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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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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6.09.26 여호와 샴마

주께서 거기 계시다(겔 48:35)

도널드 암스트롱

이번 호의 앞부분 기사들에서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주님의 여러 이름들을 통해 그분의 능력, 평화, 공급, 그리고 보호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에스겔의 예언에 나오는 마지막 칭호를 살펴보겠습니다.

기원전 740년부터 시작된 시기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솔로몬 왕의 통치 이후 기원전 975년에 나라가 분열된 데 이어, 남북으로 나뉜 이스라엘은 모두 우상숭배에 깊이 빠졌습니다. 북쪽 지역(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남쪽 지역(유다)은 기원전 586년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경건한 두 젊은이, 에스겔과 다니엘 또한 각각 바빌론으로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이 떠나온 땅과 성읍, 성전은 주님의 임재와 영광을 누렸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폐허가 되었고, 아시리아와 바빌론의 세습 통치를 통해 반역한 이스라엘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이가봇과 같은 상황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에스겔은 그의 위대한 예언의 끝부분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오고, 땅이 회복되고,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재건되고, 주님의 영광과 임재가 다시 드러나는 미래의 날을 이야기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예언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합니다. “그 날부터 그 성읍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니라[여호와 샴마]”(겔 48:35).

주님의 임재는 창세기의 가장 앞부분부터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구절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며, 여기서는 그분의 임재에 대한 핵심적인 특징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통해 인간이 그분의 임재를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에덴동산의 질서에서 나타나는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 세계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고 통치하는 중보자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인간과 함께 거니시며 말씀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이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주님의 임재를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느니라”(마 18: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긴밀한 교제는 인간의 죄로 인해 깨졌고, 그 결과 인간은 “쫓겨났습니다”(창 3:24). 성경 전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그분의 임재와 그분의 임재에 대한 약속을 알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끊임없이 알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주님은 이삭에게 “내가 너와 함께하며 네게 복을 주리라”(창 26: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에게는 “내가 모세와 함께하던 것같이 너와 함께하리라”(수 1:5)라는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네 이름으로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니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사 43: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20의 약속 외에도, 주님은 제자들을 복음을 전하러 보내시면서 “보라,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하리라”(마 28: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주께서는 그들을 떠나시기 전에 성령님을 보내시어 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 안에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 14:17; 16:7).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시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원칙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의 예는 주님의 임재에 대한 약속이 무조건적인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주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전지하시며, 그들의 행동과 반복되는 불신실함을 항상 알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을 특별한 보물로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의 계명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출 19:5). 교회는 하나님과 다른 관계를 맺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삶 속에서 주님의 임재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요구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는 신약의 여러 서신에서 볼 수 있는데, 모든 연령, 성별, 직분, 봉사를 아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가르침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려면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기대하시는 행실을 관찰하고 따라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순종하는 자녀들로서…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갖 종류의 행실에 거룩할지니라”(벧전 1:14-15).

신의 형벌

사울 왕이 여호와의 명령을 불순종한 결과, 여호와의 임재를 잃게 되었습니다(삼상 16:14). 마찬가지로 사무엘 시대에 엘리의 며느리는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갓 태어난 아들에게 이가봇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이는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뜻입니다. 그녀는 여호와의 궤가 빼앗기고 시아버지와 남편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에 슬퍼했습니다. 시편 기자처럼 우리도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시 66:18). 우리의 죄악은 우리의 기도와 능력, 평화, 그리고 우리 삶 속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는 것을 방해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우리는 에스겔의 예언으로 돌아갑니다. 그가 포로 생활을 하면서, 황폐해진 예루살렘이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얼마나 큰 격려를 받았을까요? 그는 성읍과 성전에 임할 영광에 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기쁨은 새 이름인 여호와 샴마, 즉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이스라엘이 맞이할 미래입니다. 아직 미래에 도래할 위대한 왕국이 언약된 천년 왕국의 영광과 궁극적인 영원한 창조의 복을 통해 펼쳐질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매우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두 가지 생각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 모든 신자는 현재 하나님의 영, 즉 신성한 임재로 내주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너희 몸은 너희 속에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라고 썼습니다. 이 심오한 사실은 변할 수 없으며, 우리가 영과 육신을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살아 있는 성소로 여기는 존엄성을 깨달을 때, 이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깊이 살피게 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쓴 마음, 분노, 화, 고함, 악담, 악의(31절)와 같은 행동으로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슬프게 할 수 있습니다(엡 4:30). 이러한 것들은 우리에게서 제거되어야 하며,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성령의 열매, 곧 “사랑, 기쁨, 평화, 오래 참음, 온유, 선함, 믿음, 겸손, 절제”(갈 5:22)를 통해 우리 안에 주님의 임재를 나타내시도록 해야 합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처한 상황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조건부로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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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