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교회) 안에서 악기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
“시와 찬송가와 영적 노래로 너희 자신에게 말하며 너희 마음속에서 주께 노래하고 선율(멜로디)을 만들며” (에베소서 5:19)
유의: 멜로디는 마음에서 온다 – 악기 사용에서 오는 선율에 대한 암시가 없다.
코니베어와 하우슨이 그들의 책에 제목을 붙인 “사도 바울의 삶과 서신들”에서 에베소서 5:19의 매우 좋은 번역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당신의 노래를 하는 것은 이방인 잔치들의 음주 노래가 아닙니다, 그러나 시와 찬송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반주는 수금의 음악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의 선율입니다.”
골로새 모임에 대한 지침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모든 지혜로 풍부히 거하게 하여 시와 찬송가와 영적 노래로 서로 가르치고 훈계하며 너희 마음속에서 은혜로 주께 노래하고” 골로새서 3:16에서 “은혜로 노래하고”는 “하나님께 감사로 노래함”이 만들어집니다. 또한 이 구절에서 악기 반주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5:19와 골로새서 3:16에서 드러내는 것은 우리들의 모임 집회들에서 하나님 앞에 감미롭고 좋은 음악입니다 - 이것은 악기 반주가 없이.
고린도 모임에 대한 지침
“그러면 어찌하리요? 내가 영과 함께 기도하고 또 이해하면서 기도하며 내가 영과 함께 노래하고 또 이해하면서 노래하리라”(고린도전서 14:15) 악기 반주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바벨론 체제
요한계시록 18:22에 따라 음악의 악기는 다음 구절이 나타낸 대로 바벨론으로 연결됩니다.
“또 하프 타는 자와 음악 하는 자와 피리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계시록 18:21에 심판은 바벨론 위에 선언됩니다. 바벨론에서 분리하도록 외치세요.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또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너희는 그녀에게서 나와 그녀의 죄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녀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시록 18:4).
요약
성경 에베소서, 고린도전서, 골로새서에서는 우리에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원칙을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모임에서의 노래에 대한 긍정적인 지침을 제시합니다.
계시록 18장에서 우리는 모임 안에서 음악에 대한 부정적인 가르침을 받습니다. 바벨론은 세상에서 가장 종교적인 혼란으로 일반적으로 간주됩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본향에 불림 받은 후에 보다 구체적인 사항을 취할 것입니다(주님의 오심에 의한 휴거됨). 우리에 대한 신성한 원리는 지금이라도 “그녀에게서 나오라”입니다. 그녀에게서 지금 나오는 이것은 여러 상황들을 포함하며, 이것은 악기에 관한 질문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성경의 관점에서 우리가 믿는 것은 모임(교회) 집회들에서 악기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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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집회에서 악기 사용에 대하여
Mervyn Paul
(질문) 왜 우리는 모임에서 악기를 사용할 수 없나요? 악기 사용을 금하는 성경적 근거가 있나요? 저는 지금껏 초대교회에서는 악기를 사용한 적이 없다는 말만 들어왔어요. 만약 악기 사용을 금하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면 악기를 사용하는 이들은 왜 정직하지 않으며, 그들은 왜 악기 사용을 주장하나요?
(답변) 어쩌면 다소 반항적인 사소한 문제 같지만, 확실한 것은, 원칙적으로 호기심 많은 자녀들을 위해 주신 말씀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신 6:20-21). 따라서 우리는 질문을 제기한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의 사실들을 신속히 알려주기 위하여 즉시 간단한 성경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스라엘이 드리는 경배의 한 특징으로 나팔을 불라고 정하셨다(레 23장)(시 81:3-5).
2.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갓과 나단을 통하여 성전 예식에서 노래하는 자들과 찬양과 경배를 위한 반주로 악기를 사용하라는 명령을 주셨다(역대하 29:25-28)(역대하 5:12-13).
3. 주 예수님께서 성전을 “내 아버지 집”이라고 말씀하셨을 때(요 2:16), “즐거운 음악 반주로 찬양하는 시편의 노래”(Edelsheim)는 성전 의식의 일부였다고 역사는 밝히고 있다.
4. 계속해서 성경은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배척하자 주님께서는 성전을 “너희 집”이라고 말씀하시면서(눅 13:35) 성전에 대한 입장을 완전히 바꾸셨다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밝히고 있다. 주님은 지금 이 성전을 폐허인 채로 버려두고 계시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주님은 장차 이스라엘이 그분의 오심을 기쁨으로 환호하며 맞이할 때까지 성전과 예식과 경배자들에게 작별을 고하신다.
5. 주님께서 성전과 의식(儀式)을 단호히 포기하신 것은 예루살렘 밖으로 끌려가셔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실 것을 마지막으로 강조하신 것이었다(히 13:12).
6. 주님께서 성령님에 의해 믿는 이들을 부르신 것은 전적으로 예루살렘 밖에서였다. “그런즉 우리가 그분의 치욕을 짊어지고 진영 밖에 계신 그분께로 나아가자.”(히 13:13).
서두에서 문제를 제기한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부르심이 본래 히브리서의 수신자였던 유대인 회심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젊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1900년 전으로 돌아가 그 당시의 상황을 들여다보게 하였으며, 우리 역시 유대교에서 구원받은 한 젊은 유대인 회심자의 입장에 서서 성경공부를 진행하여 젊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 문제를 깨닫도록 했습니다.
젊은 유대인 회심자는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내가 어릴 적부터 믿어온 희생 제사를 버려야만 합니까?”
“예, 완전히 버리세요. 그 희생 제사는 결코 죄를 제거할 수 없습니다. 완전한 희생제물이신 그리스도께서 영 단 번에 자신의 피를 흘리셔서 영원히 죄를 제거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제도와 대제사장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는 하나님 앞에서 나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섬김도 기꺼이 버려야 하나요?”
“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는 이스라엘의 모든 제사장들보다 더 나은 위대한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그분은 무지한 자와 길을 잃은 자들에게 온전히 긍휼을 베푸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계속해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십니다. 우리는 결코 죽음을 통하여 이루신 그분의 섬김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민족과 언약을 맺으셨다는 사실과 언약 아래서 모든 성전 예식이 행해졌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더 나은 약속 위에 맺어진 더 나은 언약이 있습니다. 실로 구약 제도의 모든 것들은 더 나은 것들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림자를 떠나서 실제를 구해야 합니다. 유대 진영과 유대 진영에 속한 모든 것들을 떠나서 그분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른 후 유대인 회심자가 다시 묻습니다. “그렇다면 흰 옷 입은 노래하는 자와 아름다운 성전 음악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것들은 항상 나를 큰 감동으로 몰고 간답니다! 그것도 버려야 하나요?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요? 맞습니다. 그분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예, 주님. 저는 주님께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약간의 성전 음악을 가지고 나아갈 수는 없나요? 그것은 찬양하는 것을 크게 도울 텐데요! 복음 집회에 나온 구도자들이 우리에게 음악이 전혀 없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주님의 치욕을 짊어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텐데요.”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히브리서 13:13절 말씀이 완전히 정착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유대인 회심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진리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음악은 이스라엘의 행군과 진영의 일부였습니다. 그러나 지성소 안에서는 결코 음악이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교회는 오늘날 하나님의 지성소입니다(고전 3:16-17). 지성소에서는 경배를 돕는 어떠한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악기를 사용하는 음악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령님의 권능에 의해 영 안에서 경배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