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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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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5. 18. 06:14 주옥같은 말씀들/존 시

복 있는 자들의 일곱 길

John See

시편 23:1-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2:2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에는 복이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7번 있습니다. 복이 있다는 히브리 말은 복(rv,a,(,에셰르)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복을 바랍니다. 복이 아닌 것은 복이 아닙니다. 저는 교파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복을 잘 몰랐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고서도 계속 신약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자라가면서 생각이 바뀌고 더욱 더 변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자의 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을 물질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자녀가 시험에 합격하면 복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새 집을 사면 복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는 물질을 확보하면 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구원 받은 사람은 물질이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갑니다. 에베소서 1장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의 복은 하늘을 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오시는 것이 아닙니다마는 그 하늘에는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축복의 근원이 그리스도 바로 그분인 것입니다.

시편에 7번 복이 있다는 말에서 정죄를 당하지 않는다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축복이 무언가를 스스로 질문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에게 축복이 무언가? 여기 32편에 무엇이 복인가에 대해 그 첫 번째가 나와 있습니다. 2절에서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허물의 사함을 얻은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마스길이라고 제목에 나와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용서함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복은 1절에서 말함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허물의 사함을 받는 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은 이 말씀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용서 받은 것이 참된 복인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압니다. 이것은 로마 가톨릭과 다른 점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짐승을 가지고 속죄제를 드리는 것과도 다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어떤 의식을 가지고 하는 종교와도 다릅니다. 주님 안에서의 죄 용서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관계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용서 받은 것을 계속하여 누릴 수 있습니다. 말씀을 기록한 사람이 자기 죄의 용서 받은 영혼의 축복을 말합니다. 나의 죄는 용서 받고 축복을 받았다고 시를 씁니다. 나의 죄는 부분이 아니라 모든 죄가 용서 받았다고 말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것은 대단히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시를 쓴 사람이 주님을 찬송한다고 쓴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은 축복을 말한 시였습니다. 

그 다음 축복은 마음에 간사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구원 받은 사람이 신실해지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순전하게 거듭난 사람을 보는 것은 대단히 축복됩니다. 왜냐하면 그의 죄는 용서 되었고 그의 삶에서 진실함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종교인이 자기자신을 자만하면서 하는 그러한 표현이 아닙니다. 마음에 간사가 없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교만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계속 거룩해진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종교적으로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용서 받은 그 하나님의 은혜가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거듭난 사람과 거짓 신자와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참됨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간사가 없을 뿐만 아니라 겸손한 사람으로 이 사람의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겸손하면서도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겸손한 것은 교만한 것과는 다릅니다. 자기를 겸손하게 보이는 것과 겸손한 것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것은 어떤 문화에서 차이가 생길 수가 있습니다. 문화로서의 겸손과 그리스도인의 겸손은 차이가 있습니다. 아세아 사람들 가운데 겸손하게 보이는 것은 문화의 요소이지 내면에 참으로 겸손해서 겸손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겸손한 것은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에 참으로 겸손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겸손을 자기 자신과 비교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된 하나님 앞에 이와 같이 겸손하다는 것은 마음에 간사가 없고 겸손하며 신실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기에 복 있는 사람이 나오는데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이 사람이 하지 않는 세 가지를 읽을 수 있는데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세 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축복 중 하나로 하지 않는 축복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기쁨인데 그의 즐거움은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관점이 있습니다. 이 복은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함에서 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전도자가 저에게 말하기를 경건함이라는 것은 그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지금 세상을 떠났습니다만 나를 위해 돌아가신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에 대한 것이 이와 같이 축복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세아에는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으로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경건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뜻으로 말을 합니다. 나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이것을 했고, 저것을 했고 등으로 해서 경건하다고 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을 저주하지도 않고, 물건을 훔치지도 않고 우리 믿는 자들도 그렇게 합니다만 그러나 우리는 마음 속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살게 한다고 말을 합니다. 2절에 그의 즐거움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들 사이에 그 안에서 발견하는 것들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구원받고 난 후에 내 스스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는 읽어 보니 대단히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한 구절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첫 번째는 헌신에 관한 것을 읽을 때 한 절에 관해 읽었습니다. 만약에 이 절을 안다면 성경을 읽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한 구절을 먼저 읽고 한 장을 읽기를 원했습니다. 한 장을 읽을 때 그 한 절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이 기도를 따라서 한 장을 읽을 때 한 절씩 한 절씩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내 마음 속에 한 구절이 암송이 되었습니다. 구절이 많아지고 내가 인도를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말씀은 저를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는 경건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사는 것을 보이고 있습니다. 

34:8-10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기에 복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피하는 자 즉 신뢰하는 자입니다. 누구를 신뢰하는지를 아는 것은 큰 복입니다. 특히 성경에서 결코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여기 8절에 보면 복 있는 자가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험하여 아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진화론자와 논쟁을 했다고 합니다. 진화론자가 믿을 수 없는 여러 팩트들을 말했는데 이 때 그리스도인이 대답을 하며 오렌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오렌지 껍질을 까는 것을 말하는데 진화론자가 놀라면서 당신 지금 무얼 하고 있습니까?’ ‘이 오렌지 조각을 가지고 얼마나 맛있는지 맛보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맛을 보니 맛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어떻게 이것을 맛을 보고 알 수 있겠느냐?’고 그 진화론자에게 말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당신이 계신 것을 증거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아는가 하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성경에 선지자를 통해서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라고 선지자를 통하여 말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시로 말미암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아들로 인정되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시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또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증거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대로 부활했다는 것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이제 머지 않아 구약의 말씀대로 왕 중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오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9절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라” 10절에서는 여호와를 찾는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그분을 믿을 수 있습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말씀하신 그분을 무엇보다도 존경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이분을 찾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추구하는 사람은 주님을 경외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을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약속을 얻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모든 좋은 일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확신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와 같이 세 가지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죄 용서를 보았고, 하나님 앞에 경건한 자의 삶을 보았고, 하나님 앞에 있는 확신을 보았습니다.

9절에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경우는 대적하는 자가 세상의 좋은 것들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고자 합니다. 불순종하여 어떤 것을 취하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경외하는 자가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적자는 여러분을 위해서 즐거움을 취하는 것은 좋을 것이라고 우리를 속입니다. 그러나 10절에서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배우는 것은 확신함과 의지할 것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믿는 자들은 이것을 증거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실인 것을 압니다. 이것은 로마서 12장이 선언하는 바와 같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선한 것이 무엇인지 시험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생각을 본받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확신을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65: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여기에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의 복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여러분이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이 복된 사람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첫 번째로 하나님 앞에 다가가는 자의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가가는 축복뿐만이 아니라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주의 성전에서 그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의 축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약에서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들인 것을 압니다. 또한 신약에서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성전이 무엇인지도 압니다. 디모데전서 3장은 우리들에게 그것을 다시 보게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할 것을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라고 말합니다.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했습니다. 모임의 교제 안에서 발견되는 사람들은 참으로 복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서 하나님이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자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에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구원 받은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처음에 저는 오순절 계통의 모임에 갔었습니다. 그들은 방언도 했고 기타도 쳤으며 드럼도 쳤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성경읽기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나의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 모임에 가서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저는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제가 어디에 있기를 원하시는지였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거하리라는 말씀을 그 때 알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가스펠홀 모임에 들어온 것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때에 대학생으로 영국에 유학을 가 있었는데 성경적인 모임을 찾고 찾았습니다. 저는 감리교 장로교 침례교도 갔었습니다. 영국에서 여러 형태의 교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때 그것으로 만족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영국 성공회 측에 한 번 갔습니다. 여러분들이 모이는 것에 내가 왜 동의하지 않는지를 그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때 저는 그들을 충분히 설득시키지를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그때 제가 신약성경에서 발견한 것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을 듣더니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존 시 당신은 플리머스 형제단에 가입되면 좋을 사람 같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계속 인도 받은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대로 믿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에게 나를 좀 데리고 가십시오그 사람은 내가 당신을 안내하기 전에 한 가지 경고한다고 했습니다. 옷을 말끔히 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때 청바지 하고 티셔츠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바를 제가 이해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옷을 말끔히 차려 입고 갔습니다. 저는 영적인 것을 말씀을 따라 추구했습니다. 저는 이전에 기타치고 드럼치고 하는 것들을 좋아했었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이후에는 그러한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경적이고 영적인 것들을 추구했습니다. 저는 뒷자리에 앉아서 말씀하는 형제님의 주님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빌립보서 2장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주님에 관한 내용을 기도를 통해 들었습니다. 저는 영적으로 내 마음이 채워짐을 알았습니다. 또한 만찬을 행할 때 그들은 주님에 대해서 기쁨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님이 곧 오실 것에 대해서도 기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곧 돌아오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을 제가 뒷자리에서 보았습니다. 저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바로 여기가 내가 찾던 곳이구나저는 그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주님이 임재 해 계신 곳에 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4절을 보면 주께서 택하시고를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이 가까이 오게 하고 거하시겠다는 것과 관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믿음을 가지지 않는 자를 하나님이 택하시지 않습니다. 말라기 2장에서는 레위인들에게 하나님의 택하신 것이 무엇인가 하는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은 참으로 큰 복입니다. 모임에 오는 것을 여러분은 편하게 여길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임에 있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이 모두를 계획하신 것입니다. 육적인 것을 채우는 것이 모임은 아닙니다. 육신적인 것을 행하는 데가 절대로 모임은 아닙니다. 영적인 실행을 추구하는 데가 바로 모임인 것입니다. 이러한 실행을 마음에 갖고 모이는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주제가 있습니다.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84:5-7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여기는 주께 힘을 얻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안에서 힘을 얻어 강해진다는 의미에서 단련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리스도인은 강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이와 같이 힘을 얻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바울에게 한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울이 어려운 시험을 당했을 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5절에서 하시는 말씀은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주님의 대로가 있는 자"라는 말로 해석될 수 있으며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의 복은 그 마음 속에 경건이 있는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의 마음 속에 시온의 대로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자의 마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난 중에서도 그분을 향해 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떻게 헤쳐나가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서점에 가서 여러 가지 동기에 관한 책들을 많이 찾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떻게 했는지를 발견합니다. 위기로 어려울 때 성경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은 그 마음 속에 시온의 대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모르실 리가 없으며 언제든지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또한 이 구절은 경험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6절에서 이 사람이 걸어가는 그 길을 보게 되면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라고 했습니다.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힌다"고 했습니다. 우리 성경 난하주에 보면 바카 골짜기인데 바카는 약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람은 계곡 즉 눈물 골짜기를 통과했습니다. 시편 23편에는 내가 흑암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를 말했습니다. 성경에서 골짜기는 삶에서 바닥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도 때때로 이와 같이 눈물 골짜기를 통과합니다. 그리스도인을 때로 이와 같이 눈물과 울음의 골짜기를 통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힌다고 하여 하나님이 관여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뭄 때에도 때때로 골짜기에 샘이 솟는 것을 여러분은 보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쉽지 않은 시기에 때때로 눈물 골짜기에서도 샘의 곳이 되는 것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그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우리를 채우실 때에 하나님에 대한 것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는 것을 실행할 때에 그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7절에는 "힘을 얻고 더 얻어"라고 했습니다. 한 번으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고 힘을 얻고 더 얻습니다. 한 문제 해결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계속 나아가므로 문제를 해결하고 힘을 얻고 또 얻는 것을 말합니다. 7절 마지막에는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그리스도인들이 모일 때 어떻게 축복하는가를 여러분은 기록을 통해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때때로 모임에서도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가운데서 우리에게 힘을 얻게 하고 도우신다는 것을 또한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눈물골짜기에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 때 복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은 눈물골짜기인데 독생자인 하나님의 아들이 거기로 와서 어떻게 해결하셨습니다. 주님은 구약 가운데 슬픔의 사람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분께서 오셔서 우리들의 죄에 관한 것들을 해결하시고 다 아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 안에서 단련을 받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94:12-15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에 벗어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 판단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좇으리로다

여기는 주의 징벌을 당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15절에 그 목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판단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좇으리로다” 13절에 평안을 얻는데 이 평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안은 어려움과 환난을 벗어나는 데에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평안의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평안의 날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여기 징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교육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디모데후서 3장과 관계가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징벌을 받는 것을 안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이것을 단순한 말로 말한다면 기도할 때이기도 합니다. 저는 말씀 준비를 위해서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이해를 위해서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저는 모임에 참석을 위해서 시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바쁜 가운데 하나님 앞에 징벌 즉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112:1-2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여기서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냥 자기의 삶을 조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조절한다기 보다 주님을 받아들여서 그분을 크게 알고 크게 즐거워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계명을 즐거워하되 크게 즐거워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그냥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크게 관심을 갖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2절에는 그 후손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부모들 당대에만 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가족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 당대에만 아니라 후대에도 관심을 가지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한 세대가 여러 세대를 이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창세기 5장에 왜 계보가 있는가를 말해줍니다. 왜 역대상 1장에 그 계보가 있는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왜 마태복음 1장에서, 그리고 누가복음 3장에 계보가 있는가를 우리들에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건한 자들의 족보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했기 때문에 복된 사람들이었습니다. 7군데 복 있는 자들의 길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귀한 말씀을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7. 4. 30 강서 말씀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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