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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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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성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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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인하여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6:7-8).

 

성경 원문에서는 사무엘상과 사무엘하가 하나의 책이었습니다. 사무엘서의 주제는 한 가지입니다.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하나님은 문제의 해결책으로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이 책에서도 아들이 태어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들이 실패하기도 합니다. 이 실패는 나중에 완벽한 아들이 올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전체 주제를 “아들들의 실패”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윗이 이 그림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다윗의 생애도 실패합니다. 그래서 더욱 더 온전하고 완벽한 아들을 갈망하게 됩니다. 어떤 아들보다도 더 나은 아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삼상 1:3). 이 장에서 사무엘이 태어납니다. 그는 이 장에서 아주 큰 희망을 가져다 줍니다.

엘리는 제사장입니다. 그의 두 아들은 불량자입니다. 사무엘이 나이가 들자 그 아들들이 사사가 됩니다. 그러나 그 아들들은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합니다.

여기서 아들의 반복된 실패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사울 왕이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에서 사울의 실패를 보게 됩니다. 기스의 아들들의 실패를 함께 보게 됩니다. 엘리는 제사장입니다. 사무엘은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사울은 왕입니다. 이와 같이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이 실패하게 됩니다. 그들의 마음이 둘로 나눠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기 원한다면 분산된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우리의 눈은 건강하게 하나만 보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오직 주님을 향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성별 될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장에서 “한나”라는 여인의 성별로 인해 구원자가 태어나게 됩니다. 1장의 대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여인이 살고 있는 장소, 2-8 : 여인이 경험한 문제, 9-11: 여인의 기도, 12-18: 그녀가 만나게 된 제사장, 19-25: 그녀가 받게 된 선물, 26-28: 그녀가 만든 약속, 2:1-10: 그녀가 드린 찬송.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거룩한 것들, 일상적인 것들, 그리고 부정한 것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이해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데 중요한 교훈을 받을 수 있으며 성별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올라감과 내려감입니다. 밑으로 내려가는 것은 이렇습니다. 거룩한 것이 평범한 것이 되고 평범한 것이 부정한 것으로 내려갑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가벼이 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임에 나갈 때 그 모임이 얼마나 거룩하게 구별되었는지를 보려면 이런 식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주님을 높이는지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저는 공용 찬송가와 성경책에서 아이의 낙 서와 뜯겨 나간 종이를 통해 그 지표를 봅니다. 아이들에게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가르쳤는지를 볼 수 있는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찬송가와 성경을 가지고 놀게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이것은 거룩한 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1989년 루마니아에서 거룩한 것을 일상적으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부정한 것으로 만든 사례가 있었습니다. 루마니아 혁명입니다. 루마니아 정부는 서방에서 보낸 성경책을 분쇄한 후 재활용하여 화장실 휴지로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루마니아에 기독교 신도들로부터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내려가는 작용에는 죄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역방향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바로 좋은 예입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으나 그리스도를 믿었고 용서 받았습니다. 거룩한 성령이 우리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입니다. 구약의 희생제사는 부정한 것을 일반적인 것으로 일반적인 것을 거룩한 것으로 만듭니다. 구원받기 전의 어떤 이의 행위는 일반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원받은 후 직업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게 됩니다. 일상적인 일이 거룩한 일이 된 것입니다. 그 비결은 희생 제사에 있습니다. “구별”은 우리의 일상의 많은 것들을 구별하여 거룩한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한 여인은 그의 아들을 주님께 구별하여 드렸습니다. 마노아의 아내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한나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나에게는 천사가 나타나지도 않았고 아들이 나실인이 될 거라는 계시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한나의 이름이 기록된 이 유일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한나의 이름이 기록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엘가나에겐 다른 아내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마노아의 아내보다 불리한 입장에 있었습니다. 한나에게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임신하지 못하는 문제, 그리고 다른 아내를 가져 그녀에게만 충성하지 않는 남편입니다.

한나의 남편은 매년 제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그 성읍은 실로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이전에 이스라엘이 경배를 드렸던 장소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그의 직분을 충성스럽게 수행하지 못함으로 제사 드리는 장소가 실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바뀌게 됩니다.

역대상을 통해 엘가나는 레위족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로에서는 엘리가 제사장으로 있습니다. 레위 족속은 이스라엘의 제사장입니다. 이 구절들을 볼 때 이스라엘 상태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엘가나는 일 년에 한 번씩 실로에 갔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일 년에 세 번씩 가라고 명했음에도 그는 일 년에 한 번만 간 것입니다. 그의 관심은 나뉘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의 행함도 충분 하지 못한 것입니다. “만찬에는 참석하지만 성경읽기나 기도집회에는 나오지 않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별 된 사람은 모든 집회에 참석합니다. 거기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 주님을 만나러 참석합니다. 예배를 드리러 참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더 배우기 위해 나옵니다.

엘가나는 영적으로 좋지 못한 예입니다. 4절에서 그는 많은 분깃을 가족에게 주고 5절에서 한나에게 갑절을 줍니다. 그는 한나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전체 문맥을 볼 때 그러한 사랑은 흠집이 있는 사랑임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5). 이것은 하나님의 결정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 들어간다면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한나와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어려움을 허락하셨습니다. 더 큰 목적을 위해 허락하신 것입니다.

“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 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들보다 낫지 아니하뇨’’(삼상 1:7-8).

남편들은 아내의 감정을 잘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어려움 앞에서 한나의 해결책은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슬플 때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쓴 것들이 우리 영혼에 들어올 때 우리는 기도로써 하나님께 아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짐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한나의 가장 훌륭한 영성은 그녀의 짐을 주님께 맡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주님께 사내아이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주신다면 그 아이를 주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 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1).

그녀는 단지 자신만을 위해서 아이를 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성별된 아이를 구했습니다. 그녀는 이가 나실인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나실인이 겪어야 하는 불이익과 제한들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아이를 위해서 더 나은 것을 구했던 셈입니다. 그녀는 삼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가 삼손처럼 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사무엘이 태어납니다.

성경에는 일생동안 나실인이 된 세 명의 인물이 나옵니다. 이들을 연구한다면 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삼손, 사무엘, 침례 요한입니다.

삼손은 중요한 교훈을 말해줍니다. 성별은 능력을 가져다 줍니다. 일을 행함에 있어서 능력을 주고 영적인 힘을 가져다 줍니다. 사무엘은 일을 이루기 위한 시도에 대해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간구의 영으로 계속 기도해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삼손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선지자들처럼 이스라엘 사람을 모으지 않았고 혼자서 대적들을 무찔렀습니다. 삼손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습니다(물론 우리는 성도들과 함께 동역해야 합니다). 사무엘과 삼손은 이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맨손으로 싸웠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5:18). 어떤 사람은 술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니? 포도주를 끊으라”(삼상 1:14).

엘리는 한나를 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술 취함과 성령 충만에는 유사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오해한 사람이 제사장이었습니다 어떻게 제사장이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을 혼동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아들을 주셨습니다. 사무엘, 그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다”입니다. 사무엘은 어머니로부터 기도를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을 들어 더 놀라운 영광으로 보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통과하게 된다면 그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뭔가 최선의 것을 만들어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간증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받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태어난 후 한나는 그녀의 서원을 이행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나쁜 영향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나는 거기서 사무엘이 나쁜 영향을 받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세속적인 영향을 세상으로부터 받을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엘리에게 보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답은 간단합니다.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이것이 어머니들이 해야 하는 성별입니다.

그 이후의 기록을 보면 한나는 매년 사무엘을 방문했습니다. 사무엘의 필요를 채워줬습니다. 사무엘은 자라게 됩니다. 사무엘이 엘리와 함께 있을 때 한나는 매일 기도했을 것입니다. 부모일지라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려움을 알지만 그곳으로 아이들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 이를 주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마치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의탁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삼상 1:28).

한나가 사무엘을 대제사장 엘리에게 데려다 주었을 때 남편 엘가나가 처음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28절의 “나”는 아마 엘가나일 것입니다. 우리는 엘가나가 이 장의 처음에 그와 같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배드리는 자로 변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나가 남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 비결은 이 단어에 담겨있습니다. ‘성별'입니다. 그녀는 아들에게 최고의 것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성별’입니다. 그녀는 당시의 일반적인 의견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항상 그녀에게 최선의 길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장 전반부에는 한나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당시는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사무엘이란 책은 들들의 실패에 관한 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아름답습니다. 이 사람들의 실패가 매 장마다 기록되어 있지만 구원의 길이 또한 계속해서 매 장마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나의 노래가 사무엘 책 전반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무엘하 마지막 부분에 다윗의 노래를 보게 됩니다. 이 노래를 비교할 때 아주 유사한 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꿀에 대해 말합니다. 꿀은 힘을 상징합니다. 두 노래는 또한 하나님을 반석이라고 칭합니다. 그리고 구원을 이루시는 구세주를 노래합니다.

한나는 이러한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드립니다. 단순히 그녀가 처한 환경의 희생자가 아니라 승리자로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반석이 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암흑의 시대에 해가 밝게 빛나는 모습을 지난 시간에 보았습니다. 마노아의 아내의 성별의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는 충성을 상실한 우울한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 노래가 있습니다. 한나의 성별로 인한 노래입니다. 마노아의 아내와 한나는 평생에 걸쳐 나실인을 아들로 길렀습니다. 삼손과 사무엘의 성별은 그들의 어머니가 없었다면 가능한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임이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은 형제들과 자매들의 성별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한나의 성별과 같이 성별해야 합니다. 한나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주의 구원을 알고 있습니다(삼상 2:1). 그녀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홀로 하나이신 주님을 알고 있습니다(삼상 2:3). 그녀는 지식의 하나님을 노래합니다(삼상 2:4). 그녀는 하나님의 힘을 노래합니다(삼상 2:5). 그녀는 그분의 주권을 노래합니다(삼상 2:7). 그녀는 그분이 가진 모든 것을 노래합니다(삼상 2:8). 그녀는 그분이 제공하는 완전함을 노래합니다(삼상 2:9). 그녀는 그분께서 얼마나 높은 분인지를 노래합니다(삼상 2:10).

어떻게 한나는 하나님에 대해 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그녀의 배경을 몰랐다면 한나가 어떤 사람일까 의문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녀가 어려운 상황들을 통과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장미가 뿌려진 길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문제는 계속 생겨납니다. 우리의 믿음은 계속 시험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때 한나와 같이 해야 합니다. 계속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만세반석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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