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 다리 2024. 6. 25. 06:36

켈리 세일러

정보와 엔터테인먼트가 거의 무제한적으로 쏟아지는 이 시대에 우리는 트윗, 문자, 이메일, 인스턴트 메시지, 토크 라디오, 24시간 뉴스, 30초짜리 사운드 바이크, 휴대폰, 아이패드, MP3, 킨들 등에서 흘러나오는 이어버드 속 음악 비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입력되는 정보의 양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뉴스 플래시: 혼자서 찾고, 지키고, 지킬 수 있는 고독의 공간이 하나 있습니다. 정말인가요? 물론, 남태평양 환초나 알래스카 야생 체험으로 떠나는 탈출은 때때로 그런 목적으로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훨씬 더 가까운 곳에 쉽게 갈 수 있고, 원하는 만큼 비밀스러운 장소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데려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고 극심한 상황에서 벗어나 조용하고 고독하며 행복한 곳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반대로 가장 괴로운 삶의 어두운 면으로 데려가기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분명히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육체가 끔찍한 싸움을 벌이는 전쟁터입니다. 그리고 저의 무뚝뚝함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만, 생각의 삶을 통제하기 위해 힘겹게 투쟁하지 않는 신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욥은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날수가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욥 14:1)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누가 이 문제로 어려움을 겪느냐가 아닙니다. 문제는 누가 이 문제에서 승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문제의 근원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들의 마음에서 악한 생각, 간음, 음행, 살인, 도둑질, 탐욕, 사악함, 속임수, 색욕, 악한 눈, 신성모독, 교만, 어리석음이 나오는데 이 모든 악한 것들이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 7:20-23).

누군가 현명하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탈주하고, 무너뜨리고, 돌파한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 생활을 어떻게 통제하시나요? 땀을 흘리고, 두드러기가 나고, 궤양이 생기고, 울고, 자기 연민에 사로잡히거나 진정한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0:3-5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육체 안에서 걷지만 육체를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전쟁 무기는 육체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통해 강력하여 강한 요새들도 무너뜨리느니라.) 우리는 상상하는 것들과 또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며”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순종하게”라는 구절은 객관적 속격으로, 실제로는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웨이머스 번역은 “우리는 오만한 ‘계산’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스르며 높이 솟은 모든 요새를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마치 노예처럼 그리스도께 복종합니다”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 타락한 세상은 명백히 거짓되고, 더럽고, 잘못되고, 거룩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들, 악한 보고, 악독하고 정죄받을 만한 것들로 특징지어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제가 상기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에는 놀라운 아름다움이 있으며, 자연인은 아름다운 음악, 예술, 문학과 함께 그것을 생각하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도덕적으로 아름다운 것에 대해 거의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사랑스러우신 분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세상에서 그렇지 않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세상의 사악함과 더럽힘에 빠져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공공연하게 자신을 과시하며 소돔을 떠올리게 합니다. 모든 형태의 소셜 미디어와 매스 미디어를 통해 우리에게 대대적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에서는 이를 찬양하고, 엔터테인먼트 장소, 광고판, 휴대폰, 컴퓨터, 메모장, 심지어는 시계에까지 그래픽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세상의 더럽혀진 영향으로부터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을까요? 빌립보서 4:8절은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이든지 진실한 것과 무엇이든지 정직한 것과 무엇이든지 의로운 것과 무엇이든지 순수한 것과 무엇이든지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좋은 평판이 있는 것과 덕이 되는 것과 칭찬이 되는 것이 있거든 이런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의 마지막은 “생각의 습관”이라는 개념을 전달합니다. 개역개정판의 여백에는 “고려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 우리는 우리의 생각에 책임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생각을 높고 거룩한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어로 우리의 모든 생각을 주 예수님의 발아래 두어야 한다는 고린도후서 10장으로 바로 돌아가게 합니다.

참되고 고귀하고 정의롭고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것들, 좋은 보고와 덕이 있고 칭찬받을 만한 것들로 우리의 마음을 채울 때만 우리는 생각의 삶에서 승리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 안에서 그리스도가 그들 안에서 형성되는 척도 안에서 그들의 완전한 표현을 찾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없는 세상의 더럽혀진 영향력에서 우리를 들어 올려주는 우리의 자원입니다. 간단히 말해, 인격은 마음이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형성됩니다. 따라서 “이것을 생각하라”는 권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8절의 “생각”에 이어 9절의 “행함”이 뒤따르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마음의 악한 생각이 악한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바른 생각 뒤에는 의로운 행동이 뒤따릅니다. 우연하게도 9절의 마지막에는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되고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음식 다이어트에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습니다. 생각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3D 다이어트를 시도해 보세요 – 매일 정보 버리기. 잠언 6:27절에 “사람이 불을 자기 품에 품고 있는데 그의 옷이 타지 않을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셨나요? 우리는 성장하고 성숙해지면 어떤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린아이처럼 우리의 마음은 스펀지와 같아서 더러운 것을 빨아들이고 더러운 것을 내보냅니다. 그렇게 간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