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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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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16. 10:45 A.J. 히긴스

베드로전서 5

A. J. 히긴스

벧전 5:1-14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11 권력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13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14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우리는 베드로 서신서를 볼 때 바벨론과 다니엘서와 연관되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바벨론에서 이 서신을 쓰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6장에서 <우는 사자>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마지막 삶이 이 마지막 장에 어떻게 녹아있는지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23장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며 공적으로 회복시키십니다.

네 양을 치라, 네 양을 먹이라 말씀하십니다.

이제 베드로가 여러분에게 양들을 치라 다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벧전 5:5)

요한복음 13장에서 주님은 허리에 수건을 동이고 제자들을 직접 섬기십니다.

7절에서 베드로가 배에 있었던 장면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가복음 5장에 나와있는 기록입니다. 호수에 폭풍이 일어났을 때 주님께서는 배에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깨웁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깨우시지 않습니까?

5 7절에서는 주님께서 참으로 우리를 돌보신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권고하십니다.

그리고 8절에서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을 기억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깨어 기도하라" 말합니다.

사단이 너희에게 밀까부르듯 하려고 한다고 주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잠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단이 울부짖었을 때 그는 실족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실패를 바탕으로 성도들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벧전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누가복음 22장에서 주님을 부인하는 베드로를 주님께서 쳐다보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도 친절하게 베드로를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10절에 이 모든 그림들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을 조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일곱 명의 다른 사람들과 연관시키셔서 말씀하십니다.

,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엘리야의 하나님, 다니엘의 하나님, 여수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자신의 이름을 말씀하십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베드로의 하나님>, <바울의 하나님>이라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불리십니다.

그리고 일곱 가지의 덕과 관련하여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 모든 인내의 하나님, 모든 위로의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 그리고 모든 은혜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제시됩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은 성경에서 여기에만 기록되는 이름입니다. 이 이름을 고난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은 여러 개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목자들에게 그들이 양을 돌보는 가운데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5-6절에서는 성도들의 겸손함을 위해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7절에서는 어려움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8-9절에서는 사단에게 위험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10절에서는 고난 받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장에서 참으로 은혜가 풍성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 나라로 가는 모든 단계마다 은혜가 특징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곧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의 찬송을 보겠습니다.

권력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벧전 5:11)

베드로전후서에는 세 가지의 송영이 나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벧전 4:11)

두번째는 벧전 5:11

세 번째가 베드로후서 3장에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은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4장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섬김을 위한 은사와 관련됩니다.

5장은 우리 앞에 놓인 영광과 관련됩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서는 우리의 성장과 관련됩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바울이 그가 말하는 송영에 대해 그의 서신서를 찾아보는 것도 유익할 것입니다.

 

이 장을 살피기 전에 한 가지를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서신서 전체를 볼 때 우리 주님의 이름을 생각하게 합니다.

1장에서는 희생당하신 어린양,

2장에서는 돌,

3장에서는 고난받는 자,

5장에서는 목자로 제시됩니다.

이 서신서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우리에게 보여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든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5장이 어떻게 끝나는지 보겠습니다. 여기에 양들이 있고 그들에 대한 돌봄이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 4:7)

우리의 대적과 그들의 속임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10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이것과 관련한 놀라운 하나님의 위로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는 목자들과 양들에게 이 말을 전합니다.

 

모임을 인도하는 자들에게 어떤 이름을 붙이는지 보겠습니다.

1절에서 그들은 장로라고 불립니다.

2절에서는 감독하는 자라고 불립니다.(우리말 성경에는 없음) 모임을 인도하는 목자들로 비유됩니다.

이 세 가지 이름이 지역모임을 인도하는 자들의 이름입니다.

저는 히브리서 13장의 명칭을 한 가지 더 하겠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던 자>

사도행전 20장의 진리를 말해줍니다. 거기서 사도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을 부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고 감독하라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20장에 여기 나온 세 가지 명칭이 다시 사용됩니다.

그리고 디도서 1장에서 인도자를 위해 이 세 가지 명칭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여러 이름일까요? 그들은 지역모임을 인도하는 동일한 그룹입니다. 여러분이 장로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할 때 이것은 특별히 영적인 성숙을 의미합니다. 때때로 나이 많은 분들이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장로는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의 성숙함을 말합니다.

감독은 그의 권위를 말합니다.

목자는 그의 동정하는 것과 활동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인도자는 그 양떼들을 앞서 인도하는 일의 고귀함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네 가지의 다른 표현은 지역모임을 인도하는 각 사람들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이제 그들의 수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그들을 가리키는 단어를 볼 때 항상 복수형이 사용됩니다. 디모데전서 3장과 디도서 1장에서 오직 두 군데만 단수로 장로에 대해 기록합니다. 그 장로의 자격에 대해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임의 행함에 대해 기록될 때는 항상 복수형으로 기록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한 사람이 지역모임을 인도하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얼마나 영적으로 성숙했든지, 말씀을 얼마나 잘 가르치든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종교계에서는 한 감독이 여러 교회를 감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은 한 교회를 복수의 감독이 감독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동일한 관계를 모든 신자들과 가지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균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감독들은 서로간에 같이 하며 균형을 맞춰가야 합니다.

그리고 다수의 인도력은 잘못된 가르침을 방지하는데 유용합니다. 사도행전 13장 이후로 계속 나오는 교회의 모습 속에는 항상 복수의 장로가 있었습니다.

이제 베드로가 장로들에게 권하게 될 때 몇 가지를 보게 됩니다.

 

(벧전 5:1-2)

<함께 장로된 자요>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장로의 일을 꺼리는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서신을 보낼 당시는 그리스도인들에게많은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 핍박의 시절에 인도자는 첫 번째 순교의 대상이 됩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러한 위험한 일의 최선방에 서는 것을 꺼리게 되는 것입니다.

인도하는 자리라는 것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 사실을 안다면 그 자리에 간다는 것을 꺼리게 될 것입니다.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벧전5: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삯꾼은 더러운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도적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해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양들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양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자와 양이 얼마나 가깝게 있는지 말해줍니다.

인도자가 해야 할 가장 주된 임무가 단순히 천거서에 사인하는 것이 아니라 말합니다.

인도자의 주된 임무가 사람들을 꾸짖는 게 아니라 말합니다.

인도자의 주된 임무가 규칙이나 규정들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말합니다.

그 인도자들의 가장 주된 본연의 임무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은 <내 양을 치라>입니다.

사도행전 20장과 베드로전서 5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양무리를 치라>입니다.

에스겔서 35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꾸짖습니다. 첫 번째로 꾸짖는 것은 너희들이 양무리를 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목자와 관련하여 처음으로 언급되는 것은 양을 치라는 것입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살전 5:14)

<마음이 약한 자들을 붙들어 주고>

쉽게 낙심하는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없는 자들을 붙들어주라.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양을 치는 일에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한번 다른 순서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양들을 치라 > 힘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 >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 그들에게 오는 대적에 대해 주의하고 그들로부터 보호하라 > 미래에 대해 준비하라

그 인도자들이 항상 그 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넘어진 자들을 일으키는 일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범죄에 빠진 자를 회복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는 범죄한 자가 회복 되는 것에 대해 목자가 양을 찾는 비유로 설명하였습니다. <그 양을 찾기까지 찾아다닌다>

마태복음 18장에서도 양을 찾는 목자에 대해 말합니다. 어떤 한 형제가 실족합니다. 그 목자는 양을 찾아나섭니다.

<그리고 그 양을 찾는다면> 이라는 조건절로 되어 있습니다.

구원받지 않는 자에 대해 찾기까지 찾으시며 형제의 실족에 관해서는 <양을 찾는다면>이라고 가정법으로 표현합니다.

모임을 떠난 자를 회복시키는데는 많은 인내와 기술이 필요합니다.

누가복음 14장에서는 우리 주님께서 안식일에 기적을 행하십니다. 바리새인은 비난합니다.

"너희에게 소가 있어 안식일에 빠졌다면 그 웅덩이에서 소를 끄집어내지 않겠느냐"

마태복음 12장에서 안식일에 기적을 행하시고 다시 한번 비난을 받으십니다. "너희에게 양이 있어 그가 우물에 빠졌다면 그를 끄집어내지 않겠느냐"

주님께서 이 두 가지 비유에서 말씀하신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소는 끄집어내고 양은 붙잡아 올립니다.

우리는 실족한 형제에게 찾아가서 최대한 그에 맞는 말을 해야 합니다. 들어올리려면 반드시 가까이 가야 합니다.

 

목자의 어려움을 여기서 말합니다. 목자는 여러 가지를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이 지역교회가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라고 말씀하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합니다.

이 모임에 세워진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을 대가로 지불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임은 하나님께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모임의 장로들은 이 지역모임이 하나님께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보고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에 목자장이 있습니다. 지역모임 인도자들은 목자장 아래 있는 소목자입니다. 그들은 목자장에게 그분의 일을 보고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에 대해 세 가지 다른 표현으로 목자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는 <선한 목자>, <참된 목자> 라고 거짓 목자와 대조하여 말하십니다.

그분은 선한 목자로서 우리에게 목숨을 주십니다.

히브리서 13장에서 그분은 큰 목자로서 죽음에서 부활하십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목자장으로서 모든 장로들이 그분 아래 있으며 그분은 다시 오시는 분으로 여기에 제시됩니다.

젊은 성도들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진 모든 것들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세 가지 직임에 대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가 죄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죄에 빠질 때 대언자로서 아버지 앞에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목자장으로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우리를 회복하십니다.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공급하실 수 없는 영적인 필요는 없습니다.

이 단락은 목자의 일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많은 일이 포함 되며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감독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내에 대해서도 말씀 드리겠습니다. 모든 감독자의 아내는 희생해야 합니다.

장로가 다른 성도를 방문할 때 그는 집에 홀로 남으며, 젊은 성도들을 초청할 때 접대합니다. 아내는 부엌에서 일을 합니다.

남편이 잠자리로 들어갈 때 아내는 설겆이를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그런 일을 했던 제 아내가 더 큰 상급을 받는다는 것이 저는 너무나 감사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동역하여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감독들의 아내는 지역모임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신자들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그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양을 칠 때 중요한 덕목은 그들이 필요할 때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러한 희생에 대해 어떤 보상이 있는지 말씀해주십니다.

흥미로운 것은 휴거할 때가 아니라 그분께서 영광 중에 이 땅에 오실 때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영광을 언급할 땐 항상 고난과 함께 언급됩니다. 여기서도 동일하게 목자들의 일은 많은 희생이 필요한 것이며 고난 가운데서 많은 면류관을 얻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벧전 5:5-7)

여기서는 이제 지역 모임의 양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지역 모임의 하나됨을 해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경고하고 있습니다.

나이 든, 모임을 인도하는 사람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상주의에 빠집니다. 그것은 여러 에너지와 활동을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세상의 문제들이 해결 되는 것을 기대합니다. 저는 25세에 지역 모임의 모든 문제와 미국의 문제를 제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70이 넘은 지금 저는 해답보다 더 많은 질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그들의 인도력을 존경하고 따를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지역모임에서의 내 위치에 만족하고 있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지역모임을 손상시킬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와 그리스도인들의 지역모임을 향한 특징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말합니다.

첫째는 5절의 겸손한 것입니다.

이것은 순복하는 것으로 장로와 서로에게 순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순복하는 마음일 뿐만 아니라 서로 섬기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허리를 동이라> 이것은 요한복음 13장을 상기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식사하시는 중에 일어나셔서 허리를 동이시고 일하셨습니다. 노예가 하는 일을 주님께서 친히 하셨습니다. 허리를 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열 한명의 제자들은 영원토록 유감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주님의 발을 씻길 기회가 있었지만 그런 일을 하기에 그들은 너무 교만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볼 때 주님의 발을 씻긴 남자는 없었습니다.

한 여인이 주님의 발을 씻겼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나온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여인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그분의 발을 씻겼습니다. 위대한 제자들 중 아무도 그 일을 하지 못하였지만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그 여인이 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내가 그 기회를 놓쳤다"고 이 말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격려합니다. 요한복음 13장은 겸손한 마음이 무엇인지 말해줍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는 그 겸손한 마음의 위치를 보여줍니다.

베드로전서 5장에서는 이 겸손한 마음이 어떻게 높아지는지를 말해줍니다.

서로간에 이 겸손한 마음이 어떠한 상급을 받을지를 말해줍니다.

사람들은 항상 우리를 낮추어버리지만 주님은 항상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겸손한 가운데 주님께서 다시 높아지셨음을 봅니다.

세 가지가 겸손의 동기가 됩니다.

첫째로 교만한 자를 하나님은 경고하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도우십니다.

셋째로 우리를 돌보시는 주님의 마음을 제시합니다.

(벧전 5:6-7)

참으로 하나님은 이 이상을 하십니다.

 

<너희를 권고하심이라> 여러분 각자를 권고하신다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주님 저를 돌아보지 아니하십니까" 말하였습니다. 복음에 대해 거절하는 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돌아보시고 권고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중 가장 훌륭한 사람도 이렇게 다른 이를 돌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일을 다룰 때 진이 빠지고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 각자를 권고하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는 우리의 대적을 제시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8)

그의 이름은 대적이며 마귀이며 우는 사자입니다. 그의 악함이 점점 증폭되어 묘사됩니다.

그는 대적이며 마귀로서 우리를 거짓 송사하며 우는 사자로서 우리를 삼켜버립니다. 사단의 기술에 대해서도 베드로는 묘사합니다. 사단은 두루다닙니다. 믿는 자들을 쓰러뜨릴 때까지 계속 다니며 찾고 있습니다. 잔인하게 공격합니다.

 

그의 행동은 간교합니다. 그는 분리를 만들고 낙심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대적할 수 있음을 또한 발견합니다. 믿음을 굳게 하여 대적하는 것은 지역모임의 연합 된 가운데 일어납니다. 문맥상 사단은 지역모임을 파괴하기 위해 활동합니다.

첫째로 인도자들을 공격합니다. 그들이 양을 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돈을 위해 그 일을 하도록 합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자세를 가지도록 만듭니다. 그 인도력에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을 통해 지역 모임 성도들을 공격합니다.

양들 가운데 인도자들의 분리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분리합니다. 이와 같이 여러 방법을 통해 지역 모임에 침투하여 지역모임을 무너뜨립니다.

이 가운데 있는 모든 분들이 사단이 지역모임을 무너뜨리는 출구로 사용되지 않길 바랍니다.

 

지구상에 최초로 세워진 지역모임은 예루살렘 교회였습니다. 사단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자신의 일을 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돈 가운데 사단이 침투할 구멍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은사를 소유했던 교회는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다고 했던 교회입니다. 알려진 은사 중 고린도 교회가 소유하지 않은 은사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악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길로 가고자하는 고집 센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송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구상의 가장 많은 은사를 소유한 지역교회가 무너지기 직전이었던 것입니다.

로마 교회는 강한 자들이 약한 자를 무시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빌립보에 있는 풍부한 교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곳의 두 명의 자매가 싸우고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초반에 <복음의 신앙을 위해 서로 협력하라> 합니다.

그런데 그 모임 안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4장에서 두 자매가 서로 간에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분쟁은 지역모임의 문제이며 복음이 전파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도 진리에 대한 극단적인 이해를 하며 문제를 경험합니다. 그들의 진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이 주님이 다시 오시니 일할 필요가 없다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 얹혀 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책망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사단은 잘못 된 교리와 서로간의 성격차이를 이용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을 이용합니다.

지역모임을 공격할 방법을 찾기까지 그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대적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욥기 1장에서 사단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모든 사람들은 그가 행한대로 상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욥의 섬김은 욥이 받은 축복 때문이니 전부 빼앗는다면 하나님을 더 이상 경외하지 않을 거라고 송사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패하자 욥의 몸을 공격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각 사람의 소유물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생각하신 방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의 모든 생각은 죄악된 본성에 더럽혀지고 손상 된 생각입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도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는 오늘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사단은 천년 동안 갇히게 됩니다. 천년 후에 잠시 풀린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 속에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천년 동안이나 결박을 당하고도 하는 일이 여전히 악을 행하는 거니 말입니다.

사단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데 있어서는 항상 유능합니다. 그는 진리를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단이 하나님의 지역모임을 계속해서 공격하는 대적인 것입니다.

 

(벧전 5:10-11)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영어 성경에서는 여러분을 온전케 하고 강하게 하고 터를 굳게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사도의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 우리를 온전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삶에 있어서 계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룬다는 보증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온전>은 그물을 깁고 모든 것을 완성시키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통해서 금을 가지시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고난을 통과하여 이루어낸 것이기도 합니다.

<잠깐 받은 고난>과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을 대조합니다.

영광과 고난이 영원과 잠깐이 대조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분의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금을 이루신 것을 말하며 하나님께서 곧 이루실 것을 보장으로 말하십니다.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실> 것입니다.

터를 견고케 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흔들리지 않도록 견고케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강하게 하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기반을 견고케 하셨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여러분을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벧전 5:12)

은혜 가운데서 요동하지 않을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버린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격려합니다. 이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떤 은혜가 필요하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공급하시기에 충분하신 분입니다.

이 서신서를 통해서 사도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의 모든 것을 이끌고 주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지역모임을 이끌고 이 은혜가 서로를 복종하게 합니다.

이 은혜가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우리의 염려를 주님께 맡기게 합니다.

이 은혜는 고난 중에 있습니다 이 은혜 속에 굳게 서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은혜에 대해 세 번에 걸쳐 기록되었습니다.

5절에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12, 이것이 하나님의 참 된 은혜이며 우리가 이 은혜에 굳게 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11절에서 그의 송영으로서 이 서신서를 마칩니다.

각각의 송영에는 네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송영을 받는 분,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돌려드리는 그분의 성품이 있습니다. 그 영광과 권력이 세세 무궁토록.

그리고 그것과 관련한 시간이 묘사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아멘>으로 마칩니다.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받았고 매일 은혜를 받는 자로서 동일한 송영을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영광과 권력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 지어다" 우리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축복하시길 바랍니다.

 

2018. 0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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