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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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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실인

프랭키 차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그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인하여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누가 홀연히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거든 그 몸을 정결케 하는 날에 머리를 밀 것이니 곧 제 칠 일에 밀 것이며 제 팔 일에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지고 회막문에 와서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하나를 속죄제물로, 하나를 번제물로 드려서 그의 시체로 인하여 얻은 죄를 속하고 또 그는 당일에 그의 머리를 성결케 할 것이며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일 년 된 숫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로 드릴지니라 자기 몸을 구별한 때에 그 몸을 더렵혔은즉 지나간 날은 무효니라 나실인의 법은 이러하니라 자기 몸을 구별한 날이 차면 그 사람을 회막문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그는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되 번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숫양 하나와 속죄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하나와 화목제물로 흠 없는 숫양 하나와 무교병 한 광주리와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과자들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들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들을 여호와 앞에 가져다가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고 화목제물로 숫양에 무교병 한 광주리를 아울러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와 전제를 드릴 것이요 자기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문에서 그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 자기 몸을 구별한 나실인이 그 머리털을 민 후에 제사장이 삶은 숫양의 어깨와 광주리 가운데 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를 취하여 나실인의 두 손에 두고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들 것이며 그것과 흔든 가슴과 든 넓적다리는 성물이라 다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니라 그 후에는 나실인이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느니라 이는 곧 서원한 나실인이 자기 몸을 구별한 일로 인하여 여호와께 예물을 드림과 행할 법이며 이 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하려니와 그 서원한 대로 자기 몸을 구별하는 법을 따라 할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6:1-27).

 

구약성경의 첫 번째 책, 즉 모세오경 혹은 모세의 율법이라고 불리는 다섯 권은 중요한 책입니다. 모세오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서 사람은 죄로 인해 아래로 내려갑니다. 출애굽기에서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애굽에서 나옵니다. 레위기에서 희생제사로 제사장들이 성소 안으로 들어갑니다. 민수기에서는 여러 유형의 죄인들의 모습을 봅니다. 이 모든 것은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민수기에서 이스라엘 백성 들이 광야를 어떻게 통과했는지를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할 때 여러 가지 방법을 주셨습니다. 바위를 통해 물을 내시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시고 정결 예식을 위해 붉은 암송아지를 명하셨습니다. 광야는 아주 어려운 환경(많은 이스라엘이 죽었습니다)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어떻게 우리가 주님께 헌신하면서 광야를 통과할 수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순례의 길에서 때때로 실패합니다. 그래서 민수기에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민수기는 모두 36장으로 되어있으며,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부분인 1-10장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전진을 준비할 것인가를 말합니다. 이 장면에서 나실인을 보게 됩니다. 나실인의 성별은 우리의 성장을 위해 적용할 수 있는 원리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성별입니다.

둘째 부분인 11-19장에서는 슬픈 일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인도력에 도전합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불만을 토하며 문제를 일으킵니다. 약속의 땅으로 전진해 나가지 못하고 방황하며 제자리걸음을 합니다. 전진을 위해 준비했던 것들이 무너집니다.

셋째 부분인 20-36장은 재정비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진행이 어떻게 다시 회복되는지를 말합니다. 민수기는 전진을 다루는 책입니다.

 

오늘은 5-6장을 살피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모든 문둥병 환자와 유출병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케 된 자를 다 진 밖으로 내어 보내되”( 5:2).

부정한 자, 문둥병자는 진밖에 나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나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범하여 여호와께 패역하여 그 몸에 죄를 얻거든”( 5:6).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하면 이를 속하기 위해 1/5을 더해드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의 아내가 실행하여 남편에게 범죄하여”( 5:12).

어떤 사람의 아내가 간음했습니다. 여기서 충성되지 못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부정, 의롭지 못한 행동 충성되지 못한 일, 이 세 가지는 지역교회를 무너뜨립니다.

이러한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6장에서 나옵니다. 7장에서는 이스라엘 족장들이 어떻게 예물을 드리는지가 나옵니다. 6장에서는 사람을 7장에서는 소유물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립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유를 드리기 전에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6장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성별의 아름다움(1-21)과 드린 것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22-27)입니다. 첫 부분에서 우리는 최선의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두 번째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축복을 얻기 위해 최선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최선을 드리는 이유는 주님을 사랑해서입니다.

1-2절은 성별의 이유입니다. 나실인은 구별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나실인이 되고자 한다면 그는 특별히 자신을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려야 합니다. 왜 우리는 그렇게 구별하여 드려야 할까요? 유일한 이유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우리 자신을 세상과 구별하여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8절은 성별을 위한 조건들입니다. “모든 날”이란 표현이 45,8절에 나옵니다.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6:4).

나실인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6:3).

포도에서 나는 세 가지가 나옵니다 “주스, , 식초” 포도는 구약과 신약에서 기쁨을 상징합니다. 주님의 첫 번째 기적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3-4절은 성별은 우리 자신에게 기쁨을 돌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기쁨이 없는 존재임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 외의 다른 것들로 기쁨을 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 즉 그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6:5-6).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음으로 외관상 나실인임이 드러납니다(5). 시체를 만져서는 안 됩니다(7). 구별 된 자입니다(8). 여기서 강조되는 단어는 “거룩"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과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할 때 거룩한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고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구별됩니다. 베드로는 자매들에게 아담한 옷을 입을 것을 권합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에게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할 것을 말합니다. 집회에 나아 갈 때 합당한 옷차림으로 가는 것은 나실인이 구별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술 취하지 말고 깨어있을 것을 당부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쁨을 추구하는 파티에 함께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쁨을 어디에서 취하는가 하는 것으로 구별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기쁨과 슬픔을 어떻게 다룰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슬픔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행함을 보고 경건한 사람들임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9-12절은 “더럽혀지는 것” 그리고 “다시 시작”을 다룹니다.

“누가 홀연히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거든 그 몸을 정결케 하는 날에 머리를 밀 것이니 곧 제 칠 일에 밀 것이며”( 6:9).

갑자기 누가 죽어 시체를 만짐으로 더럽혀진 나실인은 제 칠일에 머리를 밀게 됩니다.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일 년 된 수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로 드릴지니라. 자기 몸을 구별한 때에 그 몸을 더럽혔은즉 지나간 날은 무효니라”( 6:12).

우리의 구별은 방해되거나 더럽혀 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달려갈 길을 잘 마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구별한 날들 동안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범위를 정해서 조심하는 것입니다. 일정한 범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경계선을 더 밀어서 확장시키려 하고 있진 않나요? 우리는 우리의 경계선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죽은 사람 뿐 아니라 죽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과도 조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그 동안의 구별은 무효가 됩니다. 우리는 부모로서 자녀의 경계선을 지켜주고 있는가요? 또한 지역모임의 교제 가운데도 경계선이 있는가요? 우리는 절벽 끝에 경계선을 그어놓진 않습니다. 안전을 위해 적정거리를 두고 경계선을 긋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나실인으로서 이 경계선을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 번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실패의 길을 통해서 많은 영적인 교훈을 얻었습니다. 저에게는 그리스도의 희생 사역으로 말미암아 항상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제 팔 일에 산비둘기 두 미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지고 회막문에 와서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6:10). 산비둘기 두 마리, 집비둘기 두 마리에서 희생제사에 대한 귀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산비둘기는 하늘의 어떠함을 상징하는 새입니다. 산비둘기는 먹기 전에 먼저 하늘을 쳐다보는 습성이 있습니다. 집비둘기는 항상 집으로 돌아오는 비둘기입니다.

이 두 새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임무를 다 이루셨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주님은 장사되었다가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이 세상에서 이방인과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이것이 새들이 말해주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행인으로서 본향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이 우리의 집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집은 하늘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나그네라면 이 세상에 우리가 거할 곳은 없습니다.

우리는 행인으로서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여할 권한이 없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행인으로 우리의 증거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우리의 영혼을 거슬러 싸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실인들이 이 세상의 여러 가지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간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의 정욕을 제어해야 합니다. 우리의 성별이 실패해도 우리는 계속해서 거룩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우리로 하여금 다시 시작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 나아 가 우리의 모든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은혜를 주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실패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반드시 있습니다만 그 실패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 그 사역에 감사하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의 중보자이십니다. 그리고 아버지 옆에서 대언하시는 대언자 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나실인 소원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십니다.

13절부터 구별의 완성이 나옵니다. 회막문은 성별이 완성되는 장소입니다. 14,17절에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옵니다. 번제 속죄제 화목제, 소제 전제, 요제가 나옵니다. 이 중 빠진 것은 속건제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나실인은 머리털을 밉니다. 이것도 제사입니다. 나실인은 다시 포도주를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성별로 인한 기쁨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낙심하여 주님께 드리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려드릴 때 놀라운 기쁨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주님께 드린다면 궁극적인 결과는 놀라운 기쁨입니다.

“그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 보리 가루 에바 십분지 일을 예물로 드리되 그것에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이는 의심의 소제요 생각하게 하는 소제니 곧 죄악 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니라”( 5:15).

한 여자가 제물을 가지고 옵니다. 보릿가루 에바 십 분지 일입니다. 광야에서는 한 오멜의 만나를 거뒀습니다. 한 오멜은 한 사람의 식량에 해당합니다. 여기서는 보릿가루를 드립니다. 보릿가루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식량입니다. 밀은 부유한 사람이 먹습니다. 여자가 가지고 올 수 있었던 제물은 보릿가루 에바 십 분지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드리는 예물은 이 여인같은 예물인가요? 6장의 나실인같은 예물인가요? 번제는 구주와 그분의 향기를 말합니다. 속죄의 제사는 우리의 죄로 인한 희생제사와 용서를 말합니다. 화목제물은 다른 것보다 아름다운 제사입니다. 모든 자들이 한 부분씩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중 한 부분을 취하시고 제사장들도 그가 받을 분량을 취합니다. 드리는 자도 한 부분을 받게 됩니다. 드린 자는 자기가 받은 부분을 이웃들과 나누게 됩니다. 그래서 화목제물은 항상 복수 형태로 사용됩니다. 양이 많고 관대하게 드려지는 제물인 것입니다.

화목제물은 하나님과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교제를 의미합니다. 소제는 구세주와 그분의 온전한 완벽함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고운 가루가 사용되었습니다. 고운가루는 거치는 것이 없는 구세주의 온전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위에 기름이 부어집니다. 주님의 삶과 그분께 성령님께서 같이 부어진 것입니다. 또한 유향이 거기에 더해집니다. 이는 그분의 죄 없는 정결함입니다. 그리고 소금이 더해집니다. 이것은 그분의 진리입니다. 여기에 꿀이 더해지면 안 됩니다. 누룩도 안 됩니다. 꿀은 단 것, 누룩은 쓴 것, 자연적인 단 것과 쓴 것은 그리스도인의 성별과는 상관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도 세상과 다른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전제는 포도주를 희생제물에 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 무언가를 드리고 오히려 낙심합니다. 그들은 자기의 손실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제는 그 반대입니다. 번제와 속죄제, 소제에 전제를 부어드린다는 것은 제물이 전혀 아깝지 않고 기쁨으로 드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희생물의 가슴은 흔들어서 드리고 넓적다리는 위 아래로 들면서 드립니다. 이것은 희생제사와 봉사를 의미합니다. 나실인의 서원이 완성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 문에서 그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 6:18).

머리털이 주님께 드려집니다. 몸의 머리털은 우리의 육체를 상징합니다. 육체에서 난 털이 주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는데 사용된 것입니다. 신약에서 육체는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때때로 우리 마음속에 악한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에 대해서 나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모든 것은 우리의 육체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나실인으로 성별되었을 때, 그러한 것들도 희생제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부정케 됨을 피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빚지지 않는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우리를 구별하여 드린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를 지켜주시며(24), 기쁨과 용서를 주시며(25),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번성과 평화를 누리게 되며(26),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받게 됩니다(27). 하나님에게서 오는 축복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고 구할 수 없고 자격이 있어서 그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최고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로 인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뿐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지역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서 주님께서 모든 영광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구별된 삶을 산다면 이와 같은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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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