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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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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16. 10:32 A.J. 히긴스

베드로전서 3

A. J. 히긴스

벧전 3:1-22

1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3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7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찐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22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3장을 통해서 그리스도인 신자들의 삶의 순종과 우선순위를 보겠습니다. 이 서신서의 배경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믿음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이 서신을 보냅니다. 이 믿음으로 인해 그들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핍박 받습니다. 그들의 직장과 학교와 이웃에서 모욕과 비방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 서신의 배경입니다.

3장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룹니다. 베드로는 가족에서 시작하여 모임과의 교제를 언급합니다. 우리의 대적들과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2장에서 얘기한 순종을 3장에서도 계속 언급합니다. 3장 초반부는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할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말합니다. 성도들은 서로에 대해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장은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 장에서는 기도에 대해 두 번 이상 언급합니다. 7절에서는 기도를 방해하는 요소를 언급합니다.

12절은 우리의 기도를 돕는 것을 언급합니다.

18절에서는 복음의 중요한 다섯 가지 교리를 다룹니다.

마지막에는 침례에 대해 다룹니다.

3장에서 하나님께 무엇이 가장 기쁨을 가져다 드리는지 배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해 배웁니다. 그리고 이 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 된 단어는 <선하다>입니다.

10, 선한 나를

11, 선을 행하고

13, 선을 행하면

16, 21, 선한 양심

16, 선행

 

<선함>은 이 장에 계속 언급됩니다.

저는 이 장의 주요 단어가 15절의 단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벧전 3:15)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주님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은 모임에서도 계속 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3장 마지막에서는 이 거룩하게 하는 것은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합니다.

3장 처음은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는 것이 가정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다룹니다.

사도는 아내를 먼저 언급하고 남편에 대해 말합니다. 이 배경은 믿는 자매 된 아내가 믿지 않는 남편과 결혼한 것입니다.

그리고 7절은 믿는 남편이 믿지 않는 아내와 결혼한 것입니다.

그들은 결혼할 당시에는 둘 다 불신자였지만 결혼 후 한 명이 구원 받은 것입니다.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는 것은 분명하게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여기 나오는 아내는 결혼한 후에 나중에 구원받았습니다. 그의 남편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아내는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

남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거부합니다.

베드로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믿는 아내에게 상담해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순종하라.

순복은 서양 문화에서 나쁜 인상을 주곤 합니다. 나의 순복은 내가 상대방보다 떨어진다고 여깁니다. 지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여깁니다. 가치가 덜 하다 생각합니다. 이제 순복의 의미에 대해 한 구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단어는 최초에 어디서 언급 되었을까요? 이 단어는 누가복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2:51)

주님께서 나사렛에 내려가셔서 요셉과 마리아에게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이신 주님께서 피조물에게 순종하신 것입니다.

모든 지혜를 소유하신 분께서 무지한 인간에게 순종하셨습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연약한 사람에게 순종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께서 가난한 두 사람에게 순종하셨습니다. 2 51절에서의 최초의 순종이 기록되어 있는 이 사례를 볼 때 순종은 지적인 능력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순종은 지식적으로 의지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에 따르는 것입니다.

순복을 통해 이 아내는 남편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통해 보배롭고 정결한 행위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매님들에게 남편을 돕는다의 의미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눈을 들어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은 주로부터 온다" 구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움의 하나님이십니다. 하와에게 도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던 하나님께서 동일한 단어를 자신을 가리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의 도움이셨습니다. 동일한 방식으로 아내가 남편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여정 가운데 동행하셨고 그들의 모든 슬픔 가운데 위로가 되셨고 모든 필요 가운데 그들에게 상담을 해 주신 분이셨습니다.

낙심하는 그 모든 순간에 하나님께서 앞에 계셨습니다.

이와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아내를 주시고 그로 인해 인도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3절에서 이 아내가 어떤 것에서 그의 특징이 두드러지면 안 되는지 말합니다.

우리에겐 우리의 외형을 바꿔서 남편을 섬기고자 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성품을 사용하라고 말하며 외적인 것에 너희 마음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마음의 숨은 사랑> 그들의 내적인 성품을 합당하게 개발할 것을 말합니다.

 

(벧전 3:3-4)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원어에는 <극히 값진>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1장에서 그리스도인의 보배로운 피에 대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동일하게 사용 된 표현이 <극히 값진>입니다.

<택하신 보배로운 산돌>에서도 <값진>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배로운 피라고 말씀하시고 아들이 보배롭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성품을 더욱 합당하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여인에 대해 <값지다> 말합니다.

여성의 우선순위는 내적인 것에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숨은 사람은 온유와 안정한 심령이 그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입을 다물겠다는게 아닙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어느 것이든 간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평안한 마음입니다. 이것에 대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불평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일어나게 하신 것들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자원해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온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신뢰한 여러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일하게 남편에게 순종했습니다. 이 대표로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합니다. 성령께서 이 일에 대해 놀랍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라의 생애를 살펴보면 이것을 발견하겠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한 것을 한 군데에서만 발견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세 명의 방문자가 옵니다. 그 중 한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라가 자녀를 가지게 될 것을 말합니다.

"내 주인이 늙었으니 내게 어찌 이렇게 말하리요" 사라는 웃습니다.

"왜 사라가 웃는가" 라고 하나님께서 물으실 때 사라는 거짓말 합니다.

이 모든 일 가운데 성령님께서는 사라가 잘못한 것을 언급하지 않으십니다. 그 상황 가운데서도 칭찬할 일 한 가지만을 말하고 계십니다. 남편을 주로 칭한 이 일을 성령께서 칭찬하십니다.

우리 자신은 실패한 기간이라고 우리의 시간을 언급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칭찬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을 통해 드러나는 원리이며 이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성도들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 신약성경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잘한 일만을 언급하고 계십니다.

놀라운 것은 단지 우리의 실수 가운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실수를 반복해서 생각하며 메여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도망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폭풍우를 보내시고 요나는 배에서 던져집니다. 그는 큰 물고기에 먹힙니다. "하나님의 실수로 어찌 그런 실수를 하는가" 우리는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 자신은 요나의 예를 자신의 죽으심과 장사 됨과 부활의 예에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로 칭한 것을 성령께서 칭찬하신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남편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3:7)

남편이 결혼 이후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지식을 따라 공부하며 아내를 귀히 여깁니다. 아내가 믿지 않는다 할지라도 믿는 자로서 아내에게 할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에베소서 5장에서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듣게 됩니다. 그의 사랑은 희생적이며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그의 사랑은 그 아내에게 안정과 보호를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생명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아내를 귀히 여기라"

귀히 여기라는 것은 아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해주는 것입니다.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이것은 도덕적으로 약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지식적으로 연약한 것도 아닙니다. 영적으로 연약하지도 않습니다. 아내가 육체적으로 더 강한 경우도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 순복하는 위치에 있게 될 때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놓입니다.

순복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인도하도록 합니다. 남편은 그 권리를 남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브에게 "아담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인도하는 특권 가운데서 이것을 남용해 함부로 아내를 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아내를 함부로 대한다면 여러분의 기도가 막히게 될 것입니다.

그럴수록 아내는 믿음에 대해 거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을 징계하시는 일로 사용될 것입니다.

남편은 항상 동일하게 믿는 믿음의 도에 대해 간증을 잘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성경에서 이러한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야고보서 4, 요한일서, 마태복음 6장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계속적으로 동일하게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 기도 응답을 받는 비결임을 발견해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건한 삶이 반드시 내 기도에 응답해야 한다는 의무처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하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기도 응답을 받는 장애물들을 스스로 제거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또한 모임 안에서 교제하고 있습니다. 8-9절은 믿는 성도들간의 관계에 대해 말합니다.

다섯 가지 상황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이 다섯 가지가 중요한 이유는 네 가지는 다른 성경에서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여기서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 교제는 <마음을 같이하여> 해야 합니다. <체휼하는> 동정해야 합니다.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불쌍히 여기고> 다른 사람의 필요게 민감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여기에 마음을 같이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벧전 3:8)

우리는 여기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모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구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무릎을 꿇는데 마음을 같이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언이나 성경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만 지역모임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구하는 일에 마음을 같이해야 합니다.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한 마음으로 서로 협력하라

예배와 관련해서는 로마의 성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체휼하는>

이것은 친절하고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딱딱한 성도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항상 비판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딱딱해지기 쉽습니다. <서로 체휼하라> 그들의 삶 가운데의 어려움에 대해 알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비판하지 말고 기도할 것을 말합니다.

가정 안의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2자에서 <거짓없이 서로 사랑하라> 말합니다.

히브리서에서 <형제 사랑이 너희에게 분명히 나타났다> 합니다.

 

<불쌍히 여기며>

다른 사람의 필요에 민감해야 합니다. 다른 성도에 대한 세 가지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첫째는 다른 성도들의 물질적인 필요를 채울 책임이 있습니다.

요한일서에서 요한은 다른 성도의 필요를 보고도 막으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이 너희 안에 있을소냐 반문합니다.

우리는 다른 성도의 물질적인 필요를 볼 때 마음이 열리고 그것을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성도들에 대해 영적인 책임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성도들이 나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더 강건해져야 하는 그 책임이 나에게 있습니다.

여러분을 만나고 난 후에 그 성도님은 더 강건해졌습니까? 아니면 약해졌습니까?

우리는 9절에서 악을 말하지 말고 복을 빌라 말하고 있습니다. 지역모임이 여러분이 있음으로 인해 더 좋아지고 복을 받고 있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제시하는 기준은 굉장히 높은 것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저에 대한 기준은 이것입니다. 나와 관계가 있는 모든 성도들이 나로 말미암아 조금이라도 더 좋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다른 성도들의 영적인 복지에 책임이 있습니다.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사도바울은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적인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책임이 세 번째로 있습니다. 그들을 민감하게 위로해야 합니다. 그들이 어려움을 통과하고 있을 때 그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욥의 세 친구들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7일 동안 잘 행동하였습니다. 그런데 7일 후에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무 말 없이 욥과 앉아있을 때 욥을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기 시작하자 모든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고난을 겪고 있는 성도들 옆에 있어주는 것만이 여러분의 좋은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감정적인 필요에 민감해야 합니다.

 

<겸손하라>

빌립보서 2장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겸손하신 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 주님이 그와 같이 겸손하게 되신 것에 외적인 조건이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실수로 말미암아 겸손하게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말한 것과 다른 삶을 살게 될 때 그로 인해 겸손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항상 말과 행동이 일치했으며 그분에겐 어떠한 잘못과 약점도 죄와 실수도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부적절한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그런 외적인 것들이 그분에겐 전혀 없었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겸손하셨습니다.

우리가 소유한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겸손하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그것은 저 사람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은 나의 복지보다 다른 사람의 복지를 우선한다는 의미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2:10)

다른 사람을 나보다 먼저 하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한 지역 모임에서 서로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자기의 이익보다 먼저 둔다면 그것은 놀라운 모임이 될 것입니다.

이후에 시편 34편을 인용합니다. 다윗이 실패했을 때의 시입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골리앗이 나왔던 블레셋 땅으로 오히려 도망갑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미친 척합니다. '내가 얼마나 큰 실수를 하였는가'

"선한 날 보기 원하는 자는 그 혀를 악에서 금하라"말합니다. 그 입술이 궤휼을 말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궤휼은 선한 것인 척 조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지 말고 선을 좇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눈은 의인을 향하고 그런 기도를 귀를 기울인다 말합니다.

조화로운 삶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 얼마나 축복이 되겠습니까?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찐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벧전 3:17)

 

(벧전 3:18-22)

여러분에 대해 참으로 복 있는 자라고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그 대적들과 함께 사는 상황 가운데서 있는 일입니다. 그 가운데서 너희들의 이웃과 친구들에게 핍박 받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복주신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라.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예비하라 합니다.

베드로 자신이 그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한 것에 대해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세 번이나 질문을 받았을 때 적절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내가 한 실수와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고 여기서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 여기서의 두려움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구약에서 자주 언급되는 주제입니다.

디도서에서는 <경건하다>라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젊을 때 내가 잘못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벌주실 것을 의식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에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벌주실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했는가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지었을 때 영원토록 나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신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경배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위해서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는 필요성과 우리로 대답할 것을 예비할 필요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 비방합니다. 다른 사람이 비방하는 것이 실제로는 거짓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행을 하면서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게 되며 거짓 비방하는 자들이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일찐대>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믿는 자들은 항상 부당하게 고난을 받게 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상사와 술을 마시고 하기 때문에 더욱 좋은 승진의 기회를 가집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것을 이유로 여러분은 승진에서 계속 빠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벧전 3:18)

이 분은 부당하게 고난받았을 뿐 아니라 불의한 자들을 위해 고난받으셨습니다.

 

18절은 복음의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한 번> 그 분의 죽으심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최종적인 것이며 다른 것이 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화목제물의 놀라운 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사하실 완벽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이 화목제물의 온전함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속죄물의 교리를 봅니다.

또 화목에 대해 봅니다.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함이라>

이것은 단지 하나님 앞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믿는 자들은 믿는 순간 하나님과 화평을 이룹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친구로서 교제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적이 아니라 그분과 교제하는 친구가 되기 위하여 그분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단 한번의 영원한 제사를 보았습니다.

화목제사의 충분함을 보았습니다.

대속물을 보았습니다

화목케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활에 대해 보게 됩니다.

<육체로 죽임을 당하시고> 실제로 죽으셨습니다.

<영으로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리스도께서도 불의한 자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성도들이 받고 있는 고난 이상의 것을 언급하셨습니다.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벧전3:22)

그분은 하늘에 오르시고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사도가 연결해서 말하고 있는 생각의 연속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겸손하게 낮아지신 분 앞에 이제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이 순복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우리에게 제시한 진리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2장 중반부부터 베드로는 순종의 중요성을 언급합니다. 여러분이 순종하신다면 여러분은 그것으로 인해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 순종의 길을 걸으신 그리스도께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보라. 말하시는 것입니다.

순종의 길을 걷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장애를 받지 않고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요셉의 삶을 보겠습니다. 열 명의 형제들이 하나님이 가지신 요셉을 향한 계획을 방해하고자 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도, 간수도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술관원이 요셉을 잊어버린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지신 계획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순종하도록 두신 상황과 환경 속에 마땅히 순종하고 있을 때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벧전 3:19-22)

여기에 제기되는 의문점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영이라는 것은 성령님일까요 아니면 그리스도의 영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언제 그 분이 가서 누구에게 전파하신 것일까요?

모든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제시됩니다.

창세기 6장에서 "나의 영이 항상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하십니다.

홍수가 일어나기 120년 전에는 하나님의 영이 계속적으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영은 성령님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옥에 있는 영들>은 노아시대에 성령께서 복음을 전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 땅 가운데 있을 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함에도 그들은 불순종했습니다

방주가 안전한 곳으로 가는 것이 침례의 그림입니다.

물은 지구를 심판하고 멸망하고 있지만 물은 방주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주고 있습니다.

방주는 썩어질 땅을 떠나 새로운 땅에 안착합니다.

여러분이 침례를 통해 한 것은 유사한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침례받을 때 세상 가운데 죄없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새로운 것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침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제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말합니다.

사도행전 28장에서 침례는 순종의 표시라고 말합니다. 반드시 침례를 받아야 할 것을 말합니다.

침례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면 주님이 침례를 명하셨다는 것만으로도 의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에서 침례는 주님의 명령임을 봅니다. 그리고 로마서에서 침례는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 여기서는 선한 양심이 주님을 찾아가는 것임을 말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새로운 종류의 삶을 살 것이다.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새로운 종류의 삶을 살 것이다. 지역모임의 신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장은 계속해서 그리스도께서 주시라고 우리를 상기시켜 줍니다.

하늘에서 주님이신 분은 우리 가정에서도 주님이셔야 합니다. 하늘에서 주님이신 그분은 모임에서도 주님이셔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도 주님이 되셔야 합니다.


2018. 03.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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