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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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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과 늙은 선지자

-프랭키 차

1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2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3 그 날에 저가 예조를 들어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예조라 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 4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단에서 손을 펴며 저를 잡으라 하더라 저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 5 하나님의 사람의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인 예조대로 단이 갈라지며 재가 단에서 쏟아진지라 6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가로되 청컨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으로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여 전과 같이 되니라 7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몸을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8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으로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 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9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10 이에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오던 길로 좇아 돌아가지 아니하니라 11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 그 아들들이 와서 이 날에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을 저에게 고하고 또 그가 왕에게 고한 말씀도 저희가 그 아비에게 고한지라 12 그 아비가 저희에게 이르되 그가 어느 길로 가더냐 하니 그 아들들이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의 간 길을 보았음이라 13 저가 그 아들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저희가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 저가 타고 14 하나님의 사람의 뒤를 좇아 가서 상수리나무 아래 앉은 것을 보고 이르되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뇨 대답하되 그러하다 15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 16 대답하되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가지도 못하겠으며 내가 이 곳에서 그대와 함께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17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라 18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19 이에 그 사람이 저와 함께 돌아가서 그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 20 저희가 상 앞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 21 저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한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22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한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23 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24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저를 만나 죽이매 그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섰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섰더라 25 지나가는 사람들이 길에 버린 시체와 그 시체 곁에 선 사자를 보고 그 늙은 선지자가 사는 성읍에 와서 말한지라 26 그 사람을 길에서 데리고 돌아간 선지자가 듣고 말하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를 사자에게 붙이시매 사자가 그를 찢어 죽였도다 하고 27 이에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저희가 안장을 지우매 28 저가 가서 본즉 그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었고 나귀와 사자는 그 시체 곁에 섰는데 사자가 시체를 먹지도 아니하였고 나귀를 찢지도 아니하였더라 29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떠들어 나귀에 실어 가지고 돌아와 자기 성읍으로 들어가서 슬피 울며 장사하되 30 곧 그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고 그를 위하여 슬피 울며 가로되 오호라 나의 형제여 하니라 31 그 사람을 장사한 후에 저가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32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33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보통 백성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았으므로 34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지면에서 끊어져 멸망케 되니라”(왕상 13:1-34).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딤전 6:11-12).

 

“이것들을 피하라”에서 “이것들”은 6장 전반부에 나오는 것들입니다. "좇으며” 좇는 대상이 되는 여섯 항목이 있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우리는 피해야 하고 좇아야 하고 싸워야 하며, 영생을 취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교회로 모이는 것”에 대해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임무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받은 임무는 이스라엘 왕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의 생명이 달린 위험한 임무입니다.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하지만, 그는 용기가 있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악한 왕에게 가서 이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왕이 행하는 악행들에 대해서 경고했습니다.

다윗이 죽은 후 솔로몬이 왕국을 이어 받았습니다. 솔로몬 치하의 왕국은 영광스러운 왕국이었고 번성과 평화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생의 후반부에 솔로몬은 실패했습니다. 이방 아내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상을 섬겼고 종국에는 그의 왕국이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열왕기상 13장에서 선지자는 “여로보암은 열 족속을 르호보암의 아들은 두 족속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고 선포했습니다.

이 분열로 북쪽 왕국은 이스라엘 남쪽은 유다 왕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유다 왕국에 있습니다. 율법에 따라 일 년에 세 번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북왕국의 왕은 예배를 드리러 예루살렘에 간 백성들이 그곳의 영향을 받아 자신을 대항할지도 모른다고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재단을 북왕국에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벧엘에, 다른 하나는 단에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유월절을 첫 번째 달에 기념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이를 바꿔 여덟 번째 달에 하도록 제정했습니다. 그리고 살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곳, 벧엘이나 단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벧엘은 실제로 예루살렘만큼이나 중요한 장소입니다. 이를 근거로 여로보암은 잘못된 가르침을 백성들에게 준 것입니다.

이것은 보기에 그럴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행해지는 것처럼 정치적인 나쁜 동기의 산물이며, 많은 사람들의 정치적인 동기를, 믿음으로 행하는 것으로 대치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일을 하는 동기는 정치적인 힘을 갖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조심해야 하고 우리 자신을 높이는 동기로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으로 사람을 나누거나 우상을 섬기도록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열왕기상 13장의 배경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거짓된 제단을 향해 경고를 외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왕상 13:2).

하나님의 사람은 누가 제단을 파괴할 것인지 명확하게 말했습니다. 요시야 왕입니다. 지금은 요시야가 태어나기 300년 전입니다. 처음과 끝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것은 참으로 합당합니다.

구약성경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리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산당은 무엇인가요? 그들은 여기서도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예언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제사 드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가르칩니다. 예배를 드리는 장소도 정말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드리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것이요 산당에서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성경을 따라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모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적을 통해 그 말이 참됨을 보입니다. 우리는 예언이 이미 완성된 말씀을 가지고 있기에 이적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선지자들은 이적을 통해 자신의 말이 하나님께로 왔음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여로보암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단에서 손을 펴며 저를 잡으라 하더라. 저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왕상 13:4).

여로보암 왕은 그를 잡으라고 말하며 뻗은 손을 다시 거두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그를 위해 기도를 드리자 왕의 손은 고쳐졌습니다. 여로보암 왕은 두 가지 기적, 단이 갈라지는 것과 손이 다시 성하여 고쳐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적은 왕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그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왕은 전략을 바꿔 하나님의 사람을 초청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적은 그 목적을 바꾸지 않습니다. 때로 그는 광포하지만, 때로 그는 아주 친절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것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으로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왕상 13:8).

그 이유는,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하나님께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목자서신에서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지킬 것”, “말씀을 전파할 것”, “본을 보일 것”을 명령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왕과 어떤 교제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왕과 교제한다면 우상 숭배하는 자리에 자신을 두게 될 것입니다. 분파는 잘못된 것이나,진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그들도 같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느냐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여로보암도 여호와를 섬기고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차이가 분명합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오던 길로 좇아 돌아가지 아니하니라”(왕상 13:10).

하나님의 사람은 그가 명령 받은 것들을 훌륭하게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11절에서 다르게 전개됩니다. 여기 벧엘에 살고 있는 늙은 선지자가 나옵니다. 벧엘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은 비성경적인 것들입니다. 그런 가운데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지역교회가 담당하는 책임이 중요함을 말합니다.

지역교회가 성경적인 유일한 곳이라고 알고 그 모임에 우리가 속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해있는 위치가 성경적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늙은 선지자는 성경적이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상수리나무에 앉아있었기에 늙은 선지자는 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쉬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유다에 도착할 때까지 쉬지 않고 갔어야 했습니다. 상수리나무는 성경에서 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힘을 의지해 쉬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제 이미 왕의 유혹을 이겨냈기에, 다른 유혹이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실수였습니다. 우리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영역에서 쓰러질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힘이 아닌 주님을 의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은 실패합니다. 그는 속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벧엘로 돌아갑니다. 그는 어쩌면 ‘이제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겠지’라는 기대가 있었거나 쉬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죄를 선언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모임 안의 교제를 잘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 됨을 잘 이뤄 나가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람은 사자에 의해 죽게 됩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늙은 선지자의 마음이 변화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전한 말씀을 확증합니다 그가 회심한 것입니다. 그는 잘못된 단에 대해 다시 한 번 예언합니다.

여기 세 사람이 나옵니다. “여로보암, 늙은 선지자, 하나님의 사람.” 여로보암과 같은 자들은 절대 회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늙은 선지자와 같은 자들은 여지가 있습니다. 성경적인 위치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은 충성했지만 부주의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셨고, 그의 연약함을 아셨기에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을 높여 주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립니다.

우리는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헌신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높여주십니다. 그분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지역 교회로 모일 때 그분이 그 중심에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백성들에게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분께 얼마나 신실해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했듯이 우리가 말씀대로 모임을 이루고자 할 때 이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전투와 승리가 각 지역 모임에 풍성하게 주어져 주님께서 영광을 얻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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