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복음 전도에 관한 오해들 가운데서 네 번째 것을 고려해 보기로 하겠는데 그것은 곧, 순종과 율법주의를 혼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오해를 소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들어볼 수 있습니다.
Ⅳ. 순종과 율법주의
참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 사항을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명령하는 바를 듣고 그것에 순종해야 한다고 지적을 받으면 “오, 그것은 율법주의에요!”라는 반응을 나타낼지도 모릅니다. 혹은 어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이라고 믿는 바를 실천할 때, 그를 직접 대해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그를 “율법주의자”라고 비난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우에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아주 비성서적인 일입니다! 이제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1] 그리스도인의 삶은 믿음의 행위,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로마서
[2] 주님께 대한 믿음의 순종이라는, 그 최초의 행위의 결과로 지금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순종하는 자식”이 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벧전
[3] 요한복음 14-15장, 곧 우리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강론에서 우리가 여러 번 발견하게 되는 사실은 그들이 자기들의 주로서 시인한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그분이 기대하셨다는 점입니다. 요한복음
[4]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그분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들 중의 하나입니다. 만일 이와 같은 증거가 결핍되어 있다면 요한일서에서 지적하는 바대로(요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율법주의”와 동일시하는, 이 어리석음을 우리 모두는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 그분이 주신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로운 마음으로 그분의 뜻을 순종하게 만들지, 그것을 무시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분에게 순종하기를 거절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우리가 이미 언급한 오해 한 가지를 여기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데 그것은 곧, 죄에서 구원해주신 구주 그리스도입니다.
V. 죄로부터 구원해 주신 구주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될 때에 청중들은 다가오는 심판에 대하여 경고를 받고, 경건치 못한 사람들에게 임할 임박한 숙명을 피하기 위해 복음을 “믿으라”는 권면을 흔히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은, 우리가 피난처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피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장차 다가오는 그 심판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멧세지를 제시하는 데에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멧세지가 오직 그러한 관점에서만 제시되는 데에, 다시 말해서 우리 주님이 먼저는 이 생(生)의 죄로부터 구원해 주신 구주시라는 것을 언급함이 없이 오직 그 관점에서만 제시되는 데에 너무나 흔한 잘못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가 항상 강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청중들은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음이 없이 그저 지옥으로부터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장차 올 진노를 피하기 위해” “믿은” 다음에, 믿는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구원받은” 결과로 마땅히 행해야 하는 책임으로부터 돌아서 버립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여전히 중생치 못한 마음에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외견상으로는 구원받은 것처럼 보이는 이와 같은 종류의 구원은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어떤 유명한 성경교사와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영생이 있다는 증거를 전혀 보이지 않는 삶을 살면서도 말로는 “믿는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토론했습니다(요한은 그의 처음 서신서에서 이 영생이 참으로 있는 곳에는 그 증거를 언제나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형제는 이 증거가 흔히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저와 동의한 다음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항상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이 믿을 때에 주님보고 무엇으로부터 당신을 구원해 주시라고 요구하셨습니까?’라고요. 그러면 제가 얻는 답변은 항상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이지 죄로부터의 구원은 아니었습니다!”
저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 A. W. 토저는 얼마 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현대의 복음집회에서 생성되는 그리스도인들의 질이 가련할 정도로 낮은 이유는 참된 회개의 부재(不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회개의 부재는 죄와 악을 부적절하게 본 결과입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신 구주로 제시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우리는 덧붙이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실제로 기록하고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는 죄인을 그의 죄 안에서(in his sin) 구원해 주신다”는 개념(이 말은 그리스도가 죄인의 모든 죄로부터 죄인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일부의 죄로부터 구원하신다는 뜻임 -역자주)은 충격적으로 비성서적인 말입니다. 그분은 죄인의 소원대로 그를 죄로부터 (멀리) 구원해 주시든지 아니면, 그를 전혀 구원해 주시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반짜리 구원을 결코 제시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무책임한 화재보험 따위를 결코 제시하지 않으십니다!(그분은 지옥불에서만 구원해 주신 후 그 다음부터는 무책임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신다는 뜻 - 역자 주) 그분의 구원은 참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 안에서 그들의 삶의 방향이 급작스럽게 변하게 만듭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문자적으로는 ‘죄로부터 멀리’)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98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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