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생활의 울타리 (2)
머레이 G. 맥레오드
아가 4:7-5:1
동산은 또한 식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때 일어나는 성장과 발전을 상기시켜 주는 “동산 샘”(4:15)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는 영적 발전과 우리 삶의 성장을 바라십니다. 우리는 “1년 전보다 오늘 내 삶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얼마나 더 많은 것이 있는가?”라고 마음속으로 물어볼 수 있습니다. 성장과 발전이 있다면 우리의 삶은 주님을 위한 '동산의 샘'이 될 것입니다.
우물 샘은 신랑에게도 만족의 원천이었습니다. 주 예수님은 “내가 그에게 줄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솟아나는 우물이 되어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하리라”(요 4:14)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처음에는 이 우물이 자신의 일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주님은 그분 자신을 위한 영적 상쾌함과 기쁨의 내적 원천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요 4:32)라는 주님의 말씀은 이 여인의 믿음이 주님께 깊은 만족을 가져다주었음을 보여줍니다. 부모는 자녀가 성장하고 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즐깁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 주님도 우리가 주님을 누리고 섬기는 능력이 발전하면서 영적인 삶이 성장하는 것을 보시며 기뻐하십니다.
신랑도 레바논에서 동산으로 흐르는 시냇물에서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이 시원한 물줄기는 영적인 힘을 얻기 위해 주님을 의지할 때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서 얻는 상쾌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는 것은 그분께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우리 삶에서 역경의 역할
배우자는 북풍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 동산에 와야만 동산의 최대 향기가 나온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사역은 교양과 권면과 바르게 함이 균형을 이룰 때 우리 삶에서 최고의 향기가 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도전을 받게 됩니다.
신부는 동산의 정적인 아름다움에만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동산에 북풍이 불어와 향기를 발산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북풍은 우리 삶의 역경에서 달콤함을 풀어주는 그림입니다.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게 하는 것은 질병일 수 있습니다. 종종 시련은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롭고 전능하신 손길을 경험할 때 우리에게서 독특한 단맛을 이끌어냅니다.
동산에 있는 신랑
아가서 5:1에서 신랑은 신부와 동산에 대한 완전한 소유권을 가집니다. 그는 이 구절에서 “내”를 아홉 번이나 사용합니다. 신랑은 동산에서 향신료를 채집하고 벌집을 먹으며 동산이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에 기뻐하고 동산에서 완전히 만족스러운 경험을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께 만족과 기쁨을 드리도록 우리의 삶을 온전히 소유하기를 원하십니다.
동산의 보호
아가서 4:12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동산은 둘러싸여 있거나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이 울타리가 없었다면 신랑이 동산을 즐길 기회를 갖기도 전에 침입자가 들어와 동산을 망쳤을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도 울타리가 있어야 우리 주님께 귀한 열매와 향기가 자라는 동안 침입자에 의해 파괴되지 않습니다. 요한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요일 2:15)고 쓰면서 한 가지 필수 울타리를 설명했습니다. 야고보는 “세상과 친구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약 4:4)라고 썼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하늘에 계신 신랑께 헌신하는 것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신자들이 세상과 그 제도에 대한 사랑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섞으려는 영적 간음에 대해 경고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쾌락과 번영에 사로잡히게 되면 우리는 빗장을 내려놓고 주 예수 그리스도보다 시간과 감각의 것들을 사랑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직장과 다른 곳에서도 세상의 쾌락과 목표를 추구하려는 유혹이 넘쳐납니다. 우리는 주님에 대한 사랑의 울타리를 잘 지켜서 그 어떤 것도 주님 안에서 우리의 기쁨을 빼앗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울타리는 경계를 설정합니다. 경계와 기준은 우리의 삶을 궁핍하고 공허하게 만들며 심지어 난파하게 만드는 세상과의 우정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합니다. 난파된 삶은 필연적으로 신자의 개인적인 삶의 실패에서 시작됩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애정이 우리 주위에 보호 울타리를 형성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애정에 공백이 있나요? 그분이 우리 애정의 최고의 대상임을 확인함으로써 그 간극을 메우도록 합시다.
우리 개인적인 삶의 울타리도 사탄의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느냐?”라는 말로 하와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림으로써 하와를 공격했습니다(창 3:1). 하와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유혹을 받았습니다. 사탄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마 4:3)이라는 비슷한 말로 주님을 공격했습니다. 사탄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문을 품게 함으로써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 안에는 사탄에게 반응하는 어떤 것도 없었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독립적으로 행동하기를 좋아하는 육체가 있습니다. 우리가 울타리를 지키지 않으면 우리의 열매를 파괴하는 단계를 밟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을 소홀히 하면 우리의 영적 안녕에 재앙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외형적인 모습을 유지할지라도, 주님은 우리 마음의 진정한 상태를 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규칙적으로 읽음으로써 믿음의 담을 높이고 사탄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공격할 때 이점을 얻지 못하도록 막는 훈련을 받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위해 둘러싸인 동산의 완벽한 본보기였습니다. 그분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분을 바라보실 때 그분의 말과 행동이 항상 기쁘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척박한 이스라엘 땅 한가운데서 연한 식물과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로 보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하늘을 열어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마 3:17). 주님께서 우리 삶의 동산을 내려다보실 때, 아버지께서 우리 안에서 기쁨을 찾으셨던 것처럼 우리 안에서 기쁨을 찾으시나요? 우리의 삶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기쁨을 위한 결실과 울타리가 있는 동산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