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1987년

시기심

징검 다리 2012. 11. 30. 17:02

시기심

뼈의 썩음( 14:30)

아마도 시기심보다 더 교묘한 죄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비참한 결과들은 종종 매우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심각한 죄들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습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시기심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며, 자기 마음 속에서 이 시기심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웹스터 사전은 시기심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분함, 기분 상함, 굴욕, 불신 다른 사람의 탁월함이나 번영에 대하여 느끼는 불편한 마음, 시기심은 어느 정도의 미움과 동일한 이익을 얻고자 하는 욕구를 수반한다.”

하나님께서 이 무서운 죄를 끔찍이도 혐오하신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말씀은 아마도 잠언 14:30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이것은 시기심이 내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시기심은 종종 감취어지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해칠 때에 어떤 다른 모습으로 변장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거짓은 시기심의 영원한 벗입니다. 그것은 시기를 받는 사람을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시기하는 사람까지 해칩니다. 그것은 시기를 받는 대상을 찌를 뿐 아니라 동시에 시기하는 사람의 뼈를 썩게 만드는 것입니다. 시기심을 가진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시기심을 가진 사람의 가슴은 곪아 터지며, 그 마음과 육체는 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기심에 관하여 많은 말씀을 하시는데 잠언 27:4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시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분과 노에 대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정죄합니까! 그러나 시기심은 더 악한 것입니다. 시기심이라는 바위 덩어리 앞에서는 가장 훌륭한 사람도 가장 훌륭한 가정도 가장 큰 나라도, 가장 훌륭한 교회들도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우리가 진실을 참으로 알기 원한다면 제가 믿기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대부분의 문제들이 시기심이라는 이 한 가지 죄에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왜 분쟁이 있습니까? 지속적인 분열은 왜 있습니까?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 사이에 왜 질투가 있습니까? 교회를 돌보는 장로들 사이에 왜 슬픈 갈등이 있습니까? 그것은 시기심 때문이 아닙니까?

로마서 1장 기록된 블랙 리스트(요시찰인 명부)에는 시기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자칫하면 우리는 로마서 1장에 묘사된 부류의 사람들한테서만 시기심을 기대하고 그리스도인 안에서는 기대하지 않는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시기심은 육체의 일의 목록 가운데에도 나와 있습니다.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5:20-21). “헛된 영광을 위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5:26). 디도서 3:3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하지만 그 이후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셨으며이 자비와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변화된 삶을 살기 마련입니다.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5:10), 사도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너희가 아직도 육체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3).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피실 때에는 과연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자기 마음을 살펴봐야 합니다

성경은 시기심을 거짓말이나 도둑질, 살인 및, 기타 다른 악과 동일하게 적극 금하고 있습니다. 이것과 연관지어 시편 37:1, 잠언 3:11, 갈라디아서 5:26을 읽어 보십시오. 베드로전서 2:1-2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어떤 사람은 이와 같은 죄들이 모유를 상하게 한다고 우리에게 상기시킨 적이 있습니다. 시기심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기뻐하는 것을 파괴시킵니다 그리고 시기심이 우리를 지배할 때에 영적인 축복도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의 일이 진전될 수도 없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3:16).

시기심이 어떠한 것을 초래할 수 있는지 성경에서 몇 가지 예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빠뜨렸다가 그를 애굽에 팔아버리게 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시기심이 아니었습니까( 7:91)? 고라와 아비람과 다단으로 하여금 모세를 거역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l6) 그것은 그들이 모세의 권위와 하나님께 받은 은총을 시기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다니엘을 사자굴 속에 집어넣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벨론의 방백들이 다니엘의 높은 지위와 다리오 왕 앞에서 누린 그의 신분을 시기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시기심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를 저지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도록 요구한 것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 등등)의 마음 속에 있었던, 시기심이라는 잔인한 괴물이었습니다. 빌라도는 그들이 시기로 예수님을 넘겨 준 줄 알고 있었습니다( 27:18).

그러나 시기를 받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 감사를 드리십시오. 그분은 요셉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 그와 함께 계셨으며 때가 되자 마침내 그를 높이셨습니다. 그의 형들은 두려움과 눈물에 휩싸일 정도로 낮아졌지만 결국 용서를 받았습니다. 모세를 반역했던 사람들은 노하신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아 땅 속으로 내려가고 말았습니다. 주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함께 사자굴 속에 계시면서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으며, 시기했던 사람들은 다니엘을 대신하여 사자굴로 던져졌고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습니다”( 6:24). 주 예수님께서는 사망과 무덤으로 내려가셨으나 아버님의 영광에 의해 삼일만에 다시 살리심을 받으셨습니다.

어리석은 시기심이여! , 우리는 마음 속에서 시기심의 불꽃을 느끼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잠시도 용납하지 말고 그것을 즉시 판단하여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시기심을 노함과 분쟁과 살인과 연관시키신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하며, 이것을 피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1987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