그가 “내가 누구관대(who am I)”라고 합니다.

모세는 120년을 살았습니다. 그 중 40년은 왕궁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애굽의 학술과 기예를 모두 익혔고 힘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할 때 이 세상의 힘세고 강하고 부유한 것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이 세상에서 연약하고 비참한 것을 사용하십니다. 40세부터 80세까지 모세는 혼자 있는 것을 배웁니다. 그 시간을 통과한 모세가 이제 “내가 누구관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고 바로에게 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습니다.” 사람의 가장 연약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기회입니다. 그리고 80세부터 120, 나머지 40년을 모세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예전 어느 모임에서 선교사로 한 형제를 파송하려고 했습니다. 파송을 앞두고 교제의 악수를 하고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그 형제를 통해 큰일을 할 수 있도록 도우실 거라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파송 나가는 형제의 능력을 하나님께서 잘 사용할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때 노형제님께서 오셔서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능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안다면 사단이 어떤 것을 가지고 망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겸손하고 낮아지면 사단이 우리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지신 완전한 분이라는 것을 이제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이기에 모세는 이러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할 수 없는 변명을 보겠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히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 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3:13).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하나님을 밝히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가지신 이름 중 아주 중요한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 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3:15).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십니다. 부활이 없다고 말하던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은 이 말씀을 사용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사두개인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씀은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지금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의 아름다운 이름을 모세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첫 번째,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일곱 번 자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는 하늘로부터 온 살아있는 떡이니”, “나는 세상의 빛이요”, “나는 문이니.”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구약에서 설명하시고 계시록에서나는 알파요 오메가”라고 하시며,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시작과 끝”이라 하십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중요합니다. 알파는 그리스어에서 첫 번째 문자요 오메가는 마지막 문자입니다. 처음부터 나중까지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시작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말씀은 곧 하나님시니라”고 하십니다. 모든 지식과 기념은 계시 가운데 나타납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속이십니다. 고린도전서에서 주님을 마지막 아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첫 사람은 아담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마지막 아담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는 그와 같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유일한 구원자, 구속자이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 이것은 출애굽기 3장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금 확신을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모세와 가까이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본성을 지금 모세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중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가까움과 그 이름입니다. “너희는 가서 복음을 전하라.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세상 끝까지라도 함께 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섬길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만유의 주이십니다. 그런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계십니다. 이런 것은 우리를 거룩하고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게 된다면 우리는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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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