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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단순함 그대로</title>
    <link>https://onyang.tistory.com/</link>
    <description>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Fri, 7 Aug 2026 11:26:4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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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agingEditor>징검 다리</managing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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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단순함 그대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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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좋은 친구 &amp;ndash; 진정한 우정의 특징</title>
      <link>https://onyang.tistory.com/5053</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코리 크로퍼드&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amp;ldquo;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amp;rdquo;라는 표현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이 표현은 250년도 더 전에 한 강대국의 왕이 자신의 충직한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에게 이 칭호를 붙였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합니다. 그에게 그레이하운드는 가장 충성스러운 친구였으며, 결코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진정하고 변치 않는 우정의 정점이 과연 그것일까요? 성경은 모든 인류가 진실하고 오래 지속되는 우정을 추구하도록 분명히 권고하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동물을 창조하신 후, 인간만이 홀로 있는 것을 보시고 그것이 좋지 않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인간은 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필요한 충실한 동반자, 조력자, 친구가 되어줄 개나 고양이, 물고기를 정해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또 다른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동물은 인간과 같은 감정, 경험, 자유 의지, 그리고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처럼 혼을 가진 영원한 존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홀로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며, 그 공허함을 아무 포유류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로 채우기를 원하십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렇다면 왜 때로는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가 어렵게 느껴질까요? 온라인에서 존재감만 있다면 수백, 심지어 수천 명의 친구와 팔로워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왜 디지털 친구의 수는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하고 여전히 우리를 외롭게 할까요? 진정한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진정한 친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lt;b&gt;좋은 친구는 특별한 존재다&lt;/b&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우리는 친구가 얼마나 자주 우리의 사진이나 게시물에 &amp;lsquo;좋아요&amp;rsquo;나 하트 이모티콘을 보내는지로 그 친구가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활동이 활발할수록 더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프로필을 보면 친구나 팔로워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우정에는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하루에 수백 개의 &amp;lsquo;좋아요&amp;rsquo;와 &amp;lsquo;하트&amp;rsquo;를 보내기도 합니다. 성경은 진정한 친구는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모세는 마치 친구와 이야기하듯이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했습니다(출 33:11). 모세와 하나님의 소통에는 특별하고 개인적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마치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것과 같았죠. 그렇다면 우리는 소위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과 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한 게 언제였을까요? 집에서 편안하게 스크롤하며 &amp;lsquo;좋아요&amp;rsquo;와 &amp;lsquo;하트&amp;rsquo;를 마구 보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희생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우정의 의미이자 본질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때로는 잘못된 조언을 하기도 했지만, 욥의 친구들은 어려움에 처한 진정한 친구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친구에게 닥친 고통과 비극 소식을 듣고, 그들은 단순히 기도 이모티콘을 보내며 위로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amp;ldquo;그들이 저마다 자기 처소에서 왔다&amp;rdquo;(욥 2:11)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동에는 희생과 헌신,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들은 집을 떠나 친구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점점 더 비인간적인 시대에 우리는 문자 메시지나 음성 메시지가 직접 만나는 것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것들도 때로는 가치가 있지만, 진정한 우정은 훨씬 더 깊습니다. 좋은 친구란 얼굴을 마주 보고 소통하는 사람이며,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주는 사람입니다. 좋은 친구는 진심으로 다가가는 친구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lt;b&gt;진정한 친구는 충성스럽다&lt;/b&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인간으로서 우리는 각기 다른 가치관과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소중히 여기는 한 가지는 바로 충성심입니다. 결혼 생활에서 배우자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지 묻는 것처럼, 우정에서도 우리는 충성심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잠언에는 &amp;ldquo;친구는 언제나 사랑하며 형제는 어려운 때를 위해 태어났느니라&amp;rdquo;(잠 17:17)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진정한 친구는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에도 변함없이 충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우정은 힘든 시기에 더욱 빛을 발합니다. 실제로, 어려움 속에서도 변함없이 충실한 우정은 더욱 굳건하게 해줍니다. 잠언 후반부에는 &amp;ldquo;친구를 버리지 말고 네 재난의 날에 네 형제의 집으로 들어가지 말라. 가까이 있는 이웃이 멀리 있는 형제보다 나으니라&amp;rdquo;(잠 27:10)라는 조언이 나옵니다. 가까이 있는 충실한 친구는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보다 더 소중할 수 있습니다. 좋은 친구는 충실한 친구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lt;b&gt;좋은 친구는 한계가 있다&lt;/b&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소셜 네트워킹 초창기에는 누구와 가장 친한지 강조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가장 친한 친구 다섯 명 안에 들면 인생에서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제는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보다 친구가 몇 명이나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500명과 친구가 되는 것이 가능할까요? 물론 불가능합니다. 50명은 어떨까요? 역시 쉽지 않습니다. 50명 이상의 사람들과 그저 아는 사이로 지내려고 애쓰는 것보다, 단 10명, 혹은 5명과 진심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당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더 가치 있지 않을까요? 잠언은 진정한 친구가 없는 &amp;lsquo;어설픈&amp;rsquo; 친구가 너무 많은 어리석음을 경고합니다. &amp;ldquo;여러 친구를 두는 자는 반드시 자신을 다정한 자로 보여야 하나니 형제보다 더 친밀한 친구가 있느니라&amp;rdquo;(잠 18:24). 결국 인생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 진정한 친구가 필요할 때, &amp;lsquo;거의&amp;rsquo; 친구만 많다면 외롭고 공허한 느낌만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친구, 형제 같은 친구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삶의 가치는 거기에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전도서의 지혜는 &amp;ldquo;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amp;rdquo;거나 &amp;ldquo;세겹줄은 빨리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amp;rdquo;고 말하며(전 4:9,12)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점을 더욱 강조합니다. 이는 혼자가 아닌 것의 중요성, 둘이 하나보다 낫다는 점, 그리고 때로는 셋이 둘보다 낫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전도서는 스무 명이 하나보다 낫다거나 열두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적은 것에 투자하십시오. 많은 사람을 아는 것보다 소수의 사람에게 더 나은 친구가 되는 데 집중하십시오. 진정한 친구는 한정된 존재입니다. &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삶을 생각하며</category>
      <author>징검 다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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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onyang.tistory.com/5053#entry5053comment</comments>
      <pubDate>Tue, 14 Jul 2026 06:26:33 +0900</pubDate>
    </item>
    <item>
      <title>지금은 마지막 시간</title>
      <link>https://onyang.tistory.com/5052</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십자가 사건부터 주님의 재림에 이르는 이 시기는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즉, 낮 다음에 밤이 오고, 밤 다음에 낮이 온다는 것입니다(사 21:11-12).&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주님의 완벽한 종으로서의 섬김에 대해 우리 주님께서는 &amp;ldquo;낯일 때에 내가 반드시 나를 보내신 분의 일들을 해야 하리니 밤이 오면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amp;rdquo;(요 9: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돌아보면, 참으로 &amp;ldquo;낮이 지나가고 저녁 그림자가 드리우니&amp;rdquo;(렘 6:4)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둠이 짙게 드리우기 전에 남은 &amp;ldquo;낮&amp;rdquo;은 얼마 되지 않으며, 우리는 주님을 위한 수고를 멈추고 쉬어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이 분명합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위대한 사도 바울은 다른 관점에서 &amp;ldquo;밤이 거의 다 지나고 낮이 가까왔으니&amp;rdquo;(롬 13:12)라고 말합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밤을 저녁, 한밤중, 닭이 우는 시간, 아침의 네 시간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막 13:35). &amp;ldquo;의의 태양&amp;rdquo;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골고다 언덕에서 지고, 길고 어둡고 음울한 밤이 찾아왔습니다. 어디에도 빛이 보이지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순간 빛이 보였습니다(고후 4:3-6).&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사야 21:11절의 질문은 개정판 성경의 각주에 &amp;ldquo;파수꾼아, 밤 몇 시냐?&amp;rdquo;로 되어 있습니다. 본문처럼 밤의 상태를 묻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묻는 것입니다. 지친 파수꾼들은 &amp;ldquo;새벽&amp;rdquo;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의의 태양이 떠오르고, 그 날개 아래에 치유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막 4:2). 마침내 파수꾼의 외침, &amp;ldquo;아침이 온다!&amp;rdquo;가 들릴 때, 긴 밤의 파수가 끝났음을 알리는 그 기쁨은 얼마나 큰 것일까요?&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교회를 이루는 모든 성도들에게, 오실 분은 먼저 새벽녘에 &amp;ldquo;빛나는 새벽별&amp;rdquo;, 곧 그날의 선구자로 나타나실 것입니다(계 22:16). &amp;ldquo;가장 어두운 시간은 동트기 직전이다&amp;rdquo;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 가장 어두운 때에 이른 것 같지만, 사랑하는 사도 요한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합시다. &amp;ldquo;지금이 마지막 때인 줄 우리가 아느니라&amp;rdquo;(요일 2:18). 마지막 때는 순식간에 지나가는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날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곧 내려오시는 주님의 우렁찬 &amp;ldquo;외침&amp;rdquo;을 듣게 될 것이며, &amp;ldquo;눈 깜짝할 사이에&amp;rdquo; &amp;ldquo;공중에서&amp;rdquo; 그분을 만나기 위해 &amp;ldquo;끌어올려질&amp;rdquo; 것입니다(부활한 성도들과 살아 있는 성도들이 함께).(살전 4:13-18; 고전 15:51-58).&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하지만 밤은 어떻습니까? 유일한 신성한 빛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는 &amp;ldquo;사람들에게 멸시받고 거부당하셨습니다.&amp;rdquo; 그러므로 인간의 자랑스러운 빛과 지식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어둠이 이 악한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오해하지 마십시오. 참된 빛을 거부한 이 시대는 극심한 어둠과 두려운 퇴보의 시대입니다. &amp;ldquo;아침이 오고 밤도 옵니다.&amp;rdquo; 우리는 구름 한 점 없는 완벽한 날이 밝아오기를 기다립니다. 그 후에는 악인들을 위한 영원한 어둠의 밤이 올 것이며, 그들은 아침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삶을 생각하며</category>
      <author>징검 다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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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onyang.tistory.com/5052#entry5052comment</comments>
      <pubDate>Sat, 27 Jun 2026 20:17:4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title>
      <link>https://onyang.tistory.com/5051</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 시대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상업적으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완전히 파멸로 향하고 있습니다. 거대하고 교활한 세력들이 인류의 오랜 기반을 무너뜨리고, 세상 만물을 타락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지배자가 계획하고 조종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amp;ldquo;이 세상의 신&amp;rdquo;, 하나님과 인간의 적인 사탄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치 무서운 위험이 닥친 것처럼 흥분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온갖 이상한 행동을 해야 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게 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세상의 종말이 노아 시대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7:26). 노아와 그의 시대에 대한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려줄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창세기 6장에는 제멋대로인 악과 폭력, 부패가 만연한 세상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amp;ldquo;사람의 마음의 생각은 늘 악할 뿐&amp;rdquo;이었습니다. 의로운 씨와 악한 씨가 결합하면서 모든 육체가 타락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amp;ldquo;용사들&amp;rdquo;과 &amp;ldquo;명예로운 사람들&amp;rdquo;과 &amp;ldquo;거인들&amp;rdquo;이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에서 우리는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짐에 따라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홍수 이전 시대의 타락한 세상 한가운데에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노아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였으며, 주님을 위한 증인이 되도록 구원받은 가난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는 주변의 악과 구별되어 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amp;ldquo;하나님과 동행&amp;rdquo;했기 때문입니다. 그 동행은 그의 모든 행동을 놀랍게 변화시켰고, 본래 의도대로 그를 사방에 만연한 불법과 대조되는, 그리고 그에 대한 증거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를 불의한 자들 가운데 &amp;ldquo;의로운&amp;rdquo; 사람으로, 굽은 자들 가운데 &amp;ldquo;온전한&amp;rdquo; 사람으로, 범죄자들 가운데 &amp;ldquo;흠 없는&amp;rdquo; 사람으로, 불의한 자들 가운데 &amp;ldquo;의로운&amp;rdquo; 사람으로, 불순종하는 자들 가운데 순종하는(창 6:22) 사람으로, 믿지 않는 자들 가운데 믿음의 사람으로, 무관심한 자들 가운데 &amp;ldquo;두려움으로 움직이는&amp;rdquo;(히 11) 사람으로, 모든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amp;ldquo;전도자&amp;rdquo;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성령께서 사람들과 교류하셨습니다(벧전 3:18-20). 그의 경건함은 당시 죄인들에게 정죄감을 주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부르심은 같은 성품을 지닌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경건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amp;ldquo;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amp;rdquo;라는 질문에 대한 참된 답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능력 안에서, 의롭고 정직하며 흠 없고 의롭고 순종하며 믿음이 충만하고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조용하고 꾸준하며 지속적으로, 꾸준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하면 마땅한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죄인들이 구원받을 것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우리의 증거와 경건한 삶이 그들의 영원한 심판이 될 것입니다. 마치 노아가 그의 시대 사람들을 심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삶을 생각하며</category>
      <author>징검 다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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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onyang.tistory.com/5051#entry5051comment</comments>
      <pubDate>Sun, 21 Jun 2026 18:02:34 +0900</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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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떤 교회에 나가야 할까요?</title>
      <link>https://onyang.tistory.com/5050</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존 리치&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최근에 하나님께로 회심하셨습니다. 몇 주 전 여러분은 &amp;ldquo;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amp;rdquo;라는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amp;ldquo;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러면 네가 구원을 받고&amp;rdquo;(행 16:31)라는 말씀으로 그 답을 찾았습니다. 여러분은 믿었고,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젊은 신자로서 이제 여러분 가운데는 또 다른 질문들이 생겨납니다. 그중에서도 몇몇 분들이 말씀하셨듯이,&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amp;ldquo;어떤 교회에 나가야 할까요?&amp;rdquo; 또는 &amp;ldquo;어디서 누구와 함께 그리스도인으로서 교제할 수 있을까요?&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며, 많은 분들이 이 문제로 하나님 앞에서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여러분의 혼 구원과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동행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amp;ldquo;교회 교제&amp;rdquo; 문제에 있어서 올바른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여러분의 결정은 좋든 나쁘든 사후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디를 가든, 누구와 교제하든 간에 잘 지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amp;ldquo;어떤 교회에 가입할 것인가&amp;rdquo;는 스스로 선택하거나, 흔히 그렇듯이 그냥 습관적으로 가던 교회, 혹은 부모님이 다니시는 교회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amp;ldquo;어떤 교회에 가입해야 할까?&amp;rdquo;라는 질문을 &amp;ldquo;열린 질문&amp;rdquo;으로 남겨두셨다면 괜찮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 혼과 여러분의 혼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온전히 인도받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나 조언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경건한 부모의 충고조차도 소용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모든 것이 단순하고 쉬워집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교제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면, 내 생각이나 친구들의 생각, 혹은 다른 사람의 말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amp;ldquo;주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amp;rdquo;라는 질문으로 바뀝니다. 주님께서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어디에 가지 말라고 금하시는가? 이 점을 먼저 확실히 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많은 반대가 일어나거나 주변에 실패가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명하신 곳에 내가 서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다는 증거를 마음속에 품게 될 것입니다. 그 어떤 것이 이와 상충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이 내 편이시라는 증거가 있다면, 세상과 지옥이 너를 대적할지라도 사자처럼 담대해질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제 우리는 그 귀한 책, 곧 &amp;ldquo;우리 발의 등불&amp;rdquo;, &amp;ldquo;우리 길의 빛&amp;rdquo;인 성경을 펼쳐 하나님께서 교회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그리고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amp;ldquo;교회에 합류하는 것&amp;rdquo;에 대한 어려움은 더 이상 크지 않을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우선, 성경에서 &amp;ldquo;교회&amp;rdquo;라는 단어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건물의 이름으로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익숙하게 사용해 온 것과는 다릅니다. 이 단어는 항상 사람과 관련하여 사용되며, &amp;ldquo;부르심을 받은&amp;rdquo;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사도행전 20:28절을 보십시오. 거기에는 &amp;ldquo;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amp;rdquo;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amp;ldquo;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기를 내어 주셨다&amp;rdquo;(엡 5:25)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여기서 우리는 교회가 누구의 것이며, 어떤 대가를 치르고 사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amp;ldquo;하나님의 교회&amp;rdquo;입니다. 한 국가나 나라, 교리, 혹은 한 사람의 교회가 아니라, &amp;ldquo;하나님께 속한&amp;rdquo;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귀한 피로 사셨고, 그분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입니다.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했을 때 모든 것을 팔아 산 진주 장수처럼, 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얻기 위해, 영원히 자신의 영광을 함께 나누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교회를 몸, 성전, 집, 신부, 그리고 도시라는 비유로 묘사합니다(구약성경에는 상징적으로만 언급될 뿐,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집, 어린 양의 신부,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라고 불립니다(엡 2:22-23; 고전 3:16; 딤전 3:15; 계 21:2-9 참조).&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분의 몸의 유일한 머리이신 부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는 오직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amp;ldquo;그리스도를 만물의 머리로 삼으시고 그의 몸인 교회를 세우셨습니다&amp;rdquo;(엡 1:22-23). ​​또한 &amp;ldquo;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존재하며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amp;rdquo;(골 1:17-18). 교회는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듯(엡 5:23-24), 오직 그분께만 복종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어떤 교황이나 대주교, 공의회나 총회도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법을 제정할 신성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순종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 밖에서 교황 칙서를 발표하거나, 교회법을 제정하거나, 법을 만들도록 부름받은 적이 없습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며, 하나님 우편에 앉아 그의 몸을 양육하고, 지탱하고,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각 지체 안에 거하시며 그들을 살아 계신 머리와 결합시키고,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뜻은 우리 손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머리가 하나이듯이 몸도 하나뿐입니다(엡 4:4). 몸은 각기 다른 지위와 역할을 가진 많은 지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치 우리 몸에 눈, 손, 발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많은 지체가 있지만 몸은 하나입니다(고전 12:20). &amp;ldquo;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 한 몸으로 침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amp;rdquo;(고전 12-13). 각 지체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자리와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연합은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유지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이 연합을 만들지 못했고, 결코 깨뜨릴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연합의 유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다양하고 많은 분파를 만들어 이 연합을 무시하거나 부인할 수 있지만, 그것이 결코 연합을 무효화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볼 때, 교회는 인간의 모든 실패와 분열에도 불구하고 하나입니다. 이 교회는 북쪽, 남쪽, 동쪽, 서쪽 어디에 있든,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모든 하나님의 자녀를 포용합니다. 그들은 모두 동일한 귀한 피로 구속받고, 동일한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고 내주하시며, 동일한 전능하신 사랑의 팔로 둘러싸이고 보호받으며, 영원토록 동일한 영광스러운 집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와 성도를 잇는 영원한 연결 고리이며, 슬프게도 이 세상에서는 종종 사람들이 이 연결 고리를 부인하고 인간이 만든 다른 연결 고리로 그 자리를 차지하지만, 결코 쇠퇴하지 않을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사랑하는 젊은 신자여,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입니다. 성령 강림으로 오순절에 시작된 교회는 현재 복음 전파를 통해 땅의 모든 민족에게서 모여들고 있으며, 세상의 유산이나 권력이 없고, 유대인과 이방인과 구별된 하나의 새 사람, 하나의 거룩한 교회,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분이 오실 때 완성되어 그분께 바쳐질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성경에 언급된 유일한 몸인 이 몸의 지체이신 여러분은 이미 그 몸에 &amp;ldquo;결합&amp;rdquo;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깊은 지체가 될 수는 없으며, 스스로 &amp;ldquo;교회를 떠날&amp;rdquo;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행위로 여러분은 회심한 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되었고, 영원토록 그 자리를 유지할 것입니다. 할렐루야!&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 교회의 지체들 중 ​​일부는 지금 몸에서 떠나 &amp;ldquo;주님과 함께&amp;rdquo; 있고, 또 다른 일부는 현재 세상 사람들 가운데 살고 있으며, 어떤 도시나 마을, 또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서로 고립되어 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amp;ldquo;어떤 사람들의 습관처럼 모이기를 소홀히 하지 아니하였느니라&amp;rdquo;(히 10:25)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 각자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 또한 같은 생명이 거하는 다른 지체들과의 교제를 갈망합니다. 왜냐하면 &amp;ldquo;우리는 서로 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amp;rdquo; 그러므로 그들의 교제는 단순히 외적인 획일성이 아니라 생명의 교제여야 합니다. 죽은 자, 즉 회심하지 않은 자들은 이 교제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생명과 죽음, 빛과 어둠이 무슨 교제를 할 수 있겠습니까? 분명히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산 자와 죽은 자, 즉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함께 모여 있는 교회에서는 진정한 교제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교제를 분명히 금하셨습니다. &amp;ldquo;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공평하지 않게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가 불의와 무슨 사귐을 갖겠느냐? 빛이 어둠과 무슨 친교를 나누겠느냐?... 주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저들 가운데서 나와 너희 자신을 분리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amp;rdquo;(고후 6:14-17) 가라지와 알곡은 세상에서 함께 자라야 합니다. (여기서 &amp;ldquo;밭은 세상을 의미하며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마태복음 13:38 참조). 세상은 끝까지 함께 자라야 합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에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있을 자리가 없어야 합니다. 그들은 &amp;ldquo;밖에&amp;rdquo; 있어야 합니다(살전 4:12; 골로새서 4:5 참조).&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처음에는 그러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예루살렘교회(행 8:1), 고린도교회(고전 1:12), 갈라디아교회(갈라디아 1:20), 눔바의 집 교회(골 4:15)와 같은 지역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이 교회들은 오직 신자들로만 구성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며, 신성한 공동체 안에서 교제했습니다. 그들의 모범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받아들이신 모든 사람&lt;b&gt;*&lt;/b&gt;, 심지어 &amp;ldquo;약한&amp;rdquo; 자들, &amp;ldquo;도움&amp;rdquo;이 필요한 자들까지도 받아들였습니다(롬 14:1; 살전 5:14 참조). 만약 그들이 이보다 더 편협했다면 이단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임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을 예배했고(고전 14), 주일 첫날에 주의만찬을 거행했습니다(행 20:7). 그러나 우리는 어떤 종교에 대해서도 언급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식탁의 상석에는 &amp;ldquo;사회자&amp;rdquo; 또는 &amp;ldquo;장로&amp;rdquo;가 앉았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사, 즉 복음 전도자, 목자, 교사의 직분을 소유하고 받았지만, 자신들의 목자를 직접 선택하거나 선출하거나 안수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오늘날 회중이 설교, 가르침, 목양을 모두 담당하도록 선택하는 &amp;ldquo;목사&amp;rdquo;와 같은 인물은 이 교회들에는 없었습니다. 안디옥에는 다섯 명의 교사가 있었고(행 13:1), 빌립보에는 한 교회 안에 여러 명의 감독이 있었습니다(빌 1:1).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오늘날 교회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amp;ldquo;목자&amp;rdquo;는 어떻게 될까요? 이러한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다스리도록 세우신 사람들을 소유하고 그들에게 순종했습니다(히 13:7,17). 그들은 잘못을 저지른 자들에게 경건한 징계를 행했고, 만일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악한 교리를 고수하거나 가르치거나(계 2:17,20),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르면(고전 5:11), 그를 내쫓았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 어떤 신자가 교회 교제에서 물러나거나 제명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그가 성경에 명시된, 하나님께서 그를 제명하시는 죄 중 하나를 저질렀을 경우입니다(고전 5:11-13; 롬 16:17; 딛 3:10 참조).&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것들은 성경에 언급된 교회들의 몇 가지 특징이며,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가 마땅히 되어야 할 본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새로운 교제 질서를 고안할 권리가 없으며, 새로운 구원의 길을 만들 권리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으로 두 가지 모두를 주셨고, 그 말씀은 영원히 지속됩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누군가 회심했을 때, 그는 &amp;ldquo;어느 교회에 나가야 합니까?&amp;rdquo;라고 물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각 지역에는 오직 하나의 교회만 있었고,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 교회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예를 들어, 예루살렘에서는 오순절 날 다락방에 120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3천 명이 더 회심했고, 우리는 &amp;ldquo;그 날에 약 3천 명이 그들에게 더해졌으니 믿는 자는 다 함께 모였다&amp;rdquo;(행 2:41,44)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단지 그 &amp;ldquo;대부흥&amp;rdquo;이라는 &amp;ldquo;특별한 경우&amp;rdquo;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amp;ldquo;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제와 떡을 떼는 것과 기도에 전념하였고&amp;rdquo;(행 2:43), &amp;ldquo;다른 사람들은 감히 그들과 함께하지 못했다&amp;rdquo;(행 5:13)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 교회에는 회심하지 않은 &amp;ldquo;젊은 교인들&amp;rdquo;이나 &amp;ldquo;죽은 교인들&amp;rdquo;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amp;ldquo;감히 그들과 함께하지 못했습니다.&amp;rdquo; 불경건한 유대인들은 대제사장과 그의 &amp;ldquo;동료들&amp;rdquo;을 앞세워 성전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정죄하는 종교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회심하지 않은 종교인들이 교회와 집회소에서 그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젊은 회심자들은 그런 사람들과 교제할 수 없었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다소의 사울처럼 여러분도 제자들에게 가서 그들의 교제에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행 9:26-28 참조). 보시다시피, 그때였다면 당신의 길은 분명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릅니다. 수많은 종파가 온 땅에 퍼져 있고, 교회와 세상이 뒤섞여 있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이 눈을 뜰 때, 처음의 교회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창시자, 신조, 혹은 나라 이름을 딴 종파들이 줄줄이 주도권을 다투는 모습, 누가 가장 위대한 종파가 될 것인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이것이 핵심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직시해야 합니다. 여기 ---에는 주요 종파들이 대부분 대표되어 있는데, 당신은 어느 종파에 가입해야 할지 알고 싶어 합니다. 당신의 질문에 대한 가장 간단한 대답은 &amp;ldquo;어느 종파가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는가? 어느 종파가 성경에 제시된 본보기에 부합하는가?&amp;rdquo;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우리가 직접 시험해 봅시다. 주요 교회들은 본보기에서 한참 벗어나 있습니다. 그들은 회심하지 않은 자들이 주의만찬에 참여하도록 허용합니다. 이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말이 의심스럽다면, 그들에게 가서 솔직하고 정당한 질문, &amp;ldquo;당신의 혼은 구원받았습니까?&amp;rdquo;를 해보세요. 그러면 알게 될 겁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사들을 직접 선택하는데, 그중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한 사람을 세워 전도자, 목사, 교사 역할을 모두 맡기고 정해진 급여를 받게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사람들의 종교를 담당하도록 &amp;ldquo;고용&amp;rdquo;된 것입니다. 그는 모든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부르고, 설교를 합니다. &amp;ldquo;공중 예배&amp;rdquo; 중에 다른 누군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말씀을 전하거나 질문을 하더라도 감히 나서지 못합니다. 만약 그랬다면 쫓겨났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반드시 &amp;ldquo;목사&amp;rdquo;를 통해서만 역사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전혀 역사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영광은 그가 &amp;ldquo;안수받은 사람&amp;rdquo;이기 때문에, 즉 사도들을 본떠 다른 목사의 안수를 받았기 때문에 그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정직한 사람들은 이것이 위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런 곳에 &amp;ldquo;가입&amp;rdquo;하거나 교회 교제를 하는 것은 심각한 장애물이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또 어떤 이들은 &amp;ldquo;물세례&amp;rdquo;를 교회 입교의 관문으로 삼고, 예배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나 사역에서 하나님의 모든 은사를 발휘할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이는 분파주의적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동떨어진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amp;ldquo;한 몸의 터&amp;rdquo;에 모여 진리 안에서 행하는 많은 하나님의 백성을 배제합니다. 이는 매우 분파주의적이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강력하게 정죄하는 것입니다(요삼 10절 참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많은 악 중에서 &amp;ldquo;가장 작은 것을 택해야&amp;rdquo; 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옳은 것, 즉 하나님께서 정하신 교회 교제와 질서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성도라면 그보다 못한 것은 결코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lt;b&gt;그러므로, &amp;ldquo;교회&amp;rdquo;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신자들이 있는지 알아보십시오.&lt;/b&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주 예수님을 중심으로, 마태복음 18:20절 말씀처럼 그분을 그들 가운데 모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어긋나는 모든 분파와 당파, 그 이름과 신조와 전통을 버리고 하나님의 교회의 근본 원칙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라는 이름 외에는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모형대로 모였으며, 그분의 모든 은사를 발휘할 공간이 있고, 그분의 성령님의 모든 역사를 위한 자유가 있으며, 오직 그분의 말씀만을 신조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명령된 것이며, 초대 교회에서 실천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자리입니다. 이 자리를 택하는 것을 주저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택했다면 &amp;ldquo;굳건히&amp;rdquo; 그 자리에 머무르십시오. 이 자리를 굳게 지키십시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주변의 수많은 신앙인들에 비하면 가난하고 멸시받는 &amp;ldquo;작은 무리&amp;rdquo;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amp;ldquo;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 가운데 있느니라&amp;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그분이 계신 곳에 있는 것이 그분 없는 군중 속에 있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처럼 모인 자들은 결코 그들만 &amp;ldquo;하나님의 백성&amp;rdquo;인 척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 주변의 여러 교파에 속해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사랑받는 성도들이 있고, 그들이 영원토록 같은 천국에서 함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들이며 영원토록 같은 천국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하나인 형제자매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비록 그들이 속한 종파는 무시해야 하지만 말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올바른 위치를 얻었다면,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올바른 삶을 살고,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눈앞에서 모든 사람의 양심에 진리를 권면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교회진리</category>
      <author>징검 다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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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5 Jun 2026 06:19:2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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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죄들을 사하시는 전능하신 분</title>
      <link>https://onyang.tistory.com/5049</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amp;ldquo;자신의&amp;nbsp;아들을&amp;nbsp;통해&amp;hellip;&amp;nbsp;친히&amp;nbsp;우리&amp;nbsp;죄들을&amp;nbsp;정결하게&amp;nbsp;하신&amp;nbsp;뒤에&amp;rdquo;(히&amp;nbsp;1:2-3).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히브리서는&amp;nbsp;위대하고&amp;nbsp;심오하며&amp;nbsp;놀랍도록&amp;nbsp;체계적입니다.&amp;nbsp;처음&amp;nbsp;몇&amp;nbsp;장은&amp;nbsp;주&amp;nbsp;예수님의&amp;nbsp;인격과&amp;nbsp;그분이&amp;nbsp;누구신지에&amp;nbsp;대해&amp;nbsp;다룹니다.&amp;nbsp;그분은&amp;nbsp;이전의&amp;nbsp;어떤&amp;nbsp;사람보다&amp;nbsp;더&amp;nbsp;높은&amp;nbsp;존엄성을&amp;nbsp;지닌&amp;nbsp;사자이시며,&amp;nbsp;더&amp;nbsp;풍성한&amp;nbsp;은혜를&amp;nbsp;베푸시는&amp;nbsp;사역자이십니다.&amp;nbsp;1장에서는&amp;nbsp;그분을&amp;nbsp;하나님의&amp;nbsp;신성한&amp;nbsp;아들로,&amp;nbsp;2장에서는&amp;nbsp;형제들과&amp;nbsp;같이&amp;nbsp;되신&amp;nbsp;완전한&amp;nbsp;인자로&amp;nbsp;소개합니다.&amp;nbsp;이&amp;nbsp;두&amp;nbsp;장은&amp;nbsp;모든&amp;nbsp;기독교&amp;nbsp;진리의&amp;nbsp;기초가&amp;nbsp;됩니다.&amp;nbsp;이&amp;nbsp;기초&amp;nbsp;위에&amp;nbsp;구원의&amp;nbsp;전체&amp;nbsp;구조가&amp;nbsp;세워집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lt;b&gt;주님은 누구신가&lt;/b&gt;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첫&amp;nbsp;구절들은&amp;nbsp;하나님께서&amp;nbsp;&amp;ldquo;이&amp;nbsp;마지막&amp;nbsp;날들에는&amp;nbsp;자신의&amp;nbsp;아들을&amp;nbsp;통해&amp;nbsp;우리에게&amp;nbsp;말씀하시고&amp;rdquo;라고&amp;nbsp;말합니다.&amp;nbsp;그&amp;nbsp;아들은&amp;nbsp;바로&amp;nbsp;하나님의&amp;nbsp;유일한&amp;nbsp;아들이시며,&amp;nbsp;영원하신&amp;nbsp;아들입니다.&amp;nbsp;삼위일체&amp;nbsp;하나님&amp;nbsp;안에는&amp;nbsp;영원한&amp;nbsp;아들됨이&amp;nbsp;있습니다.&amp;nbsp;그&amp;nbsp;신성한&amp;nbsp;아들됨은&amp;nbsp;주&amp;nbsp;예수&amp;nbsp;그리스도의&amp;nbsp;신성에&amp;nbsp;속한&amp;nbsp;아들됨입니다.&amp;nbsp;하나님의&amp;nbsp;유일한&amp;nbsp;아들에&amp;nbsp;대한&amp;nbsp;이&amp;nbsp;말씀&amp;nbsp;바로&amp;nbsp;다음에&amp;nbsp;그분의&amp;nbsp;인격과&amp;nbsp;절대적이고&amp;nbsp;확증된&amp;nbsp;신성에&amp;nbsp;대한&amp;nbsp;일곱&amp;nbsp;가지&amp;nbsp;설명이&amp;nbsp;나옵니다.&amp;nbsp;일곱&amp;nbsp;가지&amp;nbsp;요소는&amp;nbsp;다음과&amp;nbsp;같습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1)&amp;nbsp;&amp;ldquo;모든&amp;nbsp;것의&amp;nbsp;상속자&amp;rdquo;는&amp;nbsp;온&amp;nbsp;우주의&amp;nbsp;모든&amp;nbsp;것을&amp;nbsp;포함합니다.&amp;nbsp;피조물&amp;nbsp;중&amp;nbsp;어느&amp;nbsp;것도&amp;nbsp;이&amp;nbsp;광대하고&amp;nbsp;무한한&amp;nbsp;우주의&amp;nbsp;상속자가&amp;nbsp;될&amp;nbsp;수&amp;nbsp;없습니다.&amp;nbsp;오직&amp;nbsp;하나님의&amp;nbsp;아들만이&amp;nbsp;그러하실&amp;nbsp;수&amp;nbsp;있습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2)&amp;nbsp;&amp;ldquo;그&amp;nbsp;아들로&amp;nbsp;말미암아&amp;nbsp;세상들을&amp;nbsp;만드셨느니라&amp;rdquo;&amp;mdash;여기서&amp;nbsp;&amp;ldquo;세상들&amp;rdquo;은&amp;nbsp;시대를&amp;nbsp;의미합니다.&amp;nbsp;하나님의&amp;nbsp;아들은&amp;nbsp;시간과&amp;nbsp;영원의&amp;nbsp;모든&amp;nbsp;시대를&amp;nbsp;구상하고&amp;nbsp;설계하셨습니다.&amp;nbsp;이&amp;nbsp;표현은&amp;nbsp;어떤&amp;nbsp;피조물에게도&amp;nbsp;적용될&amp;nbsp;수&amp;nbsp;없습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3)&amp;nbsp;&amp;ldquo;하나님의&amp;nbsp;영광의&amp;nbsp;광채시요&amp;nbsp;그분&amp;rdquo;&amp;mdash;하나님의&amp;nbsp;모든&amp;nbsp;본질을&amp;nbsp;분명하게&amp;nbsp;비추시는&amp;nbsp;분입니다.&amp;nbsp;그분은&amp;nbsp;마치&amp;nbsp;하나의&amp;nbsp;별자리처럼&amp;nbsp;모든&amp;nbsp;신적&amp;nbsp;완전함을&amp;nbsp;구현하고&amp;nbsp;계십니다.&amp;nbsp;그분은&amp;nbsp;여호와의&amp;nbsp;속성이&amp;nbsp;한낮의&amp;nbsp;찬란함으로&amp;nbsp;빛나십니다.&amp;nbsp;하찮은&amp;nbsp;피조물을&amp;nbsp;그런&amp;nbsp;표현으로&amp;nbsp;묘사하는&amp;nbsp;것은&amp;nbsp;신성모독일&amp;nbsp;것입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4)&amp;nbsp;&amp;ldquo;그분&amp;nbsp;자체의&amp;nbsp;정확한&amp;nbsp;형상&amp;rdquo;&amp;mdash;하나님의&amp;nbsp;본질적인&amp;nbsp;본성을&amp;nbsp;정확하게&amp;nbsp;나타내신&amp;nbsp;분입니다.&amp;nbsp;그분은&amp;nbsp;하늘의&amp;nbsp;하나님처럼&amp;nbsp;땅에서도&amp;nbsp;순결하셨습니다.&amp;nbsp;주&amp;nbsp;예수님은&amp;nbsp;가장&amp;nbsp;비천한&amp;nbsp;오두막을&amp;nbsp;비추는&amp;nbsp;더럽혀지지&amp;nbsp;않은&amp;nbsp;햇살처럼&amp;nbsp;죄악의&amp;nbsp;세상을&amp;nbsp;지나가셨습니다.&amp;nbsp;그분은&amp;nbsp;죄의&amp;nbsp;오점을&amp;nbsp;전혀&amp;nbsp;알지&amp;nbsp;못하셨습니다.&amp;nbsp;그분은&amp;nbsp;하나님이시므로&amp;nbsp;거룩하신&amp;nbsp;것처럼&amp;nbsp;거룩하셨습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5)&amp;nbsp;&amp;ldquo;자신의&amp;nbsp;권능의&amp;nbsp;말씀으로&amp;nbsp;모든&amp;nbsp;것을&amp;nbsp;떠받치시는&amp;rdquo;&amp;mdash;온&amp;nbsp;우주를&amp;nbsp;그&amp;nbsp;궤도&amp;nbsp;안에&amp;nbsp;붙드심.&amp;nbsp;과학자들은&amp;nbsp;이제&amp;nbsp;광년이&amp;nbsp;아니라&amp;nbsp;음파로&amp;nbsp;별까지의&amp;nbsp;거리를&amp;nbsp;측정합니다.&amp;nbsp;어떤&amp;nbsp;별에서&amp;nbsp;나오는&amp;nbsp;빛이&amp;nbsp;지구에&amp;nbsp;도달하는&amp;nbsp;데&amp;nbsp;수백만&amp;nbsp;년이&amp;nbsp;걸린다고&amp;nbsp;합니다.&amp;nbsp;또한&amp;nbsp;우리&amp;nbsp;태양계&amp;nbsp;전체를&amp;nbsp;합친&amp;nbsp;것보다&amp;nbsp;더&amp;nbsp;큰&amp;nbsp;별&amp;nbsp;하나를&amp;nbsp;발견했습니다.&amp;nbsp;얼마나&amp;nbsp;광대한&amp;nbsp;우주입니까!&amp;nbsp;얼마나&amp;nbsp;많은&amp;nbsp;별들이&amp;nbsp;있습니까!&amp;mdash;주&amp;nbsp;예수님께서&amp;nbsp;그&amp;nbsp;모든&amp;nbsp;별들을&amp;nbsp;붙드시고&amp;nbsp;계십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lt;b&gt;주님께서 하신 일&lt;/b&gt;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6)&amp;nbsp;&amp;ldquo;아들께서는&amp;nbsp;친히&amp;nbsp;우리&amp;nbsp;죄들을&amp;nbsp;정결하게&amp;nbsp;하신&amp;nbsp;뒤&amp;rdquo;&amp;mdash;죄를&amp;nbsp;완전히&amp;nbsp;없애셨다.&amp;nbsp;그분의&amp;nbsp;존재&amp;nbsp;때문에만&amp;nbsp;인간의&amp;nbsp;혼을&amp;nbsp;해방시킬&amp;nbsp;수&amp;nbsp;있는&amp;nbsp;무한한&amp;nbsp;대속이&amp;nbsp;가능했습니다.&amp;nbsp;오직&amp;nbsp;하나님만이&amp;nbsp;그러한&amp;nbsp;죄의&amp;nbsp;짐을&amp;nbsp;지고,&amp;nbsp;모든&amp;nbsp;죄에&amp;nbsp;대한&amp;nbsp;모든&amp;nbsp;형벌을&amp;nbsp;흡수하고,&amp;nbsp;모든&amp;nbsp;죄를&amp;nbsp;완전히&amp;nbsp;정화할&amp;nbsp;수&amp;nbsp;있는&amp;nbsp;공로&amp;nbsp;있고&amp;nbsp;신성한&amp;nbsp;피를&amp;nbsp;흘리실&amp;nbsp;수&amp;nbsp;있었습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우리가&amp;nbsp;그분이&amp;nbsp;하신&amp;nbsp;일을&amp;nbsp;올바르게&amp;nbsp;평가하려면&amp;nbsp;그분이&amp;nbsp;누구신지&amp;nbsp;잊어서는&amp;nbsp;안&amp;nbsp;됩니다.&amp;nbsp;십자가&amp;nbsp;곁에&amp;nbsp;서&amp;nbsp;보십시오.&amp;nbsp;가운데&amp;nbsp;십자가에&amp;nbsp;못&amp;nbsp;박히신&amp;nbsp;고난받는&amp;nbsp;분은&amp;nbsp;외로운&amp;nbsp;분처럼&amp;nbsp;보입니다.&amp;nbsp;그분은&amp;nbsp;조롱과&amp;nbsp;비웃음을&amp;nbsp;당하셨습니다.&amp;nbsp;고난은&amp;nbsp;그분의&amp;nbsp;얼굴에&amp;nbsp;&amp;ldquo;그&amp;nbsp;어떤&amp;nbsp;사람보다도&amp;nbsp;더&amp;rdquo;&amp;nbsp;상처를&amp;nbsp;남겼습니다.&amp;nbsp;진실로&amp;nbsp;그분은&amp;nbsp;사람이십니다.&amp;nbsp;만약&amp;nbsp;그렇지&amp;nbsp;않다면,&amp;nbsp;그분은&amp;nbsp;인간의&amp;nbsp;피를&amp;nbsp;가질&amp;nbsp;수&amp;nbsp;없었을&amp;nbsp;것입니다.&amp;nbsp;하지만&amp;nbsp;그분은&amp;nbsp;단지&amp;nbsp;사람일&amp;nbsp;뿐입니까?&amp;nbsp;아닙니다,&amp;nbsp;결코&amp;nbsp;그렇지&amp;nbsp;않습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십자가에&amp;nbsp;달리신&amp;nbsp;그&amp;nbsp;연약한&amp;nbsp;몸&amp;nbsp;안에&amp;nbsp;신성이&amp;nbsp;깃들어&amp;nbsp;있습니다.&amp;nbsp;그분은&amp;nbsp;전능하신&amp;nbsp;하나님이시며,&amp;nbsp;모든&amp;nbsp;세계를&amp;nbsp;다스리시는&amp;nbsp;위대한&amp;nbsp;창조주이시며,&amp;nbsp;천사,&amp;nbsp;사람,&amp;nbsp;마귀를&amp;nbsp;막론하고&amp;nbsp;모든&amp;nbsp;피조물의&amp;nbsp;주님이십니다.&amp;nbsp;여호와의&amp;nbsp;충만한&amp;nbsp;권능이&amp;nbsp;그분의&amp;nbsp;손에&amp;nbsp;있으며,&amp;nbsp;여호와의&amp;nbsp;모든&amp;nbsp;영광은&amp;nbsp;그분의&amp;nbsp;권리입니다.&amp;nbsp;여호와의&amp;nbsp;영원한&amp;nbsp;존재는&amp;nbsp;그분의&amp;nbsp;영원이며,&amp;nbsp;신성은&amp;nbsp;그분의&amp;nbsp;소유입니다.&amp;nbsp;신성은&amp;nbsp;육신으로&amp;nbsp;당하신&amp;nbsp;모든&amp;nbsp;고난과&amp;nbsp;우리를&amp;nbsp;대신하여&amp;nbsp;행하신&amp;nbsp;모든&amp;nbsp;일과&amp;nbsp;연결되어&amp;nbsp;있습니다.&amp;nbsp;그러므로&amp;nbsp;그&amp;nbsp;피는&amp;nbsp;보통의&amp;nbsp;피가&amp;nbsp;아닙니다.&amp;nbsp;생명이&amp;nbsp;그&amp;nbsp;피&amp;nbsp;안에&amp;nbsp;있으며,&amp;nbsp;그분의&amp;nbsp;생명은&amp;nbsp;하나님의&amp;nbsp;생명입니다.&amp;nbsp;그것은&amp;nbsp;하나님의&amp;nbsp;피입니다(행&amp;nbsp;20:28).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amp;nbsp;피&amp;nbsp;흘림의&amp;nbsp;효력은&amp;nbsp;무한합니다.&amp;nbsp;우리의&amp;nbsp;죄는&amp;nbsp;우리에게&amp;nbsp;무한한&amp;nbsp;책임을&amp;nbsp;지우기&amp;nbsp;때문에&amp;nbsp;우리를&amp;nbsp;영원한&amp;nbsp;지옥으로&amp;nbsp;보내는&amp;nbsp;가장&amp;nbsp;정당한&amp;nbsp;판결입니다.&amp;nbsp;설령&amp;nbsp;인간의&amp;nbsp;모습으로&amp;nbsp;나타난&amp;nbsp;수많은&amp;nbsp;천사들이&amp;nbsp;죽을&amp;nbsp;수&amp;nbsp;있다&amp;nbsp;하더라도,&amp;nbsp;죄인인&amp;nbsp;인간이&amp;nbsp;마땅히&amp;nbsp;받아야&amp;nbsp;할&amp;nbsp;심판에는&amp;nbsp;한참&amp;nbsp;못&amp;nbsp;미칠&amp;nbsp;것입니다.&amp;nbsp;그러나&amp;nbsp;주&amp;nbsp;예수님은&amp;nbsp;하나님이십니다.&amp;nbsp;그분은&amp;nbsp;본질적으로&amp;nbsp;신적인&amp;nbsp;피를&amp;nbsp;흘리셨습니다.&amp;nbsp;그&amp;nbsp;피는&amp;nbsp;모든&amp;nbsp;죄를&amp;nbsp;없애기에&amp;nbsp;충분하고도&amp;nbsp;남습니다.&amp;nbsp;온&amp;nbsp;인류의&amp;nbsp;모든&amp;nbsp;죄를&amp;nbsp;없애기에&amp;nbsp;충분합니다.&amp;nbsp;그&amp;nbsp;효력에는&amp;nbsp;한계가&amp;nbsp;없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lt;b&gt;주님이&amp;nbsp;계신&amp;nbsp;곳&lt;/b&gt;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7)&amp;nbsp;&amp;ldquo;그분은&amp;hellip;높은&amp;nbsp;곳에&amp;nbsp;계신&amp;nbsp;존엄하신&amp;nbsp;분의&amp;nbsp;오른쪽에&amp;nbsp;앉으셨느니라&amp;rdquo;&amp;mdash;완성된&amp;nbsp;일을&amp;nbsp;마치고&amp;nbsp;쉬셨습니다.&amp;nbsp;이것은&amp;nbsp;완전한&amp;nbsp;사역을&amp;nbsp;의미합니다.&amp;nbsp;여기에는&amp;nbsp;위엄과&amp;nbsp;은혜가&amp;nbsp;있습니다.&amp;nbsp;여기에는&amp;nbsp;아버지께서&amp;nbsp;그분을&amp;nbsp;하늘&amp;nbsp;보좌에&amp;nbsp;모셨음이&amp;nbsp;있습니다.&amp;nbsp;그것도&amp;nbsp;사람의&amp;nbsp;아들로서,&amp;nbsp;그분은&amp;nbsp;인간의&amp;nbsp;모습으로&amp;nbsp;승천하셨습니다.&amp;nbsp;여기에는&amp;nbsp;권위,&amp;nbsp;즉&amp;nbsp;최고의&amp;nbsp;주권이&amp;nbsp;있습니다.&amp;nbsp;여기에는&amp;nbsp;전능하신&amp;nbsp;권능이&amp;nbsp;있습니다.&amp;nbsp;그분은&amp;nbsp;아버지의&amp;nbsp;오른편에&amp;nbsp;앉아&amp;nbsp;계십니다.&amp;nbsp;보십시오!&amp;nbsp;그분이&amp;nbsp;누구신지,&amp;nbsp;무엇을&amp;nbsp;하셨는지,&amp;nbsp;어디에&amp;nbsp;계신지&amp;nbsp;보십시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분은&amp;nbsp;우리를&amp;nbsp;구원하시기&amp;nbsp;위해&amp;nbsp;외적으로는&amp;nbsp;하나님이시며,&amp;nbsp;우리를&amp;nbsp;격려하시기&amp;nbsp;위해&amp;nbsp;내적으로는&amp;nbsp;하나님이시며,&amp;nbsp;우리를&amp;nbsp;복주시기&amp;nbsp;위해&amp;nbsp;위에서는&amp;nbsp;하나님이시며,&amp;nbsp;살과&amp;nbsp;피를&amp;nbsp;입고&amp;nbsp;오셔서&amp;nbsp;죽으신&amp;nbsp;하나님이시며,&amp;nbsp;우리를&amp;nbsp;도우시기&amp;nbsp;위해&amp;nbsp;하늘&amp;nbsp;보좌에&amp;nbsp;앉으셔서&amp;nbsp;다스리시는&amp;nbsp;하나님이십니다.&amp;nbsp;그분은&amp;nbsp;하나님으로&amp;nbsp;사랑하시고,&amp;nbsp;하나님으로도우시며,&amp;nbsp;하나님으로서&amp;nbsp;구원하십니다.&amp;nbsp;하나님의&amp;nbsp;충만함이&amp;nbsp;그분&amp;nbsp;안에&amp;nbsp;있습니다.&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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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말씀 안으로</category>
      <author>징검 다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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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onyang.tistory.com/5049#entry5049comment</comments>
      <pubDate>Sat, 6 Jun 2026 19:36:02 +0900</pubDate>
    </item>
    <item>
      <title>삶의 행함들</title>
      <link>https://onyang.tistory.com/5048</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CH 매킨토시&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amp;ldquo;그러므로 우리에게 기회가 있는 대로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특히 믿음의 집안에 속한 자들에게 할지니라&amp;rdquo;(갈 6:10).&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 아름다운 말씀의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말씀이 갈라디아서 말미에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 놀라운 서신에서 영감받은 사도는 율법적 의의 체계 전체를 뿌리째 뽑아버립니다. 그는 어떤 종류의 율법 행위, 즉 도덕적이든 의식적이든 간에,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가장 반박할 수 없는 방식으로 증명합니다. 그는 믿는 자들은 삶이나 의롭다 함을 받는 것, 또는 삶의 방식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선언합니다. 만약 우리가 율법 아래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포기해야 하고, 하나님의 영을 포기해야 하며, 믿음을 포기해야 하고, 약속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어떤 형태로든 율법의 근거를 삼는다면, 우리는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고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우리는 지금 당장 해당 구절을 인용하거나 이 문제의 다른 측면을 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리스도인 독자 여러분께서 이 글의 서두에 나오는 황금 같은 말씀에 주목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 말씀은 모든 인간의 의가 시들어 바람에 흩날리는 서신서의 끝부분에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과 특별한 도덕적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주제든 양면을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진리의 온전한 작용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일깨우는 것이 도덕적으로 유익합니다. 슬프게도 은혜조차 남용될 수 있으며,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 앞에서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받지만, 진정한 믿음은 행위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곤 합니다. 우리 모두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성경 곳곳에서 아주 무자비하게 비난받고 무너지는 반면, 생명에 따른 행위는 부지런히 그리고 끊임없이 옹호되고 강조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네, 우리는 이 점에 진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생명을 가졌다고 고백한다면, 그 생명은 단순한 말이나 공허한 고백이 아니라 더욱 구체적이고 강력한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법은 생명을 줄 수 없으며, 따라서 생명의 행위를 만들어낼 수도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법의 나무에서 생명 있는 열매는 단 하나도 열린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열릴 수 없을 것입니다. 법은 오직 &amp;ldquo;죽은 행위&amp;rdquo;만을 만들어낼 뿐이며, 우리는 &amp;ldquo;악한 행위&amp;rdquo;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amp;ldquo;죽은 행위&amp;rdquo;에서도 양심의 가책을 씻어내야 합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 모든 것은 지극히 사실입니다. 성경 말씀 속에 명백히 드러나 있어 의심이나 반박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삶에는 반드시 선행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삶이 아닙니다. 영생을 얻었다고 공언하고,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은혜의 교리를 옹호하면서도, 온 삶과 모든 실천적인 행적이 온갖 형태의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amp;ldquo;누가 이 세상의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동정하는 마음을 닫아 그를 피하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안에 거하겠느냐?&amp;rdquo;(요일 3:17).&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사도 야고보도 우리 마음에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amp;ldquo;내 형제들아, 사람이 자기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행위가 없으면 그것이 무슨 유익을 주겠느냐?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가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떠나라. 너희는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라, 하고는 몸에 필요한 그것들을 너희가 그들에게 주지 아니하면 그것이 무슨 유익을 주겠느냐?&amp;rdquo;(약 2:14-16).&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여기서는 삶의 행위가 강조되는데, 이는 가장 엄숙하고 강력한 방식으로 우리의 마음에 와닿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공허한 고백, 얕고 무력하며 가치 없는 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놀랍도록 명확한 복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구원이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이지, 의로운 행위나 율법의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복된 진리이며, 우리의 마음은 이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구원받았다면, 마땅히 구원받은 자답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새 생명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없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사도 바울의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amp;ldquo;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amp;rdquo;(엡 2:8-9). 이것은 이 중요한 실제적인 질문의 윗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참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기뻐하며 주목할 아랫부분이 있습니다. 사도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amp;ldquo;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amp;rdquo;(엡 2:10).&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여기서 우리는 이 모든 주제를 완전하고 명확하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한 행실의 길로 인도하시도록 창조하셨고, 우리가 걸어야 할 선한 행실의 길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모든 것이 은혜로 말미암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짐에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러나 &amp;ldquo;선한 행실&amp;rdquo;이 없다면 은혜와 믿음과 영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완전히 헛된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높은 진리, 깊고 다양하며 폭넓은 성경 지식, 올바른 위치, 온갖 역경을 극복했다는 것을 자랑할지라도, 우리의 발걸음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amp;ldquo;선한 행실의 길&amp;rdquo;을 걷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하나님은 진실을 보십니다. 그분은 단지 거창한 말뿐인 사랑으로는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amp;ldquo;내 어린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amp;rdquo;(요일 3:18)라고 말씀하십니다. 찬양받으실 그분은 말이나 혀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서 분명하고 충만하며 확실한 응답을 기대하십니다. 그 응답은 선한 행실로 나타나는 삶, &amp;ldquo;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을 위한 의의 열매&amp;rdquo;를 탐스럽게 맺는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 중대한 문제에 마음을 쏟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사랑과 선행을 증진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이를 이룰 수 있을까요? 바로 우리 자신이 사랑 안에서 행하고, 사생활에서 선행의 길을 충실히 걷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공허한 고백에 진절머리가 납니다. 입으로는 고상한 진리를 말하면서 일상생활에서는 보잘것없는 행실을 보이는 것은 우리 시대의 심각한 악폐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은혜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일상적인 의로움, 즉 우리 일상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의무조차 소홀히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amp;ldquo;지위&amp;rdquo;와 &amp;ldquo;명예&amp;rdquo;를 자랑하지만, 우리의 &amp;ldquo;상태&amp;rdquo;와 &amp;ldquo;상황&amp;rdquo;에 대해서는 한심할 정도로 소홀합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주님의 한없는 선하심으로 모든 마음이 더욱 간절하게 선행을 추구하도록 일깨워 주시어, 우리가 모든 일에 있어서 구주이신 하나님의 가르침을 더욱 온전히 드러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lt;b&gt;추신&lt;/b&gt;&amp;mdash;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두 사도인 바울과 야고보의 &amp;ldquo;행위&amp;rdquo;에 대한 가르침을 비교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유익합니다. 바울은 율법에 따른 행위를 완전히 부정합니다. 야고보는 삶의 행위를 열렬히 강조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조화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간과하여 로마서 4:5절과 야고보서 2:24절 사이의 겉보기 차이에 대해 혼란스러워합니다. 두 구절 사이에 완벽하고 아름다운 조화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바울이 &amp;ldquo;일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을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amp;rdquo;(롬 4:5)라고 말할 때, 그는 율법에 따른 행위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amp;ldquo;그런즉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사람이 행위로 의롭다 인정받고 믿음만으로 인정받지 아니하느니라&amp;rdquo;(약 2:24)라고 말할 때, 그는 삶의 행위를 언급하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야고보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제시한 두 가지 사례, 즉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한 것과 라합이 정탐꾼들을 숨겨준 것은 이를 명백히 뒷받침합니다. 만약 이 사례들에서 믿음을 분리해 본다면, 그것들은 악한 행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믿음의 열매로 본다면, 그것들은 삶의 중요한 행위였을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 모든 것에서 성령님의 선견지명과 지혜가 얼마나 놀라운가! 성령님께서는 이 구절이 어떻게 쓰일지 미리 아셨기에, 추상적으로 선한 행위들을 택하는 대신, 4천 년 역사 속에서 믿음의 열매가 아니었다면 악한 행위였을 두 가지를 택하셨습니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삶을 생각하며</category>
      <category>믿음</category>
      <category>행함</category>
      <author>징검 다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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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1 May 2026 11:02:3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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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우리의 믿음 성장</title>
      <link>https://onyang.tistory.com/5047</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amp;ldquo;사도들이 주님께 이르되 우리 믿음을 크게 하여 주소서&amp;rdquo;(&lt;a style=&quot;color: #000000;&quot;&gt;눅 17:5&lt;/a&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누가 이런 말을 했을까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친밀하고 개인적으로 알았던 사람들이죠. 그분과 아주 가까이 살았던 이들조차 더 큰 믿음을 위해 기도해야 했다면, 그분이 이 세상에 계셨던 날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르고, 그들이 누렸던 물리적인 증거도 없는 우리는 얼마나 더 간절히 기도해야 할까요? 사도들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더 큰 믿음을 갈망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필요에 대해 스스로에게, 그리고 그리스도께 솔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으로 성장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겉으로만 경건한 척하는 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더 큰 믿음을 갈망한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더 큰 믿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믿음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들은 누구에게 이 말을 했을까요? 바로 주님께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누구도 스스로 노력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역사 선생님의 말씀을 그렇게 믿거나 논리적인 사실을 그렇게 받아들일 수는 있겠지만,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믿는 바로 그 믿음을 주십니다. &amp;ldquo;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는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로 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amp;rdquo; 믿음은 우리가 간구할 수 있는 선물입니다. 행위로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진실한 사람들이 이 점을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사도들은 왜 더 큰 믿음을 구했을까요?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형제가 하루에 일곱 번 잘못을 저지르고 일곱 번 용서를 구하면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도들은 믿음을 구했을까요? 왜 겸손이나 용서하는 마음, 사랑, 인내를 구하지 않았을까요? 사도들은 우리 중 일부가 마음속에 새기지 못한 중요한 원칙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나 인내, 겸손이 아니라 더 큰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이 더 크다면 하루에 일곱 번이나 잘못을 저지른 형제를 용서할 수 있고, 믿음이 부족하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모든 그리스도인의 은혜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용서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믿음이 부족한 사람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랑이 없는 그리스도인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믿음이 없는 사람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믿음은 저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그리스도 안에 붙들어 줍니다. &amp;lsquo;고상한 삶&amp;rsquo;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amp;lsquo;저속한 삶&amp;rsquo;에 대한 생각을 조금 가지십시오. 우리에게는 고상한 생각이 충분히 많습니다. 겸손한 생각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든 행동에서 그리스도께 얼마나 의존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고상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거의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도들은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믿음을 주시지 않았다면 결코 사랑할 수도, 인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믿음은 성령님의 열매, 즉 사랑, 기쁨, 평화, 용서를 맺게 합니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빛 가운데로 걸으며</category>
      <author>징검 다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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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onyang.tistory.com/5047#entry5047comment</comments>
      <pubDate>Mon, 18 May 2026 06:02:02 +0900</pubDate>
    </item>
    <item>
      <title>히브리서의 주 예수 그리스도</title>
      <link>https://onyang.tistory.com/5046</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덕호&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히브리서 1:1-3 &amp;ldquo;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히브리서 1:13 &amp;ldquo;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히브리서 8:1 &amp;ldquo;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히브리서 10:12-14 &amp;ldquo;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히브리서 12:1-2 &amp;ldquo;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특히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사실을 통해서 그 사실을 가지고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를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히브리서 1장으로 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을 증거하는 말씀 가운데 특히 히브리서를 전체를 생각을 해보면 아무래도 양이 많기 때문에 히브리서 전체 내용을 이렇게 한 번에 파악하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힘듭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다만 히브리서 내용을 살펴보게 되면 분명히 히브리서는 어떤 사람들을 경계하고 경고하고 하지 말기를 권하고 있는 내용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하지 말도록 하는 그 내용은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구약에 대한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곳으로 가지 않도록 또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말씀해 주시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아마 크게 이유가 두 가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극심한 환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히브리서 뒤에 나오는 대로 이 당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유대인들의 아주 극심한 환란과 핍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육신의 유혹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래서 이것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경고하면서 율법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갈 것인가를 이제 히브리서 전체를 통해서 말씀을 하시는데 그 시작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시면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히브리서 전체를 생각해 보면 자주 등장하는 방법은 두 가지를 비교하는 것 같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첫 번째 말씀하시는 하나는 만약에 A라고 한다면 두 번째 A와 대비되는 B라고 하지 않고 제가 A+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A를 말씀하시면서 그 A가 증거하고 있는 A+를 말하고 또 두 번째는 그 두 가지를 비교하면서 뒤에 나오는 A+가 앞에 말한 A보다 훨씬 뛰어나고 훨씬 크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이 히브리서 전체의 하나의 말씀 내용이 아닌가 생각이 되어집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대표적으로 히브리서 1:1절에 보면 A에 해당되는 첫 번째 내용은 1:1절에 옛적의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그래서 첫 번째 언급하고 있는 것은 옛적에 아마도 구약 성경을 가리킬 것으로 보입니다만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것을 A라고 한다면 이것과 비교되는 것이 2절에 나와 있는 대로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A+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4절부터 이어서 나오는 내용을 보면 비교하는 첫 번째는 천사입니다. 마치 A에 해당되는 천사에 대한 말씀과 그 다음에 천사를 하나님의 아들과 에이 플러스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비교를 시키면서 그런데 특이한 것은 A가 A+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A가 이 A+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빛의 어떤 물체를 딱 쏘면 그림자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면 그 그림자가 마치 처음에 말씀하신 A에 해당되고 그 본체가 여기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A가 A+를 증거할 뿐만 아니라 또 두 번째 사용하는 방법은 그 A보다 A+에 해당되는 이 하나님의 아들이 얼마나 더 뛰어난가 얼마나 더 높으신 분인가 이 두 가지 방법이 자주 사용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일단 13절로 가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내용 가운데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3절에서 여기에 인용하신 말씀은 구약 성경 시편 110:1절입니다. 일단 구약 성경 시편 110:1절로 가서 말씀을 확인하고 좀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구약성경 시편 110:1절 &amp;ldquo;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원수로 내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amp;rdquo;.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히브리서 1장으로 돌아와서 뭔가 차이점을 발견하셨습니까? 히브리서 1:13절에는 시편 110:1절에 맨 처음에 말씀하신 부분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amp;ldquo;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amp;rdquo;이라는 부분을 생략하고, 히브리서 1:13절에서는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인 &amp;ldquo;내가 내 원수로 내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amp;rdquo;라는 말씀만 인용하시고 이 말씀이 13절 처음에 나온 대로 천사 중 누구에게도 말씀하신 적이 없고, 이 말씀이 가리키는 바는 앞에 1장 앞부분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에 관해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이 말씀을 증거했다고 가리킨다고 하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amp;ldquo;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리라&amp;rdquo;고 하는 시편 110편 앞부분의 내용은 사실은 복음서에서 여러 번 등장하게 됩니다. 한번 말씀을 찾아보면 마태복음 22:41절입니다. 똑같이 시편 110편의 말씀이 인용이 되는데, 마태복음 22:41-46절까지의 내용이 기록이 돼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또는 예수님께 나아와서 질문을 던졌고 그들에게 오히려 예수님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 질문의 내용이 42절입니다. &amp;ldquo;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다. 43절 &amp;ldquo;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내 원수를 내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 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다윗의 자손이 그리스도가 메시아가 누구의 자손으로 오느냐 하니까 바리새인들이 잘 대답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러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시편 101편의 말씀을 인용하셔서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이 말은 바로 시편 110편에 있는 요 말이 다윗이 성령의 감동에서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한 말이라는 것을 주님께서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시편 110편에 나오는 주께서 구약의 시편 11편에서는 뭐라고 기록돼 있는지 기억하십니까? 여호와께서였습니다. 주께서 구약에서는 여호와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이 말은 다윗이 하는 말임을 알 수가 있고, 다윗이 말하기를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이 주라고 부르는 내 주라고 부르는 그분에게 여호와께서 이르신다는 것이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내가 내 원수를 내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45절에 바리새인들한테 한 질문은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음, 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무슨 말이냐면 분명히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고 바리새인들이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자기 뒤에 자기의 자손으로 올 한 누군가를 향해서 여호와라고 하는 하나님에게만 붙일 수 있는 그 주라고 하는 명칭을 자기의 자손으로 올 그 누군가에게 내 주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윗이 자기의 자손으로 올 언젠가 모를 그 후손으로 올 누군가를 향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붙일 수 있는 그 주라고 하는 호칭을 다윗이 내 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겠느냐 하니까 46절에 바리새인들의 반응은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라고 반응이 나왔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리고 또 마가복음 12:35-37절까지 이 상황이 똑같이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amp;ldquo;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세 대답하여 가로사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니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내 원수를 내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 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똑같은 상황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똑같이 어떻게 다윗이 자기 자손으로 올 그리스도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할 수 있는 그 주라고 불렀느냐라고 했을 때 반응은 37절 마지막에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 이 자리에 많은 분들이 &amp;ldquo;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amp;rdquo;라고 하는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말한 고백에 대해서 아마 즐거움을 가지시고 듣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리고 사도행전 2:34절로 가겠습니다. &amp;ldquo;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신이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원수로 내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쓰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 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령의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amp;rdquo;. 똑같이 성령이 강림하신 이후에 베드로 사도가 복음을 증거하는 내용은 똑같이 시편 10:1절 말씀을 인용해서 바로 시편 110편에 나와 있는 다윗이 내 주라고 부른 그분이 36절에 나와 있는 대로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그분이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때 이 시편 110편의 말씀을 인용한 이 증거를 받은 사람들의 반응이 37절에 나와 있습니다. &amp;ldquo;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amp;rdquo; 오늘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시편 110편에 가리키고 있는 여호와께서 내주께라고 하는 그 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그분이 그 말씀하신 성경 그대로 지금 이 시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마가복음에서처럼 이 사실을 들으시고, 그리고 혹시 아직 이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믿지 못하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사도행전처럼 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받으시고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를 그러면 마가복음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받을 때마다 즐겁게 들으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다시 히브리서로 돌아와서 히브리서 1장에 생략되어 있는 여호와께서 내 주께라고 하는 부분을 일단 해결된 것으로 보고 그다음에 나와 있는 히브리서 1:13절로 가면 &amp;ldquo;내가 내 원수로 내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amp;rdquo;라고 하는 이 증거가 히브리서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특히 히브리서 1:2-3절까지 나와 있는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말씀을 드렸고, 이 사실을 통해서 특히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 가운데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과 관련돼서 히브리서의 내용을 통해서 인도받고자 합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히브리서 8:1절에 보면 &amp;ldquo;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amp;rdquo; 해서 이 8:1절 앞에까지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사실과 연관지어서 생각을 해보면 8:1절 앞까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은 바로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앞으로 조금 가서 7:26절도 보겠습니다. &amp;ldquo;이러한 대제사장을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amp;rdquo;. 이 8:1절 앞부분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과 관련해서 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니 바로 그분이 대제사장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뜻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라고 할 때 8:1절 앞에까지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증거가 됩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이라고 할 때 하나는 아론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까 처음에 히브리서를 말씀드릴 때 A하고 A+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비교를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이라고 한다면 A+에 해당되고 A에 해당되는 것은 아론입니다. 그리고 그 아론이 대제사장으로서 나타내는 의미는 앞으로 가서 히브리서 2:14절 말씀부터 읽겠습니다. 아론을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아론의 대제사장 되심을 A라고 한다면 그 의미는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amp;nbsp; 히브리서 2:14-18절입니다. &amp;ldquo;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amp;rdquo;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 종살이할 때 그 가운데 함께 종살이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노예 살이를 하던 그 아론을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이라고 할 때, 특히 아론이 증거하는 대제사장이라고 할 때는 바로 14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우리와 같은 혈육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그것도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자들을 놓아주려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희들과 같은 인자로 오신 것은 이 대제사장 직분과 관련이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아론을, 그것도 애굽 땅에서 함께 노예였던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자로 오셔서 우리와 같은 이 모든 사람들은 똑같이 혈육을 함께 지니셨고, 그 의미는 17절에 나와 있는 대로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 그리고 18절에 나오는 대로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던, 즉 주님께서도 저희들과 똑같은 이 몸을 가지시고 사탄으로부터도 시험을 받으셨고 세상으로부터도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분이 8:1절에 나와 있는 대로 이러한 대제사장,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대제사장이 그리고 대제사장과 관련돼서 두 번째 증거하고 있는 내용은 5:6절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amp;ldquo;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내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amp;rdquo;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이라고 할 때 하나는 아론이 대제사장이 증거하는 부분이 있다면 두 번째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멜기세덱에 대해서는 저도 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결론만 찾는다면 히브리서 6:20절입니다.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이 의미가 가리키는 바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 히브리서 6:20절입니다. &amp;ldquo;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amp;rdquo;.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대제사장이시다. 그것도 멜기세덱이 증거하고 있는 멜기세에게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다라고 할 때 그 의미는 히브리서 6:20절에 나오는 대로 영원히 대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왜냐하면 7장 전체에 나와 있는 것처럼 히브리서 7:24절입니다.&amp;rdquo;예수님은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amp;rdquo;.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이 증거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7:25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래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왜냐하면 항상 살아계시기 때문에 바로 이러한 대제사장이 8:1절의 말씀처럼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리고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그래서 히브리서 8:1절 앞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신데, 아론이 증거하는 것처럼 우리를 위해서 이 효력을 가지시고, 그리고 사망에 매어 종 노릇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대제사장 그리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 증거하는 의미대로 그분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8장 이후부터는 8:1절 중반 부분에 보면 여기에 강조점이 있다고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그게 뭐냐 하면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래서 8:1절 앞에까지는 이러한 대제사장이 어떤 대제사장이냐를 말씀하셨다면 8:1절부터는 이 대제사장이 지금 어디에 계시냐 하늘의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대제사장이 어떠한 대제사장이셨냐 한다면 이제부터는 8:1절부터는 이 대제사장이 지금 어디에 계시고 어디에서 일하고 계시는가 하는 내용을 가리키는 걸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1-2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amp;ldquo;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지금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이 하늘은 지금 저희들이 바라보고 있는 이 대기권인 하늘도 아니고 그 위에 우주의 하늘도 아니고 여기에 나와 있는 것처럼 주께서 베푸신 나중에 가게 되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하늘이라고도 표현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신 그 하늘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래서 8:1절부터 나오는 내용들은 이분이 지금 하늘에서 섬기십니다. 그리고 그 하늘의 성소가 어떤 성소인지, 그리고 하늘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가 8장, 9장의 말씀이 되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히브리서 9:24절 말씀도 한 번 더 읽겠습니다. &amp;ldquo;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amp;rdquo; 조금 전 8:1절에 말씀드린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늘에서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런데 그 하늘은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그림자적인 손으로 만든 성소, 즉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 만든 그리고 구약에 속한 그 성소가 아니라 &amp;ldquo;하늘에 있는&amp;rdquo;에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그냥 하늘도 아니라 참 하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참 하늘에는 누가 계시냐면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8:1절부터는 이 대제사장이 지금 일하고 계시는 그것도 참 하늘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리고 이번에 다시 히브리서 10:12절로 가서 &amp;ldquo;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amp;rdquo;, 여기에 또 한 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내용이 뭐냐 하면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고, 8:1절 이후부터는 그분이 하늘에서 일하고 계신다라는 것을 말씀을 드렸다면, 10:12절에는 그분이 드린 제사가 무엇인지 그분이 드린 제물이 무엇인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으로 증거하고 있는 13-14절입니다. &amp;ldquo;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신데, 처음에는 아론을 증거하는 또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 증거하시는 대로 그분은 우리와 같은 효력을 가지셨고 우리를 위해서 그 일을 하셨고 그다음에 영원히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지금 대제사장으로서 일을 하고 계시는 곳은 8:1절 이후에 나와 있는 대로 하늘입니다. 그것도 하나님 앞에서 참 하늘에서, 그리고 히브리서 10:12절에 나오는 대로 그분이 드리신 제사는 그분이 섬기며 드리신 제물로 12절에 나와 있는 대로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래서 이 결과 히브리서 10:17-19절에 나와 있는 대로 &amp;ldquo;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 사실을 믿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은 사람에게는 이 주님의 약속이 &amp;ldquo;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amp;rdquo; 한 약속이 그 사람들에게 이미 이루어졌고, 18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amp;ldquo;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다&amp;rdquo;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9절에 나와 있는 대로, &amp;ldquo;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amp;rdquo; 여기서 말씀하시는 성소가 어떤 성소인지 아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땅에 있는 성소도 아니고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소가 아니라 우리의 대제사장이 지금 계신 하늘에 있는 참 하늘에 있는 그 성소입니다. 아직은 우리가 눈으로 그 성소가 보이지 않지만 이 말씀처럼 이미 우리의 대제사장은 그곳에 가 계시고 그곳에서 저희를 위하여 섬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 말씀을 힘입어서 항상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 있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20절 말씀입니다. &amp;ldquo;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amp;rdquo;. 주님께서 육체로 이 땅에 계실 때 어떻게 됐는지 아마 다 아실 것입니다. 이미 십자가 위에서 그 몸을 온전히 들으셨습니다. 21절입니다. &amp;ldquo;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amp;rdquo;.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하늘에 그리고 영원한 제사를 드린 대제사장, 그리고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 그리고 또 영원한 대제사장이 지금 그곳에 계십니다. 그래서 22절에 나와 있는 대로 &amp;ldquo;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래서 구약의 그 수많은 증거들, 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 수많은 구약에 나와 있는 제사와 제물, 이 모든 것들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다 성취하셨다는 것입니다.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 중에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을 또 저희들에게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것은 히브리서 12:2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과 관련해서 또 증거하고 있는 부분이 12:2절입니다. &amp;ldquo;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자.&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 예수님을 바라보면 이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어디 계신가를 떠올리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에서는 &amp;ldquo;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amp;rdquo;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을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서는 세 번째로 마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상과 같이 언급하셨습니다. 가만히 보면 &amp;ldquo;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을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는&amp;rdquo;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것으로 증거하고 그 일에 대한 결과 또는 그 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참으시고 그 십자가를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일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 편에서의 보상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처럼 그 보답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처럼 말씀하고 계십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왜 이렇게 표현을 했는가 생각하면 바로 히브리서 12:1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하게 믿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겪는 환란과 핍박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이 땅에서 겪는 핍박과 환란, 그것도 히브리서 12:1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로 가득 물려 있는 사람들이 인내로서 그 경주를 경주함에 있어서 무엇을 생각하고 그 경주를 해야 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참으시고 그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조금도 개의치 아니하셨더니,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처럼, 그것처럼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참는 사람들이 3절에 나와 있습니다. 3절처럼 &amp;ldquo;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amp;rdquo;.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그 생각함으로 인해서 이 땅에서 겪는 경주를 경주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조금도 개의치 아니하시고 십자가를 참으시고 그에 따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주님을 바라보게 되면 그러면 이 땅에서 저희들이 겪는 환란과 핍박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도 저희들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 올리셔서 하나님 보좌에 앉히신 것처럼, 이 땅에 핍박과 환란 받는 성도들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또 높이실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히브리서 전체로 본다면 첫 번째 그분이 대제사장이신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신 것과 관련이 있는데, 이 대제사장이심은 첫 번째는 아론이 증거하는 대로 우리와 같은 그리고 혈육에 함께 속하셔서 우리를 능히 도우시는 대제사장을 떠올리게 하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 증거하는 우리 주님의 대제사장이심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분이 하늘에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심을 증거하는 대로 이 우리의 대제사장은 지금 하늘에 섬기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드리는 모든 예배, 저희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찬송, 저희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모든 증거가 저희들이 지금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저희들이 주의 이름으로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대제사장이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저희들의 그 증거와 저희들의 그 예배와 저희들의 그 기도는 하늘에 도달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 위엄의 보좌에 도달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앞에 우리의 대제사장이 계시기 때문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뿐만 아니라 이 대제사장은 이미 영원한 제사를 이미 드리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무언가 또 제사를 드려야 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제사장이 그것도 하늘에 하나님 아버지를 영원히 만족케 하는 제사를 그것도 영원한 제사를 이미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에게 남은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2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라고 하는 사실 저희들에게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십자가를 참으셨고 그 부끄러움을 조금도 개의치 아니하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좌 우편에 앉히신 것처럼, 이 땅에서 환란과 핍박과 유혹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함으로 참으면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신 것처럼 그 성도들에게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분명히 보상을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을 증거하는 바와 관련이 있다고 보여집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다시 히브리서 1장으로 돌아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라고 하는 사실이 여러 가지를 히브리서에서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또 처음에 말씀드린 복음서에서처럼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이 내 주라고 표현했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할 수 있는 호칭을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주라고 했고, 또 여기 계신 분들과 저도 그 예수 그리스도를 지금 이 시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저희도 주라고 믿고 시인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 주님에 관해서 생각하게 될 때 몇 가지를 조금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생각하게 될 때도 굉장한 복이 되고 여기에 나와 있는 대로 많은 감사가 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장에서는 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에 굉장히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선 하신 일들도 말하지만 이분이 누구인가 특히 히브리서 1장에 다시 오게 되면 이 히브리서 기자는 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1:2절부터 나와 있는 이 아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읽을 때마다 이 히브리서 편지를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고 있는 분의 마음속에도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으로 가득 찼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더 말하고 싶어 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아들이 어떠한 분인지를 더 풍성하게 말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있지 않는가 생각이 들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리고 심지어는 천사와 비교할 때도 1장 전체에 나와 있는 천사와 비교할 때도 천사가 물론 사람들의 구약의 성경을 보면 굉장히 뛰어나고 놀랍지만 히브리서 1장을 보면 그 천사와 비교할 때 이 히브리서 1장의 내용을 보면 마치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즉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천사 중에 누구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느냐 다른 말로 말하면 아무리 천사가 구약 성경에 뛰어나도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들이 훨씬 뛰어나다고 하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될 때 그분이 어떤 분인가 한 가지 요한복음으로 가셔서 또 이 말씀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요한복음 4장으로 가면 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생각할 때 많이 또 풍성하게 증거하고 있는 말씀이 요한복음이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특히 요한복음 4:10절입니다. &amp;ldquo;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내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amp;rdquo; 이 두 가지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내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입니다. 지금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누구인 줄 알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리고 또 요한복음 8:24-25절입니다. &amp;ldquo;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저희가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amp;rdquo;. 또 밑으로 내려가셔서 28절에 &amp;ldquo;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24절에 보면 개역성경(? 영어성경)에 조금 특이한 표현이 있습니다. 중간에 보면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그런데 이제 그라고 하는 글자가 아마 작게(기울임체) 써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28절에도 너희는 인자를 둔 후에 내가 그 할 때 꼭 그도 아마 작은(기울임체) 글씨로 쓰여져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우리 개역성경에는 표시가 없음,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lt;i&gt;he&lt;/i&gt;[기울임체는 설명을 보충하기 위해 첨가한 것]로 표기하고 있음-역자 주).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 말씀을 생각을 해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이게 아마 원어 성격이든지 또는 영어 성격의 표현이 우리 말로 이렇게 번역하기가 쉽지 않아서 이렇게 표현을 한 것 같습니다. 조금 설명을 한다면 24절에 보면 너희가 만일 내가 예수 그리스도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지 그러니까 오전 시간에도 그런 비슷한 말씀이 나왔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어떤 분인지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이게 아마 우리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어려워서 작은 글씨로 그라고 쓰였던 것 같습니다. 즉 내가 어떠어떠한 사람인 줄을 믿지 아니하면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왜냐하면 25절에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2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amp;ldquo;저희가 말하되 네가 누구냐?&amp;rdquo; 그러니까 주님께서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이라고 이렇게 말하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누구냐라고 물어본 것으로 볼 때 내가 그인 줄이라는 말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 줄을 알면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 주님의 답은 25절에 나와 있습니다. &amp;ldquo;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amp;rdquo;. 처음부터 말하신 분이 누구시겠습니까?&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만약에 창세기를 생각한다면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내가 그인 줄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 줄 또는 출애굽기 3장을 생각한다면 내가 스스로 있는 자 곧 여호와 그리고 다윗이 증거한 대로 그분이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가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지 아니하면 너희가 죄 가운데 죽으리라라는 말씀으로 읽혀집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또 &lt;a style=&quot;color: #000000;&quot;&gt;히브리서 &lt;/a&gt;9:35-37절입니다. 여기에서도 그 유명한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등장을 하는데, 이 사람들이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주님의 은혜를 입고 나서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듣고 35절에 보면 &amp;ldquo;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서 가라사대 내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로사되 내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amp;rdquo; 여기 보면 주님께서 이 사람에게 가셔서 주님을 나타내셨습니다. 또한 만나주셨습니다. 주님의 어떠하심이 이 사람에게는 굉장히 복이 됐을 것이며, 그리고 이 사람의 반응이 38절입니다. &amp;ldquo;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 지라&amp;rdquo;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지가 나타났을 때 그것도 주님께서 나타내 주셨을 때 여기에 예배가 있습니다. 여기에 경배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부분만 더 말씀을 드리고 마치겠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요한복음 18:4-6절입니다. &amp;ldquo;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려지는지라&amp;rdquo; 주님을 잡으러 온 자들이 주님을 향해서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답은 나다 이게 영어 표현하고 조금 차이가 좀 있습니다만 내로라 즉 그게 나다라고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게 나다라고 하신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이때 6절에 나와 있는 대로 이 사람들이 주님의 자신이 어떠함을 나타내셨을 때 이 사람들은 뒤로 물러가서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이렇게 강력한 힘으로 밀리면 뒤로 넘어지는 게 아니라 뒤로 밀려나긴 했는데 앞으로 엎드려졌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로라 주님 자신을 나타내신 곳에는 이와 같이 능력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주님을 거역하는 자들조차도 사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떠하심 앞에는 사실은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18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 주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 강력한 힘에 엎드려진 것보다는 날 때부터 소경된 자처럼 주님과 만나서 주님께로부터 그가 나다 주여 내가 주님을 알기를 원합니다 할 때 그게 나라고 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지를 증거를 받고 그분을 향해서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경배하는 그 요한복음의 모습이 훨씬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집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예전에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형제님들이 주님 자신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때 설명을 제가 듣기로는 주님 자신이라는 표현을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저는 듣고 그것을 그렇게 생각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떠하심 또는 주님 자신 그리고 그 주님이 하신 일 이 두 가지가 성경 전체에 풍성하게 있고 그리고 이 주님의 어떠하심을 저희들이 생각할 때 아까 요한복음에 나와 있는 것처럼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이 항상 이 주님을 묵상할 때마다 이 주님을 만날 때마다 주님을 생각할 때마다 그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처럼 주님에 대해서 그 주님의 어떠 하심으로 인하여 항상 경배와 예배가 끊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나머지 부분은 또 주님께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2026년 5월 5일 말씀집회-2&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amp;nbsp;&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말씀 안으로</category>
      <author>징검 다리</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onyang.tistory.com/5046</guid>
      <comments>https://onyang.tistory.com/5046#entry5046comment</comments>
      <pubDate>Tue, 12 May 2026 08:02:48 +0900</pubDate>
    </item>
    <item>
      <title>성도들 사이에 역사하시는 성령님</title>
      <link>https://onyang.tistory.com/5045</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다니엘 러지&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오후에는 신약 성경에서 특히 성도들 사이에 역사하는 성령님에 대해서 보고자 합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것에 대해서 먼저 보고자 합니다.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구원받은 모든 성도 속에 성령님이 영원히 내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고린도서 6:19절 &amp;ldquo;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바울이 여기서 너희라고 말할 때 육체적인 몸, 거룩한 성령님이 육체의 몸인 우리 속에 내주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몸은 성령님의 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다 몸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amp;ldquo;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 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요한복음 14장도 보겠습니다. 이 내주하는 것에 대한 또 다른 구절입니다. 시간이 되면 성도 속에 역사하는 성령님의 5가지를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가 믿는 사람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뿐 아니라 요한복음 14장에도 나오는 구절입니다. 제자들에게 다락방에서 말씀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16절에서 말씀하시기를 &amp;ldquo;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보혜사라는 것은 그 사람을 강하게 하고 그 사람을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성령님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해서 그 성도를 강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 뒤에 &amp;ldquo;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amp;rdquo; 또 성령님의 다른 이름은 진리의 영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amp;ldquo;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때는 성령님이 제자들 속에 계신 게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제는 오순절 날에 성령님의 제자들 속에 계신 게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제 조금 더 있다가 오순절에 대한 사건을 보겠습니다. 이 장에 또 하나 놀라운 구절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 내주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을 경험합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21절에서 &amp;ldquo;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amp;rdquo;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amp;ldquo;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amp;rdquo;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amp;ldquo;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amp;rdquo; 제자들이 이것을 이해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충분히 이해를 못했기 때문에 23절에 보충 설명을 하셨습니다. &amp;ldquo;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amp;rdquo; 거처를 함께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놀라운 약속을 하신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과 아버지, 하나님을 언급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amp;ldquo;우리가 저에게 와서&amp;rdquo;라는 이 표현을 기억하십니까? 이것은 장래가 아니고 하늘에서도 아니고 현재 이 땅에서 말입니다. 아버지와 주 예수님이 믿는 사람들의 몸에 거처를 삼으신다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의 성령님으로 가능합니다. 지금 예수님은 여기서 성령님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은 믿는 사람들 속을 거처로 삼습니다. 성령님이 거처로 삼는 그곳에 우리라고 하는 대명사가 말하듯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가 거처로 삼는 것입니다. 앞으로 찾을 말씀과 이 말씀에 복 주시기 바랍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성령님이 내주하시는 것에서 조금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실제적인 적용도 성경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오늘 특히 고린도전서 6장과 요한복음 14장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이 땅에 내려왔다는 것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그 인격 속에 하나님이 계신 것은 놀라운 일이고, 또한 사람 속에 있는 것도 놀라운 양쪽 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 땅에 오신 것도 놀랍지만 성령님이 우리 속에 내주하는 것은 더욱더 놀랍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예수님이 이 땅에 육체로 계실 때, 또한 그때보다 지금이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이 믿는 사람 속에 거처를 함께 한다는 것은 더욱더 놀라운 일입니다. 이 경륜에 있어서 참으로 특이한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성령님이 사람 속에 영원히 거주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영원히 내려왔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고린도전서 6장에서는 &amp;ldquo;너희 속에&amp;rdquo;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는 &amp;ldquo;너희에게 내주하시리라&amp;rdquo;고 말씀했습니다. 양쪽을 합쳐서 보면 성령님은 믿는 사람 속에 거처를 마련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가정집을 삼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성령님의 내주로 하나님과 좋고 기쁜 교제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은 특히 성령님이 내주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하나님의 거처를 형성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성령님의 내주를 고린도전서 6장에서 보면 거기는 특히 거룩함을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성이 우리 가운데 내주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내주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거룩을 요구합니다. 우리 속에 계신 그분이 거룩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도 거룩을 나타낼 책임을 요구받습니다. 따라서 &amp;ldquo;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 받은 성령님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amp;rdquo;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몸은 성령님의 전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우리 속에는 어떤 부정과 어떤 더러움도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처를 삼으셨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는 것과 우리의 삶이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놀랍게도 성령님이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것은 우리들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들을 강하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과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동시에 아주 무거운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성령님이 정말로 우리 속에 내주해 계신다면 우리는 성령님이 거룩한 것처럼 거룩해야 합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도 성령님의 내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사도행전으로 잠시 가서 하나를 찾아볼까요?&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사도행전 1장으로 가서 성령 침례에 대해서 잠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령 침례는 실제로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님이 강림할 때 일어났습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14장에서 성령님이 장래에 올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사도행전 2장에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까지는 제자들 속에 성령님이 영원히 내주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순절 날에 성령 침례 때 성령님이 주어진 것을 지금 보고자 합니다. 1:5절에서는 &amp;ldquo;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amp;rdquo; 이제 머지않아 예수님이 승천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amp;ldquo;몇 날이 못되어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아&amp;rdquo; 이 말씀이 성취되는 2:1절을 보십시오. &amp;ldquo;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amp;rdquo; 이 집에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는 상징입니다. 성령님이 이 집에 가득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집이 바로 성령님이 임한 그날 집이라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제자들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성령님이 임해서 집에 가득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성령님 침례에 대한 잘못을 생각을 잘못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침례라는 말을 갖기 때문에 침례는 물로 침례를 주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물로 침례를 받을 때 사람이 물 밑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침례 받는 사람을 침례에 사용되는 물질이 그 사람을 전부 감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침례의 의미입니다. 물 침례를 가지고 이해하자면 말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속에 내주할 뿐 아니라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날에는, 다른 말로 말하면 그 집에 성령님이 가득했기 때문에 제자들이 성령님 안에 있었습니다.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amp;ldquo;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amp;rdquo; 성령 침례는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고린도전서 12:13절을 보면 바울은 성령님 침례에 대한 가르침의 일환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읽으실 때 주의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한 성령님이라고 하는 단어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성령님을 수단으로 해서 침례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만약에 침례를 수단으로 한다면 성령 침례를 베푸는 자가 누굽니까? 예를 들어서 물로 침례를 베풀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침례를 받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에게 침례를 베푸는 사람이 있고 그 침례를 받는 자리에 있는 물질인 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성령 침례입니다. 첫 번째로 누가 침례를 받습니까? 물론 다락방에 있던 믿는 사람들이 침례를 받는 대상입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바울은 여기서 말하기를 &amp;ldquo;우리가 한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아&amp;rdquo; &amp;ldquo;우리가&amp;rdquo;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2장에 없었지만 우리가 받았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때 침례를 베풀 때 쓰였던 마치 물침례 물질 같은 물이 성령님이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이 침례를 베풀었습니까? 우리는 이미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이 성령 침례를 베푸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해서 하늘로 가셨습니다. 성령님으로 오셨습니다. 그 성령님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베푸셨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13절에 바울이 하는 말하는 바는 영어로 말하면 by라는 전치사를 썼는데 성령님이 침례 베푸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바울은 by를 안 쓰고 in이라고 썼습니다. 한국어 성경은 안 나오지만 한 성령님으로 할 때 영어로 말하면 by 와 in이 있는데 by가 아닌 in을 썼기 때문에 이 말은 성령님이 침례를 베푸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어로 말하면 이 시제는 과거입니다. 과거로 쓰여서 한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이미 과거형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 침례로 한 몸인 몸된 교회가 시작된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한 성령님으로 말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 성령님은 이 모든 사람을 한 몸으로 유기적으로 만듭니다. 또 다 한 성령님을 마시게 하셨느니라.&amp;nbsp; 성령님 안에 침례를 받을뿐아니라 또한 그 성령님을 음료처럼 마신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어떤 액체를 마시면 그 액체가 몸 안으로 들어갑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우리가 성령님 안에 있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하는 양쪽 다 진리입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오순절 날의 중요함을 아는 것은 대단히 유익합니다. 오순절날 성령 침례는 참으로 특이한 한 번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딱 한 번 일어난 특이한 일입니다. 성령 침례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하늘에서 이 땅에 강림하시는 것은 한 번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도 성령 침례를 베푼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한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현재도 성령 침례를 받는다고 합니다. 영적인 사람들이 그 성령 침례를 받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잘못됐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고린도에 있는 이 교회를 바울은 이 안에는 고린도 모임에는 육신적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amp;ldquo;우리가 다 한 성령님으로&amp;rdquo; 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영적인 사람이든 육신적인 사람이든 구분이 없어 그리고 성령 침례는 과거에 이미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amp;ldquo;다 한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amp;rdquo; 성령님이 강림해서 성령 침례가 이루어진 것은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날에 딱 한 번 있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구원받는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주님으로 믿는 순간에 여러분이 사도행전 2장에 일어난 그 몸된 교회 그대로 주 예수님이 더하시는 겁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하나님의 마음속에는 몸된 교회 전체가 사도행전 2장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일어난 그 일이 구원받는 순간에 구원받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이 됩니다. 이것이 언제 완성되는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까? 여기는 두 가지 중요한 게 있습니다. 첫 번째로 13절에 보면 한 몸이라고 말씀하는데 바울은 이 말을 할 때 사도행전 2장에서 일어난 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때 일어난 두 가지 큰 일이 있습니다. 새로운 단체가 형성이 됐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한 몸으로 전부 다 연결이 돼 있습니다. 여러분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유대인이 이방이든 관계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지체들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몸의 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 2장에 딱 한 번 일어난 일입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리스도인들이 한몸으로 연결돼 있을 뿐 아니라 그 연결된 몸은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이 몸이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설명하는 대단히 중요한 진리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스도는 부활한 몸의 머리이십니다. 이 땅에 있는 몸과 생명적으로 부활한 머리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그리스도인들은 한 몸에 같은 지체입니다. 서로 돌보고 사랑하는 관계인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것이 진리임을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특별히 로마서와 고린도전서의 이 진리를 바울은 말합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두 번째는 높아지신 머리와 모든 지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하늘에 있는 그분이 우리에 대한 주권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지시하십니다. 또한 우리들을 지지하고 우리들을 돕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 발견되는 진리입니다. 여기서 성령 침례를 그래도 앞으로 또 기다리겠습니까? 이것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구원받는 순간에 성령 침례에 동참이 됐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는 순간에 사도행전 2장에서 일어난 그 사건에 바로 연결이 됐습니다. 이 몸인 교회에 말이죠.&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성령님이 우리 속에 내주하시고 그리고 성령 침례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이것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신약 성경 전체가 이 진리를 설명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서신에서 비밀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비밀의 경륜이라고 말할 때 그 머리와 몸의 관계를 말할 때 그 말을 사용합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세 번째는 성령님의 인치심으로 에베소서 1:13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amp;ldquo;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amp;rdquo; 여기서 그리스어에서는 현재 시제로 썼습니다. 그 안에 그리고 믿을 때라고 하는 현재형을 썼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믿는 순간에 성령님의 인을 쳤다고 하는 시제를 현재형으로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인치심입니다. 14절에서는 성령은 또한 기업의 보증이기도 합니다. &amp;ldquo;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amp;rdquo; 내주하는 성령님을 받고 그리고 성령 침례를 받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약속의 성령님으로 인치심과 성령님의 보증을 보겠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믿는 순간에 성령님의 인치심을 모든 믿는 자들은 받았다고 말합니다. 인쳤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인치심은 소유권에 관한 표시입니다. 동물을 키우는 농장주들은 그 동물이 자기 것임을 알리기 위해서 그 동물에게 인을 칩니다. 어떤 마크 어떤 표시를 그 동물에게 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이 동물은 나에게 속했다는 표시로 말이지요. 구원받을 때 여러분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인치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소유권이라고 하는 주장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에게 속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이 성령님은 소유권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또한 보호한다고 하는 의미도 인 속에 들어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예수님이 무덤에 장사되었을 때 어떤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돌 무덤의 입구를 돌로 막고 인친 것을 기억하십니까? 예수님이 무덤에서 못 나오도록 거기에 안전 장치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니까? 바로 돌이 막혀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없도록 말이죠. 따라서 돌에 인봉했다는 말은 그 돌을 안전하게 지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우리는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아서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인침 받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전체 몸이 구속 받을 때까지 믿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결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믿는 사람은 영원히 안전하다고. 여러분이 만약에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은 영원히 잃어버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바로 내주하는 성령님이 또한 보증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인치심의 의미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14절에 기업의 보증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이 보증이란 말은 상업적인 용어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 사람에게 어떤 물건을 맡길 때 만약에 어떤 물건을 사는데 그 물건의 값이 너무 비싸고, 차라든가 이런 물건을 살 때 그 차값을 한 번에 다 지불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차를 사면서 일부 돈을 지불하고 그 보증을 받습니다. 마치 할부로 차를 사는 것처럼 처음에 지불하는 그 지불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보증입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복이 많습니다. 그 많은 것들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처음 마치 할부로 차를 살 때 처음 지불하는 그 돈은 앞으로 약속된 매달 돈을 지불한다는 약속인 것처럼, 하나님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들을 성령님을 주실 때 앞으로 나머지는 전부 지불하겠다는 그런 약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 보증으로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받을 모든 복들을 성령님을 주심으로 보증하신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런 것을 나타내는 구약의 좋은 예가 또 하나 있습니다. 광야 생활을 여러분들이 기억할 겁니다. 민수기 13장에서 12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습니다. 약속의 땅이 어떤지를 정탐들이 가서 보았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광야 장막진으로 돌아올 때에 그 땅이 어떠함을 보이는 어떤 물건들을 거기서 가져왔습니다. 그들이 갖고 온 것은 가나안 땅에 있는 전체에 비하면 아주 적은 양을 가져왔습니다. 거기서 가져온 물건이 양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가나안 땅이 좋지 않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포도 큰 송이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한 송이를 가져왔는데 큰 포도송이를 가져왔습니다. 혼자 못 들어서 사람들이 메고 왔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매고 말입니다. 사람들에게 이 정탐들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 약속된 땅이 얼마나 위대한 땅인지 보라. 이 한 송이의 큰 포도송이를 보라. 그 큰 포도송이는 가나안 땅이 어떠함을 증명하는 보증이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하나님이 우리에게 장래 믿는 자들이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나타내기 위해서 우리 속에 성령님으로 보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얼 주시겠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인격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것보다 더 큰 것을 주실 게 있겠습니까? 우리 속에 하나님의 인격이 들어왔습니다. 앞으로 올 영광에 관한 보증으로 말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마지막으로 로마서 8장을 보겠습니다. 내주하는 성령님을 받고 성령 침례를 받았습니다. 성령님의 인치심과 성령님의 보증도 보았습니다. 성령님이 중보하는 것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8:26절을 보겠습니다. &amp;ldquo;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amp;rdquo;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여기서 말하는 탄식은 그리스어로 읽으면 성령님의 탄식이 아닙니다. 이 탄식은 우리의 탄식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믿는 사람들의 삶 속에 탄식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탄식을 알기 때문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27절에서는 &amp;ldquo;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중보 또는 간구가 뭔지를 잠시 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은 탄식에 관한 장이기도 합니다. 22절에 보면 피조물이 탄식합니다. 23절에는 우리도 탄식을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 내주해 계시지만 성령님은 새로운 생명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옛 창조에 속한 요소를 우리가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아담에게 속한 육체에 관한 영향을 받는 요소를 우리가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성령님은 새 창조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은 새 창조에 속했지만, 우리의 육은 아직도 옛 창조에 속해 있습니다. 왜 우리가 건강하지 않고 병이 드는가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왜 우리가 고통하고 어려움을 당하는지 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제가 있는 영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암이 걸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은 아직도 첫 창조에 속한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때때로 탄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함께 몇 줄을 읽어보겠습니다. &amp;ldquo;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amp;rdquo; 어느 한 날 예수님이 공중에 오시는 그날에 또는 우리가 부활하는 날에 첫 창조에 속했던 우리의 몸은 그 순간에 모두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몸과 함께 결합이 될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그때는 탄식이 더 이상 거기는 암이 없을 겁니다. 이제 병도 없고 죽음도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도 탄식을 합니다. 그리고 계속 탄식하면서 늙어갑니다. 피조물도 탄식하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종 된 피조물들에게 순종하는 피조물들이 탄식을 하고 다른 말로 말하면 이 세상에 죄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탄식하는 것을 종종 경험할 것입니다. 땅도 탄식하는 걸 볼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진이라든가 화산 같은 것들도 그와 연관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죄의 영향으로 피조물도 탄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피조물도 탄식하고 구원받은 우리도 탄식하고 우리들은 때때로 위로를 받지만 피조물들은 위로를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믿는 사람들은 성령님이 내주하기 때문에 탄식 중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26절에서 바울이 말하는 바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amp;ldquo;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amp;rdquo; 우리의 몸이 첫 창조에 속해 있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첫 창조에 속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고난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너무 첫 창조에 속한 영향이 커서 감당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만큼 영향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 믿는 사람일지라도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기보다는 탄식만 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성령님이 무엇을 합니까? 우리의 탄식을 돌봅니다. 우리가 탄식하는 요소가 너무 많아서 무얼 기도해야 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이때 성령님이 우리의 탄식을 하나님 앞에 간구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돕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울뿐아니라 직접 간구를 하시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성령님이 친히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탄식하고 있을 때, 성령님은 하나님 앞에 우리의 탄식을 친히 간구하신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성령님의 일입니까?&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28절을 봐주십시오. &amp;ldquo;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amp;rdquo;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말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리스도인들이라도 탄식할 일들이 많은 것을 조금 전에 말씀드렸습니다. 왜 하나님이 믿는 사람인데도 이런 많은 고난을 허락하시는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과거에 많은 탄식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을 닮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셨습니다. 따라서 28절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모든 일어나는 일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서로 합력하도록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모든 환경 요소들을 아우를 수 있는 힘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기뻐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고통스러운 환경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믿는 사람 삶 속에서 합력시키는 힘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합력을 시키되 선을 위해서 말이죠. 선이 나타나는 결과가 무엇입니까?&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2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amp;ldquo;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우리가 삶에서 통과하는 모든 환경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환경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큰 어려움을 당했다 할지라도 누구보다도 큰 환란을 당한 사람은 욥이었습니다. 욥은 그 환란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이 욥 속에서 형성이 됐습니다. 하늘이 맑고 해가 밝은 날에, 어떤 경우는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력과 지혜로 이것을 합력시킬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여러분의 삶에서 모든 환경을 합력을 시켜서 선을 이루는 지혜를 하나님이 갖고 계십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여러분이 예수님을 닮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 보시겠습니까? 어떤 융단에다가 수를 넣는다고 한번 생각해 봅시다. 어떤 경우는 금색실을 가지고 수를 넣고 어떤 경우에는 초록색 또는 청색 실로 수놓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중간중간에 검은 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그림을 가까이 볼 때는 아름답게 안 보이지만 멀리 떨어져 보면 그 수를 놓은 그림이 전체가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그림이 되는 것을 알 수 있고 전체 그림은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와 같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따라서 이런 면에서 볼 때 우리는 흰색이나 검은색이나 주님 앞에서 경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아름답게 안 보일지 모르지만은 그림 전체가 완성될 때는 아름답게 보일 것입니다. 그 목적은 아들의 형상을 닮는 겁니다. 하나님이 하시기를 원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사랑하는 독생자 같은 사람이 하늘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닮은 아들들이 될 때 하늘에 독생자를 닮은 수많은 아들들이 가득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이 말씀을 통해 나타난 성령님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또한 성령님을 근심케 말고 성령님을 소멸치 말라는 말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우리는 성령님의 열매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주님이 복 주시기 바랍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고맙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2026년 5월 5일 말씀6&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주옥같은 말씀들/다니엘 럿지</category>
      <author>징검 다리</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onyang.tistory.com/5045</guid>
      <comments>https://onyang.tistory.com/5045#entry5045comment</comments>
      <pubDate>Sat, 9 May 2026 11:15:12 +0900</pubDate>
    </item>
    <item>
      <title>구약에서 성령님</title>
      <link>https://onyang.tistory.com/5044</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다니엘 러지&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하나님 말씀을 위해서 많이 모이신 것을 감사합니다. 토요일 말씀에서 신약성경 두 권에 관한 개관을 말씀드렸습니다. 골로새서에 나타나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집에 대해서 디모데전서에서 말씀을 봤습니다. 오늘 2시간에 걸쳐서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구약성경 가운데 있는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서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그리스도인 안에서 성령님의 역사를 보겠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창세기 1:1절에 &amp;ldquo;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amp;rdquo;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여러분은 이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복수인 것을 아실 것입니다. 단수가 아니고 복수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두 개도 아닙니다. 뿌리에서 복수는 쌍수가 있고 쌍수 이상의 복수가 있는데 이 복수는 쌍수가 아니라 셋 이상을 가리키는 복수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삼위일체를 하나님이 1:1절에서 계시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하나님인데 세 인격이 있음을 1:1절에서 표시합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삼위 중에 최초로 소개되는 위가 성령님입니다. 따라서 2절에서는 &amp;ldquo;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amp;rdquo;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사무엘상 16:13절에는 사무엘이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붓는 장면입니다. &amp;ldquo;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여기에 하나님의 신인 성령님이 개인에게 임했습니다. 다윗에게 왕이 할 수 있는 힘을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라마를 떠나가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14절에는 &amp;ldquo;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amp;rdquo;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에게는 성령님이 임했고 사울에게는 성령님이 떠났습니다. &amp;ldquo;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amp;rdquo;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사무엘하 23:1절입니다. &amp;ldquo;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amp;rdquo; 다윗은 이스라엘 가운데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절에서 말하기를 &amp;ldquo;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amp;rdquo;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구약성경 가운데 대단히 중요한 구절입니다. 구약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성령님의 감동에 대한 말을 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다윗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윗의 혀에 있었습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밧세바와의 범죄를 회개한 시편입니다. 자기에게 성령님이 떠나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서 성령님이 떠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울에게 성령님이 떠났습니다. 이 성령님이 다윗에게 임해서 왕으로서의 힘을 제공했습니다. 이제 다윗이 죄를 범했습니다. 성령님이 자기에게 떠나갈 것을 걱정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따라서 11절에서 &amp;ldquo;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다윗은 사울과 다른 품성을 가졌습니다. 다윗은 회개하고 죄를 고백하기를 원했습니다. 따라서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키는 조건이 됐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우리가 믿는 자로서 죄를 범하면 우리는 그 죄를 자백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교회 시대는 성령님이 믿는 자들에게서 영원히 떠나지 않습니다. 구약에서는 성령님이 사람에게 임했다가, 그리고 그 사람으로부터 떠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은혜 경륜인 신약 교회 시대에는 성령님이 영원히 떠나지 않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성령님이 영원히 내주하십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로부터 영원히 떠나지를 않습니다. 영원히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성령님을 근심케 할 수 있고 성령님을 걱정케 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의 죄를 고백해야 되는가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영원히 안 떠나기 때문에 반드시 자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신약성경 한 곳을 찾겠습니다. 베드로후서 1:21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감동에 대한 또 하나의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감동됐다고 하는 또 한 구절입니다. 베드로는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에 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amp;ldquo;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오&amp;rdquo; 성경은 사람들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직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성령님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 것입니다. 나중에 이것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방금 읽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제 성경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고 기초적인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령님의 인격됨과 그리고 능력에 대해서 또한 성령님의 그 품성에 대해서 그리고 삼위일체에 대해서, 아주 단순하지만 성령님이 인격인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구약성경에서 성령님이 하는 역사의 중요성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후에는 믿는 자들에게 임한 신약에서의 성령님의 역사의 중요성을 말씀드리겠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첫 번째 성령님의 신성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성령님은 신성의 인격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하나님이라 부릅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 말하기를 아나니아와 삽비라에 관한 기록입니다마는 왜 성령님에게 거짓말을 했느냐고 베드르는 말합니다.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오 하나님에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성령님에게 거짓말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거짓말하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리고 예수님은 다락방 가르침에서 성령님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다른 보혜사(위로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첫 번째 보혜사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다른 보혜사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같은 질의 보혜사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보혜사로서 주 예수님과 똑같은 질을 가진 보혜사입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성령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님은 신성의 인격입니다. 이 하나님에게 있는 모든 신성이 성령님 안에 보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신성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전지하십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스가랴 4장에서는 성령님을 말할 때 &amp;ldquo;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신으로 된다&amp;rdquo;고 할 때 이 신은 성령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님은 전능하십니다. 또한 성령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이사야 40장이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amp;ldquo;누가 성령님과 같으냐&amp;rdquo;고 말합니다. &amp;ldquo;누가 하나님의 영을 가르치느냐&amp;rdquo;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성령님을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전지하시기 때문에 따라서 성령님은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십니다. 히브리서 9장에서는 영원한 성령님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성령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시편 139편에 의하면 &amp;ldquo;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amp;rdquo; 해답은 하나님 앞에 도망갈 수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무소부재하기 때문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오늘날 이 성령님이 믿는 사람 모두 속에 내 죄에 계십니다. 전 세계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 속에 성령님이 내주해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내주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령님은 신성의 인격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신성을 가진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이 성령님은 신성을 가질 뿐 아니라 이 성령님은 인격을 갖고 있다는 것도 말씀드립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어떤 사람들은 성령님을 그저 하나의 영향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성령님을 표현한 용어 가운데 רוּחַ(7307, 루아흐)라고 하는 히브리어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다른 의미로는 바람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루아흐라는 의미 속에는 바람과 동의어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인격이 아니라 그냥 영향력이고 추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용어를 성령님을 표현하는 데 썼습니다. 이 용어를 쓰는 이유는 성령님이 눈에 보이지 않고 그 힘이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강한 바람처럼 강하기 때문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성경은 의심할 여지없이 인격으로 성령님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이 다락방에서 가르치실 때에 성령님을 언급하실 때에 이 성령님을 남성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amp;ldquo;그는 진리의 영이라&amp;rdquo;고 해서 대명사 가운데 남성 대명사를 써서 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amp;ldquo;그가 너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amp;rdquo;할 때 그가라고 하는 남성 대명사입니다. 나(주님) 자신에 대해서 그가 말씀하실 거라고 성령님을 남성 대명사로 지칭했습니다. 따라서 남성 대명사 인칭 대명사를 썼기 때문에 성령님은 인격입니다. 또한 성령님이 성경에서는 말씀하신다고 했기 때문에 따라서 성령님이 인격인 이유는 말씀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에서는 성령님이 명령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님은 근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격을 가진 존재만이 근심할 수 있습니다. 바람은 근심할 수 없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성령님이 인격임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첫 번째 성령님은 하나님입니다. 두 번째 성령님은 인격입니다. 세 번째 성령님은 삼위일체의 한 위입니다. 물론 이것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가르칩니다. 한 하나님이 세 인격으로 존재하며 세 인격 안에는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을 말이죠. 이 각각의 세 인격은 각각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을 삼위가 똑같이 갖고 있습니다. 삼위가 한 하나님의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단순하게 한번 말씀드려보겠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하나님은 하나님 되심에 있어서 하나입니다. 그가 그이면서도 하나님은 삼위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이해하게 되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다소 덜할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은 하나인데 인격에서는 삼위라는 겁니다. 구약성경에서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분명했던 것이 구약에서는 분명하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창세기 1:1절에 &amp;ldquo;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amp;rdquo; 이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복수입니다. 여기에는 삼위일체에 관한 또 한 부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러나 이사야 42장으로 가면 여기는 창세기 1장에 비해서 삼위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2:1절에 따르면 &amp;ldquo;내가 붙드는 나의 종&amp;rdquo; 이사야에 나오는 나의 종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독생자를 향해서 나의 종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인데 말이죠. 중간에 &amp;ldquo;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amp;rdquo;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 한 절 안에 하나님 아버지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이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삼위로 나타나 있지만 신약처럼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구약성경의 강조는 삼위가 하나임을 강조하기 때문에 신약보다는 덜 명확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에는 우상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거기에 대비해서 하나님이 하나인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삼위가 신약보다 덜 명확합니다. 따라서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이 강조되어 가르칩니다. 하나님만 경배하라고 말이죠.&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러나 신약으로 내려오면 삼위는 명확해집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내려오셨기 때문에 신약에는 삼위가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이 땅에 구주로 내려보낸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아드님이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때 오순절 날 아드님이 보낸 성령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신약에는 구약보다 훨씬 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을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 마지막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 세계에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명하실 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할 때 아들의 이름이 단수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삼위의 한 분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성령님과 아드님과 아버지는 각각 역할 부분이 다른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가운데 아버지는 어떤 일을 계획하시는 것이 언급되는 것을 자주 보실 겁니다. 아드님은 아버지가 계획한 것을 실행하고 이루시는 것을 묘사한 것들을 많이 보실 겁니다. 아드님이 이루신 그 일에 대해서 아드님이 행한 그 일을 가지고 성령님은 그것을 힘이 나오도록 역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구원을 가지고 예를 들어 보면 구원을 계획하신 분은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에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가 세운 계획을 이 땅에서 이루는 수행자이며 이행자이셨습니다. 이 구원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일은 성령님이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요한복음 3장에서 주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amp;ldquo;사람이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amp;rdquo; 바로 우리들에게는 성령님으로 생명이 주어지고 성령님으로 죄용서가 주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역할이 다른 것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구약성경에서 성령님이 하는 역사를 지금부터 보겠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성령님이 창조에 관여하는 것이 2절에 나와 있습니다. &amp;ldquo;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amp;rdquo; 운행한다는 이 말은 마치 새가 날개짓을 하는 동사와 같은 의미의 동사입니다. 창조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힘을 역사한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어떤 형태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 공허하고 혼돈한 이 땅 위에 어떤 체제와 어떤 질서를 성령님이 만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허하고 혼돈한 땅에 아름다운 질서와 체제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에서 성령님이 하는 일입니다. 욥기 27장에서는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아름답게 만들었다고 욥이 말합니다. 바로 욥이 말한 그것이 창세기 1:2절에서 말하는 성령님이 하는 역사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들은 아름답고 질서가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이렇게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임에서 성령님의 역할을 말한 사도바울은 &amp;ldquo;모든 것을 질서대로 하라&amp;rdquo;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에서 하나님이 질서는 성령님의 역사이기 때문에 성령님이 있는 모임이라면 그 모임은 반드시 질서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이는 모임에 성령님이 임해 있다면 거기는 반드시 질서가 존재할 겁니다. 한국의 모임들에 와 보니까 성령님의 질서가 보이는 것을 보고 제가 대단히 기쁩니다. 이것이 바로 방금 말씀드린 창조에서의 성령님의 역사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또한 구약성경 가운데 성령님의 역사에 또 아름다운 한 면이 있습니다. 어떤 것들을 묘사해 내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구약에는 성령님의 역할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묘사와 그림들이 많이 있습니다. 창세기 24장 같은 경우에 성령님에 관한 아름다운 묘사가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창세기 24장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위해서 아내를 준비하는 과정이 나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종을 보냅니다.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종을 아브라함이 보내는 것입니다. 이름이 없는 종은 성령님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창세기 22장에서는 이삭이 모리아산에서 제단에 묶인 채로 올라간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그 모습은 십자가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23장에서는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가 죽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자가 죽는 것은 이스라엘이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하나님이 하시는 광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못 박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 역사 가운데 한 모퉁이로 치워졌습니다.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는 이방인 가운데 구원받은 사람을 하나님이 이끌어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 24장이 그림자로 나타내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따라서 창세기 22장, 23장, 24장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24장에서 이름 없는 종은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는 성령님을 나타내며, 이 이름 없는 종이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발견합니다. 거기다가 그 리브가에게 이름 없는 종이 선물을 줍니다. 보석과 그리고 은과 그리고 금을 줍니다. 이것은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의 재물을 가지고 리브가에게 늙은 종이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 리브가를 데리고 이삭을 만나러 인도해 가는 아브라함의 늙은 종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오늘날 성령님이 하는 일입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을 위해서, 사람들을, 복음으로 구원하신 아들을 위해서 신부로 인도를 합니다. 그 신부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하늘의 이삭을 얼굴로 보지 못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지금 현재 광야인 세상에서 성령님이 우리를 데리고 얼굴을 모르는 하늘의 이삭을 뵈러 우리는 가고 있는 중입니다. 마치 늙은 종이 리브가에게 보물을 주었던 것처럼 성령님이 우리에게 풍성하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받은 은사들은 하늘에서 누릴 것들에 대한 약간의 맛보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창세기 24장에 있는 이 그림이 성경에 대해서 아름다운 묘사가 아니겠습니까?&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또한 출애굽기에도 성령님의 아름다운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출애굽기 25장에 따르면 성막 안에 쓰이는 금촛대가 있습니다. 이 금촛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이 금촛대는 일곱 금잔을 갖고 있습니다. 기름을 담는 잔이기 때문에 기름은 성령님을 나타냅니다. 이 촛대는 7개의 금잔을 갖고 있는데 이 묘사를 보면 금잔들은 촛대 중심을 비추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 구조에서 생각하면 성령님은 주 예수님을 비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성령님의 인도로 말미암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도록 인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다락방에서 성령님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이유이기도 합니다. &amp;ldquo;그가 나를 증거할 것이요&amp;rdquo;라고 말씀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성령님의 첫 번째 일은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바로 금촛대 금잔이 금촛대 한가운데를 비추는 것이 아름다운 성령님의 기능의 모양이 아니겠습니까? 인간들로서는 예수님을 올바르게 증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면 구속이 되어야만 가능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나타내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기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베드로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즉시 말씀하시기를 &amp;ldquo;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라&amp;rdquo;고 말씀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만약에 참된 영적인 사람을 보려고 한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영적으로 어떤 수준인가를 알아보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안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삶 가운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알아보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님으로만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구약에서 성령님이 역사한 역사를 잠시 지금 보고 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창조에서 성령님 역사를 보았습니다. 또한 성령님이 앞으로 올 일에 관한 계시를 통하는 것도 이제 두 가지를 더 보겠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에 구약성경 가운데 있는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서 말이죠. 세 번째는 감동입니다. 사무엘하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감동에 대해서 다윗은 특별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많은 시편을 썼습니다. 성령님이 나를 도왔다고 말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사무엘하 23:2절에서 다윗이 말하기를 &amp;ldquo;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amp;rdquo; 성령님이 다윗에게 반드시 해야 될 말만 하게 하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동일한 것을 베드로가 말하는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베드로후서 1장 마지막 절에서 베드로는 말하기를 &amp;ldquo;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말했다&amp;rdquo;고 말했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이성적으로 추론하거나 결론을 이끌어낸 말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성령님을 통해서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특히 구약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에 대해서 베드로가 성령님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보자기에 뭔가를 쌓는데 그것을 펼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아서 하나님이 펼쳐준 것을 나타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질서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감동을 받아 펼쳐진 것을 말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예를 들면 제가 컵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것처럼, 이 컵을 제가 조심스럽게 질서 있게 이 탁자 위에 놓는 것처럼 성령님이 다윗을 인도해서 가게 하는 그곳으로 움직여가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이 인도받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해야 될 말을 하게 하는 데 성령님이 감동으로 이동했습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성경의 말씀은 그렇게 주어진 말씀,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온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 어휘 하나하나가 모두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성경에 대해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완전하게 오류가 없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베드로는 구약성경의 감동을 말했습니다. 다락방 가르침에서 주 예수님은 신약성경의 말씀에 감동을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따르면 이것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amp;ldquo;성령이 오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amp;rdquo;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날에 임할 성령님을 예수님이 거기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들에게 이 말씀하신 것은 무슨 뜻입니까? 즉 신약성경 모든 계시를 완성하는 인도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에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서신서를 갖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골로새서 같은 서신서들 말입니다. 이것은 전부 다 예수님이 가르친 그 이후에 인도받은 서신들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예수님은 다락방 가르침에서 또 한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amp;ldquo;내가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니&amp;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기록은 예수님에 대한 기록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뭘 기록할지 자기 생각으로 떠올리고 올려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생각나게 한 대로 기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 제자들이 예수님이 말하고 행한 것을 다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전부 생각나게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또 한 가지 말씀하신 게 있습니다. &amp;ldquo;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amp;rdquo; 이것을 구체적으로 적용시키면 장래에 관한 일은 요한계시록이 되겠습니다. 따라서 다락방 가르침에서 예수님은 성령님에 대해서 가르치시며 제자들에게 복음서, 서신서, 요한계시록을 쓰도록 인도하는 성령님을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이 역사하는 감동의 역사를 말합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성령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말씀을 성령님의 감동으로 썼으면 그것을 읽는 사람도 성령님의 도움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이 성경은 자연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내기 위해서 기록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나타내기 위해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성령님을 가지고 읽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록된 책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님으로 성경이 말하는 바를 알고 우리의 삶이 성령님으로 힘을 얻어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받는 게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마지막으로 구약에서 말하는 성령님의 역할을 하나 더 보고 마치겠습니다. 첫 번째는 성령님은 창조에 관여했습니다. 두 번째는 성령님은 그림자로 말씀하는 걸 보았습니다. 세 번째는 성령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을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구약성경에서 성령님이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을 보겠습니다. 이것을 우리 한국어로 한다면 권고하시는 날 권고라는 말인데, 구약에서는 성령님이 임했다가도 권고하셨다가 안 들으면 성령님이 떠나는 것도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과는 근본적으로 성령님의 역사가 다른 것을 말합니다. 교회 시대의 경륜에서는 모든 구원받은 사람들은 구원받는 순간에 성령님이 영원히 내주하십니다, 여러분이 구원받는 순간에 성령님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영원히 거처를 삼으십니다. 이것도 또한 다락방 가르침에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amp;ldquo;성령님이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그리고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amp;rdquo;(요 14:17)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순절날 하늘에서 성령님이 강림하셨습니다. 오늘날은 성령님이 우리 속에 영원히 내주하는 시대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경우와는 다릅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다윗은 시편 51편에서 말했습니다. &amp;ldquo;여호와의 성신을 내게 거두지 마소서. 왜냐하면 다윗은 밧세바와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하나님 아버지가 다윗으로부터 거두어 갈 것을 걱정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성령님을 거두어 가는 사울의 삶을 봤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진짜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성령님이 사울에게 임해서 왕으로서의 힘을 부여했습니다. 어떤 경우에서는 하나님이 성령님이 사람에게 임해서 그 곤경을 헤쳐나가도록 힘을 주시기도 합니다. 사울뿐 아니라 발람에게까지 성령님이 역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거역할 때 성령님을 하나님이 거두시는 것을 봤기 때문에, 그리고 사무엘이 다윗에게 왕으로 기름을 부었을 때, 기름을 받는 순간에 성령님이 임해서 왕으로서 기능하도록 힘을 부여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런 면에서 구약에서는 성령님이 사람에게 임하되 일시적으로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 속에 내주는 하되 임시적이고 일시적으로 내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성령님이 임하면 어떤 특수한 일 때문에 그 사람에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구약 가운데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에게도 성령님이 임했습니다. 요셉은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전 애굽을 통치하는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모세에게도 임했습니다. 구약 가운데 가장 온유한 사람이 모세였습니다. 백성들을 돌볼 때 모세에게 온유한 성품을 성령님이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모세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 문제들을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나 기드온 같은 사람도 성령님의 도움을 일시적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에게도 성령님이 일시적으로 내주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도록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에게 성령님이 지혜를 주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그러나 신약으로 와서 누가복음 2장에서 시므온에 관한 말씀을 보겠습니다.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시므온은 구약 성도입니다. 누가복음 2:25절입니다. &amp;ldquo;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님이 그 위에 계시더라&amp;rdquo; 성령님이 시몬에게 임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26절에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amp;ldquo;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님의 지시를 받았더니&amp;rdquo;&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이와 같이 구약에서는 특별한 이유 때문에 개인적으로 성령님이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우리는 특별한 특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 성령님이 전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신성의 인격임을 보았습니다. 신약에서는 믿는 우리들에게 영원히 내주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힘을 제공할 힘을 줄 수 있는 인격 말입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성령님이 어떻게 역사하는가를 잠시 보았습니다. 오후 시간에는 신약에서 성령님이 어떻게 역사하는가를 보겠습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2026년 5월 5일 말씀집회 4&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주옥같은 말씀들/다니엘 럿지</category>
      <author>징검 다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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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9 May 2026 11:13:4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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