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시대와 수신자 분별하기
성경의 시대와 수신자 분별하기
주의 영이 임하면?
성경을 볼 때 문맥을 파악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또한 특정 말씀의 수신자를 혼동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 말씀이 누구에게 해당되는 것인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귀에게 하신 말씀을 내게 적용시킬 수 없듯이 성경에 나온 말씀이라고 다 내게 주신 말씀은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의 배움을 위해 기록되었다고 했다(롬
또 늘 일관된 해석 방법은 곤란하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어린 양'이라고 표현할 때가 있고, '목자'로 표현할 때가 있는데, 늘 양으로만 이해하거나 늘 목자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흠없는 희생물로는 어린 양으로 이해하고, 잃은 영혼을 찾는 모습으로는 목자로 이해하듯이 상황에 맞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오해들 중 가장 심한 것은 '시대'에 관한 오해와 '수신자'에 관한 오해이다. 구약 시대에 주신 말씀을 신약을 무시하고 지금 도입하려고 한다든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을 신약의 이방인 교회에 적용한다든지 하는 잘못들인데, 이것이 얼마나 큰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요즘도 성령집회 등에서 즐겨 불려지는 노래 중에 <마지막 날에>라는 곡이 있다.
마지막 날에
마지막 날에 내가 나의 영으로 모든 백성에게 부어 주리라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아비들은 꿈을 꾸리라 주의 영이 임하면
성령이여 임하소서 성령이여 우리에게 임하소서
이는 물론 요엘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 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대언하며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들을 보리라. (욜
이것을 가지고 지금이 마지막 때이니 주의 성령이 임하시면 방언을 하고 환상을 보는 등 각종 은사들을 받아 행하게 된다고 해석한 결과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 즉 유대인에게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날이라는 것은 지금이 아니고, 이 땅의 교회(그리스도인들)가 들림을 받은 이후에 남은 유대인들이 뒤늦게 회심을 하고 수천 년 동안 믿지 않던 예수 그리스도를 드디어 영접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할 때, 즉 7년 대환난 때를 이르는 것이다.
요엘서 2장을 교회에 적용하면 안 되는 이유
구약 시대에도 사람들이 믿음으로, 값없이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미래에 오실 메시아를 믿는 믿음으로 어음을 받듯이 받은 것이다. 그래서 그때는 각 사람에게 주님의 영이 임하지 않았다.
신약, 즉 십자가 사건 이후의 크리스천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즉시 성령의 침례가 이루어져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령님으로 채우시게 된다. 그래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성령님이 사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상징하는 침례를 행하는 것이다. 내가 죽고 주님 안에서 다시 부활했음을 뜻하는 '물에 잠겼다가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는 의식'이 침례이다(이조차 물 조금 뿌리고 끝나는 세례로 바꾸어 그 의미조차 퇴색되었지만).
그런데도 주의 영을 달라고 노래하고, 빨리 주의 영이 임해야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신약에도 베드로가 이 요엘서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강림 사건을본 이방인들이 그들이 술에 취했다고 오해하자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요엘서의 대언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지금은 겨우 세시이므로 너희가 짐작하는 것처럼 이 사람들은 술 취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오히려 대언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이것이니라. 일렀으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대언하며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들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 위에 부어 주리니 그들이 대언하리라. (사도행전
베드로의 설명이 맞는 것일까? 그때가 마지막 날이었는가? 그 이후로 우리는 2천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고 있다. 너희의 아들딸, 젊은이, 늙은이, 내 남종과 여종이 모두 유대인일 뿐, 교회에 적용할 말씀이 아니다.
이것을 알려면 베드로의 당시 관점을 알아야 하는데, 그는 그때를 세상의 마지막으로 본 것이다. 승천하신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하늘로부터 임하는 '하늘의 왕국'을 세우실 때만을 기다리던 그였으므로 이제 그때가 임박했다고 본 것이다. 유대인들의 마음이 모두 똑같았을 것이다.
유대인, 반쪽 유대인, 이방인... 순차적 구원
베드로는 그때까지도 이방인이 구원받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아니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10장(예수님 승천 이후 약 10년)에 가서야 보자기 환상을 통해 이방인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놀라이탈리아 부대 백부장고넬료와 이방인들에게침례를 베푼다.
이처럼 이방인이 구원을 받는 것은 2장의 오순절 사건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사도행전 8장에 이르러서야 유대인 혼혈족인 사마리아인들과 이디오피아 내시가 구원 받는데, 이는 반쪽 유대인을 뜻하고, 10장에 이르러서야 이방인의 구원이 시작된다. 이후 베드로의 사역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2장에 나오는 사건은 아직은 모두 유대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요엘서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마지막 때를 인용한 것인데, 베드로는 그때가 예수님이 자신들을 데리러 다시 오실 마지막으로 본 것이었다. 교회 시대를 알지 못한 상황에서 했던 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다음 말씀까지 인용하게 된다.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이적들을 보이며 아래로 땅에서는 표적들을 보이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저 크고 주목할 만한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둠이 되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려니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행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에 분명하게 나오는 7년 대환난 때의 이야기이다. 교회는 이미 이 땅에 없다. 베드로는 오순절 사건 당시를 세상의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이다.
교회는 사도행전 2장 47절에 등장한다. 즉 사도행전 2장 1절부터 41절에 기록된 대로그 오순절 날에 성령님이 강림하면서 그 전에 사도행전 1장에 있던 120여 명과(행1:15) 그 날 구원받은 3000여 명이(41절) 성령 침례를 받아(행11:15-16)예수님의 첫 신약 교회(120명 더하기 3000명, 행2:41)를 형성하였다.그러므로 2장 앞부분에 했던베드로의 말이 교회에 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교회가 생성된 뒤에는 구원 받은 자들이 교회에 더해지게 되었다(행2:47).
그때에 그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침례를 받으매 바로 그 날에 삼천 혼 가량이 그들에게 더해지니라. (행
하나님을 찬양하며 온 백성에게 호감을 얻으니 주께서 구원받아야 할 자들을 날마다 교회에 더하시니라. (행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예수님의 말씀도 오해를 풀어야 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흔히 이 말씀은 성령을 받아야 능력을 행하는 증인이 될 수 있고, 그래서 땅끝, 즉 미전도 종족에게까지 전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되곤 한다. 또 수신자가 유대인들인 마태복음 24장 14절의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개역개정)는 말씀을 들어, 복음을 못 들어본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면 예수님의 재림이임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음 번역을 잘 읽어 보면 오해를 풀 수 있다.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후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는 말은 조건에 관한 이야기로 들린다. 안 임할 수도 있지만 능력을 행하려면 임해야 한다는 것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반면에 '임하신 후에'는 앞으로 있을 일을 그저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간 뒤에 오실 성령님이 이제 너희에게 임하실 텐데, 그때가 오면 너희는 내 증인이 될 것이다. 먼저 유대인들에게, 그 다음으로 반쪽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주님을 위한 증인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전도는 중요한 일이지만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다.
그 당시에는 땅끝을 스페인(요나가 도망갔던 다시스)으로 이해했다. 당시 세계관으로 땅의 끝까지, 즉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어느 기업의 광고에 나왔듯이 스페인의 지브랄타 해협에는 '땅은 여기서 끝난다'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1492년까지 아메리카 대륙은 그들에게 인식조차 없던 때였다. 그러므로 땅끝을 지금의 오지 등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이며 지나친 영적 해석이다.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다 지키겠다면 큰 오산이다. 이는 물론 명령 거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수신자와 시대를 파악하라는 뜻이다. 다음 말씀을'전도는 유대인에게만 해야 한다'고 해석할 사람이 있을까.
예수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방인들의 길로도 들어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어떤 도시로도 들어가지 말며 오직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로 가라. 너희는 가면서 선포하여 이르되,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라. (마
예수님은 또 "나는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들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어지지 아니하였노라"고 하셨다(마
왜 이방인들의 길로도 들어가지 말고 유대인에게만 가라고 하셨는가. 마태복음이지만 십자가 사건 이전이므로 아직 구약시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가시고, 성령님이 임하셔야 이방인의 때가 열린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씀을 지금 적용하여 이방인에게 전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렇듯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도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성경을 영적으로만 해석하면 안 풀리는 게 없다. 다 영적인 의미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신천지 같은 이단들이 모든 해답을 제공하므로 바른 성경 해석을 쉽게 접하지 못한 논리적인 사람들이 홀딱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시대와 수신자 구분 없이 한 구절만 똑 떼어다가 필요할 때 써먹는행태는각종 폐해를 불러오고 있다.
이스라엘이 없던 시기의 성경해석
유대인에게 주시는 말씀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해석하게 된 것은 사도행전 이후 AD 70년에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여 온 세계로 흩어졌기 때문이다. 해석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명한 신학자들은 이를 모두 교회에 주시는 말씀으로 영적인 해석을 했다.
그런데 거의 1,800년이 지난 1948년에 이스라엘이 다시 서게 된다. 이름조차 바뀌지 않은 이 나라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마지막 7년 대환난 때에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할 것이다. 그래서 구약의 대언들을 성취할 것이고, 위 요엘서의 대언도 이룰 것이다.
그런데 개신교 신학자들의 신학 위에 서 있는 교단 학자들은 그간 세워진 신학을 모두 부정하기가 어렵게 됐다. 그래서 계속 이스라엘을 교회로 주장하다 보니 지금 중동의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주목해야 할 많은 일들에 둔감하여 역사의 시간표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유대인에 관한 내용을 교회에, 즉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불가하다는 것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그 의미를 안 뒤에는 영적으로 우리에게 적용시킬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말씀을 큐티 때 묵상하면서 내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그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에스겔의 환상에 나오는 마른 뼈들은 주님의 말씀에 군대처럼 일어난다. 이것을 거듭나고 부활할 우리 영혼에 적용 못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이전에 이 말씀이 왜 주어졌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완전히 멸망한 것 같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원래의 땅에 돌아와 다시 서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 유명한 환상에 관한 이야기는 늘 인용되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끝에 나오는 말씀은 늘 무시되곤 한다.
이에 내가 그분께서 명령하신 대로 대언하였더니 숨이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살아서 자기 발로 서는데 심히 큰 군대더라. (겔 37:10)
여기까지만 인용하고 마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이렇게 마른뼈 환상 후에 하나님은그 뼈들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 바로 다시 회복될 이스라엘의 온 집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때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이스라엘의 온 집이니라. 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은 말랐고 우리의 소망은 없어졌으며 우리로 말하건대 우리 몸의 부분들은 끊어졌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고 너희로 하여금 너희 무덤들에서 나오게 하며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리라. (겔 37:11~12)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주의 영이 임하면...이라는 말씀을 지금 우리에게 주의 영이 임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게 되면 우리는 아직 주의 영을 받지 못한 것이라는 뜻이 되는데, 이를 헷갈리게 하는 노래가 또 있다. 다윗의 시를 노래로 옮긴 것이다.
정결한 맘 주시옵소서
정결한 맘 주시옵소서 오~주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님 앞에서 멀리하지 마시고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그 구원의 기쁨 다시 회복시키시고 변치않는 맘 내안에 주소서
여기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를 들어서 주님의 영을 우리에게서 거둘 수도 있다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것은 구약의 상황이다.
'그 구원의 기쁨다시 회복시키시고'라고 했으니 다윗은 구원받은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때는 성령님이 사람 안에 거하지 않으셨다. 성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십자가 사건 때에 성전의 휘장이 둘로 나뉘고 그리스도인은 모두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대제사장이 되며 성령님은 그들 안에 거하시게 되었다.
교회당은 성전이 아니고 우리가 성전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하지 못한 때는 있을 수 있어도 (일단 구원 받았다면) 주의 영을 거두게 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처럼 구약의 상황을 지금 받아들여 교리적으로 해석하면 오류를 범하기 쉽다. 신약에서는 거의 영적 축복만을 이야기하는데도 필요에 따라 구약의 육적인 축복만을 가져와 강조하는 것이 난센스이듯 필요에 따라 말씀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말씀의 수신자와 시대를 먼저 아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변천기(과도기)를 이해하고 인정하라
사도행전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구원받는 모습이 나온다. 방언과 병고침 등 성경이 완성되기 전의 변천기(과도기) 상황을 지금 도입하여 은사를 받아야 구원의 확증이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무지의 결과이다.
또한 마태복음 등 복음서가 신약성경에 들어있다 해서 그 시대조차 신약시대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전은 모두 구약시대이다. 이것을 오인하면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일차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또 실수를 하게 된다.
말씀을 바르게 보지 못하면 모든 것이 안개 속에 가려진듯 뿌옇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게 되며 결국 확실하게 잡히는 것이 없으니 은사에 매달리거나 열심만 내게 된다. 그러나 늘 진리의 말씀을 연구하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바른 성경과 바른 해석을 늘 추구하고, 잘 아는 멘토나 자기 교회 목사님 말만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열심이 구원과 지식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들에 대해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니니라. (롬
유대인들에 대한 바울의말처럼 우리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열심도 변변치 않으려니와 열심을 내는 사람들도 바른 지식을 가지지 못한 경우가 많다. 무조건 열심히 뜨겁게만 하면 다 알아 주실 것으로 믿는 것은 오산이며 미신적인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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