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영원한 전개
스티븐 하퍼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친절 속에 담겨 있는 자신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다가오는 시대들 속에서 보여주려 하심이라”(엡 2:7).
은혜의 승리
에베소서 2장은 은혜의 승리에 대한 놀라운 설명입니다. 한때 사망의 음침한 지배 아래 노예로 살았던 우리에게 은혜는 강력한 승리를 거두어 진노의 대상이었고 운명이었던 우리에게 생명과 자유를 주었습니다.
은혜의 경로
“그러나 하나님” - 하나님의 크고 사랑으로 충만한 자비의 엄청난 능력이 4절에서 다단 로켓처럼 폭발하여 공중 권세 잡은 왕자의 중력을 거스르고 우리를 하늘의 은혜의 높이로 끌어올려 줍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에서 육체적으로 참되셨던 것이 이제 영적으로도 우리에게 참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구원의 순간, 그분의 무덤의 생명이 없는 어둠에 닿았던 동일한 능력이 우리 영혼의 죽음에 작용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영적인 생명, 즉 중생의 강력한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은혜는 우리를 더 이상 땅에 얽매이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높이 들어 올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옥의 무리의 영역을 육신으로 통과하셨듯이, 이제 우리는 그분께 복종하고 그분의 발 아래 있으므로 더 이상 그들에게 포로가 되지 않고 그들의 권세 아래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해방의 짜릿한 진리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는 더 이상 세상처럼 노예처럼 육체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살지 않으며, 은혜로 자유로워지고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에 의해 적합해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생각에는 하나님의 취소할 수 없고 공격할 수 없는 권위에 대한 하나님의 확언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자신의 왕좌를 하늘들에 예비하셨으므로 그분의 왕국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도다”(시 103:19).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는 완성하신 사역으로 인해 앉으셨지만, 우주의 공동 주권자로서 그분의 무한한 가치, 즉 사랑받는 자로서의 본질적 가치(엡 1:6)와 몸의 머리로서의 상속된 가치(1:22-23)를 인정받아 하나님에 의해 앉으셨습니다. “천사들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이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고 말씀하셨느냐?”(히 1:5). 그분만이 합당하시기에 다른 누구도 그런 영광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구절의 놀라운 진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공유할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은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세우셨습니다. 함께 살아나다, 함께 일으키다, 함께 앉히다라는 세 가지 복합 동사는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은혜로 우리를 위해 계획된 길이 그분이 영광을 향해 오른 길과 정확히 같은 궤적을 따른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분이 앉으신 것처럼 우리도 그분과 함께 앉게 되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자리는 그분의 영원한 왕좌로 세워집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집에서 고용된 종으로 만족할 수도 있었지만, 은혜는 반지, 샌들, 최고의 옷, 살찐 송아지 등 훨씬 더 많은 것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단순히 고용된 종으로만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그분 앞에 있게 하시고(엡 1:4-5), 영원히 그분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그분의 은혜의 증거가 되도록 우리를 아들의 신분으로 예정하셨습니다.
은혜의 보물
하나님의 친절은 그분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혜의 풍성함을 나타내시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앉으셨습니다. 그분의 친절한 행동은 그분의 성품을 나타내며, 그분의 내적인 은혜의 성향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경이로움이 가득합니다. 성경 전체에 걸쳐 하나님은 자비가 풍성하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은혜가 지극히 풍성한 분으로 묘사됩니다. 그분은 결코 “벌할 준비가 된” 분이 아니라 “용서할 준비가 된” 분이십니다. 용서의 하나님, 그분은 자비를 기뻐하시며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의 은혜를 최상급 단어로 묘사할 뿐만 아니라 최상급 방식으로 보여 줍니다. 성경의 서사적 이야기는 은혜의 공적, 즉 은혜의 영웅, 은혜의 지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노아는 인간의 사악함의 수렁 속에서 주님의 눈에 비친 은혜를 발견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크고 은혜로운 사랑의 마음을 확대하여 요셉이 계략을 꾸민 형들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보아스가 스스로 모압 사람이라고 고백한 나그네를 사랑한 관대함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인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푼 풍성한 축복을 요나단을 위해 베풀어 줍니다. 한때 그리스도의 원수였던 사도 바울은 자신의 극적인 회심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은혜의 본보기, 즉 “이후에 자신을 믿어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될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 1:16)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놀라운 풍성함은 “그분께서 부요하셨으나 너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으니”(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축복스럽게 묘사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부의 높이를 가늠할 수 없듯이, 그분의 가난의 깊이를 가늠할 수도 없습니다. 그분의 성육신만으로도 상상할 수 없는 비율의 구부러진 몸이었지만, 우리를 위해 그분은 더 깊은 곳, 헤아릴 수 없는 십자가의 끝까지 가셨습니다. 요한은 이 복된 사람에 대해 “은혜와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왔기 때문이라”(요 1:17)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는 형언할 수 없는 것을 묘사(“선언”)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지극한 은혜를 온전히 드러냈습니다.
비교할 수 없는 은혜의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놀라운 풍요로움, 즉 종류가 무한하고 공급이 끝없는 은혜의 대상이 되는 영원한 복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은혜의 영원함
예! 다가올 시대의 천년 영광(엡 1:21)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선하심이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도 다가올 시대에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만 년이 지나면,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우리 하나님을 찬양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
우리가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놀라운 은혜! 사실, 그 은혜의 크기는 헤아릴 수 없고 설명할 수 없지만, 더듬거리며 말을 더듬는 우리의 혼은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감탄합니다.
“기이한 일의 위대하신 하나님, 주의 모든 길이
신성함이 주께 합당하오니;
그러나 주의 은혜의 밝은 영광은
주의 다른 기이한 일들 위에 빛나나이다,
주님처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또는 누가 그렇게 풍부하고 자유로운 은혜를 가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로우신 하나님에 대해 좋은 생각을 해 봅시다. 그분에 대한 모든 비열한 생각을 버리십시오. 마음을 다해 그분의 은혜를 찬양하고 힘을 다해 그 은혜를 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