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7)
–윌리암 윌리암즈
소년들은 이내 저의 변화를 감지했습니다. 그 후로부터 2년 후 제가 그 조선소를 떠날 때까지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저는 절개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핍박은 배가(倍加)되었습니다. 저는 십장이 없으면 조립 공장으로 들어가기를 꽤 무서워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큰 펌프 라이너를 위해 천분의 1인치까지 치수를 재려고 거기로 가야만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십장이 공장 안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거기에 없었습니다. 저의 도착은 장난이 시작되는 신호였습니다. 한 명이 물고기 상자 위에 올라가 복음 전하는 것을 흉내내자 이내 군중이 그 주위로 몰려 들었습니다. 저는 수지(獸脂)와 쓰레기, 널과 물고기 상자의 연발 사격을 받으며 골라야 할 치수들이 있는 기관으로 갔습니다. 다수의 기계공들이 그 큰 기관 위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목사의 아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신경을 진정시키기 위해 콧노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천 분의 일 인치까지 치수를 재는 일은 안정된 손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당시 마이크로미터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목사의 아들은 몹시 성을 내며 큰 망치를 들고 제가 만약 계속하면 제 머리통을 부숴 버리겠다고 윽박질렀습니다. 다행히도 십장이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저는 간신히 그 일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관 뒤에서 걸음을 옮겼을 때 6피이트의 높이로 무거운 꼬리 굴대를 옳기던 기중기가 하마터면 제 머리를 때릴 뻔했습니다. “비켜라, 윌리암즈,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네가 바라는 것보다 더 빨리 너를 천국으로 보내 주겠다”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마지막 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조선대 위에 있는 배의 선미재(船尾材)에 구멍을 뚫는 책임을 맡은 기관장이 출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배는 곧 진수 될 예정이었으므로 십장은 저에게 가서 그 일을 떠맡아 끝을 내라고 말했습니다. 거기에는 세 명의 더 어린 견습공들과 한 명의 숙련공이 그 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지도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오전 내내 아무 일도 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내를 가로질러 오는 저를 보자 “이 좋은 날 내 천한 몸····”이라는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려움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주님을 바라보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들의 지도자가 일장연설을 했습니다. 저는 “장(長)”이 아니고 5년째의 견습공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절대적인 복종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 그 연설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다음 날이 되자 그들은 병든 “장(長)”이 그 일은 토요일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많이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함이 없이 저 거친 소년들을 다룰 수 있을까? 제가 만일 구원을 받지 않았다면 기관사 스타일로 첫 번째 위반자를 두들겨 눕힌 다음 비계 아래 바다 속으로 떨어뜨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완력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일을 시작하도록 감시했습니다. 기계는 잘 작동했습니다. 주수기(注水器)에서 일하는 견습공으로부터 날아온 뜻밖의 비눗물을 제외하고는 그리 많은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한 소년이 피곤해지자 저는 그들을 도와 주었습니다. 우리가 그 일을 금요일
맥의 전도를 통해 두 세 명의 젊은이가 믿는다고 고백했지만 그들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그 구내에서 저와 함께 일했던 40명 남짓한 도제들 중에서 구원받아 계속 주님을 위해 산 사람은 제가 헤아려 보는 한 아무도 없습니다. 나중에 저는 아마도 “예수님의 은밀한 제자들”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조금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간증은 제로였습니다. 많은 햇수가 흐른 후에 저는 저와 함께 일하던 사람들 중에 크롬비라 불리던 한 젊은이가 케이프 타운과 영국 사이에 있는 바다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몹시 애석했습니다. 그가 보조 기관사의 자격으로 남 아프리카로 가는 기선을 타려고 애버딘을 떠나는 날 저는 그에게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간청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자기는 그것을 숙고해 보았으며 첫 여행을 마치고 애버딘으로 다시 돌아오면 그리스도를 믿을 작정이라고 말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었고 그의 유해는 바다 속으로 던져져 바다가 죽은 자들을 내어 놓을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목사의 아들은 동 아프리카에서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그는 원주민들을 너무나 못살게 굴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를 죽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의학적인 도움을 소용없게 만드는 어떤 것을 그에게 먹였습니다. 그는 애딘버러에서 수술을 받은 후 자기가 살았던 삶대로 큰 고통 속에 죽었습니다. 그는 제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비정한 기관사들조차 분개하는 일들을 입에 담거나 저질렀습니다. 그는 비겁한 자였으며, 약한 자를 못살게 구는 자였으며, 목사관의 슬픈 산물이었습니다 ♠ - 계속
(198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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