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가운데로 걸으며/울타리

모임(지역교회)에서 도덕적 울타리

징검 다리 2025. 2. 12. 05:44

이 글에서는 현대 사회에서도 우상 숭배의 위험성과 형제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다룹니다.

하나님의 집에서의 거룩함의 중요성은 이스라엘이 시내 광야에서 초창기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다윗은 “거룩함이 주의 집에 영원히 합당하옵나이다”(시 93: 5)라고 썼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함이 유지되는 곳에만 거하실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3)라고 외치는 스랍들의 외침을 보고 들으며 하나님의 보좌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성막이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있을 때 거룩함이 요구되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지성소에 임재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주님의 임재를 의식적으로 알고자 하는 모든 모임은 거룩함으로 표시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라고 상기시켰습니다(고전 3:16). 또한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니라”(17절)는 엄숙한 경고를 남겼습니다.

요한은 밧모섬에 있을 때 금 촛대 한가운데 서 계신 분의 거룩하심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요한은 촛대 가운데 계신 주님을 눈은 불 불꽃 같아서 모든 것을 보시는 분, 발은 정금 같아서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분,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분으로 묘사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멋진 주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주제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그분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 바로 주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임재는 우리가 그분께 모였고 더 이상 세상의 일부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거룩함을 요구합니다. 거룩함을 실천하려면 도덕적 표준을 유지해야 합니다. 웹스터는 도덕을 “옳고 그름의 기준을 따르는 것, 옳고 그름에 관한 탁월한 실천의 특성”으로 정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옳고 그름을 알 수 있는 근거를 주셨고, 우리가 높은 도덕적 기준을 유지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오늘날 세상은 옳고 그름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아 도덕적 가치를 실천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하십니다.

도덕적 행동의 울타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제공하는 옳고 그름에 대한 확립된 원칙에 기초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거룩한 뜻에 따라 살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은 “우리 중에 아무도 자기를 위해 살지 아니하고 또 아무도 자기를 위해 죽지 아니하는도다”(롬 14:7)라고 기록하여 우리의 도덕적 행동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포함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임재하시는 모든 모임에서 가장 높은 도덕적 기준이 유지되기를 기대하십니다. 도덕의 개념은 한 좁은 영역의 행동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확장됩니다. 우리는 도덕적 기준의 기초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거룩한 표준을 연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표준은 십계명(출 20:1-18)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율법은 우리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통해 우리가 받아들여지는 기준을 바꾸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의로움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세워진 의로운 근거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의 의가 율법을 지킴으로써 확립되는 것은 아니지만, 십계명에 담긴 의의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십계명은 우상 숭배, 간음, 거짓말, 탐심 등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율법이 잘못이라고 선언하는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은 변하지 않았으며 우리 각자에게 의로운 삶을 기대하십니다.

울타리 1: 우상 숭배를 피하기

십계명에 포함된 영적 원칙 중 하나는 모든 형태의 우상 숭배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어린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들을 멀리하라. 아멘”(요일 5:21)이라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우상 숭배를 피하는 울타리를 두셨습니다. 우상의 개념은 물리적 우상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우상 숭배는 우리의 애정을 지배하는 왕좌에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올려놓을 때마다 발생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집, 자동차, 아내나 남편, 자녀,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애착을 갖게 된 다른 것들을 우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우상숭배와 싸워야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도 예외는 아닙니다.

시내산은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보여주는 장소였습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간 후 백성들은 아론에게 “일어나 우리를 위해 우리 앞에 갈 신들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사람에 관하여는 그가 어찌 되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출 32:1)라고 말했습니다. 아론은 그들을 위해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그들은 그 앞에서 일어나 놀며 부도덕한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모세를 맞이한 장면은 모세에게 돌판을 내던지도록 흔들었습니다. 백성들의 우상 숭배와 죄의 결과로 3천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이 모든 일은 그들에게 본보기로 일어났으며 … 우리를 훈계하기 위해 기록되었느니라”(고전 10:11)라고 썼습니다.

물질주의와 번영의 시대에 우리는 우상을 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대부분은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지만, 마음이 금방 식어버릴 수 있습니다. 마음이 미지근해지면 주님도 필요 없고 주님의 백성과의 만남과 교제도 필요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아주 빨리 주님의 기쁨을 잃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상을 추구하도록 허용한다면 우리는 난파선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 혼과 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오는 모든 것을 막는 방법은 첫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조금 있나니 이는 네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라”(계 2:4)라고 권면하신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시고 갈보리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신 분에게 온전히 사로잡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다섯 가지로 지역모임과 집회에서 그분께 적절한 자리를 내어 드리고 있습니까?

울타리 2: 다른 사람에 대한 올바른 태도

모세에게 주어진 다섯 번째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출 20:13)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율법적으로도 잘못된 일일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도덕적으로도 잘못된 일입니다. 이는 감옥에 있는 범죄자뿐만 아니라 태아의 생명을 끝내려는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끝내도록 돕는 사람에게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낙태 클리닉에 반대하는 사회적 행동을 취하지는 않겠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도덕법에 순종하는 의로운 삶의 본보기가 되도록 살기를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방식에서 우리 마음의 태도를 관찰하십니다. 야고보는 “너희 가운데 전쟁과 싸움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속에서 싸우는 너희의 정욕들로부터 나지 아니하느냐? …너희가 다투고 싸워도 갖지 못함은 너희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 4:1-2). 이들은 서로를 향해 마음에 적의를 품었기 때문에 형제답게 행동하지 않는 형제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마음에 미움을 품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살인죄를 범하는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