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시간표
하나님께서 보신 이방 세계 지배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히브리 선지자에게 이방인의 지배의 전체적인 과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계시하는 7장으로 돌아간다.
3절과 4절에서 우리는 대해 혹은 지중해에서 올라오는 사나운 네 짐승을 본다. 이 짐승들은 우리가 큰 신상에서 보았던 같은 이방 세계제국을 대표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우리는 자기의 목적을 위해 뒤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본다. 왜냐하면, 그것은 짐승을 일어나게 한 “하늘의 네 바람”이 일어났던 결과이기 때문이다. 울타리가 쳐진 바다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이방종족의 들끓는 대중의 상징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모두 흔들고 계시며 종종 사람이 알 수 없게 그의 뜻과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자들을 세우신다. 하나님의 백성을 포로로 잡아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처벌한 느부갓네살, 하나님의 질서를 깨뜨린 바벨론의 교만함을 치기 위한 다리오, 하나님께서 예언한 70년의 끝에 정확하게 자기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귀환시키고 돕도록 한 고레스등이다. 고레스의 이름이 그가 태어나기 100여 년 전에 이사야 44:28과 45:1~5에 언급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세계 세력으로 등장했던 로마제국조차도 그리스도의 초림의 길을 준비하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일으키신 것이다. 또한 로마의 통일된 영향력과 언어도, 그렇지 않으면 전파될 수 없었던 복음의 전파를 위함이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는 것으로 예언되었던 그리스도의 탄생의 장소도 가이사 아구스도의 칙령에 의해 가능했다. 그 이유는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이 아닌 나사렛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눅
네 짐승
첫째는 날개 달린 사자이며, 이것은 바벨론이 선택한 상징이요 극치이다. 바벨론의 고대의 유물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이같이 날개 달린 사자가 바벨론 왕과 제국의 상징으로 탁월하다. 그러나,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퇴보가 있다. 그 이유는 그의 날개가 뽑혔기 때문이다. 그는 능력을 빼앗겼고, 적어도 그는 속도가 줄어 들었다. 또한, 그는 사람처럼 서고 사람의 마음을 가진 것처럼 행한다. 사람처럼 행하고 사람의 마음을 가진 사자는 그의 사납고 왕 같은 성질이 거의 없어졌고 길들여 졌으며 제어받는 참으로 불쌍한 짐승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더 이상 독자적이고 전제적이며 당당한 존재가 아니다. 그는 부드러운 마음과 같은 동정을 가지고 마치 한 때 두려움을 주었지만 이제 사랑을 얻고자 아이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춤을 추는 곰을 생각나게 해준다. 이것은 느부갓네살과 그의 손자 벨사살의 차이점에서 볼 수 있는 바벨론의 쇠약해져 감이다.
다음에는 큰 곰이 나오는데 당당하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지만, 느린 걸음에도 불구하고 전복시키고 부숴뜨린다. 또한, 그러한 것은 메대 바사의 힘이었다. 그 짐승은 그 입의 잇사이에 세 갈빗대를 물고 있었는데, 그것을 케일(Keil)과 다른 이들은 메대의 탐욕스런 강탈에 의하여 밥이 된 바벨론, 루디아, 그리고 애굽을 나타낸다고 한다. 왜냐하면, 메대 바사제국은 문화나 명성이 바벨론에 훨씬 못미치지만 훨씬 더 탐욕스러웠고 억압적이었다. 5절에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고 한 말씀은 아주 적합하다. 그 이유는 그 문제를 넓고 깊게 연구했던 역사가에 의하면 그처럼 잔인하고 파괴적인 혹은 규모에 있어서 이같은 무리가 땅에서 거의 보기 힘들다고 한다.
머리 넷과 네 날개가 달렸던 표범은 분명하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속력으로 빠르게 정복했고, 알렉산더의 죽음 후에 그 신하로 있던 네 장군에 의해 나누어진 헬라제국이다. 새의 날개 넷은 승리하는 네 장군을 나타내고 후에 계속해서 네 머리는 그곳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들의 이름은 마게도냐와 헬라를 차지 했던 카싼더(Cassander), 시리아와 북부 아시아를 차지했던 셀리우커스( Seleucius), 소아시아와 트라기아를 차지했던 리시마커스(Lysimachus), 애굽과 팔레스타인과 아라비아를 차지했던 톨레미(Ptolemy) 이다. 댓포드(Tatford)는 여기의 첫번째 세 짐승은 여호와께서 호세아
네번째 짐승
다니엘
이 환상을 유심히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장차 나타날 제국에 왕 하나가 더 나타나 열 하나가 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열한 째는 그들 중 세 개를 뿌리째 뽑아 버린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온전하게 우위를 차지할 때까지 자란다. 이제 드디어 사건들이 명확하게 촛점이 맞혀지고 또한 우리는 서부 세계를 차지하고 아마겟돈의 마지막 결전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그의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또한 개인적으로 대항할 마지막 큰 세계의 독재자에 대한 예고편을 본다. 계시록 19장 19절을 보라.
뿔
단 7장, 단
최상의 본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께 대한순종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표현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온 가족이 그 아름답고 흠없으신 표준을 보도록 하려고 바로 그분을 가리키십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목할 만한 말씀을 보게 됩니다 :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
아버지께서는 두번씩이나 열린 하늘로부터 자기 아들을 증거하셨는데, 첫번째는 나사렛에서 그분의 사적인 삶이 끝났을 때 있었고, 나중 것은 그분의 공적인 삶의 중간쯤에 그분이 변형되신 산 위에서 있었습니다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그분을 깊이 생각하며 생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순종하기를 배우는 것” 이상으로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선생님과 똑같은 훌륭한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친히 만물의 으뜸이”되셔야만하기 때문입니다(골
(198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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