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아니라 믿음
“그래요.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모두 믿어요. 사실. 저는 모든 성경 말씀을 믿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제가 구원 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할 때까지는 구원 받았다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저도 역시 구원 받은 것을 느끼지는 않아요. 제가 구원 받은 지는 거의 5년 되었지만 구원 받은 것을 느껴 본 적은 아직까지 한 번도 없어요, 부인께서 만일 자신이 구원 받은 것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기다리신다면 결코 구원 받지 못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 받은 것을 느껴야 한다고 아무 데서도 말하지 않아요.”
“하지만 선생님. 성경은 우리가 거듭나야 한다고 말하는데 저는 큰 변화가 저에게 일어났다는 것을 느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설마 선생님께서는 제가 구원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비참한 상태로 하나님 만나기를 두려워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그런 뜻은 아니에요. 부인께서 구원받는 순간 충분한 변화가 있을 것이며 부인께서는 사단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될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사단은 부인으로 하여금 변화를 느끼실 때까지 기다리게 함으로써, 그리고 부인께서 변화를 가져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있는 동안, 부인을 속이고 있는 겁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
“이제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부인의 남편 되시는 분이 바다에 나가 있고 부인은 어린 자녀들과 함께 집에 남아 있다고 가정합시다. 돈은 다 떨어졌고 먹을 음식도 없습니다. 자녀들은 배고플 것이고 부인은 불 옆에 앉아 처지를 생각하며 비참함을 느낄 것입니다. 부인께서는 변화를 원하지만 부인의 비참함이 그 변화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부인의 생각들은 자녀들의 굶주린 위장을 채워 주지 않으며 슬픈 얼굴에 즐거운 미소를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지요! 그러다가 부인은 크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랍니다. 문을 열었더니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 한 장을 손에 쥐어 주는 거예요. 부인은 그것이 남편의 필적임을 금방 알아봅니다. 그것을 뜯어 보니 거기에는 우편환 한 장이 들어 있는 거예요. 그것은 부인께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부인께선 그저 가만히 앉아 자신의 비참함을 곰곰히 생각하며 변화를 기다리십니까? 세상에서 부인처럼 가련한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그럴 리 없습니다! 부인께서는 코우트를 입고 우체국으로 가 우편환을 현금으로 바꾼 후 가게들을 방문하여 필요한 물건들을 잔뜩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오시겠지요. 그러면 자녀들은 무척이나 기뻐할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큰 변화입니까! 그런데 이 변화는 어떻게 해서 일어났습니까? 물론 편지를 통해서지요. 부인은 그것을 읽었고 부인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 변화는 부인이 우편환을 현금으로 바꾸기 전에 이미 일어났을 것이고 부인의 슬픔은 사라지고 부인의 마음은 가벼워졌을 것입니다. 편지가 이 모든 일을 했지요. 그런데도 부인께서는 왜 하나님의 편지에 귀를 기울이고 구원을 받으려 하지 않으십니까? 부인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편지에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딤전
“게다가 하나님의 편지는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독자 여러분, 여러분께서도 역시 그 부인처럼 믿음의 자리에 느낌을 갖다 놓지 않으셨습니까? 어쩌면 여러분도 역시 성경의 모든 말씀을 믿으면서도 구원 받은 것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오! 그와 같은 것에 더 이상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떠나서 주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하늘의 보좌에 앉히셨으며 이것은 십자가의 사역이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렸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족시켰다면 여러분이 만족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구원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롬
이것은 느낌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
(198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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