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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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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죽음

다니엘 럿지

19:26-30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오후에는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세 번의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26절에서는 주님께서 동정의 마음을 가지고 말씀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28절에서는 고통 중에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30절에서는 봉사의 관점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먼저 26절부터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모친을 보시고여기서 예수님이 무엇을 보셨습니까? 물론 그 모친을 보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찔리시는 것을 모친이 보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예수님이 그 모친이 고통 당하는 것을 보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주님이 우리의 슬픔과 고통을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육체를 가지고 계시지만 현재 대제사장으로 계십니다. 우리들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고 또한 돌보십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보신다는 것을 공부하는 것은 대단히 좋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곳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마가복음 6장에서는 저들이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떡으로 사람들을 먹이신 후에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폭풍우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주님이 저들이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와 같이 고통당하고 슬퍼하는 마리아를 지금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제자들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1장에서는 주님께서는 성전 앞에 앉아 계셔서 특히 연보궤 앞에 앉으셔서 부자들이 돈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또 성경은 말하기를 어떤 가난한 과부가 넣는 것을 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 슬픈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아무 돌봄도 받지 못한 그 과부가 작은 헌금을 거기에 넣었습니다. 주님은 그녀가 넣는 것을 보시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넣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녀의 희생을 보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어떤 상태인가를 보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고난을 당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경우는 슬픔을 당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경우는 주님을 위해서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는 주님을 위해서 괴로이 노를 젓는 것처럼 수고를 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고 아무도 나를 모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만은 보실 것입니다. 우리들을 돌보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좋습니다.

여기에 주님께서는 참으로 어려운 환경가운데인 십자가 위에서도 그렇게 보셨습니다. “그 모친을 보시고그리고 26절에 또 무엇을 보셨습니까? “여자여 보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여자여라고 하심은 주님께서 아주 부드럽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어머니에게 아주 예의 바르고 공손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을 가리키며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절에서 요한 보고 보라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하신 이 일은 무슨 일입니까? 요한에게 법적인 보호자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돌봄이며 동정입니다. 그 모친을 걱정했습니다. 요한은 이 마리아의 조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야고보, 요셉, 유다라고 하는 육신의 동생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시몬이라는 동생도 있습니다. 왜 모친을 그 동생들에게 맡기지 않았을까요? 이 시점에서는 그들이 예수님을 아직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제자 요한에게 그 모친을 맡기셨습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모친을 보시고라는 말을 제가 좋아합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이 땅에서 주님은 모든 것을 가진 분이시지만 주님 자신의 것으로는 거의 갖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모친을 그 제자에게 맡기셨습니다. 다른 곳에 보면 제자들이 모두 주님을 버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장에서는 사람들이 주님의 옷과 속옷까지도 가져갔습니다. 군인들이 주님의 옷을 가지고 제비를 뽑았기 때문에 주님의 소유물이란 것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남기신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그분 자신만 남겨놓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성경에서는 주님이 자신을 주셨다고, 자신을 내려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27절을 보십시오.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요한을 처음 부르실 때 상황을 기억하십니까? 요한은 부모인 세베대와 배를 버리고 좇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요한은 여기서는 예수님으로부터 어머니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요한에게 짐이 되었을까요? 저는 요한에게 전혀 짐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요한에게 마리아를 돌보는 것은 특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교제입니까? 요한은 마리아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마리아여 베들레헴 이야기를 저에게 해주십시오라고 물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요한에게 변화산상의 이야기를 나한테 해 주시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봉사에 때로는 책임을 지우시고 거기에다가 주님께 가까이 있는 특권을 주십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사랑하는 그 제자였습니다.

27절에서 요한은 무엇을 했습니까?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여기에 순종의 예가 하나 나와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자마자 즉시 순종한 것을 여러분은 보십니까? 성경은 자기 집에라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자기 집 안에라는 뜻입니다. 이는 자기 자신에게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마리아는 요한의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교훈을 받는 것은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참된 순종은 즉각적이어야 합니다. 참된 순종은 나 자신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저 아는 것으로는 안되며 그 진리가 나의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동정을 했습니다.

28절에서는 주님이 외치심으로 갑니다.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불편하신 것이 아니라 사실을 선언하신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는 주님이 참으로 사람인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참으로 고통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물론 이 목마름은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잠시 생각을 하면서 시편 69편을 응하게 하는 말씀인 것을 보았습니다. 시편 69편에서는 내가 목마를 때 그들이 초로 마시웠다고 말했습니다. 놀라운 것을 말씀드리면 주님께서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이것은 복음이기 때문에 여기에 생수가 가득합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생수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은 목마르셨습니다.

여러분 요한복음에서는 많은 물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갈릴리 가나의 잔치를 기억할 것입니다. 물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4장에서는 우물가에 게셨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물을 주었습니다. 7장에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많은 예들이 있습니다. 광야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생수를 마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거기는 수 천 수 백만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위에서 솟구치는 생수를 그들이 마셨습니다. 그 바위에 대해서 바울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고린도전서 10장에서 그 바위는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풍성한 생수를 공급하시는 분이 게십니다. 그러나 주님 자신은 정작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질문은 ?”입니다. 이것은 매우 엄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죄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누가복음 16장에서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내용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부자는 믿음을 갖지 않았고 지옥에 간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나사로에게 부탁하여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그 부자는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목말랐고 그 혀를 서늘하게 할 물이 필요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목마르다는 것을 경험하신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죄를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하는 목마름입니다. 여기서 아버지가 주는 잔을 예수님은 마시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위해서 죄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목말랐습니다.

들으십시오 주님은 십자가에서 목마르셨습니다. 우리로 생명수를 마시게 하기 위해서 목마르셨습니다. 영원히 합당하지 않은 대우를 주님께서 받으셨습니다. 고통 중에 외치신 것을 오히려 감사합니다.

30절에서 주님의 섬김에 관한 외침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선언이 아닙니까? “다 이루었다헬라어 말에서는 Τετέλεσται(테텔레스타이)라는 단 한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내가 이루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에도 신약에도 내가 이루었다는 기록의 말씀이 있습니다. 어느 한 날 모세는 주님께서 나에게 지우신 짐이 너무 무겁다고 말하며 나는 그것을 질 수 없다고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들의 죄의 짐 아래 계신 주님께서는 나는 이제 그 짐을 지기에 끝났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갈멜산에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했던 사람인 엘리야 그는 바알 선지자들에 대해서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 후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엘리야는 알았습니다. 광야로 도망을 갔습니다. 어느 나무 아래 앉아 있으면서 이제 내가 지쳤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더 이상 나는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세처럼, 엘리야처럼 말씀하지 않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서 사실은 우리의 죄 때문에 완전히 지쳤습니다.

헬라어에 테텔레스타이라는 말은 첫 번째는 종과 관련된 단어입니다. 조금 전에 섬김의 외침이라고 말씀드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헬라말에서 어떤 주인이 그 종에게 일을 맡겼다면 최선을 다해서 일을 이룰 것입니다. 그 때 종이 일을 다 끝내고 와서 주인에게 테텔레스타이라고 말을 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내가 일을 끝냈고 그것을 완전히 끝냈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합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은 바로 그런 의미의 말씀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 4장에서 내 음식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일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말씀은 끝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7장에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고 말씀했습니다. 종으로써 말씀하시기를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테텔레스타이라는 말은 또한 제사장이 사용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제사장이 동물을 제사하기 위해서 살필 때 그 희생제물이 흠이 있는가 없는가를 살핍니다. 흠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 때 제사장은 테텔레스타이,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흠이 없는 완전한 희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점과 흠이 없는 어린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분 자신을 드렸습니다. 이 테텔레스타이는 종이 섬기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제사장이 사용하는 말일뿐만 아니라 또한 이것은 예술가가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떤 예술가가 자기 작품을 완성시킬 때 그것이 일년 정도의 작업이 걸리는 것이라고 할 때 마지막 그 작품에 붓을 댄 다음에 물러서서 테텔레스타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이 걸작을 끝냈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동일한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모든 그림자, 모든 모형, 그리고 모든 선지자의 말들을 주님께서는 다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걸작인 구원,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여기서 완성이 된 것입니다. 출애굽기 13장에서 기록되고 말씀한 모든 그것들이 실제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들을 이루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테텔레스타이라는 말은 장사하는 상인들이 사용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떤 빚에 관해서 장사꾼이 협상을 할 때에 그 빚이 지불되었을 때 그 지불된 것을 기록에 표시할 때 테텔레스타이라며 이제 빚이 다 지불되었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기서 하신 말씀은 그러한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죄 값을 다 지불했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죄를 중재하는 모습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우리의 죄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함인 것을 말씀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갈보리의 희생은 전인류에게 퍼져나갔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때 누구든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역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이죠.

여러분이 구약성경을 읽을 때에 끝냈다, 이루었다고 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는 창조를 끝냈다는 완성의 끝냄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에 관한 일이 다 이루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두 번째 열왕기상 6장에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 짓기를 필하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세 가지의 큰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창조가 이루어졌고, 성전이 이루어졌고, 그리고 갈보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일들을 비교하고 또 대비시켜 보기 바랍니다. 성경은 창조는 하나님이 하셨다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물을 지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따라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창조에 관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었습니까?  성경은 성전을 지을 때 약 28,000명 정도가 일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사역을 이루실 때, 우리의 죄를 인하여 고난을 당하실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가담했습니까? 한 분만이 이 일을 했습니다. 그 자신이 친히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했다고 한 분만이 일을 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히브리서에서는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들이 이루어지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까? 모든 창조를 하는 데는 6일이 걸렸습니다. 성전은 7년이 걸렸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담당할 때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까? 십자가 위에서 약 1시간 정도였습니다. 이것이 마지막으로 이루어지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습니까? 창조는 지금까지 지난 시간을 보면 6천년 정도 성경적으로 시간이 있습니다. 주 예수님이 오셔서 다스릴 다른 천 년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 이후에 다시 시간이 진행이 됩니다. 성전은 얼마나 지속이 됩니까? 400년이 지난 다음에 성전은 없어졌습니다. 창조는 주님의 천년왕국이 지난 다음에 없어지지만 십자가에서 하신 일은 얼마나 지속이 되겠습니까? 십자가의 이 일은 영원히 지속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 일들을 하는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지불되었습니까? 창조는 주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비용만 지불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니 만물이 생겼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는 금과 은을 가지고 지었습니다. 몇 백만의 파운드라는 돈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의 비용은 얼마나 지불이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계산할 수 없는 값이 지불이 되었습니다. 그 아들을 지불하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을 지불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고 사랑하십니다. 이 예수님의 섬김의 외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테텔레스타이,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증거된 말씀을 복주시기를 바랍니다.

201856일 강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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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